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모궁(景慕宮)과 함춘원(含春苑) - 그리고 이곳으로 영희전(永禧殿)이 옮겨 오게 된 사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병원이 있는 대학로에는 ‘함춘‘으로 시작되는 건물들이 제법 눈에 띕니다. 의과대학 동창회 함춘회관, 중식당 함춘원, 함춘학생생활관 등등이지요. 하지만 이들 모두 창경궁 동쪽 정원인 함춘원에 그 연원을 두고 있음을 아는 이는 흔치 않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은 종로구 연건동의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언덕은 마두봉(馬頭峰)이라 했는데, 말머리 같이 생겼다 해서 지어진 이름으로 지금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 실체를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지요.
조선 성종 때 창경궁 바깥 정원인 함춘원(含春苑)이 조성되었습니다. 창경궁을 창건하면서 풍수지리설에 의해 궁궐 동쪽의 지세를 보강하기 위하였다고 하지요. “봄을 머금은 정원”이란 뜻을 가진 이곳에 정조는 경모궁(景慕宮)을 세우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습니다.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목숨을 잃습니다. 창경궁 문정전이 바로 그 장소로 경모궁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정조는 창경궁 경춘전에서 태어나고 창경궁 영춘헌에서 승하합니다. 그만큼 창경궁과 인연이 깊음을 알 수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이 우연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지극한 효심이 그 바탕에 있기 때문이지요.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이곳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당인 수은묘(垂恩廟)를 경모궁으로 고쳐 부르게 합니다. 친히 편액을 써 달았으며, 경모궁 서쪽에 ‘일첨(日瞻)’, 창경궁 동쪽에 ‘월근(月覲)’의 두 문을 내어 서로 통할 수 있게 하고 매월 거둥하였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1899년 고종이 사도세자를 장종(莊宗)으로 존호를 올리면서 경모궁에 있던 장종의 신위를 종묘로 옮기게 하자 경모궁은 그 기능을 잃게 되었지요. 그리고 이듬해 비어 있던 경모궁 터에 태조·세조·성종·숙종·영조·순조의 어진을 봉안하던 영희전(永禧殿)을 옮겨 옵니다.
영희전은 광해군 때 조성되고 숙종 때 증축되었는데 그때까지 지금의 중구 저동 중부경찰서와 영락교회 자리에 있었습니다. 1898년 그 뒤쪽 언덕에 명동성당이 들어서자 여섯 임금의 어진을 모시던 영희전이 가지고 있어야 할 신성함이 훼손됨을 걱정하던 왕실에서는 영희전을 아예 이곳으로 옮겨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뒤 일제강점 후 함춘원의 옛 터, 즉 경모궁 일대에 경성제국대학 의과대학이 세워지면서 원래의 모습을 대부분 잃어버렸고, 더욱이 한국전쟁으로 옛 건물이 불타 원 모습을 알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땅의 역사는 이어지고 또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