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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경주말의 보존과 활용
4.1. 경주말의 보존
이제는 지금까지 조사하고 연구한 경주말의 보존을 이야기할 때이다. 그런데 보존을 이야기하기 전에 언어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말은 변화한다”는 진리이다. 말이 변화하는 것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다. 따라서 경주말의 보존은 경주말이 변화하는 것을 막는 식의 보존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경주말이 변화하는 대로 그대로 둘 것인가? 대세는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라져 가는 경주말과 지역 문화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보다는 훨씬 유용하게 경주말과 지역 문화를 보존할 수 있다. 보존은 본존만을 위한 보존이 아니라 연구를 통한 활용에 목표를 둘 때 진정한 보존이 된다. 보존은 경주 지역민이 지역어를 잊지 않고 계속 쓰게 함으로서 지역어가 계속 일상 생활에서 쓰일 수 있도록 보존하는 것과 조사된 자료 등을 디지털 데이터 베이스 구축하는 방안 등이 있다. 경주말의 보존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앞서 조사하고 연구하였던 결과를 영구 보관하는 작업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앞서 조사되고 연구되었던 모든 결과는 아카이브 형식으로 저장되어 누구나 접근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는 영상 자료도 보존됨과 동시에 필요에 따라 음성 자료와 영상 자료를 동시에 비교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연구되고 조사된 경주말을 어떤 식으로 보관하고 또 활용할 것인지는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할 일이지만 기본적으로 원시 자료의 영구 보존이 전제되어야 하고, 디지털 방식과 아날로그 방식이 동일하게 보관되어 한다. 지금까지 경주말의 자료로 아날로그 방식의 자료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아날로그 방식의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은 필수적이겠지만 그렇다고 디지털 작업 이후에 폐기하는 것은 무모하다 할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경우에 전산화 이후 자료들을 폐기하였다가 곤란을 겪는 상황을 보아 왔다. 따라서 자료의 보관과 연구 공간 같은 것이 마련되어서 디지털 방식의 자료는 물론 아날로그 방식의 자료도 보관되는 것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하였지만 후자를 위해서는 경주말 조사, 보존, 연구, 활용을 담당하는 경주말 연구소가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주말 연구소는 일관된 연구 계획에 의해 연구가 지속될 수 있도록 경주시 산하의 부속기관으로 있는 것이 중요하지만 재정 등 여러 가지 여건으로 이러한 연구소 설립이 어렵다면 대학의 부속 연구소의 형태로도 있을 수 있다. 단지 이 경우 국책사업 등 여러 가지 변인이 연구의 계획과 방향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변질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4.2. 경주말의 활용
경주말 사용의 활성화 방향도 모색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역어 활성화로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이른바 “사투리 경연 대회”일 것이다. 그러나 사투리 경연 대회는 여러 가지 폐단이 있다.
사투리 경연 대회는 대개 그 지역 사람들이 지역어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재미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역어 자체보다는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를 많이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투리 경연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은 당연히 그 지역의 지역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사실은 재미있어야 하는 점이 우승의 중요한 관건이 되므로 결과는 지역어를 제일 잘 구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재미있게 지역어를 구사한 사람이 될 가능성 있다. 경연 방식으로 진행되므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사투리 경연 대회라면 방언을 구사하는 사람을 뽑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인데 단순히 구사 능력만 본다면 관중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평소 사투리를 잘 구사하던 사람이라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생기기 때문이다. 사투리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년층일 것이다. 그런데 노년층은 젊은층에 비해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능력을 잘 보이는 것에 상대적으로 익숙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투리 경연 대회는 방언에 대한 관심을 돋우는 데 제한적인 성과만 내는 방식이다(조남호 2009).
지역어의 활성화 방안으로 필자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이 경주의 교통 표지판과 안내문에 경주말을 섞어 쓰는 방안과 문화 해설사의 해설 텍스트에 경주말을 섞어 사용하는 방안이다. 경주 시내의 도로표지판은 물론 각종 안내문에 경주말을 섞어 씀으로써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여기가 바로 경주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 줄 수 있고, 경주에 사는 지역민들도 여기가 우리가 살고 있는 경주라는 자부심을 심어 줄 수 있다. 또한 경주 지역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유산 덩어리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고 이들을 보려고 국내외의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지역이다. 이들은 주로 경주 지역 출신으로서 지역어의 억양을 가급적 감추고 표준어를 구사하려는 견지에서 문화 해설을 하고 있다. 그러나 표준어 지역에서 장시간 노출되지 않은 경주 지역 사람이 무리 없이 표준어를 구사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필자 생각에는 그것보다는 외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준에서 경주말을 섞어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또 이런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경연대회는 효율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주말의 활용을 위해 지역어 자체만의 활용 방안을 강구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항상 문화와 공생 관계에 있다. 언어는 문화에 녹아 있으며 문화는 언어를 매개로 발전한다. 굳이 문화와 언어의 대소 관계를 논의하자면 문화가 언어보다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언어가 빠진 문화 전파는 가능하지만 문화가 빠진 언어 전파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 외국 문화의 이해 없이 그 언어만을 학습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경주말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경주 지역 문화의 조사·연구와 이에 수반되는 경주말의 조사·연구가 같이 진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신라문화제’, ‘문무대왕문화제’등 경주의 지역 문화 축제와 연관된 지역어 진작 방안이 간구될 수 있다. 지금 경주말을 주제로 개최되고 있는 이 학술대회와 제1회 경주말 겨루기 한마당이 신라문화제의 한 사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 자체로서 지역문화축제와 연계된 지역어의 활성화 사업의 하나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또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경주 법주에 관련된 술 문화와 경주 양동마을의 지역 문화와 지역어 등이 구체적인 추진 방향이 될 수 있다.
