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 퇴로리 일원의 풍수(합수처와 局의 형성, 장익호학회의 오점)
1. 장익호학회의 고수와 밀양 간산.
* 필자는 장익호 선생님이 유산록에 기재한 혈처를 많이 찾아 다니고 간산기를 썼다. 2024.10중순 친지의 소개로 장익호 학설을 강의하고 20여년간 유산록의 혈처를 탐사한 고수를 만나 함께 밀양지역을 간산하였다. 유일한 제자인 김이중씨도 선생님이 광주일원을 답사할 때 수행을 하였을 뿐 전국을 함께 다닌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런 탓으로 장선생님이 직접 소점한 곳은 아는 곳이 많지 않았다(내가 답사한 장선생님 소점지8개소에 대하여 잘 모르더라). 장익호학회는 한 때 회원이 5천명에 이르렀다고 하고 임원들이 혈처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실정이다. 동행한 고수의 견해는 장익호학회의 공인된 견해라고 보아도 될 것 같았다.
* 필자는 유산록 중 밀양에 있다는 혈은 대부분을 찾아 보았는데 이날은 초동면사무소 부근 금계포란(유산록 전편), 종남산 군신봉조격 비봉포란(전편) 그리고 후편 45p에 산도로 표시한 화악산 아래 가산 저수지 부근의 행주형과 선인앙장(동산)을 간산하였다. 그분과 내가 지적하는 곳은 한 곳도 일치하지 않았다. 혈처로 지적하는 곳이 진혈인가 아닌가 하는 점에 대하여 풍수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는 것은 의례 있는 일이다. 어느 의견이 옳은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고 다만 다수설과 소수설로 나누어 볼 수는 있다. 인문사회학이 자연과학과 다른 점이다.
* 그러나 합수처(合水處)는 어디이고 혈처로 지적한 곳이 동일한 小.中局內에 있느냐 여부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이곳 행주형과 선인앙장형에 관하여 동행한 고수의 견해는 오류가 있다고 잘라 말할 수 있다.
2. 유산록(후편)의 산도
매화낙지(위앙지부근), 행주형, 선인앙장이라는 3혈이 게재되어 있는데 매화낙지는 답사하지 않았고 행주형과 선인앙장형에 관하여 합수처와 국(局, 지역)이 문제가 되었다. 산도에는 합수처가 3개 게재되어 있다.
3. 합수처 지도
* 화악산 대국---大局을 보면 화악산은 청도천과 밀양강 사이에 양팔을 벌리고 앉았다. 부북면 퇴로리 일원은 윗 가슴부분이고 선인앙장혈로 주장하는 무안면동상리산85부근은 오른팔의 바같 부분이다. 대국은 도시 또는 성곽을 따질 때 필요하고 개인의 음양택을 논할 때 같은 大局內에 있다는 것은 아무런 뜻이 없다. 중.소국이 중요한데 두 곳은 행정面이 다르고 물이 합쳐지는 합수지점이 없다. 청도천은 부곡면 낙동강으로 들어가고 밀양천은 삼랑진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낙동강 진입처가 직선거리로 14키로 정도되는데 이런 경우 퇴로리 물과 동산리 물이 삼랑진에서 합수한다는 말은 대국을 따질 때에도 쓰지 않으며 中小局을 따질 때에는 사용할 수 없는 말이다.
* 합수처 지도---가산저수지안에도 담수전에는 합수처가 있었을 것이다.
4. 합수처와 局의 형성
* 산과 산이 만나면 두 산의 경계선에 개울이 생긴다. 두 산의 경사면이 낮은 곳에서 만나게 되니까 빗물이 흘러서 개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산은 개울을 경계로 각자 고유의 영역을 차지하게 되는데 “산은 물을 만나면 멈춘다”는 계수즉지(界水卽止)도 같은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물은 필연적으로 다른 개울 물과 합류하여 몸집을 키우면서 바다로 내려가는 것이므로 작은 개울 물(溪澗水)이 합치는 합수처와 좀더 큰 합수처가 있게 마련이다. 계간수가 합수되는 곳의 안쪽이 소국(小局)이 되고 그 다음의 큰 합수처 안쪽이 중국(中局)이 된다. 물과 산은 표리관계가 있으므로 현무를 깃점으로 한 局이 소국이 되고 주산 또는 祖山을 깃점으로 한 局이 중국이 된다. 혈처는 소국내에 많이 맺힌다. 물론 대간룡지지는 강이나 바다 곁에 많지만 숫적으로 적다.
