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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재림과 휴거 : 역사와 영원의 파노라마 부록5. 성경의 심판---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by 패스터 정
<재림과 휴거 : 역사와 영원의 파노라마 부록5. 성경의 심판---사랑침례교회, 정동수목사
재림과 휴거: 역사와 영원의 파노라마---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재림과 휴거: 역사와 영원의 파노라마---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안녕하세요 ? 킹제임스 흠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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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열심히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천년왕국이 이루어지며 천년왕국 이후에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단 한 번의 총제적인 심판과 총체적인 부활이 있고 그 뒤에 불에 의해 땅이 멸망한다는 견해는 비성경적입니다.
성경은 공중에서 이루어지는 심판(살전4:16-17; 고후5:6-10), 땅에서 이루어지는 심판(마25:31-46) 그리고 땅과 대기가 날아가 버린 뒤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심판(계20:11-15) 등에 대하여 말하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총체적인 심판이나 총체적인 부활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확신하건대 이러한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심판들은 단 하나의 심판 장소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이를 증명하듯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분명히 다른 세 개의 심판 장소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의 심판석(고후5:10): 성도들을 대상으로 공중에서 이루어짐
2. 영광의 왕좌(마25:31-32): 민족들을 대상으로 땅에서 이루어짐
3. 크고 흰 왕좌(계20:11-12): 사악한 자들을 대상으로 하늘에서 이루어짐
성경 말씀은 위의 세 심판을 포함해서 다섯 가지 주요한 심판들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 대상과 때와 장소와 심판의 기준과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심판
1. 대상 - 성도들
2. 때 - 주후 30년
3. 장소 - 갈보리
4. 심판의 근거 - 예수 그리스도께서 끝마치신 일
5. 결과 - a. 그리스도에게는 죽음이 옴
b. 믿는 자에게는 의롭다 하심(칭의)이 이루어짐
이 심판은 이미 지나갔으며 이 심판의 결과에 대한 성경의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모든 자에게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끝마침이 되시느니라(롬10:4).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라(롬8:1-2).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또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리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5:24).
죄에 대해 성도가 받는 심판은 이미 지나갔고 십자가에서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도들이 받는 심판이 세 종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1. 죄인으로서의 심판
2. 아들로서의 심판
3. 종으로서의 심판
이미 위에서 살펴본 대로 죄인으로서의 성도에 대한 심판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아들로서의 성도의 심판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순간에 죄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고 맙니다.
우리의 불법들이 그분 위에 놓이고 더 이상 우리 위에 있지 않습니다(사53:5-6). 그러나 죄(Sin) 문제와 죄들(Sins) 문제는 서로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즉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저지른 불순종으로 인한 대가를 치르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죄란 사람 안에서 잘못된 것을 행하려는 경향 혹은 본성을 의미하며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본래의 타락하려는 경향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경향 혹은 본성은 새로 태어남으로써 제거되지 않으며 단지 우리에게는 이것에 대항하는 힘 즉 새로운 본성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 두 본성 중 어느 것이 우리를 지배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것을 양육하고 어떤 것을 굶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사도 바울이 회심한 뒤에 스스로 경험한 것을 묘사한 두 본성 간의 전쟁입니다(롬7:1-25).
이 전쟁은 사람이 죽음으로써 옛 본성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계속됩니다. 죄들은 죄를 지으려는 우리의 본성으로 인해 우리가 범하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잘못들입니다. 이런 죄들을 매일같이 하나님께 자백함으로써 우리의 삶에서 제거해야 합니다.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죄를 짓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지어도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계시니 곧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2:1).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1:9).
아들로서 우리가 받는 심판은 죄를 자백하지 않은 경우에 이루어집니다. 그 형벌은 징계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많은 크리스천들이 징계를 받으며 이 사실은 그들이 사생아가 아니고 아들임을 보여 줍니다(히12:5-11). 이에 대해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판단하려 하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으면 우리가 주께 징계를 받았나니 이것은 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를 받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전11:31-32).
