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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김수환 추기경 시복추진 심포지엄 [연재9]
4.3. 초자연적 덕행에 대한 증언
1) 분별(현명)
- 1988년 정월 대보름, 추기경님은 이제 농사일을 마무리하고 시골에서 막 올라온 할아버지처럼, 큰아버지처럼 막달레나 식구들과 성매매 여성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 그렇게 오셨습니다... 아주 가까이 하지않고는 추기경님이심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초라하면서도 설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렇게 조용히 오셨습니다[이옥정 대표, 1: 133~134].ㅣ
- 제가 5년 동안 [서울대교구 사목국장으로] 있으면서 그분이 직접 강론 준비하는 것을 여러 번 봤어요. 대개는 당신 집무실에서 쓰세요... 우리는 강론을 준비하려면 여러 책을 갖다 놓고 찾는데, 이분은 성경 하나 가지고 강론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주옥같은 말씀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분은 아주 머리가 꽉 차신 분이다. 삶 그대로를 말씀으로 나타내시고, 훌륭한 말씀이 삶에서 나오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고 송광섭 신부, 1: 184].
- 그래서 제가 요즘 암센터에 가서 머리도 빠지고 힘들어하는 환자를 보면, “어휴, 대단하세요.”라고 추기경님 어법으로 위로를 해요. 그것이 김수환 추기경님이 가진 어떤 티 내지 않는 자연스런 면모, 종교인으로서 설교를 해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따뜻함 같은 것을 보여 주는 좋은 본보기 같다고 생각해요[이해인 수녀, 1: 198].
- 그분이 가장 많이 말씀하신게 ‘인간’이에요 인간.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모든 논리의 최초 그리고 최종 근거를 두고 말씀하시고 또 판단하시고 행동하셨기 때문에 한 시대의 시대적 이념에 좌우되지는 않으셨어요[강우일 주교, 4: 39].
- 군부독재에서 이제 민간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부터는 추기경이 방향을 완전히 바꿨어. 뭐 사회복지 쪽이나 아니면 인성 문제나 또 다른 어떤 쪽으로 영성 쪽으로 방향을 돌렸어 [왕영수 신부, 4: 94].
- 저는 김수환 추기경님을 생각하면, 젊을 때부터 언변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얘기하면 언변과 설득력과 판단력이 또 분별력이 분명하고, 박정희를 다루는 것을 보면 상당히 분별력이 있고 판단력이 정확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교회의 영성적으로 보면 말씀을 전하는 은사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왕영수 신부, 4: 109].
- 장익 주교님이 신부일 때, 제가 장 신부와 김 추기경님과 함께 한국 교회 미술의 토착화를 위해 10년 가까이 참 열심히 일했어요. 그때 저를 잘 도와주셔서 항상 고맙게 생각했는데, 돌아가시고 나서 생각해 보니 추기경님 할 일이 한국 교회 미술 토착화였고, 제가 대신해줬기 때문에 좋아하셨던 거예요[최종태 교수, 5: 82].
- 그렇게 추기경님은 매사를 다 아세요. 정치, 경제, 예술, 문화 전부. 그게 사회학을 하는 사람의 특징이에요. 광범위하게 아는것! [사회학 전공하는] 제 친구는 깊이가 모자라요... 그런데 추기경님은 깊이가 있어요[최종태 교수, 5: 97].
- 레브 신부님의 새로운 선교 방향 중 하나는 엘리트 평신도를 양성하여 정신문화를 통한 복음화를 지향하신 것입니다. 추기경님도 그런 방향에서 AFI의 성소를 평가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평신도셨습니다!” 저희들에게는 그 말씀이 최고의 격려사로 들렸습니다[AFI 김정옥, 5: 110].
- 추기경님이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의사는 실수를 하면 한 번에 한 사람만 죽인다. 그런데 교육자는 잘못된 생각으로 실수하면 서서히 한꺼번에 여러 명을 죽인다.”[권길중 회장, 5: 193].
- 추기경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시고 그 높은 위치에서도 자신을 낮추시는 겸허하신 분, 아주 예리한 통찰력으로, 풍부한 유머 감각으로 사회의 맨 밑바닥에서 살고있는 가난하고 무지한 인간들에게까지 깊은 애정과 관심, 사랑을 베푸시는 자상한 할아버지 같으신 분, 우리들의 영혼을 투명하게 이끌어 주시고 곧게, 정당하게 살아가도록 지도해주신 김수환 추기경님이 진정 그립습니다[이남주 교수, 5: 232~233].
