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공정- 올바른 분별력 ‘지智’》
* 출처: 신동기 저 《부모의 인성 공부》(생각여행, 2024년 1월 출간) p60-68
* 飛龍비룡 辛鐘洙신종수 總務총무님 提供제공.
‘남을 판단(지智)’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이 ‘옳아야(의義)’
사람은 지식이 많든 적든, 성인이든 어린이든 누구나 나름대로 판단을 합니다. 판단의 내용은 대부분 ‘옳고 그름(是非시비)’에 대해서입니다.
뉴스에 등장하는 정치인의 언행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 언행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이웃의 행동을 보면서 그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그런 타인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일상적으로, 끊임없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가끔은 가족과 같은 가까운 이들이나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도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맹자는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사람들의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보면서 《맹자》 〈공손추장구상〉에서 말합니다.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분별력인 ‘지智’를 지니고 있다는 단서다”
是非之心 智之端也
시비지심 지지단야
주희는 《주자어류》 〈성리삼〉 편에서, “‘명백하게 구별한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이 ‘지智’다”(箇別白底意思是智개별백저의사시지)라고 말하고, 또 같은 〈성리삼〉 편에서 “‘깨달음’은 ‘지智의 작용’이다”(覺自是智之用각자시지지용)라고 말합니다.
공자는 《논어》 〈옹야〉 편에서 제자인 번지가 ‘지智’에 대해 묻자, “옳음을 추구하는 마음인 ‘의義’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그 귀신을 가까이하지 않으면 ‘지智’라 할 수 있다”(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무민지의 경귀신이원지 가위지의)라고 말합니다.
공자는 ‘분별력’인 ‘지智’에 전제를 답니다. 바로 ‘옳음’인 ‘의義’를 지향해야 한다는 전제입니다. 주희 마찬가지로 분별력인 지智의 전제 조건으로 ‘옳음’인 ‘의義’를 제시합니다. 바로 《주자어류》 〈성리삼〉 편에서의 “옳음인 ‘의義’는 ‘지智’를 아우른다”(義包智의포지)라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공자와 주자 모두 사람은 ‘분별력’인 ‘지智’를 지니고 있고, 그 분별의 원칙은 다름 아닌 ‘옳음’인 ‘의義’라는 주장입니다.
올바른 분별력은 사람과 사회를 살리고 그릇된 분별력은 사람과 사회를 죽인다
공자는 《논어》 〈안연〉 편에서 제자 번지가 또 ‘지智’에 대해 묻자, “사람을 아는 것”(知人지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입니다.
“정직한 사람을 올려 쓰고 정직하지 않은 사람을 배제하면, 정직하지 않은 사람도 정직해지게 된다”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거직조제왕 능사왕자직
‘분별력’인 ‘지智’로, 정직한 사람과 정직하지 못한 사람을 제대로 분별해 정직한 사람을 벼슬에 앉히면 벼슬자리에 앉지 못한 부정직한 사람도 벼슬에 오르기 위해 정직한 사람으로 바뀐다는 이야기입니다. 공자 자신이 그리고 주자가 말한 대로, ‘분별력’인 ‘지智’를 사용하면서 ‘옳음’인 ‘의義’를 실행한 경우입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는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을 벼슬자리에 앉히고 정직한 사람을 자리에서 떨어트리면 정직하지 않은 사람은 더욱 정직하지 않게 되고, 정직했던 사람 역시 더이상 정직하기를 포기하고 정직하지 않은 사람으로 바뀌기 쉽습니다.
‘분별력’인 ‘지智’를 제대로, 그리고 ‘옳음’인 ‘의義’에 근거해 사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사람 사는 세상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달라집니다.
말 이면에 가려진 진짜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분별력’인 ‘지智’를 사용할 경우 그 분별의 대상은 대부분 사람입니다. 사람을 분별하기 위한 가장 정확한 근거는 지금까지 그 사람이 살아온 모습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 지금까지 그 사람이 살아온 모습을 모두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둘째, 중요한 것은 앞으로인데 그 사람의 과거 모습이 앞으로의 미래 모습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현실적으로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의 근거로 흔히 삼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말’입니다. 사람을 만나 직접 대화를 해 봄으로써 우리는 어느 정도 그 사람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맹자는 《맹자》 〈공손추장구상〉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아는’ ‘지언知言’ 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그 말 이면에 가려져 있는 그 사람의 진짜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공손추장구상〉 편에서 맹자는 말합니다.
“말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무엇인가 숨기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말이 음탕하면 무엇인가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말이 간사하면 의義에서 멀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말을 머뭇거리면 무엇인가 궁색한 상태에 몰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詖辭 知其所蔽 淫辭 知其所陷 邪辭 知其所離 遁辭 知其所窮
피사 지기소폐 음사 지기소함 사사 지기소리 둔사 지기소궁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 그 사람의 진짜 상태를 제대로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논어》 〈헌문〉 편에 나오는 공자의 “분별력 즉, ‘지智’를 갖춘 자는 현혹되지 않는다”(智者不惑지자불혹)라는 말도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말이나 외모·외형에 현혹되지 않고 사람을 제대로 분별함으로써 옳은 사람을 선택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당사자에게는 능력 발휘의 기회를, 선택받지 못한 이에게는 반성의 기회를, 그리고 사회에는 정의와 풍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분별력’인 ‘지智’을 제대로 갖추고 있느냐 그렇지않느냐 여부가 사회정의 실현은 물론 사회의 행복을 결정합니다.
권력權力은 ‘분별력(智지)’을 가지고 ‘올바르게(義의)’ 사용해야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아는’ ‘지언知言’이 ‘분별력’인 ‘지智’의 핵심이라면, ‘저울질’인 ‘권權’은 ‘분별’ 그 자체입니다.