아들로서 우리가 행할 임무는 매일같이 우리 자신을 살펴보고 우리의 죄들을 고백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심판
1. 대상 - 성도들
2. 때 - 교회가 채여 올라감(휴거)을 받은 후
3. 장소 - 그리스도의 심판석(공중에서)
4. 심판의 근거 - 성도들의 행위
5. 결과 - 보상 또는 손실
이 심판은 미래의 일이며 성경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고후5:10).
고린도후서 5장에는 우리라는 대명사가 26번 나오는데 여기의 우리는 사도 바울을 포함한 모든 믿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 성도들에게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심판이 오직 믿는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심판의 때는 주님께서 오실 때이고(고전4:5) 장소는 공중이며(살전4:17) 더 구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입니다.
이것은 단지 구원받은 자들만 받는 심판이기 때문에 심판 받는 자가 죄인인지 혹은 죄인이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한 재판의 의미를 갖는 심판이 아닙니다. 이것은 죄가 아니라 성도들의 행위를 따지는 심판입니다. 이 심판은 고전 3:11-15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건초나 짚을 세우면 각 사람의 일이 드러나리라.
그 날이 그것을 밝히 드러내리니 이는 그것이 불에 의해 드러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일이 어떤 종류인지 그것을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 어떤 사람이 그 기초 위에 세운 일이 남아 있으면 그는 보상을 받고 어떤 사람의 일이 불타면 그는 보상의 손실을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에 의해 받는 것 같이 받으리라(고전3:11-15).
이 심판의 결과는 보상 아니면 손실입니다. 이 심판의 결과 나무, 건초, 짚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모든 나쁜 행위와 죽은 행위는 소멸되고 우리의 선한 행위만 남게 됩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단지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차원에서 행한 행위들이 많으며 이런 것들은 사실 우리의 영원한 보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보상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그날이 최고의 날이 될 것입니다.
옛날에 그리스 게임(고대 올림픽 게임)이 모두 끝난 뒤에는 경주자들과 레슬링 선수들과 또 좋은 결과를 거둔 경쟁자들이 ‘베마’(Bema)라고 불리는 심판대 앞에 모였습니다. 그 심판대는 심판이 앉아 있는 높은 좌석이었으며 승리자들은 승리의 대가로 월계수 잎으로 만든 썩을 관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상을 받지 못했고 승리의 월계관도 따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거기에서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내쫓기는 일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신약성경은 성도들이 받게 될 다섯 왕관에 대해 말합니다.
1. 생명의 왕관
이것은 순교자의 왕관이며 성경에 단지 두 번 언급되어 있습니다.
시험을 견디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가 단련을 받은 뒤에 주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관(冠)을 받으리라(약1:12).
네가 장차 당할 그것들 중의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마귀가 너희 중에서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 넣어 너희를 시험하리니 너희가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하리라. 너는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계시록 2장 10절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즉 누구나 죽는 죽음이 올 때까지’(until death)가 아니고 ‘죽기까지’(unto death) 즉 ‘순교하기까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순교자로서 죽기까지 자신들의 믿음을 철회하지 않고 꿋꿋이 유지해야 합니다. 믿음을 철회하는 것은 왕관을 잃는 것입니다. 위의 말씀은 주로 환난기의 순교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2. 영광의 왕관
이것은 목자장이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실 때 장로나 목양자들에게 주실 왕관입니다. 그러나 더러운 돈을 위해 일하거나 하나님의 상속자들 위에 군림하는 자들에게는 이 왕관을 주지 않습니다.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고 감독하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진해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해 하지 말고 오직 준비된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의 상속 백성 위에 주인처럼 군림하지 말고 오직 양 떼에게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가 사라지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받으리라(벧전5:2-4).
