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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성탄절을 준비하면서(2)
예수님의 제자가 되련다
마 11:25-27, 히 5:11-6:2, 누가복음 5:1-11
1. 이제부터라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자
마 11:20-24 / 예수께서는 이적을 가장 많이 행한 도시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자 이렇게 꾸짖으셨다. 21) ‘화가 있으라. 고라신아. 화가 있으라, 벳새다야! 너희에게 베푼 이적을 악한 도시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은 벌써 부끄러워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였을 것이다. 22)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심판날에는 두로와 시돈이 오히려 너희보다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 오를 것 같으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네게 베푼 이적을 소돔에서 베풀었더라면 그 도시는 오늘날까지 여기에 남아 있을 것이다. 24)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심판날에는 소돔이 오히려 너보다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이어서 나오는 말씀이 늘 마음에 남아 있다.
마 11:25-27 / 그때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다. ‘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여, 스스로 슬기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이 진리를 감추시고 어린아이에게는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27)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내게 맡기셨습니다. 아버지만이 아들을 아시고, 아들과 또 아들이 아버지를 드러내 보이려고 택한 사람들만이 아버지를 압니다.’
요즈음 뒤늦게라도 겨자씨만큼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또한 내 안에 필요없이 붙어 있는 잡스러운 모든 것을 털어보니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마음이 겨자씨만큼 있음을 감사하면서 이제부터라도 예수님께 배우는 제자가 되려는 마음을 가지려고 힘쓴다. 이렇게 된 원인 중 하나는 2주일 전에 사도행전 1장에 10일 동안 기도에 힘쓸 때 위로부터 권능이 임하듯 3일 동안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큰 능력을 구하려고 했다가 취소했다. 왜냐하면 ‘한 알의 겨자씨는 금방 커지는 것이 아니라 땅에 심기어져서 자라서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눅 13:18)라는 말씀처럼 이제부터라도 제자의 길을 걸으면서 사도의 길을 가기 위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깨우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뒤늦게라도 ‘이제부터라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자’라는 말씀을 깊이 준비하려는 것이다.
▶ 특히 열왕기상 5장에 나오는 솔로몬에게 주신 말씀들은 나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었다.
왕상 3:4-10을 보면 솔로몬은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계시를 사모했다. 자신을 비롯하여 그 누구의 조언보다 그리고 자기 욕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자신을 어린아이로 표현하면서까지 표현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 즉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따르고자 했다.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꿈에 나타나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여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이루어 주겠다!’라고 하시며 솔로몬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기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오래 살게 해달라거나 큰 부자가 되게 해달라거나 원수들을 죽여 달라고 간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나에게 지혜를 간구하였으니, 지혜뿐만 아니라 간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화도 네게 주겠다. 그리고 다윗처럼 진실하게 나의 모든 명령을 지키면 네게 장수의 복도 주어 네 날 수를 길게 연장해 주겠다.’”
이런 말씀은 지금도 유효하다. 누가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주기도문에 이어 간청하라고까지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비록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라고 기도의 방향까지 제시하셨다. 많은 분이 ‘성령을 구하라’고 하시니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과 권능을 구하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오직 하늘부터 오는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약 3:17-18).
예수님도 약속하셨다.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룰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일을 어떻게 실천할까 고민하면서 그분을 생활의 중심에 모시고 살면 그분은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더불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너희의 내일 일도 돌보아주실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의 것으로 족하다(마 6:33-34).’
▶ 2024년 성탄절을 준비하면서 예수님의 인도하심과 깨우침을 받는 제자가 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히브리서에 나오는 말씀도 많은 깨우침을 주었다.
히 5:12-14, 6:2 / 여러분은 벌써 오래전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남을 가르칠만도 한데 아직도 하나님 말씀의 초보적인 원리도 채 이해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단단한 음식을 먹을 만큼 크지를 못하고 언제까지나 젖만 먹는 갓난아이에 머물러 있습니다. 젖만 먹는 사람은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14) 여러분이 성장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올바른 일을 실천함으로써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게 되어야만 비로소 단단한 음식을 먹고 하나님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6:1) 이제는 그리스도교의 초보 진리를 배우느라 같은 자리에서 언제까지나 맴도는 일은 그만두고 더 깊은 진리를 배우는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또한 이해력을 키워서 건장한 교인의 품격을 갖추도록 하십시오. 착한 일을 해서 구원 얻으려는 어리석은 생각이나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필요성만 가지고 떠드는 일에 더 이상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2) 침례와 성령의 은사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대해서도 더 이상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3) 주께서 허락하신다면 이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13절에서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라고 했다. 왜 히브리 기자가 이들을 향해서 어린아이라고 하느냐면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앙은 경험하는 신앙이고 체험적인 신앙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론으로 배워서만 아는 신앙은 아기처럼 약한 신앙이고 힘이 없다.
