純粹를 찾아서
조 춘 성(zenithhealth@hanmail.net)
아프리카 검은 대륙은 어쩌면 우리인류의 始原이다. 그 순수의 땅은,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에게 꿈과 설렘을 갖게 한다. 사시사철 세계각지에서 수많은 산악인들은 자신의 꿈을 키우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든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킬리만자로산행에 관한 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하게 되었다. 그 프로를 보면서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가고 싶은 그 욕망을 접을 수 없어 배낭을 꾸려 훌쩍 탄자니아로 떠났다.
인천에서 방콕까지 5시간, 다시 방콕에서 10시간 걸려 나이로비 국제공항에 내리니 한국의 가을 날씨와 흡사했다. 현지가이드가 대기시켜놓은 승합차를 타고 탄자니아로 이동했다. 울퉁불퉁 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도중, 차창에 비치는 들판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들판에 푸른 풀은 사라지고 황갈색의 땅으로 변해있다. 현대문명이 낳은 찌꺼기가 암 세포로 돌변해 순수한 땅과 사람을 병들게 하고 있었다.
산행출발지 마랑구게이트에 도착하니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우흐루피크를 등반하기 위한 입산신고를 마치고 열대우림지대로 들어갔다. 등산로초입은 밀림지대로 키 큰 고목과 잡목들이 뒤엉켜 있고, 계곡 쪽에서는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왔다. 등산로는 대체적으로 넓게 잘 닦여져 있다.
앞질러가고 있는 현지인들의 행렬이 눈에 띄었다. 5박6일 동안 산행길잡이와 주방요원, 짐을 나르는 우리 팀의 도우미들이다. 그들은 전체 일을 맡아서 주관하는 사람이 50불을 챙기고 나머지 50불은 노임으로 지급한다고 한다. 5박6일 동안의 노임치고는 매우 적은 금액인 것 같았다. 이곳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만다라산장은 밀림지대 안부에서 넉넉하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우리일행을 맞아주었다. 건물은 대부분 영국식 목조건물들이다. 주변에는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고 키 작은 이름모를 꽃들이 만발해 있다.
밤이 되자 하늘에서는 축제나 열리는 듯 요란했다. 수없이 많은 별들이 머리위로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 옛날 고향 땅에서 보았던 별들이 아닌가싶다.
만다라에서 출발하여 한참 오르다보니 눈앞에 사막초원지대가 펼쳐졌다. 어디선가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나타날 것 같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천상화원 앞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없어 조용필의 ‘킬리만자로 표범’을 춤을 추며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다함께 어우러져 예정에 없는 산상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저 멀리 수목한계선이 보이고, 길옆으로는 수많은 꽃들이 저마다 앞 다투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해발 3000고지에서 저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다니··· 이곳이 바로 천국이 아닌가싶다.
강한 생명력을 가진 꽃들을 존경의 눈으로 망연히 쳐다보다 눈을 돌려보니 왼편 초원지대는 까맣게 불탄 흔적이 시야에 들어왔다. 벌거벗은 모습으로 드러누워 묵묵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초원의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세월이 흐르면 자연치유 되어 언젠가 새로운 생명들을 키워 내리라.
호롬보산장(3,700m)에 도착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지난해 백두대간 산행 중, 설악산 저항령 부근에서 다쳤던 발목 때문에 무척이나 걱정을 하던 터였다. 아프리카엘 간다고 친구들에게 얘기를 했기에 취소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출발하기 전에 친구들에게 호롬보산장 까지만 갔다 오겠다고 카페에 글을 올렸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것 같다. 인간의 본능인 이기심을 이성이 다스릴 수 없어 공산주의가 멸망한 주된 이유였다고 말한 학자들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나도 막상 목표점에 도달하고 보니 키보산장 까지는 가야 본전이 되는 듯하여 목표를 수정했다.