3. 환희의 왕관
이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자가 받게 될 왕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데려온 사람들은 그분께서 오실 때에 바로 우리의 ‘기쁨의 왕관’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환희의 관(冠)이 무엇이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 앞에 있을 바로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그러므로 극진히 사랑하고 사모하는 나의 형제들 곧 나의 기쁨이요 왕관인 나의 극진히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서 굳게 서라(빌4:1).
4. 의의 왕관
이것은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들이 받을 왕관이며 그 날 즉 그분께서 나타나시는 날에 그분께서 주실 것입니다.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딤후4:8).
5. 썩지 않을 왕관
이것은 승리자의 왕관이며 자기 몸을 복종시킨 자들 즉 육신의 정욕에 굴복하지 않은 자들이 받을 것입니다
이기려고 애쓰는 자마다 모든 일에서 절제하나니 이제 그들은 썩을 관을 얻고자 그 일을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관을 얻고자 하느니라(고전9:25).
이들은 세상의 유흥과 즐거움으로 인해 주인의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이 세상의 기쁨 속에 자신들의 몸을 담그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그분께서 오실 때 부끄럽게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우리 몸을 복종시켜야만 할 것입니다.
셋째 심판
1. 대상 - 유대인들
2. 때 - 환난기
3. 장소 - 예루살렘과 그 근방
4. 심판의 근거 - 하나님의 신성을 거부한 것
5. 결과 - 회심하여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메시아로 받아들임
이 심판 역시 미래에 일어날 것입니다. 교회가 공중에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심판을 받을 동안 유대인들은 땅에서 적그리스도의 통치하에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세상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들에게 주신 약속들은 모두 땅과 관련된 것들이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심판 역시 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심판하시는 근거는 그들이 하나님의 신성을 거부한 데 있습니다. 사무엘 시대에 그들은 성부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삼상8:7). 그리스도 시대에 그들은 성자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눅23:18). 스데반 시대에 그들은 성령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행7:51, 54-60).
그들의 죄 때문에 그들은 이방인들의 때가 찰 때까지 세상의 여러 민족들 가운데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의 때가 끝날 무렵에 유대인들은 회개하지 않은 상태로 거룩한 땅에 되돌아오게 될 것이며 막대기 아래로 지나며 시련을 겪게 될 것입니다(겔20:34-38).
그들은 하나님의 도가니 속에 던져질 것이며(겔22:19-22) 예레미야와 다니엘이 ‘야곱의 고난의 때’라고 말했던 무서운 환난의 때를 통과하게 될 것입니다(렘30:4-7; 단12: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때를 큰 환난이라고 했으며 그분과 스가랴 대언자는 그것이 일어나는 때를 주의 재림과 연관시키고 있습니다(마24:21-31; 슥14:1-11). 주님께서 이 목적을 위해 사용하실 사람은 적그리스도로서 그의 무서운 통치는 지상 위에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금병들이 쏟아짐으로써 더욱 가중될 것입니다. 이 끔찍한 심판의 결과로 유대인들은 참담한 가운데 자신들의 주님을 부를 것입니다(슥12:10).
그리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올리브 산으로 돌아오시고(슥14:4)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찌른 그분을 바라볼 것이며(슥12:10) 유다 민족은 하루 만에 태어나 회심할 것입니다(사66:8). 이것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심판이 완결되며 히브리서 8장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과 더불어 세우신 새 언약이 발효됩니다.
넷째 심판
1. 대상 - 민족들(이방인들)
2. 때 -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강림 때
3. 장소 - 그분의 영광의 왕좌(땅 위의 여호사밧 골짜기)
4. 심판의 근거 -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들 곧 유대인들을 어떻게 대우했는가
5. 결과 - 어떤 민족은 구원을 받고 어떤 민족은 멸망을 받음
이 심판 역시 미래에 일어날 것입니다. 이 심판은 마태복음 25장 31-46절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심판에 대한 말씀과 계시록 20장 11-15절 말씀을 한데 묶어 이 둘이 마치 하나의 총체적인 심판을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비교해보면 너무나 큰 차이가 있고 따라서 이것들이 같은 사건을 묘사하지 않음은 확실합니다. 하나님께서 떼어놓으신 것을 사람이 붙여 놓을 수는 없습니다. 다음의 표는 두 사건이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 줍니다.