* 혈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명당의 구조 즉 사신사(현무 주작 청룡 백호)를 갖추어야 된다. 혈처에서 보이는 사신사까지 합친 국내를 당국(堂局, 집을 구성한 국, 소국이 주축을 이룬다)이라 하며, 조산(朝山) 외청백등의 사격을 포함한 局內가 중국(中局)이 되는 것이다. 풍수들은 保局(혈을 보전하는 局)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는데 중소국을 합친 개념으로 보이는 바 심혈(尋穴)을 함에는 합수처 이후에 형성되는 수구가 중요하므로 중소국을 구별함이 좋을 것이다. 보국(保局), 용의 행도(行度)등 풍수용어들은 중국 산서를 따른 것으로 추측되는데 용어의 정비내지 한글화는 풍수학자들이 맡아야 될 과제가 아닐가?
5. 퇴로리와 대항리
* 퇴로리와 대항리 지도---
* ① 장익호학회가 선인 앙장형이라 주장하는 동산리산85는 퇴로리와 대항리에 대하여 中局을 달리하므로 산도와 배치되고 실제 결혈되지 않았다. ② 이곳에 오면 여주이씨 집성촌(자유헌공파 이익주가 1890년 입향)이 행주형으로 압권이다. 온 동네가 잘사는 온기가 돌고 주산 돗대산의 용맥이 평지 낙맥하여 배의 갑판으로 되어 있다. 주산이 문필봉인 덕에 서울대학 출신이 여러명 있고 공부 잘하는 자랑이 대단하다. 장선생님이 이씨집성촌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③ 학회가 주장하는 행주형(동산리)은 가산저수지를 벗어났고 산도와 다르다. 합수처를 비교해 보면 명백하다. 지적지는 좌우에 호송하는 산이 없는데다가 오뚝한 산등에 선박의 갑판이 생길 수 없을 것이다. 행주형이란 선박의 갑판으로 재물을 싣기 때문에 거부지지로 평가되고 주로 양택이 생기는 법이다(예컨대 경주최부자, 아산 외암마을, 보은 우당고택).
6. 기타
명사의 유산록이라는 이유로 맹신할 것은 아니다. 김이중씨 말에 의하면, 장선생님이 사용하던 지도는 한 트렄 분량이고 혈처를 표시해 놓은 곳이 1만5천개소를 넘는다고 하더라. 산도에 올릴 중등급 이상의 명혈은 합계3천5백개 정도이므로 1만2천개는 대부분 동네 길지급 수준일 터인데 작은 혈 1만여곳을 찾아 전국방방 곳곳을 다녔겠는가? 의문이 있다.(2024.10)
첫댓글 하남촌장님의 글 잘 보았습니다 !
저는 김이중교수님의 제자입니다.
하남촌장님의 산도분석과 혜안에 대하여 찬사를 보냅니다.
장익호학회의 고수님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잘못 전해진듯하여 몇자 부언합니다.
장익호선사님과 김이중교수와의 제자관계는 선생님과의 인연이 되어 서울 불광동 자택으로 올라다니시면서 사사 받으신걸로
알고있으며 호남대학교 평생교육원 개강때 한달에 1회씩 내려오셔서 특강을 해주신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산도는 반드시 함정이 있는것 나머지 찾는것은 우리의 몫 아닐가요 ?
하남촌장님께서 올리는 글을 애독하는 사람으로서 이글이 올라와서 제가 아는바와 달라 한 말씀올리는 부분 양해바랍니다.
금하 강현구
우선 댓글 감사합니다.
1) 나는 장선생님 소점지 7개 곳을 찾아 보고 의문이 생겨서 김이중씨를 찾아가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영호남 재혈지에 대하여 잘 모르시고 (삼인산, 방장산 동북 혈은 직접 안내) 경기지역 소점지는 좋은 곳이 있다는 말과 장선생님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김이중선생은 학자 타입은 아니고 호방한 쾌남 형으로 호감을 받았습니다. 장선생님에 대한 글 중 일부는 학회 고수님의 말이 아니고 저의 막연한 추측이었습니다. (본문일부를 수정합니다)
2)김이중선생은 유명한 종남산 비봉포란에 대하여 저에게 말해주었는데 학회 고수님도 같은 곳을 지적했습니다. 그분 말인 즉, 옛날에 거창 밀양지역에 학회강좌를 개설한 사실이 있었던 사정으로 김이중선생이 밀양부근의 유산록 지적지를 가르쳐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저가 동행한 고수는 거창Y 원장님입니다.
3)사람은 과오가 있기 마련이라 이해 하세요, 시정하느냐 여부가 중요하지 않겠어요. 拙著3권을 보내어 사례하겠습니다.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
김이중 교수님과 교류가 있으셨는데 제가 선생님을 한번도 뵙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의 답산기를 보면서도 많은 감명을 받았는데 저서를 선물로 보내주신다는데 너무 황송합니다 !
감사드립니다 !
강현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