우리나라 속담으로 ‘수박 겉핥기’라는 말처럼 수박 한 덩이를 갖다 놓고 겉만 핥고 있으면... 표현이 너무 재미있다. 이 경우에 체험이란 쪼개서 맛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구경만 하든지 껍데기에 혀만 갖다 대든지 무슨 맛이 있겠는가?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신앙은 이런 신앙일 뿐이다.
성경 말씀이 얼마나 단지(시 19:10). 성경 말씀도 체험해 보지 않으면 그렇게 달다는 것을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체면상 읽기만 하고, ‘나는 성경을 몇 번 읽었는데, 이 말씀은 이렇고, 저 말씀은 저렇고’라고 서당개처럼 풍월을 읊는 단계에서 벗어나련다. 말씀에 대한 체험이 없으므로 ‘주여 주여’라고 한다. 마태복음 7:21-25을 나에게 주시는 책망과 경고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자.
▶ 마태복음 12장 마지막 부분에 이러한 말씀이 나온다.
마 12:47-50 /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 계십니다.’ 하고 전하자 48) 예수께서 물으셨다. ‘누가 내 어머니요 내 형제냐?’ 49) 그리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보라, 이들이 내 어머니요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누구나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 천국에 관한 일곱 가지를 비유로 말씀하셨다.
❶ 씨 뿌리는 비유 ❷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 ❸ 겨자씨의 비유 ❹ 누룩에 관한 비유 ❺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 ❻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의 비유 ❼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의 비유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라고 하였듯이 복음의 진리를 깨달은 자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어야 한다. 침노하는 자들의 우선권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우리의 우선순위에 가장 먼저 두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영혼의 구원을 첫째로 삼는 자들이다. 이것이 우리의 우선순위인가? 당신의 영혼과 당신의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과 당신의 관계가 다른 어떤 문제보다 제일 먼저인가? 그리고 침노하는 자들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고 사력을 다해야 한다.
2024년 성탄절을 한 달여 남은 오늘부터라도 예수님의 사도는 아직 아니라 하여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에는 세례 요한의 제자 출신도 있었다. 세례 요한이 제자 중 두 명과 함께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는 것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라고 했다. 그러자 두 제자가 선생님이신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요 1:35-37).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달라진다. 예수님을 만나면 변하게 되어 있다. 예수님을 만났던 열두 제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베드로를 보아도 이런 역사가 현저하게 나타났다. 베드로는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놀랍게 달라졌다. 지금까지 주저했던 생명처럼 귀하게 여겼던 것들을 과감히 뒤로 하고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이다.
눅 5:10-11 /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부자 청년이 재물로 인하여 근심하고 영생의 길에서 돌이킬 때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런 고백까지 할 수 있었다.
마 19:27 / 그때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게 되겠습니까?’
이런 추진력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발돋움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놀라운 결단을 베드로는 과감하게 하였다. 생명줄과 같은 배도 버리고 가족들도 다 뒤로 하고 예수님을 좇았다. 이는 비단 베드로만의 일이 아니었다. 사울도 마찬가지였다.
빌 3:7-9 / 그러나 한때 대단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이런 것들을 지금에 와서는 모조리 내던졌습니다.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그분에게만 소망을 두기 위해서입니다. 8) 그렇습니다. 나의 주님 그리스도 예수를 알게 된 것이 너무도 존귀해서 이것과 비교하면 다른 것은 다 무가치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외에는 다 쓰레기처럼 여기고 모두 내버렸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9) 보다 더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거나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으려는 생각을 집어치우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소중했던 그 모든 것들에 미련을 가지지 않기 위해 배설물과 같이 과감하게 버렸다. 이는 그가 친히 고백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원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처럼 소중하게 여겨왔던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보시기를 바란다. 1년 중에서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계절, 하늘 보좌도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신 성탄의 계절이다.