위의 표를 통해 우리는 이 심판들 중 하나는 땅 위에서 이루어지며 다른 하나는 하늘에서 이루어지고 이것들 간에는 1,000년이라는 시간적 간격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게 됩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민족들로 번역된 그리스어 ‘에스노스’(Ethnos)는 신약성경에서 158번 나옵니다. 이 단어는 이방인들로 92번, 민족 혹은 민족들로 61번 그리고 이교도들로 5번 번역되었으며 어떤 경우에서도 죽은 자들이나 부활한 자들에게 적용된 적은 없습니다.
이 넷째 심판은 단지 민족들(이방인들)에 대한 심판이기에 유대인들은 그 안에 포함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민족들 가운데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민23:9). 그리고 교회는 이 심판이 이루어질 때 이미 휴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세상(민족들)을 심판할 것이기에 교회 역시 이 심판에 포함될 수 없습니다(고전6:2).
유대인들도 환난기를 통해 이미 심판을 받았으므로 이 심판과는 무관합니다. 따라서 여기에 있는 민족들에 대한 심판은 무신론자들도 알고 있는 총체적인 심판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양들이란 누구를 뜻할까요? 그들은 의로운 자들 즉 세상의 시작으로부터 끝까지 이 세상에 존재한 모든 의로운 자들을 대표하는 자들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와 마찬가지로 염소들은 모든 사악한 자들을 대표하는 자들이 아닐까요? 양들이 의로운 자들이고 염소들이 사악한 자들이라면 도대체 형제들은 누구일까요?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대로 만일 이 형제들이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라면 그들은 당연히 양들로 분류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악인은 그리스도를 부인했기 때문에 멸망당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심판의 장면에서 심판의 기준은 민족들이 형제들이라 불리는 부류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우했느냐 하는 것이며 믿음이 아닙니다. 또한 이 기준에 의해 양들은 왕국을 상속받고 염소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민족들에 대한 심판을 개개인에 대한 심판으로 영적인 해석을 해 버리기 때문에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여기서 양들은 민족들 중 한 분류이고 염소들 또한 다른 한 분류이며 반면에 형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적 형제들인 유대인들을 지칭합니다.
우리는 이 심판의 때와 장소를 명심해야만 합니다. 그때는 예수님께서 땅에 자신의 천년왕국을 건설하시기 위하여 나타나시는 때이며 장소는 예루살렘 근처의 여호사밧 골짜기입니다.
보라, 그 날들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포로 된 자들을 다시 데려올 그때에 내가 또한 모든 민족들을 모아 여호사밧 골짜기로 데리고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상속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과 변론하리라. 그들이 이스라엘을 민족들 가운데로 흩어 버리고 내 땅을 나누었으며(욜3:1-2).
요엘 대언자의 예언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갈 때에 땅에 있는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민족들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이며 그 심판의 근거가 예수 그리스도의 육적 형제들 즉 유대인들에 대한 민족들의 대우가 될 것임을 명백히 보여 줍니다.
환난기에 유대인들을 친절히 대해 주고 먹여 주고 입혀 주며 그들이 감옥에 갇혔을 때 그들을 찾아간 민족들은 양 민족들이 될 것이며 반면에 그렇게 하지 않은 자들은 염소 민족들이 될 것입니다.
민족들의 심판 때에 왕께서는 양 민족들에게 “너희는 이 내 형제들(유대인들)에게 친절히 대했으므로 오라,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 너희는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왕국을 상속받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물론 이 왕국은 양 민족들이 상속하여 천 년 동안 소유하게 될 천년왕국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새 땅(계21:24)의 구원받은 민족들 가운데 있을 것이므로 그들 혹은 최소한 그들 중 의로운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것입니다(마25:46).
