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으로 평화로움을 얻다 (2026. 5. 4)
이미환
‘ 왜요? 싫어요. 왜 그래야 되는데요? 교사인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싫다는 의사를 거리낌 없이 표현한다. 언제부턴가 교실에서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내가 학생이었던 시절 선생님의 말씀엔 ’네‘ 라고 대답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된다는 사회적 분위기 덕분에 선생님의 말씀에 의심을 품어 본 적도 없었다. 교대 졸업에 이어 바로 교사 발령을 받았고, 나는 나를 믿고 의지하는 학생들에게 온 마음과 수고를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교실이란 왕국에서 교과서는 진리고 그것을 토대 삼아 가르치는 나의 말에 당연히 모든 학생들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생의 잘못은 내 지도력 탓이고, 부족한 성적도 나의 가르침 소홀로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아이들을 지도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았고, 교실은 우수한 교사로서의 자기 효능감을 추구하는 일터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교실에서 학생의 인권에 대한 화두가 점차 떠오르기 시작했다. 학습 활동이 학생 중심으로 전개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교사로써의 나의 일방적인 지시는 그 권위를 잃어 가게 되고 자기주장이 강한 학생들과의 갈등은 커져만 갔다. 내 마음을 몰라 준다며 학생들로부터의 섭섭함은 쌓여만 갔다. 제대로 잘 가르쳐 보고자 하는 열정은 서서히 식어갔다. 교사로서의 한계를 느끼며 미흡한 부분에 대한 비열한 자기 합리화의 날들이 많아졌다. 내 지시를 따르지 않아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에게 냉담한 마음도 일어났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이상적인 관계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다. 변화를 시도하려는 나름의 몸부림 끝에 전통적으로 당연시 되어오던 스승과제자 사이의 상하관계에 의문을 품으며 ’너와 나‘ 존재로서의 만남에 눈을 뜨게 되었다. 잘 가르치려는 교사이기보다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교사, 친절하고 단호한 교사로의 탈바꿈을 시도하게 되었다.
3월 새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 동안은 ’학급세우기‘가 집중적으로 이루어 진다. 일 년간 교실에서 함께 추구할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행동들을 알아보고 실천을 약속하는 기간이다. 학급을 세워줄 가치들은 특별활동 시간과 도덕 시간을 집중적으로 이용하여 구체적인 행동들로 나타내며, 학생들의 의견을 토의를 통하여 전적으로 반영하는 형식을 취한다. 정해진 약속들은 전지에 커다랗게 적어 학생들의 동의를 서명 받아 교실 뒤편에 상시 게시해 둔다. 학기 중에도 수시로 이 약속한 행동들의 실행 여부를 살펴보고 정기적으로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나간다. 교사의 지도 감독에서 벗어나 학생들 스스로 선택 결정하고 책임지는 등 주도권을 넘긴 샘이다.
교사인 나와 아이들의 의도를 함께 반영하여 우리반 급훈은 주로 ’존중,우정, 책임‘으로 정했다. 1차시에 존중의 의미인 ’함부로 대하지 않고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를 알아본다. 실제 생활 속 사례 ’이야기 나누기‘ 활동을 통해 존중의 가치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시킨다. 3시간 블럭으로 시간을 확보하여 학급 전체 토의를 실시한다. 토의 주제는 ’존중‘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이다. 1.’나 존중‘을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에 어떤 것이 있을까? 2. ’상호 존중‘을 위한 행동에 어떤 것이 있을까? 3.’공간 존중‘을 위해 어떻게 행동할까?, 아이들은 각자 생각한 구체화된 행동을 포스트잇에 적어 흑판에 붙인다. 흑판에 붙어 있는 포스트 잇의 행동들을 비슷한 행동들끼리 합친 뒤 문구를 통일하여 흑판에 적는다. 행동마다 차례대로 실천 가능할지 여부를 따져본다. 실천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행동은 그 이유를 묻고 합당하다면 동의를 얻어 삭제한다. 최종적으로 실천 가능한 합의된 행동들만 남긴다. 개별 행동마다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 거수로 100% 동의를 얻는다. 끝으로 전지에 옮겨 적고 학생 모두가 차례로 앞으로 나와 전지 아랫단에 확인 서명을 하도록 한다. ’우정‘’책임’의 가치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실천 사항을 정하고 ‘존중’과 더불어 1년동안 교실 생활의 지침이 되도록 한다.
공부 시간에 과하다 싶게 소란스러워지면 교실 뒤 편에 게시된 ‘존중’전지를 가리키며 학생들에게 공간 존중을 위해 약속한 사항을 소리 내어 읽어 보도록 한다. 숙제를 해 오지 않은 학생은 나 존중에서 무엇을 지키지 않았는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방법을 찾아 포스트잇에 적어 달라고 한다. 교사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딴짓하는 학생에게는 존중받지 못한 느낌이 들어서 불편하다는 교사의 감정을 전달한다. 학급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음을 ‘존중’ ‘우정’ ‘책임’에 대한 반복적인 토의와 실천으로 익혀갈 수 있었다. 주도권을 학생들에게 넘기면서부터 아이들로부터 감동을 선물 받는 날이 생기기도 했다. 아이들의 잠재력에 감탄하는 순간이 기대하지도 않는 순간에 찾아왔다. 아침 출근길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가슴에서 새소리가 나는 듯한 기쁨의 어느 날도 떠오른다.
그렇다고 아이들과 나 사이, 아이들 상호간의 갈등이 교실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갈등은 예기치 않게 수시로 일어났고 교실은 아이들 수만큼의 욕망과 감정의 충돌로 꿈틀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아이들은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었고 자기 조절을 통해 공동체의 평화로움을 찾아 주었다. 교사와 학생 또 학생들 상호 간의 존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모두의 행동들이 모여 학급의 주춧돌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첫댓글 세월이 많이 달라졌군요. 학교가 달라지고 교사가 달라지고 학생도 달라지고 학교생활이 힘들다드니 그렇군요. 그래도 역사는 전진하고 더욱 좋은 시대가 오리라 예측해봅니다.
교사와 학생, 학생들간의 관계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음을 글을 통해 알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리라 믿습니다.
학생들과 마주하는 시간이 교사의 주된 임무인데 저도 그럴때는 정말 죽을 맛이지요.....
요즘에는 학부모들의 의견까지 끼어들어 나의 의도가 곡해될때 순간 순간 퇴직하고 싶어지기고 했었지요. 수고많으셨어요
함부로 대하지 않고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 잘 가르치려는 교사 이기보다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교사 공감합니다.
훌륭한 교사의 본이 되십니다. 저런 세심한 배려심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했는지 돌아보며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