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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의식을 통한 새로운 전개 이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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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인의 시세계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 시인의 모든 작품은 하나의 커다란 테두리 안에 들어있으며, 하나의 긴 연장선 위에 놓여있는 연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한 시인의 모든 작품은 제각기 다른 외양과 특색을 지닌 독립된 개체지만 그 시인의 문학적 특성을 부분적으로나마 고루 나누어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 시인 자신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시를 인유의 대상으로 삼아 새롭게 변주함으로써 여러 작품은 동질성과 중첩된 유사성을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이유로 인해 각작품은 서로 다른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상호텍스트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거시적인 시각을 조금만 좁혀서 바라본다면 한 시인의 시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긴 연장선에도 여러 방향으로 구부러진 굴곡과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닌 마디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굴곡과 마디는 어느 시기에 발생한 변화가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채 일정기간 지속되어 하나의 성향을 지니게 됨으로써 형성된다.
마경덕의 경우,『신발論』(2005년) 이후에 발표된 작품들은 이미 변화하기 시작했고 최근에 이르러 그 변화는 좀 더 분명해지고 있다. 그 점에 대해 권경아는 <확장의 시학>(시와사람, 2008. 가을호)에서 마경덕의『신발論』에 수록된 작품을 포함하여 근래의 신작시까지 살펴보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마경덕의 시세계는 삶의 다양한 경험과 일상의 사물들을 세심한 관찰을 통해 읽어내고 이러한 대상을 객관화시킴으로써 시적 형상화를 이루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는 사소한 일상의 한 순간을 포착하는 섬세한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일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은 첫 시집「신발論」에서부터 최근의 신작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세계의 출발점이자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마경덕의 시세계가 경험과 일상의 사물들을 객관화시키는 것에서 시적 대상을 내면화시키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면 이번 신작시에서는 또 다른 변화의 징후가 드러나고 있다. 그 동안 개인의 경험이나 일상을 세심하게 천착해가던 시선이 개인을 넘어 사회로, 세계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사소한 경험이나 사물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사회나 세계의 현상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방식. 이번 신작시들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고정된 하나의 시세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통해 끊임없이 확장되어 가는 시세계. 이것이 마경덕이 보여주는 확장의 시학이다.
권경아의 견해는 마경덕의 시세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 변화는 가까운 주변의 사물에 대한 세심한 관찰에서부터 시작된 마경덕의 시세계가 점차 외부세계의 사물로 시적 인식의 대상과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견해는 마경덕의『신발論』과 그 후의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특징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마경덕의 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시적 대상을 향한 시각의 확장과 대상의 확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시인의 시각이 넓어지고 그에 따라 시적 대상이 달라진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시인의 가치관이 달라지고 있거나 기존의 가치관이 시를 통해 새롭게 전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시가 시인의 가치관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시인이 시를 통해 말하는 것은 그가 관심을 가지고 유념한 것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인이 유념한 것들에 대한 가치부여는 시인의 말하는 방식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특히 마경덕의 경우 그의 시세계가 과거보다 더 넓은 세계를 향해 시적 인식의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다고 했을 때 그와 같은 변화의 구체적인 양상은 그의 새로운 시에서 과거와 다른 형태의 세계인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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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관점에서 마경덕의 최근작 다섯 편을 통해 마경덕의 새로운 세상보기의 대상과 그 양상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것은 시인의 시각이 사회와 자연을 향해 열리고 있다는 점과 그러한 세상보기는 강한 비판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비판의식은 회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며 심화되는 비극적 세계인식으로 귀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인 사회현상의 배후에 숨어있는 본질적인 국면으로 다가서는 일종의 방법론적 회의이며 비판이다. 그러기에 그의 비판적 시각에 노출된 세계의 겉모습은 병든 사회와 쓸쓸하고 메마른 자연으로 나타나지만 그 안에는 그러한 회의적 세계인식과 대립되는 것이 늘 숨어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는 똥에서 나온다.
비판의식을 통한 새로운 전개명품 코피 루왁(Kopi luwak)은 커피 열매를 까는 게 귀찮아서 숲에 널린 사향고양이 배설물을 주워, 게으른 자가 만든 커피라는데, 한해 수확량은 통틀어 500kg, 커피 한잔에 오만 원에서 십만 원인 커피 값은 순전히 똥의 힘이다.