■ 장로교 목사인 심프슨은 중년에 접어들 즈음에 건강을 잃고 크게 낙담하여 성직을 떠나려고 할 때에 우연히 한 단순한 흑인영가를 듣게 되었다. ‘아무것도 예수께는 어렵지 않네. … 아무도 그분처럼 일할 수 없네.’ 그 내용이 화살처럼 몸과 영혼을 위한 믿음과 소망과 생명을 싣고 그의 심령 속으로 날아들었다. 그는 조용한 곳을 찾았다. 오직 하나님과만 보낸 한 계절 후 완쾌되어 힘차게 일어나 넘치는 기쁨으로 나아가서 그 이래로 세계에서 가장 큰 해외 선교 단체 중의 하나인 선교회를 창설하였다. 하나님과의 놀라운 만남 이후 35년 동안 그는 그리스도를 섬기며 비범하게 일하였다. 무한한 능력의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이 일을 경영하는 데 필요한 모든 힘을 제공해 주었다. 이렇듯 하나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변화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누구에게 배우려고 하면 학교에 가서 그 교수 밑에서 공부하거나, 그 사람이 가르치는 학원 같은데 등록을 해서 배워야 한다. 이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제도이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사회 제도는 그렇지 않았다. 무엇을 배우려고 하면 그 사람 밑으로 들어갔다. 그 사람 밑으로 들어가서 같이 자고, 같이 먹으면서, 시간을 드려서 배웠다. 배우는 것도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선생 밑에서 깨우쳐 나갔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다.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같이 지내면서 말씀도 듣고, 옆에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목격하고, 예수님의 인격을 접하면서 배웠던 것이다(참고 딤후 3:10).
2. 제자입니까?
이 제목을 붙이면서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제자입니까>, 두란노의 책을 요약하면 많은 도움이 되겠기에 독후감을 올렸다.
【강한 충격. 이 책을 읽고 난 나에게 감상을 한 마디로 물어보라면 이렇게 답하겠다. 책 표지에 쓰여 있는 ‘성령께서 나를 깨뜨리시기 시작했다’라는 말 한마디가 너무도 절실하게 와 닿는다. 내가 알고 있던 신앙의 목표, 신앙의 자세, 신앙의 기준, ……. 그 모든 것이 산산조각나는 것을 느꼈다. 나의 신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교회에 출석 잘하고 말씀을 꾸준히 읽으며 열심히 간구하는 모습? 아니면, 도덕적이고도 고매한 삶을 살아 누구에게나 칭송받으며 기독교회의 이름을 드높이는 모습? 내가 배운 '올바른 모습'은 이런 모습들이었다. 하나님은 나를 잘되는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고, 내가 그 길을 걷다 지치면 언제든 위로하고 새 힘을 불어넣어 주시는 분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 책은 서두부터 강력히 선포한다. ‘인간을 중심에 놓은 복음은 참된 복음이 아니다!’ 저자는 이 복음을 '복음주의자의 복음', 혹은 '제5복음서'라 부르며 통렬히 비판한다.
제5복음서에 관한 한 가지 예를 들겠다. 누가복음 12:32은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라고 하였다. 그렇다. 이 구절은 우리 귀에 익은 구절이다. 나도 이 구절로 여러 번 설교했다. 그러나 다음 구절은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라.’ 그런데 이 절을 본문으로 삼아 설교하는 것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절은 복음주의자들의 복음서에 기록된 구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32절은 제5복음서에 포함되고, 33절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도 엄연히 예수님의 명령이 담겨 있다. (22-23P)
그렇다면, 하나님을 중심에 놓는 복음은 어떠한 복음인가? 간단하다. 그분이 주인이고 내가 종임을 인정하고 그대로 행해야 한다. 종은 주인의 명령에 그대로 복종한다. 주인이 어떤 어려운 명령을 내려도 절대로 토를 달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그 모습이 바로 ‘섬기는 자’의 모습이요, ‘제자’의 모습이다. 나는 과연 제자인가? 여기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새 포도주’, 즉 변화된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고, 또 하나는 ‘새 부대’, 즉 변화된 삶을 담을 수 있는 교회 시스템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2부로 넘어오면서 저자의 초점은 ‘보육원인 교회’에 맞춰진다. 저자는 각 교회가 ‘어린아이들을 위한 구조’에 고정되어 있어서 성장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교회에서 제공하는 예배, 설교, 찬양은 항상 이유식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예배당에서 경건한 예배를 드리고 감동적인 설교를 듣고 정열적인 찬양을 한다 해도, 예배당을 나서는 순간 다시 세속적인 인간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영적 갓난아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교회가 보육원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변화된 제자가 되지 못하는 각 성도가 그 첫째 원인이요, 성도들을 키워서 성인으로 만들지 못하는 교회가 그 둘째 원인이다. 이제 교회는 하나의 종교의식 소이자 사교 클럽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런 교회 시스템을 변혁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문제는, 인습과 전통의 뿌리가 너무 깊어 성경을 가려버렸다는 것이다. 열혈 개신교인들이 늘 비판하는 천주교뿐 아니라 개신교 자체도 말이다. 이런 인습과 전통의 뿌리를 파내고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새 포도주’의 삶은 결국 유명한 신앙서적 <내려놓음>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나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변화된 제자의 삶이라는 것이다. 두 저자가 동일하게 이것이 신앙의 기초라고 선포하는 것도 똑 닮았다. 나는 이 신앙의 기초마저 제대로 시작하지 못했구나. 이제 신앙의 기초를 다시 한번 배웠으니, 첫걸음을 떼어보련다. 쉽지 않은 길이라는 걸 알지만, 나의 삶이 결국 주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결 론
▶ 말씀대로 살려고 애써라(눅 5:1-7)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제자의 삶을 살자.
