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 승 열
옛날 시골 장날에는 풍각쟁이가 1인 5역으로 북 치고, 장구 치면서 공연한다. 거기다가 빼빼하고 여린 소녀가 팬티가 다 보이는 치마를 입고 바가지를 들고, 주인이 공연한 값을 구걸한다. 촌로들은 십 원짜리 한두 장으로 돈 넣을 듯, 말 듯 소녀의 애간장을 다 녹인다. 그렇게 촌로들의 일상이 장날이나마 겨우 세월 흐르는 것을 느낀다. 장날 아니면 어찌 이 많은 사람들을 구경할 수가 있겠는가? 흐르는 모래시계의 모래알갱이는 그렇게 시간이라는 인간 세계의 날짜 흐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여명이 어둠을 물리치고 있다. 잠이 덜 깬 상태에 범어동 계룡산 야시골로 올라갔다. 입구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맨발로 걸어올라 갔다. 조심조심 걷다보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바로 이 길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일이 나이 들어 새로이 삶을 돈독하게 만들 수 있다. 마치 그것이 철학자가 동네 한 바퀴를 시간 맞춰 걷는 일과 같다.
맨손체조를 하다보면 어느새 붉은 태양은 나의 가슴을 붉게 타오르게 한다. 눈 깜짝 할 사이다. 이렇게 지구가 돌지 않으면 생명체가 어찌 살 수 있을까? 특히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 이곳에 태어난 것만 해도 큰 행운이다. 어렸을 적에 시작 뉴스나 영화를 보면 지구가 팽이처럼 돌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거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끼며, 어지러웠다. 저렇게 지구가 빨리 돌면 그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은 튕겨 날아갈 텐데... 실제로는 그 보다 몇 배 더 빨리 돈다. 지구의 자전 속도는 적도에서 시속 1,660km나 된다. 단지 인간이 느끼지 못 할 뿐이다.
생활 주변에는 모든 것들이 돌아야 에너지가 나온다. 발전기, 차, 믹스기 등 어릴 적에는 맷돌, 절구통, 디딜방아 등이 생활도구들이 돌아가는 것들로 필수품이었다. “오늘 저녁 맛있게 먹으려면 콩을 갈아라.” 물에 불군 콩을 맷돌 위에 있는 구멍으로 집어넣고 어릴 때에는 명칭을 몰랐던 어처구니를 잡고 빙빙 돌렸다. “그렇게 갈면 밤새우겠다.”하면서 어머니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순식간에 갈아 댔다. 콩국수, 순두부찌개, 두부 등 그 시절에는 입이 짧아 별 맛을 몰랐다. “그래가지고 언제 크노, 후딱 먹어 바라” 애타는 어머니의 속도 모르고 난 입맛이 없어 별로 먹고 싶지 않아 깨작거렸지만 구수한 그 맛은 잊을 수 없다.
세월이 지나 지금은 직접 콩을 갈아서 만든 음식점이라면 어디든지 꼭 맛보러 찾아 간다. 그때만큼 그런 구수한 맛이 나지를 않는다. 식재료가 다를까? 음식 만드는 솜씨가 달라서 일까? 아니면 무언가 많이 먹어대 배가 불러서 일까? 대부분 찾아 가보면 믹스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린다. 찾은 집도 맷돌로 콩을 가는 집이 아니라서 맛은 한계가 있었다.
맷돌에 갈아 만든 콩 맛과 믹스기에 갈아 만든 콩 맛이 왜 다를까? 대부분 음식들이 기계에 의해 만들어지니까 손맛이 별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 만큼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니까 그런가 보다. 해 놓은 음식을 맛보고는 참 아쉬움이 많았다. 맷돌이라는 제구의 효과가 그렇게 아날로그 음식 맛을 만드는 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
오래 전 처가에 가면 장모님이 사위 왔다고 아침부터 마당에 큰 무쇠 솥을 걸어 놓는다. 콩을 불려 맷돌에 갈기 시작한다. 부산한 집안분위기가 마치 잔칫집 같다. 1차적으로 순두부에 양념 간을 맞추어 한 그릇씩 후루룩 후루룩 먹는다. 옛날 어머니가 해주던 그 맛이 떠올라 잠시 목이 메었다. “어머니는 자나 깨나 이 아들 걱정에 눈도 제대로 못 감으셨죠. 이젠 편안히 극락왕생 하시옵소서.” 살아생전 못 다한 효자 노릇에 후회와 부끄러움이 앞을 가린다.
공자 논어2편 말씀이 생각난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의 뜻을 두고, 서른 살에 설 수 있었으며, 마흔 살이 되어 미혹함이 없었고, 쉰이 되어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이 되어 귀가 순하게 되고, 일흔 살이 되어 내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물론 이러함에는 일반 사람이야 감히 따를 수 있겠는가? 아마도 그래서 성인은 생활의 삶, 그 자체부터도 다른가 보다.
맷돌의 임무는 돌고 돌아 콩을 알알이 부수어 가루 만들어 내는 것이 그 임무를 다한다. 우리네 삶도 늘 쳇바퀴 돌듯 돌아간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듯이 세월에 익어간다. 어느 듯 흐르는 세월의 바퀴 속에서 완숙함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다. 마지막 정리를 잘 해 놓고 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지 않을까?
초봄에 내리는 비는 만물을 소생하게 하며, 자연 영양을 듬뿍 주듯 스스로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이제는 건드리면 폭발할 것만 같은 감정을 삭이는 성숙한 나이가 되어간다. 성숙을 위해 성장을 멈추어야 하는 때를 아는 것처럼 뻣뻣하던 벼 이삭도 고개를 숙인다.
만물들이 피고 지고, 오르막 내리막, 민물 썰물을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인생의 반환점에서 속도를 내어 달려간다. 속담에 “철나자 망령 난다.” 했듯, 인생은 짧은 것이라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서처럼 “우물쭈물하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어물어물하다가는 아무 일도 못함을 경계하는 말이다. 풍각쟁이 춤추듯 세상을 흐르는 모래 알갱이만치라도 제 때 맞춰 삶을 돌아 볼 줄 알아야 한다. 세상엔 그 어떤 것도 무한하지 않아 아득히 흘러가버린 내 젊은 한 때도 그저 세월의 한 장면일 뿐이다.
웰 다잉은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웰빙 했을 때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렇게 돌고 돌아 그 작은 틈새 공략이라도 한 번하여 좋은 일하고 원점으로 회귀하는 북망산천(北邙山川)으로 가자한다. (2023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