약사: 대열 자전거 동호회 쟌차부대 10년 이야기
이 회고는 대열임관50주년 기념책자 (가칭: 대열 반세기 여정)에 수록시킬 예정인 대열의 동호회 활동 약사에 대해 각 동호회 회장께 작성을 요청해 받은 글의 하나입니다. 각 동호회는 졸업이후 현역시절에서부터 시작되기도 했었지만, 책자 편집 편의상 동기회 활동과 함께 은퇴이후 제3부에 포함시켰음을 양해해 주기 바랍니다. 이 글은 자전거동호회 약사를 차성근 현임 동호회장의 위임을 받아 김명수가 작성한 것입니다.
이 밖에도 이달 말까지 작성제출을 요청했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각 동호회 및 지역포럼 등의 활동 약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착되는 대로 대열 카페의 50주년 [특집]<대열반세기 우리들이야기>에 옮겨 동기생 전체가 일별하고 공감하도록 할 것입니다.
-편집위원 김명수 (註)-
대열 자전거 동호회 “쟌차부대” 10년 이야기
대열 자전거동회 쟌차부대는 조국중흥의 기점인 5.16군사혁명 50주년을 맞은 2011년 5월16일 구재림 김명수 김상태 김홍찬 이원종 전인구 6명이 한강 잠실지구 탄천하구에 모여 첫 라이딩을 가지며 결성됐고, 이후 임창희(11.8.29) 한태식(11.10.24) 고중운(13.5.16) 차성근((2017.4,16)이 합류했으며, 초대 이원종회장에 이어 현재 차성근(2018.4~)이 회장이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자전거동호회는 라이딩 회수를 6월20일 현재 93회로 기록하고 있다. 회원은 총 8명에 불과했었고 그나마 최근 주요 활동인원이 4명으로 줄었지만. 육사전체 동기생 중 자전거 동호회는 대열이 시조일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진다.
동기생간 건강증진 우의도모도 목적이지만, 소수 회원들은 역시 조국간성 대열의 일원인지라, 자리가 잡히면서 대열 본연의 출신 이미지에 맞게 주로 애국 및 호국 추모 테마 라이딩에 나서게 됐다.
백마고지와 민통선 이북 철정리 기차역 등 접적 전방지역과 미군참전 오산 죽미령 등의 6.25전적지, 제암리 및 강화도 해안진 등 항일운동 및 대외항쟁 사적지 등을 중심으로 찾아다녔다.
그런 라이딩 중 인상적이었던 곳으로는 인천 월미도 그린비치부터 서울경복궁까지의 인천상륙작전 진격로, 영흥도 십리포 상륙작전개시지점 해변, 전방 애기봉 및 백마고지 전적지와 임진강유역 평화누리길, 수원팔달산 3.1만세운동 기념비 등 전국 삼일운동 사적지 등을 꼽을 수 있고, 지난 6월20일 찾아 참배한 육사생도(1,2기) 6.25참전 기념비 등이 가장 좋은 예들일 것이다.
대열 자전거 동호회 라이딩은 말한 대로 2011년 5월16일 시작됐다. 당시 대열 동기생 중 김명수 전인구 등이 고교동창 자전거동호회 일원으로서 혹은 개별 라이딩을 하며 후기를 대열홈피에도 올리면서, 이에 관심을 가진 동기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던 끝에, 김상태와 구재림의 선도와 김명수의 자문에 의해 추진되었고, 여기에 동의하고 가세한 잔차꾼들이 그 옛날 5.16 거사를 이루듯 모여 첫 라이딩을 가졌던 것이다.
각양각색의 복장과 자전차가 등장했지만, 라이딩은 생도와 사관 출신답게 질서정연했으며 누가 제안하든 그 방향으로 행동을 통일시켜 나가니 라이딩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모임의 향후 발전방향에 대해서도 일사천리로 뜻이 모아졌다.
동호회의 이름은 쟌차부대! 생소하겠지만, 자전거는 도입시기인 일제시대부터“자전차”라고도 불렸고, 자전거 타는 이들을 “잔차꾼”이라고도 했다.(2017년 제작-2019년 개봉 <자전차왕 엄복동> 참조).