‘권력權力’은 다름 아닌 ‘의사 결정’, 즉 ‘저울질’을 할 수 있는 자격입니다. 경찰은 범죄가 의심되는 행위에 대해 형사사건으로 정식으로 수사를 개시하는 ‘입건立件’을 선택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즉, 범죄가 의심되는 용의자의 행위를 관련 법에 비추어 ‘저울질’ 해, 범죄로서 정식수사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또는 수사가 필요 없다는 쪽으로 판단 내릴 수 있습니다.
검사는 수사가 완료된 형사사건에 대해 법원의 심판 요청 즉, ‘기소起訴’를 선택할 수도, 범죄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불기소’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등등을 고려해 기소 자체를 ‘유예’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수사 내용을 관련 법 및 피의자의 상황 등에 비추어 ‘저울질’해, 벌줄 것을 법원에 요청하거나 요청 자체를 아예 하지 않거나 또는 요청을 유예할 수 있습니다.
판사는 기소된 사건을 판결합니다. 검사의 주장 및 구형과 변호사의 변론 내용을 관련 법에 비추어 ‘저울질’해 피고가 치러야 할 형刑을 정합니다.
경찰과 법원의 엠블럼에는 ‘저울’이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홈페이지는 ‘저울’ 사진으로 시작됩니다. 경찰청, 법원 및 검찰청이 사람들의 범죄 혐의 또는 행위에 대해 ‘저울질’을 하는 ‘권력權力’ 기관이라는 의미이고, 나아가 그 권력을 ‘분별력(智지)’을 가지고 ‘올바르게(義의)’ 사용해야 한다는 엄중한 의미입니다.
《논어》 〈요왈〉 편 해설에서 주희는 권력權力의 ‘권權’자에 대해 “권權은 저울과 저울의 추다”(權稱錘也귄칭추야)라고 말합니다. 바로 ‘권權’이 ‘저울질’이라는 의미입니다.
중국 북송시대 학자인 범조우(1041-98)는 《맹자》 〈이루장구상〉 편 해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천하의 도에는 ‘정도正道’와 ‘권도權道’가 있다. ‘정도正道’는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확정된 것이고, ‘권도權道’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적절히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따라서 확정된 ‘정도正道’는 누구나 쉽게 실행할 수 있지만,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적절히 결정을 내리는 ‘권도權道’는 도道를 체화한 자가 아니면 불가하다”
天下之道 有正有權 正者 萬世之常 權者 一時之用 常道人皆可守 權 非體道者 不能用也
천하지도 유정유권 정자 만세지상 권자 일시지용 상도인개가수 권 비례도자 불능용야
여기에서의 ‘권도權道’가 다름 아닌 경찰과 법원의 엠블럼 그리고 검찰청 홈페이지 속의 그 ‘저울’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경찰, 검사 또는 판사는 법리와 상황에 따라 법 조항을 적용해 의사 결정을 하는데, 그 의사 결정이 바로 ‘분별력’인 ‘지智’와 ‘옳음’인 ‘의義’가 제대로 갖추어진 자에게만 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분별력’인 ‘지智’와 ‘옳음’인 ‘의義’를 갖추는 것이 ‘저울질’을 하는 권한인 ‘권력權力’의 전제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권력의 의미는 동양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서양 마찬가지입니다.
정의(Justice)의 여신 디케는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얼굴에는 눈가리개를 하고 있습니다. 여신 디케가 들고 있는 저울은 ‘저울질’, 즉 ‘권력權力’인 ‘권權’의 행사 자체를, 여신의 가린 눈은 ‘분별력’의 공평무사한 판단을, 그리고 칼은 ‘옳음’인 ‘의義’에 의거한 준엄한 법의 적용을 의미합니다.
분별력 ‘지智’의 기준에 따라 세상은 천국이 되기도 지옥이 되기도
불교에서는 ‘생각으로 짓는 세 가지 죄’인 ‘삼독三毒’ 중 하나로 ‘어리석음’인 ‘치癡’를 듭니다. ‘어리석음’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결국 ‘옳고 그름(是非시비)’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 역시 ‘지혜로운 사람은 영광을 상속받고, 미련한 자는 멸시를 받는다’(잠언3:35)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미련한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결국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종교에서는 왜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죄악시 또는 최소한 그 당사자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는 것일까요?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인간에게 미리 주지도 않고 ‘너는 왜
그것을 지니고 있지 못하느냐?’하고 인간을 나무랄 리 없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주어졌는데 자신의 욕심이나 게으름 때문에 또는 스스로 내팽개쳐, 그것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거나 향상시키지 않고 있어 그것을 죄악시하고 탓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자기 주위 모든 것들에 대해 ‘옳고 그름(是非시비)’을 판단합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 즉, ‘시비지심是非之心’의 근거인 ‘분별력’ ‘지智’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분별력’ ‘지智’는 사람 사는 세상을 지옥으로 몰아갈 수도, 천국으로 만들어 갈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분별력’ ‘지智’의 기준이 오로지 ‘내 이익’이면 지옥일 것이고, ‘옳음’인 ‘의義’이면 천국일 것입니다. 물론 지옥은 남들에게만 지옥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에게도 지옥입니다. 천국 역시 모두의 천국입니다.
현실의 세상은 그 중간 어디쯤입니다. 사람들의 ‘분별력’ ‘지智’의 기준이 항상 ‘내 이익’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옳음’인 ‘의義’만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 출처: 신동기 저 《부모의 인성 공부》(생각여행, 2024년 1월 출간) p60-68
*****(202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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