프린스턴 대학교의 교수였던 잭 윌슨에게 몇 명의 학생들이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다. ‘박사님, 구약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역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교수님과 함께 토론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이때 윌슨 교수님이 이렇게 대답했다. ‘학생들은 성경을 몇 번이나 읽어 보았는가?’, ‘예, 아직 1독을 하지 못했는데요.’ 그러니까 교수님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40년 동안 밤잠을 설치면서 성경을 읽었는데 한 번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의심해 본 적이 없네. 자네들은 우선 성경을 몇 독이라도 하고서 나와 토론하도록 하세.’ 이 말을 들은 학생들은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성경을 주신 목적을 분명히 알자.
딤후 3:16-17 /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 받은 영감으로 쓰여 우리 손에 주어진 책이며 진리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우리 생활에서 악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주는 데 유익한 책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을 바르게 하고 옳은 일을 행할 힘을 줍니다. 17) 하나님께서는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를 모든 면에서 온전하게 하시고 남에게 착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해 주십니다.
우리가 모두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무지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셨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담겨 있어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소유할 수가 있다.
만일 성경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셔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되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롬 12:2 / 여러분은 이 세상 사람들의 행동이나 관습을 본받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생각이나 행동으로 새로워져서 딴사람이 되십시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방법이 실제로 얼마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인가를 여러분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될 것입니다<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renewing)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good) 기뻐하시고(pleasing) 온전하신(perfect)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8:28-30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획에 맞게 살아가기만 하면 모든 일이 유익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29)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누가 당신에게 올 사람인가를 아시고 그들을 당신의 아들과 같이 될 수 있도록 정해 두셨습니다. 그것은 그 아들을 모든 믿음의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30)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택하여 당신께 나아가도록 부르셨고 우리가 하나님께로 갔을 때 ‘죄 없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선량한 성품을 지니게 하여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해주셨으며 그분의 영광을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를 맏아들 되신 그리스도를 온전히 본받게 하는 것, 성품을 닮아감과 그의 영광에 동참하는 것까지 그것이 우리를 향한 온전한 뜻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과 결정들을 하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궁극적이고 온전하신 그 뜻을 향해 방향을 확고하게 잡고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베드로는 말씀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베드로는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고기 잡는 어부였다. 베드로가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가 그물을 내렸다. 왜 그런지 이날은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한두 시간 그물질을 더 하였다. 그러나 물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나중에는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는데도 몇 시간이 지나 새벽이 되었는데도 헛수고이다. 할 수 없이 돌아와서 그물을 씻는 중 예수님이 오셔서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눅 5:4 / 예수께서 말씀을 다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제 깊은데로 나가서 그물을 내리라. 그러면 많은 고기가 잡힐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이렇게 반응했다.
눅 5:5 / 시몬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저희가 어제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다시 해 보겠습니다.’
이에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눅 5:6-7 / 시몬이 그대로 하였더니 그물이 가득 차서 찢어질 지경이었다. 7)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소리쳐 도움을 청하였다.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곧 두 배에 고기가 가득 찼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물을 내리자 많은 물고기가 잡혔다. 두 배에 채우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잡히지 않던 고기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물을 내리니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혔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베드로가 겪었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헛수고하던 인생이 열매 있는 인생으로 변화된다. 생각이 변화되고 말이 달라지고 얼굴이 달라진다. 가치관이 바뀌게 되고 삶이 변화되게 된다. 육체의 쾌락을 좇아가던 사람이 성령을 따라가게 되고,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대로 살라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❶ 우리를 잘되게 하시기 위하여 말씀대로 살라는 것이고, ❷ 생명을 살리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말씀대로 살라는 것이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셨다. 출애굽기 23장까지 나와 있는 계명을 보면 613가지인데 두 종류이다. 하라는 계명과 하지 말라는 계명이다. 하라는 계명은 248가지이고, 하지 말라는 계명은 365가지이다.