호롬보산장은 고산사막 언덕위에 줄을 지어 단아하게 서 있다. 막사 옆에는 계곡이 있고 그 계곡을 따라 고산식물 ‘세내시오’ 가 군락을 이루며 위용을 과시하고 서 있다. 메마른 사막에 생명력 강한 식물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며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호롬보산장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고소적응훈련을 하기위해 마웬지봉(4,200m) 갈림길까지 오른 다음 귀환하여 식사하고 일찍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어 식사를 마치고 키보산장(4,700m)으로 출발했다. 4,000고지에 이르자 마지막 워터 포인트가 나타났다. 잠시 쉬면서 수통에 물 보충하는 포토들을 보면서 모든 조건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돌과 바위뿐, 어떤 생명체도 생존할 수 없는 고산사막지대이다. 대열을 맞춰서 천천히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호흡이 곤란해지고 현기증이 일어난다. 나는 멈춰 섰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를 옮겨 배낭에 있는 타이레놀을 꺼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오르다 쉬다하여 드디어 키보산장(4,700m)에 도착했다. 숙소를 배정받고 저녁을 일찍 먹고 숙소로 갔다. 침대 곁에는 이곳에 왔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날짜가 적혀있는 낙서들이 난무했다. 아마 고통을 견뎌내고 마지막 힘을 얻기 위해 이곳에서 긴 호흡을 했나보다. 내친김에 마음을 굳게 먹고 정상에 오름을 위한 긴 호흡을 준비했다.
키보산장에서 길만 포인트까지 오름길은 화산재로 된 급경사길이다. 저녁 12시에 오름을 시작했다. 달은 무척이나 밝았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먼저 출발한 사람들의 모습들이 고물고물 헤드렌턴 불빛 따라 이어졌다.
그렇게 몇 시간을 올랐는지 모른다. 체력이 고갈되어 주머니에 있는 초코렛을 꺼내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호흡을 할 수 없다.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재빨리 입안에 있는 초코렛을 뱉어냈다. 그리고 갓길에 주저앉아 잠시 명상에 잠겼다.
숨을 쉬지 못한다면 부자와 빈자도 없고, 문명과 반문명이 없는 아미타세상으로 가게 될 것이다. 세상과 참으로 행복한 이별이 될 것만 같았다. 그토록 짝사랑하던 킬리만자로에서 생의 끈을 놓을 수만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불분명했다.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오르다 보니 길만 포인트에 도착했다. 길가에는 어둠 속에 쓰러져 있는 동료들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함께 왔던 여선생도 나를 보더니 부둥켜안고 엉엉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 동쪽하늘에서 서서히 붉은 띠가 나타나자 정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추위가 뼈 속까지 파고들었다. 넝마처럼 늘어져 있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고통의 길을 한 발 한발 내딛다보니 이윽고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 건너편에는 거대한 얼음기둥이 웅장하고 태고 적 모습 그대로 침묵하고 있다. 그랬다. 침묵은 나에게 더 순수하고 더 낮은 자세로 세상과 소통하며 살라는 메시지로 전해져왔다.
그러나 그토록 꿈꾸었던 정상의 모습은 허무함 그 자체였다. 목 간판으로 얼기설기 엮여져있는 우후르피크를 보면서 솔로몬의 전도서 한 구절이 떠올렸다. 모든 것이 헛되고 부질없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모든 형상들이 내 마음속에 복사되어 영원히 저장되기를 기원하는가. 어쩌면 고통과 희열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만남 뒤엔 반드시 헤어짐이 있음을 느끼는 산행 길이었다. 그게 자연의 순수였던가. 나의 순수를 찾는 여행길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조 춘 성 435-759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1156-1호 한라아파트 401-204
(011-235-2887)
첫댓글 춘성님 대단하심.. 황철봉 구간에서 다리 다칠때 기억나네요 ^^ 나도 프로관문에 진입햇다고 좋아하시다가 다리 삣끗하셧는데 아직 그부분이 속을 썩히네요 , 빠른쾌유를 빌면서 멋진 킬리만자로 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 , 시간 되시면 위하여 산행에 참가하여주십시요 ^^ 감사 합니다 .
그 때 나를 놀리셨던 분이 산들이 이셨군요. 잘 지내고 계시죠. 시간이 되면 한번 나갈께요.
읽을 때마다 감동적입니다.사진도 올려주세염~~감사합니다....^^
사잔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