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니
강대식
나이 드니 발에 눈이 없다
여기저기 멋대로 부딪혀
이끼 핀 바위의 표면처럼
시커먼 흔적을 키운다.
나이 드니 머리에서 총기가 도망쳤다
애써 기억하려 해도
진실은 사라지고
영양가 없는 고정관념만 버티고 있다.
나이 드니 손에 감각도 무디다.
목에 핏대가 서도록 통화해 놓고
몇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손에 든 전화기를 찾고 있다
나이 드니 아집만 살이 찐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며 들어주어야 하는데
앞뒤 잘라놓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니
아무리 좋게 보아줘도 뺨 맞지 않으면 다행이다.
나이 드니 처신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살아온 날보다 살날이 짧은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가족에게 지인에게 친구에게
덜 미안하고
아픈 상처를 주지 않고
향기롭지는 않아도
구린내 나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애써 본다.
나이 들어보니
겨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음을
가슴 저리게 느껴진다
삶이 아무리 아름답고 윤택했다 해도
지친 육신을 보듬고 가야 할 손은
자식도 형제도 아니요
결국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나이 든 늙은 아내인 것을
겨우 알아 가고 있는 중이다.
예순셋의 생일
시간의 수레바퀴가 너무 빠르다
쫓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숨 가쁘게 살다 보니 이제는 나이 개념도 없는 것 같다.
아이들 바쁘다니
미리 모여 생일 밥 먹고
진짜 생일에는 미역국 한 사발도 못 먹는 상거지 꼴이다.
네 시에 맞춘 알람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깨어
어둠 속으로 차를 몰고 있는 새벽
헝클어진 머리카락같이 뭔가 엉성한 시작이다.
여명을 벗 삼아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하나의 줄기에 천 개의 가지
흔하지 않은 자태가 잃어버린 내 하루를 만져준다.
특별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겐 특별한 날
나를 세상에 내놓은 두 분 찾아 달렸다
내 나이만큼이나 긴 세월을 사랑하고
사랑으로 안아 주셨던 부모님
무엇하나 제대로 해드린 것 없는데
죄송한 마음 잡고 술 한잔 올려본다.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해 주심에 감사하고
풍족하진 않아도 배곯고 살지 않도록
뼈마디 부서져라 일만 하신 두 분께
내가 속 썩이는 망나니가 아니라
괜찮은 아들이었기를 빕니다.
저녁 밥상 대신
사발면 하나 끓여 놓고
조금 더 오래 살아보겠다고
자꾸만 면발만 늘리고 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죽은 영혼을 업고….
소금산
케이블카 타려고 선 줄
어디서 왔는지 빼곡하다
두 걸음 걷고 뒤돌아보니
곱절로 이어지는 발걸음이 평안하다
정상부로 오르는 발아래
세월을 비웃듯 느긋하게 흐르는 물줄기
그 속에 산천어 몇 놈은 헤엄치며 놀겠다
산등성 따라 자유분방하게 자란 소나무
가지 끝마다 노란 송홧가루 집어 들고
오가는 손님에게 선물 주듯 던져주면
코끝에 문지른 SUN 크림보다 더 빛난다
계곡을 가로지른 404m 울렁다리
후둘 거리는 발목을 부여잡고 서서
100m 아래 청승맞게 굽이치는 물결 보며
넘어지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힘을 내 본다
아직은 건널 수 있다고
아직은 두 발로 지탱하며 서 있을 수 있다고
아직은 이 정도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머릿속을 긍정에너지로 꼭꼭 채워도
등줄기에 드리우는 아득한 감촉
소금도 없는 소금산※에서
갓 건져 올린 명이와 버섯으로
입맛 돋구어 줄 상차림은 만들지 못해도
연기 없는 굴뚝에서 번져가는 향기는 부럽구나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에 위치한 산으로 경관이 아름다워 작은 금강산이라는 의미로 소금산이라 부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