레 8:5 / 그러자 모세는 온 공동체 식구들에게 ‘지금부터 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이오’하고 말하였다(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신명기 4:1 /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나는 이제 여러분에게 여호와의 계명과 규정들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듣고 행하면 목숨을 잃지 않고 살아 남아서 여러분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제 여러분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신명기 7:12 / 여러분이 이 규정을 모두 듣고 그대로 지켜 행하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계약을 그대로 지키시어 여러분을 변함없이 사랑하실 것입니다(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구약 성경에 보면 율례, 규례, 법도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말씀대로 살라는 것이다. 그러면 산다는 것이다. 잘 된다는 것이다. 형통한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는 본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눅 5:10 /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막 1:17 /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사람 낚는 어부는 영혼을 살리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생명을 구원하는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서 말씀대로 살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하라는 말씀은 하면 되고, 하지 말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 사랑하면 되고,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 비판하지 않으면 된다.
축복하라고 말씀하시면 축복하면 되는 것이고, 게으르지 말라고 말씀하시면 게으르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면 성령을 받으면 되는 것이고, 권능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면 권능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고 말씀하시면 선대하면 되는 것이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라 말씀하시면 축복하면 되는 것이고,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면 기도하면 되는 것이고,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고 하시면 속옷을 주면 되는 것이다. 말씀하신 분이 보증할 것이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주님이 확실하게 책임지시는 줄로 믿는다.
■ 한국교회가 1903부터 1910까지 민족대부흥이 일어났다. 1903년 감리교 하디 선교사에 의하여 죄의 고백이 시작되면서 원산대부흥운동이 일어났다. 1907년에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나고, 1909년에 백만인 구령운동이 일어났다. 이 부흥 운동이 1980년대 초까지 한국 강산을 휩쓸었다. 그런데 1980년대를 정점으로 교회가 기울기 시작했다. 전도가 안 된다. 교인이 줄어들었다. 교회가 문을 닫는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학자들이 많은 연구를 해서 발표했다. 공통적으로 꼽는 것이 있다.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도들이 말씀대로 살지 않으니,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니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가 없으므로 전도가 안 된다는 것이다. 왜 성도라고 하는 이들이 말씀대로 살지를 않을까? 학자들이 연구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지식화된 세상에 살면서 교인들이 성경을 지식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성경 공부를 많이 하고 외우면서 지식화되었다는 것이다. 머리로,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자기 계산으로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론, 지식, 전통, 구습, 습관이 신앙생활의 담이 되는지도 모르고, 그것이 하나님과 나 사이의 걸림돌이 되는 줄도 모르고 여전히 머리로 한다는 것이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30cm밖에 안 되는 간격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어떤 사람은 우리가 어떻게 말씀대로 사느냐?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사느냐? 특별한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험적으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장벽을 설치하고 살아가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죄를 가지고 있어서 육신의 정욕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없다고 단정 지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살라고 하시니까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말씀은 많이 아는데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들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교우가 바리새인처럼 성경은 엄청나게 많이 알고 있는데,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배우고 암송해서 많이 알고 있는데, 그 말씀을 인정하지 않는다.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 1900년대 초에 민족부흥운동이 일어날 때 그 당시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드렸을까? 강화도에 복음이 들어가면서 홍의교회가 세워졌는데, 1897년 강화도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교회이다. 교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때부터 믿음과 열정이 뜨거웠다. 선교사의 도움 없이 예배당을 건축하는 획기적인 일이 일어났다. 당시에는 미국에서 보내준 선교비를 가지고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짓고 교회를 세울 때이다. 그런데 이 교회는 1년 만에 교인이 팔십 명이 될 정도로 교회가 뜨거웠다. 놀라운 일은 교인 중에 처음으로 세례자가 나왔는데 교인들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마을에서 처음 믿었고, 한날한시에, 함께 믿어, 한 형제가 되었으니 한 일(一) 자로 돌림자를 쓰도록 합시다.’ 이름을 바꾸자(改名)는 말이다. 성은 부모님이 준 것이라 바꿀 수 없었고, 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한 일자(一)로 통일하고, 가운데 자는 신앙적으로 좋은 의미를 지닌 ‘애’(愛), ‘신’(信), ‘능’(能), ‘순’(純), ‘충’(忠), ‘봉’(奉), ‘은’(恩), ‘경’(敬) 같은 자를 적은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기도한 후에 하나씩 뽑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교인들 이름이 박능일, 권신일, 종순일, 권혜일 등이 되었다는 것이다. 개척교회 교인들이 이름으로 파격적으로 바꾸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절도 모르는 사람들, 촌수도 모르는 상것들, 검정개들’이라고 조롱했다. 당시에는 교인들은 죄인이라는 의미로 검은 옷을 입고 다녔다. 그럼에도 성도들은 육적인 질서 대신 영적인 질서를 따르기로 하면서 신앙생활을 했다. 그런 식으로 이름을 개명한 사람들이 60여 명에 달했다.