뱀장어처럼 미끈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야생 사향고양이, 누구에게도 길들지 않는 야성은 사타구니 분비물을 커피나무에 문질러 찜을 해놓았다. 흰 꽃이 지고 시벳(Civet) 향이 짙어지면 인도네시아 자바섬은 체리 빛으로 흐드러져 오밤중, 커피나무 두 손이 빨갛게 물이 드는데, 사람에게 먹히기 전, 주인 몰래 가지에 다닥다닥 매달린 새끼를 사향고양이에게 입양해주는데, 고양이는 소화되지 않는 씨를 그대로 쏟아내고, 똥에 섞여 사흘만 버티면 씨앗에서 눈이 트는데,
인근 주민들은 해가 뜨기 전 샅샅이 숲을 뒤진다. 커피나무 치맛자락을 들춰내고 그늘에 숨겨둔 배설물을 모두 수거해간다. 사향고양이 침과 위액에 섞여 발효를 마친 커피 맛은, 부드럽고 은은해서 그야말로 꿈의 커피,
루왁은 천천히…어금니를 적시며 온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커피 맛은 밭이랑을 날아오르는 흙냄새, 흙 묻은 베적삼이 비에 젖는 냄새, 미처 눈을 뜨지 못한 생두의 눈물맛인데,
-「똥커피」전문
<똥커피>는 시의 제목은 물론 시의 첫행부터 시인의 속물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태도를 드러낸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 한 잔에 오 만원에서 십만 원인 커피 값은 순전히 똥의 힘이다' 라는 시적 진술은 대단히 역설적이며 동시에 금전이나 명예를 제일로 여기는 속물주의와 정면으로 대립되는 표현이다. 그런 까닭에 값비싼 명품을 향해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그 구절은 강한 충격을 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비판은 단순히 비판함으로써 그 목적이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마경덕의 경우 속물주의에 대한 비판은 오히려 속물주의로 인해 잃어버렸거나 망각한 것들을 상기시키고 되살려내며, 그것은 속물주의와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흙냄새'와 '흙 묻은 베적삼'으로 나타난다. 흙냄새와 흙이 묻은 베적삼은 똥커피의 생두에 생명을 불어넣는 대지에 대한 상징이며 나아가 모성과 생명의 근원에 대한 상징이다. 그처럼 마경덕의 비판적 시각은 날카로우면서도 따스한 온기를 지닌 비판이 된다. 그리고 그와 같은 마경덕의 비판적 시각의 특징은 시적 대상을 달리하며 계속 이어진다.
은하수아파트 104호 하늘이네
공터 호박밭, 호박꽃 기도원
소문을 듣고 몰려든 벌떼 성도들
말 잘하는 말벌집사 상냥한 꿀벌권사가 안내를 맡아, 모처럼
햇볕도 쨍
기도하기 좋겠다
땅벌, 애꽃벌, 호리병벌, 일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붕붕붕, 새 날개를 주소서 붕붕붕
호박꽃 기도원은 통성기도 중
날개 달린 천사들 소원을 금 대접에 담아 바쁘게 하늘을 오가는데
맨 앞자리 여왕벌은 오늘도 결석
바람에게 속아 실족한 애호박은 바닥에 엎드려 회개 중이다
평신도 호박벌, 무릎 꿇고 간신히 두 날개 가슴에 모았는데
불신자인 쌍살벌이 호박벌의 부실한 날개를 비웃는다
뚱뚱보 호박벌은 과학자가 아니어서
몸의 중량과 날개에 작용하는 양력을 모른다
총중량을 날개의 면적으로 나눈 값은 더더욱 모른다
모태신앙 땡벌장로도 어림없지, 어림없어 고개를 젓는데
턱없이 짧은 날개를 믿는 건, 호박벌의 믿음
아멘!
한 마디가 무거운 호박벌을 들어올린다
-「호박꽃 기도원」전문
<호박꽃 기도원>은 종교적 속물주의와 오늘날 많은 교회가 고질병으로 앓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바리새주의(pharisaism)를 비판한다. 마경덕은 아파트의 공터에 있는 호박밭을 기도원에 비유하며 호박꽃에 모여든 벌들을 기도원에 모여든 여러 종류의 신자들로 비유한다. 그러나 그 벌들에 대한 마경덕의 시선은, 시의 어조에 의하면, 결코 고운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마경덕은 기도원을 찾아온 기독교 신자들의 모습, 특히 기독교 신앙의 참된 모습보다는 복을 빌고 소원을 비는 기복신앙의 모습에 대해 그 반대편에다 호박벌의 소박하고 단순한 믿음을 배치한다. 그것은 마경덕의 개인적인 신앙이나 구원관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시의 내용과 시의 화자가 사용하는 어법과 어조는 다분히 기독교와 관련된 내부인의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멘! 한 마디가 무거운 호박벌을 들어올린다'는 구절은 기독교의 신학적인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기 때문이다.