- 그건[추기경님의 식별력]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에요. 복음 정신이에요. 꾸준히 복음을 연구하고 찾는 성실한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그때 그때마다 주신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끊임없이 충실해야 되겠지요. 그런 충실함이 추기경님 안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강영자 수녀, 5: 313].
- 그분의 큰 업적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고, ‘이렇게 사는 것이 맞아’라는 어떤 모두의 가치관, 상식을 만들어 주신 게 가장 큰 그분의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롤 모델을 만들어 주신게 그분이 하신 일 가운데 가장 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유인창 신부, 6: 297].
- 추기경님이 한국의 어른이었잖아요. 지금 그분이 가신 후에 한국에 어른다운 어른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어른이 할 역할은] 어른이 딱 중심을 잡고 있으면 제대로 되겠지요 [김성용 신부, 7: 292].
- 추기경님이 생각하신 대로, 한반도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차차 친 해져서 신뢰를 쌓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두 번째는 국제적인 차원에서 일을 추진 하고 있다는 것을 북한 당국에 보여주기 위하여 본인[김수환 추기경]은 이 사업을 적극 추천한다고 [나진 국제가톨릭병원 설립을 위한 추천서에] 쓰여 있죠[김상진 신부, 8: 116~117].
- 추기경님은 중국에 꼭 가고 싶어 하셨어요... 그래서 비자까지 받았다가 못 가시다... 다른 방법으로 가셨죠[김상진 신부, 8: 119].
2) 정의
-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를 가만히 보면 ‘사회에 대해선 정의를 가지고 살고 우리 교회 안에서는 사랑을 가지고 산 분’입니다[김형석 교수, 1: 87].
- 민주화 운동하는데 추기경님이 동행해 주셨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었어요. 추기경님은 자기 위치보다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에 참여해야겠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활동하셨다고 봐요[고 박형규 목사, 2: 169].
- 추기경님은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지키고 정통성을 지키려는 생각을 가진 분이라고 봤 어요. 더불어 가난하고 배고프고 병들고 외롭고 고통 받는 사람과 항상 같이 하면서 사랑과 자비를 베풀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고 송월주 스님, 2: 188].
- 그분이 정치적 발언을 한 것이 아니라,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받았을 때 인간의 존엄성 을 회복하기 위해 사목자이자 사회 원로로서 시정을 정당하게 요구한 것입니다[고 신치구 장군, 2: 219].
- 민주화운동에 적극 나서시는 것도 어떤 소신, 어떤 정의 앞에 본인이 항상 용감하신 것 이었지, 운동을 위한 운동 같은 행동은 안하셨죠. 추기경님은 항상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데, 그렇다고 물에 물탄 듯한 포용이 아니라 정의 앞에서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분이라고 난 봐요[최소희 약사, 2: 271].
- 이런 일들을 되돌아보면, 김 추기경님께서는 한 사람의 억울함을 찾아내서 꼭 필요한 인연을 맺어 주셨더라고요. 그 후 저희가 외국인 무료진료소 라파엘 클리닉을 운영하게 되니까, 이 클리닉이 김수환 추기경님한테는 책임감이랄까 혹이 붙은 거예요 [안규리 교 수, 3: 168].
- ‘사람이 중요하다’는 거요. “부족한 사람이건 장애가 있는 사람이건 잘난 사람이건 모두 가 존중받아야 된다.”는 것.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이 특별히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그 사람들이 존중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셨지요. 실제로 그분이 그렇게 사셨고요. 그리고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 단지 정의를 이야기하신 게 아니고 ‘사랑이 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해주신 것 같아요 [이성운 신부, 3: 257].
- 정의감이라고 할까 불쌍한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길 줄 아는 측은지심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었지만, 1960년대 말 1970년대 한국의 상황이 정말 예언자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예언직을 그분 나름대로 수행하신 거라 생각되고, 그게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에 공헌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열매가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해요[강우일 주 교, 4: 31].
- 추기경께서 한국 사회와 교회에 미친 영향은 역시 ‘그리스도 사랑의 사회화’라고 저는 규정짓고 싶어요... 당시 명동성당이 한국 인권의 보루, 민주화의 성지로 다 인식되어 있었으니까요[정동채 대표, 4: 426].
