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4월 15일(월) 잠언 18:1-11 찬송 285장
1.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2.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3. 악한 자가 이를 때에는 멸시도 따라오고 부끄러운 것이 이를 때에는 능욕도 함께 오느니라
4.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구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
5. 악인을 두둔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니라
6.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7.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의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8.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9.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
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11.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
(개역 개정)
- 지혜로운 의인과 어리석은 악인의 삶을 대조 제시하는
총 375개의 금언들의 연속(18:1-24) -
18장도 375개의 여러 주제를 담고 있는 짧은 경구로 이루어진
솔로몬 잠언이 수록된 10:1-22:16의 일련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는 의인과 악인의 생활 태도가 대칭적 구조로
비교 서술되어 지혜로운 자로 하여금 악한 행위를 버리고
의로운 삶을 살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18장도 크게는 지혜로운 의인과 어리석은 악인의 비교로 일관되나
작게는 실제 생활에서 부딪치는 여러 삶의 모습과 관련되는
다양한 주제들이 계속 반복되어 등장하므로
장 전체를 단락별로 묶어 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 부분은 저자, 문장 형식, 사상 등
그 어떤 측면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8절)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한글 성경은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라고 길게 풀어서 번역했지만
원문으로 보면 이 단어는 ‘중상(中傷)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래서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이란
상대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헐뜯는 ‘중상 모략(backbiting)’이 적당하다.
공동 번역의 경우 이를 ‘고자질하는 말’로 번역했다.
한편 ‘별식과 같아서’라는 표현은 ‘게걸스럽게 먹어치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속담으로 표현하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삼켜지는
아주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말한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왜 중상모략을 별식에 비교했을까?
별식(別食)이란 한 번 먹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자꾸 먹고 싶게 하는 마력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번 먹어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 먹고 싶게 사람을 끈다.
그래서 소위 ‘맛있는 집’, ‘소문난 집’을 계속해서 찾아다니는 이들이 있다.
또한 별식이란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특징이 있다.
마찬가지로 중상모략을 계속 하게끔 하고
어디에 걸리는 것도 없이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말 곧 타인을 비방하고 정죄하고 그의 약점을 들추어내는 말은
대개는 그 당사자에게 감당할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안겨주게 마련이다.
자기는 별식처럼 먹어치운 그것이 타인에게는
씻을 수 없는 수치를 안겨주고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다.
따라서 이는 우리들이 극도로 경계하고 피해야 할 일이다.
왜인가? 우리는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 약점을 다 아시지만
그 모든 것을 사랑으로 품으시고 감싸시고 용납하시며
그 모든 것을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옮겨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허물을 덮어주어야 한다.
가려주어야 한다.
성경은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긴다고 했다.(잠11:13)
또한 허물을 덮어주는 사람은 사랑을 구하는 자라고 했다.(잠17:9)
심지어 비밀을 쉽게 누설하는 이들과는 사귀지 말라고까지 했다.(잠20:19)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들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아야 한다.
허물을 덮고, 부끄러움을 감싸주는 말을 하였는지,
아니면 그것을 별식처럼 즐기는 삶을 살아왔는지?
타인을 배려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을 칭찬하고
그의 장점을 나타내는 말을 주로 해왔는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데서 상대의 약점을 내세우며
그를 깎아내리는 말을 주로 해왔는지?
우리는 남을 깎아 내리고 중상하는 별식을 즐기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남을 말을 하려거든 좋은 말, 은혜로운 말,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
변호하고 이해하는 말만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 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딤전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