이를 감안해 군 출신인 우리에게 자전차 동호회는 자전차 부대일 것이며, 자전차는 전차(탱크)를 연상시키는 것이어서‘잔차부대’로 굳어지는 가운데. 김상태가 멋진 이미지의“쟌차”로 각색해“쟌차부대”가 된 것이다.
첫 회장은 당시 가장 우수하고 선진적인 장비를 구비한(^^) 이원종 동기가 봉사의 정신을 발휘해 맡기로 했고(모임을 주선한 상태/재림이는 워낙 바쁜 사람들이라서 고사), 매월 첫 주 또는 마지막 주 월요일에 모이기로 했다. 그러나 대열동기생들 대부분 그러하듯이 은퇴 이후로도 평일에 하는 일이 많아진 관계로 다시 휴일인 제3주 일요일로 옮겨갔다. 나머지 1,2,4 주 일요일들은 대원들 중 2명이 성동고 동창 바이콜릭스 라이딩에 참여해야 했기 때문이란 숨은 사연도 있었다.
쟌차부대 라이딩엔 한 때 서울강남구의 유명 실력파 자전거동호회 멤버들인 여성대원 3명이 김상태의 인솔 하에 등장하고 김명수의 가족도 합류해 향기 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었다. 호시절이었는데 지금은 대원들도 줄어들어 쓸쓸해져 간다. 그러나 뒤 늦게 가담하면서 회장까지 맡아 애쓰는 차성근의 정열이 쟌차부대의 역동적인 주파(走破) 에너지 못지않게 모임의 분위기를 달궈 주고 있어 다행이며 행복하다.
한편 회원들은 기본체력이 갖춰진 터에 라이딩 능력과 속도가 웬만한 기존 자전거 동호회의 실력 이상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고. 무한한 발전 가능성에 크나큰 기대를 걸기에 충분했다.
그 예상은 김명수 김홍찬 2인이 한 때 라이더 들 사이에 선망의 코스였던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 4대강 종주 라이딩을 넘어서는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면서 증명되었다. 섬진강과 충북5천 종주를 더 했음은 물론, 모든 강의 발원지인 산꼭대기 샘부터 내리달리는 기염을 토했던 것이 그것이다. 둘다 특전사 출신이긴 했지만, 모두 환갑을 넘긴 시절의 일들이라 특기해 줄 만한 기록이었다.
대열 자전거 동호회 쟌차부대의 자전거 타기는 100세까지도 이어갈 것이다. 모터사이클 못지않게 주행 중 전방에 시시각각 나타나는 장애물이 조성하는 위기들을 본능적인 찰라의 판단과 대응으로 극복해 가다보면, 노년에 맞게 될 몸 치매를 예방하는 데에 최고의 효능을 보여주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대열 쟌차부대 결성 해인 2011년 이른 봄, 한강에서 만난 자전거 꾼인 해사1기생이 있다. 그는 전두환 선배를 잘 알며 주로 미국파견 무관출신으로서 당시 나이가 80이었는데, 한강변 젊은 놈팽이들이 탈취하려 덤비는 위기를 넘겼다고 할 정도의 고급 자전거 무츠(당시 호가 1천만 원. 지금 내 자전거도 노년에 맞춰 개비한 그 무츠)를 가지고 있었다.
자전거 동호인으로서 서로 출신을 밝히며 나눈 대화 속에 그는 1985년 미국 근무시 위암 판정을 받았고, 미국의사로부터 처방 받은 극복방법이 자전거 타기였으며, 자전거 타기에 매진해 결국 암을 극복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자전거 타기의 건강증진 효과보다는 80세 까지도 운동을 즐길 수 있다는 꿑팁을 얻은 것이어서 더 기뻤으며, 그래서 대열 자전차 동호회 결성에 적극 나섰던 것이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음에 행복해 하며, 다른 동기생들의 자전거 타기 추가 합류를 지금도 권하게 되는 것이다. §
2021.6.23. 김명수
<쟌차부대의 첫 만남>
<호황이었던 시절>
<참가인원은 줄어가지만 정체성을 살려가는 쟌차부대 라이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