- 실제 아파서 병원에서 오늘 내일 하는 사람[광부]들은 돈이 없으니 급수도 못받고 죽어서 손해잖아요.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하더라고요. 추기경님 말씀이 “그런 게 있느냐? 내가 여러분한테 대답해 드릴 건 아무 것도 없다. 나는 해당 실무자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다. 나는 종교인이지만, 여러분이 직접 정치인이나 정부에 가서 얘기하는 것보다 내가 가서 얘기하기가 쉽다. 오늘 하신 말씀을 내가 건의하겠다.” 그러셨어요... 2~3년 후에 규폐증 판결하는 의사가 7명인가 8명으로 늘어났지요. 그때 모였던 사람들이 기뻐서 소리치고 난리가 났죠[김태순 선생, 5: 255].
- 새로운 [교구 내 사무직원에 대한] 인사규정 시행이, 저는 추기경님이 제게 큰 선물을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건의는 제가 했지만, ‘평신도 제자리 찾기’운동의 연장 선상으로 크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추기경님이 그렇게 부담스러우신 와중에서도 경청과 소통을 해주신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많은 의견을 경청하시고 절대 부정적이거나 독단적인 언행을 하지 않는 분이셨어요. 항상 주변을 포용하고 수용하며 작은 의견에도 귀 기울이시는 분이셨지요[류덕희 회장, 6: 72~74].
- [1987년 김상원 노동자 사건이] 의문사 사건 중 유일하게 밝혀진거예요...사회적으로 우리 김수환 추기경님을 중심으로 해서 이 사회의 바른 세상과 정의로운 세상을 향해서 걸어가신 길들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거죠... 거기에도 김수환 추기경님이 계셨던 거예요[고 박원순 시장, 6: 159~161].
- [억울한 일을 당해 소송을 할지 의논 중에] 정의를 실현하는 방식이 다른 거예요. 용서 할 수 있으면 용서해라. 다 내려놓아라. 왜냐하면 그것으로 인해서 더 큰 상처를 갖게 될 까 봐 염려를 하시는 거죠[윤석화 배우, 6: 261].
- 학원가와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민주화 운동이 연쇄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님은 『창조』 잡지 1972년 3월호에서 「인간성의 회복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200자 원고지 50장 분량의 글을 발표하셨습니다. “현세적 입신양명가는 인생의 허무와 사회의 부조리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신앙인과 지식인들에게 정의로운 사회참여적 실천을 촉구한 것입니다[구중서 교수, 7: 85~86].
3) 굳셈(용기)
- 특별히 교회사적 입장에서 추기경님을 보면 사회복음화에 크게 기여를 하신 것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사회적, 역사적 입장에서 보면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하신 것이고요[조광 교수, 1: 282].
- 김수환 추기경은 사회 문제, 민족통합 문제, 갈등해소 문제 등 시정해야 할 사회 부조 리에 대해 교회 입장에서 말씀도 하셨지만, ‘사회 구원’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다가갔어요 [고 송월주 스님, 2: 188].
- 추기경님은 워낙 전국적으로 온갖 하소연을 다 받으시는, 거의 신문고와 비슷한 역할을 하셨어요. 억울한 사람들이 다 추기경님께 가서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천주교) 인권위원 회에 관련된 거의 대부분에 대해, 추기경님이 교회내에서 바람막이 역할을 해 주셨어요 [김형태 변호사, 3: 139].
- 하여튼 통이 큰 분이세요. 자상하게 하나하나 챙기면서도, 대담하게 일하시는 걸 보면 우리가 참 존경스러워 했어요. 일처리는 놀랄 정도로 대담하게 하시는데, 세밀한 부분에서 는 개인생활까지 다 밀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인간적으로 평생 못 잊고 왕래를 했어요 [김순 여사, 3: 325].
- 본인의 근원적인 성향이라 할까요? 삶의 목표, 자세 이런 것이 그런 세상에 정말 가난 한 사람들을 보고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그런 마음이 있으셨으니까 그게 지속적으로 표현 되어 갔던 것이 아닐까요?[강우일 주교, 4: 22].
-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은 성령의 활동이었어요. 왜냐하면 그냥 종교가 아니었어요. 김수 환 추기경은 함부로 모험을 하는 사람이 아니예요. 그렇게 하는 건 정말 자기 안에 성령이 작용하고 있어서 그래요. 한걸음 나가게 되면 계속 가야 해요. 어떤 때는 당신에게 쉽지 않았어요. 해야 한다는 부르심이 있어서 했지만, 어려웠어요[AFI 노꼴렛, 4: 361].
- 같이 손잡고 같은 방향으로 가던, 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수용하려는 교회의 움직 임이... 복음의 기준, 교회의 정신으로 사회를 비판하고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한 만큼 이 사회 안에서 천주교회는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주수욱 신부, 4: 398].