신학적인 차원에서 기독교의 믿음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신약성서의 로마서가 강조하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야고보서의 핵심내용인 <행함의 믿음> 혹은 <믿음의 행함>이다. 그런데 마경덕은 교회 안에서 기득권자로 행세하는 직분자들과 평신도인 호박벌의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구원의 확신, 즉 '아멘' 한 마디를 대비시켜 놓음으로서 모태신앙과 장로라는 직분이 지니고 있는 종교적 허구성을 강하게 비판하며 동시에 믿음과 구원의 본질을 평신도인 호박벌의 단순하고 소박한 믿음을 통해 매우 간결하게 이야기한다. 그 또한 비판적 시각을 통해 믿음과 구원의 본질로 다가서는 마경덕 스타일의 특징적인 비판이라 할 수 있다.
팔뚝으로 마시는 뽕도 있었다. 그 뾰족 침에 찔리면 온몸에 거뭇거뭇 뽕물이 들었다. 그 뽕물 힘으로 푹신한 구름 위로 둥둥 떠다녔다. 오랫동안 구름을 타본 사람들은 모두 외계의 언어를 들었다고 했다. 흰 구름이 먹구름으로 변해 그들은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허공으로 걸어가는 법을 터득한 고수들만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그렇게 추종하던 망상이 깨지는 순간, 그들도 옷을 바꿔 입었다.
함부로 뽕을 만지면 까맣게 물이 든다. 혹, 비닐장갑을 끼면 몰라도.
-「뽕은 왜 옷을 입지 않았나」부분
<뽕은 왜 옷을 입지 않았나>에서 마경덕은 '뽕'에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하며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외설문화와 마약 등 퇴폐적인 현상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알몸이기 때문에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던 여배우와 모바일 서비스에 줄줄이 옷을 벗고 나선 여인들, 그리고 팔뚝으로 마시는 뽕 등을 이야기하며 타락한 성문화를 비판한다. 그는 이 시에서 '뽕'을 다의적이고 다가적(多價的)으로 사용하는데 시의 끝부분에서는 뽕에 치명적인 성병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콘돔을 상징하는 비닐장갑을 말함으로써 방종하고 타락한 쾌락추구의 성문화를 비판하며 동시에 그 마지막 구절을 일종의 경구로 만들어놓는다. 그 경구는 앞서 두 편의 시에서 비판을 통해 생명의 근원을 상기시키고, 믿음의 본질을 향해 다가서는 것과 상당히 비슷한 기능을 수행한다. 실상 콘돔은 오늘날 피임도구로서의 기능보다는 에이즈와 같은 치명적인 성병을 예방하는 도구로서의 기능과 의미가 훨씬 더 크며, 현재의 시점에서 콘돔은 그와 같은 치명적인 성병으로 인해 무너지고 부서지는 인간세계를 조금이나마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보호막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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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편의 최근작 중에서 앞의 세 편의 시, <똥커피>, <호박꽃 기도원> 그리고 <뽕은 왜 옷을 입지 않았나>가 우리들이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지적하며 그것들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면, 나머지 두 편의 시, <기러기 비행장>과 <찔레꽃 가뭄>은 마경덕의 시선이 자연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두 편의 시에 나타난 자연은 인간 사회와 자연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뉘어진 자연이 아니며 낭만적인 자연도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삶과 직접, 간접적으로 이어진 자연이다. 그러기에 그 경우 자연에 대한 관심은 다분히 생태학적인 관심이 된다.
<기러기 비행장>에서 기러기는 비행기에 비유되는데 그것은 결코 낯선 비유는 아니다. 문제는 그러한 비유를 사용한 시인의 말하는 방식, 좀 더 구체적으로는 마경덕이 선택한 어휘들과 그 어휘들을 사용한 시의 어법과 어조에 의해서 자연에 부여된 가치다.