■ 대표적인 사람이 종순일(種純一)인데, 이분은 예수 믿기 전에 마을에서 부자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재물에 여유가 있었다. 그 마을 사람 가운데 그에게 돈을 빌려 가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부유했다. 하루는 종순일 성도가 마태복음 18장 23절 이하에 나오는 1만 달란트 탕감 받은 신하가 1백 데나리온 빚진 자들에게 빚을 갚으라고 말해서 빚 탕감이 취소되고 감옥에 갇힌 이야기를 읽고 며칠 고민하다가 자기에게 돈 빌려 간 마을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모았다. 사람들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있는데, 종순일 성도가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이 읽은 마태복음 18장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오늘 내가 예수 믿고 죄 용서받은 것이 천만 냥 빚 탕감 받은 것보다 크거늘, 여러분에게 백 냥, 천 냥 돈 빌려주고 그걸 받으려 한다면 이는 성경 말씀에 나오는 악한 종이라 할 것이요. 이 시간 후로 여러분이 갚을 빚은 없소.’ 그리고 다 탕감해 주었다. 그는 문갑에서 빚 문서들을 꺼내서 사람들 보는 앞에서 불태워 버렸다. 많은 사람이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 주문도라는 섬에는 181가구 중의 134가구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 전 주민의 75%이다. 1900년 4월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금도 주문도에는 술집과 카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더니 하나님의 역사가 그 동네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한국교회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고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의 선배들이 말씀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자신의 삶을 말씀 앞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말씀대로 사는 신앙생활을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잘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생명 살리는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말씀대로 살라고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고 애써야 한다.
베드로가 자기 경험과 현실을 앞세웠다면 고기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적인 계산을 했더라면 사람 낚는 어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초대교회 전반부에 나오는 믿음의 기둥은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복음을 위하여 귀하고 값지게 쓰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씀에 의미하여 그물을 내렸다. 그 결과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사람으로 살아갔다.
우리들도 베드로와 같은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는 신앙을 소유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의 장벽에 쉽게 무너져 버린다. 현실은 현실일 뿐인데 현실에 우리의 생각을 집어넣는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현실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죽을 것 같은 암흑 속-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주신다.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길이 열릴 것이다. 홍해가 갈라질 것이다. 여리고 성이 무너질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내 눈앞에서 일어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연구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공부하고 암송하라고 주신 것도 아니다. 그대로 살라고 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말씀대로 살려고 성경을 공부해야 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암송해야 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연구해야 한다.
베드로후서 1:2-11 /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을 더욱더 받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배우십시오. 3)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지니신 위대한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생활을 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과 선한 품성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4) 그리고 그같은 권능으로 놀라운 은총을 풍성하게 내려 주시기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정욕과 부패에서 해방되어 그분의 품성을 나누어 받게 된 것입니다. 5) 그러나 이런 은사를 받아 간직하려면 믿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도록 덕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6) 더 나아가 여러분은 욕망을 버리고 인내와 경건을 몸에 익히며 기쁨으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7)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과 즐겁게 사귈 수 있고 친밀해지며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8)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익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9) 믿음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여기고 더 이상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장님이든지 심한 근시안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님을 위해 강하고 올바르게 살 수 있도록 죄에 물든 옛 생활에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10)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더욱더 힘써 여러분이 참으로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증명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결코 넘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고 여러분을 영접하시고자 우리 주님이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는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실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내 안에 말씀대로 살기로 거부하는 인간적인 생각을 다 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장벽을 이기고,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려서 내 삶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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