- 1995년인가, 한국통신공사가 명동성당에서 장기농성을 했고, 김영삼 정부 때 처음으로 공권력을 투입해서 명동성당으로 난입했잖아요? 그 사건의 원인 제공자는 바로 저예요... 제가 추기경님께 프라도 일로 전화를 드리면서 “추기경님 제가 정말 큰 실수를 해서 이렇게 됐습니다.” 말씀을 드렸더니 “천만에! 자네가 뭐가 문젠가.” 대답하셨어요. 당신이 다 짊어지신 거에요[구요비 주교, 5: 340. 342].
- 그러니까 추기경님이 나를 그렇게 위로하면서 “너는 정말 우리 한국 교회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정말 당신이 하기 어려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데도, 거기에 교도소에 네가 있는 자체가 우리 교회를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지요[최기식 신부, 6: 25].
- “나는 괜찮아, 돌에 맞아도 괜찮고 죽어도 괜찮아. 김 신부보다 오래 살았어.” 그 말씀 참 많이 하셨어요... 정말 당신이 용기가 없는 건가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지요. 왜냐하면 “더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 가시고 싶은데 내가 용기가 없는 건가. 내가 교구장 직도 다 버리고 가야 하는데 용기가 없어서 못 하는 건가.”[김영진 신부, 7: 58. 76].
- 추기경님은 공의회 문헌을 비롯한 교회의 사회교리들이 현대세계의 모든 현실 문제들에 대처하는 최선의 원리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인간 존엄의 정신 때문에 정의와 평화가 사회 안에 구현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교회의 사회참여와 반독재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신념에 투철하셨습니다[구중서 교수, 7: 90].
- [‘간추린 사회교리’에 대한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주관 아시아 심포지엄 당시] 김수환 추기경님을 연사로 행사를 주최하는 [타이완] 보인 대학 측에서 소개하는데, “이분은 아시아의 선지자요, 예언자입니다. 영웅적인 예언자”라고 하는데, 감탄을 했어요... 그러고 보니까 필리핀에서는 “김추기경을 교황으로!(Cardinal Kim for Pope!)”, 이런 추대 움직임도 있었어요[한홍순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8: 91].
4) 극기(절제)
- 추기경님은 고통을 잘 봉헌하신 것 같아요. 평범함 속에 감추신 따뜻하면서도 깊이 있는 빛이 있어요[이해인 수녀, 1: 215].
- 그 믿음을 사도 바오로는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이라고 말씀하셨고, 교회 신자들도그렇고 교회공동체도 그렇고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을 실천할 때 사회에 희망을 줄 수 있다. 여기에 강조점을 많이 두는 것 같아. 추기경님도 조금 안정되자 강한 말은 삼가셨지 [윤공희 대주교, 2: 44].
- 언제나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나섰어요. 짐작컨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는 않았지만 중도 보수적인 입장에서 항상 가난하고 고통 받고 병든 사람들 편이었어요. 그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고, 때때로 같이 모여서 했고요[고 송월주 스님, 2: 183].
- 자기 일에 대해선 남들한테 표시나지 않게, 굉장히 깔끔해요. 자기가 맡은 일과 하는 일에
대해서 그렇게 애착을 가지고 일하는 걸 어느 누구에게서도 본 적이 없어요. 편지 한 장을 써도 교정을 대여섯 번씩 보니까, 철두철미하고[고 정인식 의사, 2: 299].
- 추기경님 [안구 각막 기증] 덕분에 기증 문화가 조성되었습니다. 추기경님은 많은 일을 하시고 국민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셨는데도 돌아가실 때에는 ‘묵주 하나 눈 두 개’라고 회자 되었지요[주천기 교수, 3: 199].
- 영혼이 크신 분들이 있잖아요. ‘이런 크신 분들은 어쩔 수 없이 고난을 겪으시는구나. 예수님처럼 똑같이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구나.’ 아무리 위로를 해도 위로가 안 되는 것 같아요.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채우시기 위해 당신 만의 고난의 길을 걸으시는구나.’ 그런 것을 느꼈어요[민순신 선생, 6: 123].
- 입원하신 지 얼마 안 되어 “작은 아버님, 우리가 병간호 하겠습니다.”하니까 딱 거절하시는 거야... 추기경님이 “괜찮다, 나를 돌봐줄 사람은 충분하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섭섭합디다[조카 김병기, 8: 2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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