기러기 비행장이 된 곳은 일종의 소외된 땅이며 길을 잃고 불시착한 새들, 그리고 자식을 타국으로 보낸 사내가 울고 있는, 즉 소외된 존재들이 임시로 사용하는 땅이다. 더욱이 어린 조종사의 사고, 텅 빈 격납고 등은 그러한 소외와 황폐함을 더욱 심화시킨다. 그런데 그와 같은 황폐함 속에서 기러기가 날고 있다. 그렇지만 그 기러기의 비행은 자연 속으로 날아다니는 새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비행기를 모는 조종사에 비유되며 인간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그러한 것들이 마경덕이 <기러기 비행장>에서 그리고 있는 자연의 외양이다. 그리고 그 자연의 외양은 곧 자연에 대한 마경덕의 심리적 양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시를 통해 자연에 부여한 가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앞서의 세 편과는 다르게 보다 서정성이 매우 강하다. 그러기에 그 서정성은 시 속의 황폐함과 대비를 이루며 소외된 자연에 대한 시인의 강한 연민을 상징하게 된다. 그와 같은 자연의 황폐함과 그것에 대한 시인의 연민은 <찔레꽃 가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찔레꽃 가뭄>에서 자연은 결코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심미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다. 찔레꽃이 피는 시기의 자연은 찔레꽃이 피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픔과 굶주림 그리고 '다시 온다던 품꾼은 오지 않는' 생명력이 고갈되고 바싹 메마른 자연이다. 그런데 그 가뭄의 모티프는 시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것 가운데 하나이며 신화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모티프다. 그러기에 가뭄은 곧잘 사계절의 신화와 연결되며 그것은 자연현상에 의한 재난과 연결된다. <찔레꽃 가뭄>에서도 메마름과 굶주림, 그리고 황폐함은 비가 오지 않음으로 인해 생겨난 자연현상의 재난이다. 이 시를 앞서의 시편들과 수평적으로 비교하면 가장 서정성이 강한 시라고 할 수 있으며 <기러기 비행장>과 마찬가지로 시적 대상에 대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비판의 시각이나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메마른 상황 속에서도 만 원을 더 얹어주는 맘이 여린 아내의 모습과 눈치 없이 분첩을 여는 찔레꽃의 모습이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마경덕이 시의 화자를 통해 제시한 가뭄의 상황은 상당히 비극적 상황이며 그것은 자연에 대한 시인의 회의적인 세계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마경덕은 결코 그 회의적인 세계인식을 절망으로 진행시키거나 심화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강한 서정성으로 그 황폐함에 대응한다. 그런 점에서 <찔레꽃 가뭄>은 <기러기 비행장>과 동질적이며 앞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보여주었던 세 편의 시들이 회복이 가능한 본질적 국면으로 돌아선 것과 유사한 맥락을 이룬다.
마경덕은 그의 최근작인 다섯 편의 시에서 일그러진 사회와 스산하고 메마른 자연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분히 회의적인 세계인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회의적인 세계인식은 강한 비판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의식과 회의적인 세계인식의 귀착점은 오히려 회의의 심화가 아니라 인간적 형식을 통해 회복이 가능한 본질적 국면이다. 속물주의에 대지와 모성 그리고 생명의 근원을 대립시키고 종교적 허구성에 구원의 본질을 제시하며 타락한 성문화에 냉소적이지만 염려하는 마음의 경구를 보내는 것이 바로 그의 회의적인 세계인식의 귀착점이다. 그런가 하면 스산하고 공허하며 바싹 메마른 자연의 경우에도 폐허나 황무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한 서정성으로 그 황폐함에 대응한다.
마경덕의 시가 최근에 이르러 대상에 대한 시적 인식의 시각을 넓히고 있으며 시적 대상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권경아의 지적은 매우 정확한 지적이다. 실상 가장 최근작인 위의 다섯 편의 시는 제각기 다른 특색과 맛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변화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내면화를 통해 보다 확실하게 이루어진 것은 비판의식을 통한 회의적인 세계인식이며 나아가 그 회의를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다. 그것은 그의 비판의식이 세계를 부정하거나 비판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물의 겉모습과 현상 속에 숨어있는 본질, 참의미를 드러내며 부서지고 일그러진 것들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서의 비판의식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비판의식과 세계에 대한 연민이 마경덕의 시를 지탱해주는 미적원리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그의 시세계를 이루는 하나의 특징적인 요소는 될 수 있지만 그의 시를 시로써 지탱해주는 힘은 다섯 편의 시에서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마경덕의 시어가 지니고 있는 언어의 형성적 기능이다.
그 상을 만들어내는 형성적 기능을 통해 마경덕이 다섯 편의 시에서 구성하고 이루어낸 것은 낯익지만 새로운 인간적 경험의 환영, 즉 삶의 환영(Apparition)이다. 실상 삶의 환영은 마경덕의 경우뿐만 아니라 모든 시적 예술에서 가장 으뜸가는 환영이다. 그런데 마경덕이 창조한 삶의 환영 속에 들어있는 시적 대상과 사건들은 결국 마경덕의 심리적 양상으로서 선택되고 창조된 것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다섯 편의 시를 통해 제시한 특수한 경험방식을 통해 그의 심리적 양상으로 창조된 삶의 환영에 참여하게 지니고 있는 현장성을 허구성으로 바꾸어놓는 힘을 갖는다. 바로 그러한 점들이 구체화되고 강화되었다는 것이 마경덕의 시가 보여주는 변화의 의미이며 또한 마경덕의 시를 시로써 지탱해주는 시적 원리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시와경계> 2009.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