염소 민족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판결은 “너희는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염소 민족들은 즉시 민족적으로 멸망할 것이며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천년왕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민족들을 구성하고 있는 사악한 개개인들은 죽어 영벌에 처해질 것입니다. 여기의 양과 염소 심판이 이방 민족들을 향한 심판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양들과 염소들에 대해서는 두 의견이 있다.
먼저 라킨 목사와 같이 이방 민족들이 양 민족들과 염소 민족들로 구분되어 민족적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또 이방 민족들에 속한 자들 중에 의로운 자들은 양들이고 사악한 자들은 염소들로서 이들이 모두 개인적으로 심판을 받는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이 심판을 가지고 행위 구원을 가르치는 것도 잘못이다. 여기서 양과 염소로 분류된 자들은 자기들의 믿음의 열매인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행위 자체가 사람을 구원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믿음이 있으면 거기에 따른 행위가 있기 마련이며 그래서 열매로 나무를 알 수 있다.
다섯째 심판: 흰 왕좌 심판
1. 대상 - 죽은 사악한 자들
2. 때 - 불에 의해 땅이 정화되는 동안
3. 장소 - 크고 흰 왕좌 앞
4. 심판의 근거 - 그들의 행위
5. 결과 - 불 호수에 던져짐
이 심판도 역시 미래에 일어날 것입니다. 이에 대한 기사는 다음의 말씀 속에 있습니다.
또 내가 크고 흰 왕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땅과 하늘이 그분의 얼굴을 피하여 물러가고 그것들의 자리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그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바다가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고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니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계20:11-15).
이 심판은 민족들의 심판이 끝나고 천 년이 지난 뒤에 크고 흰 왕좌 앞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크고 흰 왕좌는 땅에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크고 흰 왕좌 심판이 불에 의해 땅이 정화되는 때에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이 땅이 정화되는 것은 베드로가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벧후3:7)이라고 부르면서 언급한 심판이 이루어질 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질 것입니다. 크고 흰 왕좌 심판은 바로 이때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심판하는 것을 말합니다.
의롭게 죽은 자들은 모두 첫째 부활 때에 일어날 것입니다. 만약 첫째 부활과 악한 자들의 부활 즉 둘째 부활 사이에 의로운 이가 죽는다면 그들은 악한 자들의 부활 때에 함께 일어날 것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계20:15)라는 말은 거기에 적어도 몇몇 의로운 자들이 - 아마도 극소수가 되겠지만- 둘째 부활 때에 있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천년왕국 말기에 그리고 불에 의한 땅의 정화 직전에 살아 있는 의로운 자들은 아마도 휴거 등을 통해 옮겨질 것이며 살아 있는 악한 자들 혹은 경건치 못한 자들은 지구의 대기와 표면을 태우는 불길에 의해 멸망당할 것입니다.
흰 왕좌 앞에 선 사악한 자들 혹은 경건치 못한 자들은 영생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심판을 받지 않고 그들에게 내릴 벌의 정도를 정하기 위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 심판에서 참으로 애석한 점은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경건치 못한 자들로 분류될 ‘구원받지 못한,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기록하는 천사가 적어 둔 모든 사람의 삶에 대한 기록을 담은 책들이 펼쳐지고 모든 사람은 자기의 행위에 따라 심판 받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좀 더 심한 처벌을 받을 것이지만 어느 누구도 처벌 자체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점은 그리 나쁘지 않았던 사람들이 불 호수 속에서 경건치 못한 자들과 함께 영원토록 지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벌은 둘째 사망을 포함하는데 그것은 곧 그들이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처럼 불 호수에서 영원토록 살아야 됨을 의미합니다.
끝으로 타락한 천사들(지금 활동하고 있는 마귀의 천사들이 아님)은 현재 어둠 속에서 영존하는 쇠사슬로 묶여 있지만 이들 역시 유다가 큰 날의 심판이라고 부른 이 심판의 때에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유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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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주번역자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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