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47) 와해되는 회맹 연합
이날, 낙양을 버리고 장안으로 도망치는 동탁을 쫓다가 형양 싸움에서 크게 패한 조조가 초최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원소는 조조를 위로하기 위해 잔치를 베풀었으나, 조조는 그 자리에서 노여운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대의를 살리기 위해 회맹 연합을 결성하여, 한테 모였으나, 이제 알고 보니 제후들의 마음속에서는 제각기 다른 배포를 품고 있는 것 같소. 이래가지고는 아무 일도 안 될 것이므로 나는 당분간 고향으로 돌아가 몸을 쉴 생각이오."
손견도 떠나가고 이제는 조조도 떠나겠다고 하니, 동탁을 제거하려고 모였던 회맹 연합은 점차 와해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제후들은 총대장 원소의 지휘력 무능에 환멸의 비애를 느끼게 되었다.
이윽고 다음날 조조가 군사를 거느리고 양주(揚州)로 떠나버리자, 공손찬도 내심 느끼는 바가 있어서 유비를 불러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 보았자 아무 소득도 없을 것 같으니, 유 장군도 일단 평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소?"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공손찬도 군사를 거느리고 낙양을 떠나 버렸고, 그간 전공을 크게 세운 관우와 장비도 아무런 훈공을 받지 못한 채 유비와 함께 낙양을 떠나 평원으로 돌아갔다.
한편, 형주 자사 유표는 원소의 명을 받고 나자, 곧 수하 장수인 괴량과 채모(蔡瑁)에게 군사 만여 명을 주어 손견을 잡아오게 명하면서 ,강동으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뒤에서 수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손견은 군사를 거느리고 길을 재촉하니, 문득 괴량의 군사들이 길을 막는다.
"누가 무슨 일로 길을 막느뇨?"
손견이 말하자 괴량이 앞으로 나서며 이렇게 외친다.
"네가 한나라 신하로서 어찌 옥새를 감추었느냐? 순순히 내놓으면 무사할 것이로되 그렇지 않으면 이곳을 살아서 지나가지 못하리라!"
그 말을 들은 손견은 크게 노하여, 황개를 시켜 괴량을 쳐부수게 하였다.
양 편의 군사들이 크게 싸우는 중에 괴량의 형세가 불리해지자, 이번에는 채모가 합세하였다.
그러나 채모 역시 황개를 당해 내지 못하고 급히 쫓기는데, 이번에는 산 뒤에서 북소리와 제금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형주 자사 유표가 대군을 휘몰아쳐 나왔다.
손견은 유표를 보자, 마상에서 예의를 보이며 말했다.
"유 자사는 어찌하여 원소의 말을 듣고 나를 의심하시오?"
"네가 옥새를 감추고 강동으로 돌아가려는 것은 모반을 하려는 음흉스러운 속셈이 아니더냐?"
"내가 만약 옥새를 감추고 있다면 유 자사의 칼과 화살 아래 죽으리다."
"정말 그렇다면 지금 검사를 받아라."
그 말에 손견은 크게 화를 내었다.
"이놈! 정녕 네가 나를 이렇게나 모욕한다면 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양군간에는 다시 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손견의 군사들은 먼 길을 오가느라고 모두 지쳐있던 데다가, 유표의 군사들은 워낙 강군이어서, 손견은 크게 패하고 정보, 황개, 한당 등 세 장수와 함께 간신히 목숨을 보존하고, 초라한 행색으로 강동으로 돌아갔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원소는 낙양에 그냥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군량과 마초(馬草)도 넉넉하지 않아서 군사를 보존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사정을 알고, 모사 봉기(謨士 逢紀)가 원소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하를 경륜하려는 우리가 군량에 쫓겨서야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기주(冀州)는 물자가 풍부한 곡창지대(穀倉地帶)이오니, 우리가 그 곳을 손에 넣는 것이 좋겠습니다."
"기주를 우리 손에 넣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우리가 기주땅만 점령하게 되면 군량과 마초 걱정이 없어질 것이니, 계교를 써서 그곳을 우리 소유로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공손찬에게 사람을 보내어, 기주를 협공하면 그 땅의 절반을 나눠 주겠다고 하십시오. 그러면 공손찬이 반드시 군사를 일으킬 것이니, 우리는 그보다 조금 늦게 거동을 하게 되면, 기주 지사 한복은 반드시 우리에게 구원을 요청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구실로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아니하고 기주 땅으로 들어가 피흘리지 아니하고 기주를 점령할 수 있게됩니다."
"음... 듣던중 가장 좋은 계책이오! 그러면 당장 거행합시다!"
원소는 크게 감탄하며, 그길로 공손찬에게 밀서를 보냈다.
공손찬은 그것이 간악한 계교인 줄도 모르고, 기주를 쳐서 반씩 나누자는 원소의 제안에 귀가 솔깃하여 즉시 군사를 일으켜 기주로 향하였다.
그러자 공손찬이 대군을 이끌고 기주로 쳐들어 온다는 급보를 들은 기주 지사 한복은 크게 놀라 순심(荀諶), 신평(辛評)등 두 모사를 불러 대책 강구 회의를 열었다.
순심이 말한다.
"일이 이렇게 되면 원소 장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원소 장군이라면 공손찬도 겁을 낼 것이 분명하니까요."
한복은 그 말을 옳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장사 경무(長史 耿武)가 반대하였다.
"원소로 말하면 지금 몹시 궁핍하여 아무한테나 핑계가 없어서 트집을 못 잡는 형편인데, 그런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양 떼 속에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절대 안 됩니다."
그러나 한복은 경무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원소에게 사람을 보내어 구원을 요청하자, 경무는 하늘을 우러러 긴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탄식하였다.
"아아, 이제는 기주도 망하는 판이구나!"
원소는 기주 지사 한복의 구원 요청을 받자 모든 것이 계획대로 들어맞는 것을 크게 기뻐하며, 몸소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기주로 진군하였다.
원소가 기주 고을에 들어오던 때, 충신 경무는 나라가 망해 가는 꼴을 보고 있을 수만 없어서, 원소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칼을 빼들고 원소에게 덤벼들었다.
"이놈아! 네가 무슨 음흉한 속셈을 가지고 이 땅에 나타났느냐?"
그러나 경무는 원소가 타고 있는 말에게만 상처를 입혔을 뿐, 대장 안량(顔良)의 칼에 쓰러져 버렸다.
원소는 기주 지사 한복의 영접을 받으며 관아로 들어오자, 한복을 분위장군(奮威將軍)으로 삼아 실권없는 명예직으로 돌려버리고, 저수, 봉기 등의 심복 장수들에게 모든 실권을 잡도록 만들어 버렸다.
한복은 그제서야 충신 경무의 간언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이러다가는 나의 목숨조차 위태로울지 모른다!)
한복은 그렇게 생각되어, 마침내 기주 땅을 버리고 단신으로 진류 태수 장막(陳留 太守 張邈)을 찾아가 몸을 의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