지역어를 활용한 공연, 전시 등을 제공하는 축제를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지역어 상품 공모전」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지역어를 활용한 상품 모형을 공모하는 사업으로 상품 자체를 공모하기보다는 상품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사업이다. 이러한 행사도 벤치마킹해서 경주말의 활용에 이용할 수 있는 검증된 사업이다.
지역 문화와 지역어의 관계는 최근 발간된 박용식 외(2015) 의령소바와 의령망개떡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볼 수 있다. 경상남도 의령군을 기점으로 하는 소바에 대한 연구를 문헌 자료 이외에 관련자들의 인터뷰와 주민들의 고증을 통해 진행한 것인데 ‘소바’라는 말 자체가 일본어인 만큼 일제 강점기나 그보다 조금 이전에 시작되었을 법한 것인데, 소바가 현대화를 거치면서 변화하고 발전한 상황을 잘 기술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게다가 이런 작업을 통해서 의령 지역어도 병행해서 연구되었다.
경주말의 활용 방안 중에는 무엇보다 지역어 교육이 포함되어야 한다. 지역어 교육은 단순히 표준어를 대체하자는 말이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하지만 지역민으로서 표준어와 차이가 정서적으로 다른 해당 지역어를 알고, 지역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역어와 지역 문화의 실상을 교육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경주말은 역사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경주 지역민들이 지금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어 교육은 경주말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지역어 교육이란 경주 시민들에게는 바로 자기가 쓰고 있는 말을 바로 아는 과정이 되면 지역어와 표준어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언론에서 경주말을 매개로 한 뉴스 방송 등도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일본의 오키나와는 예전에 유구국(류큐)로 불리던 독립된 나라로서 일본 본토와는 문화와 언어가 다르다. 그러나 현재는 언어가 일본어로 많이 바뀌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오키나와에서는 1961년부터 오키나와어 방언 뉴스가 실시되고 있다. 경주말의 활용을 위해서는 경주말로 뉴스를 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것은 이미 오키나와의 사례가 있으므로 이미 효과가 검증된 것이어서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는 경주말의 활용 방안 중의 하나이다.
지방 행정 문서에서 표준어와 지역어를 병행하여 표기하는 방안이라든지 어휘 차원에서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음식 이름에 경주말을 사용한 표기를 권장하는 방법이 있다. 먼저 지방 행정 문서에서 표준어와 지역어 사용의 병행은 모든 문서의 모든 부분에 일괄적으로 병행하자는 것이 아니라 내용 중에 지역어로 표현하면 의사소통에 훨씬 도움이 되는 것부터 부분적으로 시행하자는 것이다. 즉 지역어 사용을 일부러 막지 말자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음식 이름을 지역어로 표시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음식 이름에 표준어와 지역어가 나란히 표기된다면 경주를 찾는 사람들은 다른 지역의 음식점과 동일한 음식점이 아니라 경주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실제 경주를 찾는 관광객으로서의 본인도 경주의 음식점에서 경주말로 표기된 음식을 먹었다면 경주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경주 문화를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지역어 활용은 젊은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이메일이나 카톡 등에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모티콘으로 “배짼다, 아쫌, 우야노, 간마이네, 내마음을 데파도, 무시라, 파이다, 마, 머꼬” 등도 지역어 활용을 젊은 층에게까지 환기시키고 적극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지역어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는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활발한 것은 제주도이다. 제주행정자치도에서는 2007년 「제주어 보전 및 육성 조례」를 만들었는데 ‘제주어보전육성위원회’ 설치, 제주어 주간 지정, 제주어연구소 설치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와 같이 지역어의 활용은 인위적이기는 하되 너무 인위적이어서 자연스런 흐름을 깨드리는 방향이 아니라 지역어가 필요한 부분, 필요한 시점에 지역어의 사용을 막지 말자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지역어의 활용은 지역어의 조사와 연구가 완성된 후에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경주 시민은 경주말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진행형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따라서 경주말과 지역 문화를 활용한 콘텐츠 개발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며, 활용과 조사, 조사와 연구, 연구 결과의 활용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들은 분명히 선순환 구조를 가지는 것들이며 상호 보완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들이어서 지역어와 지역 문화의 조사, 연구, 활용은 항상 동시에 추진해야 할 사업으로 생각한다.
5. 결론
이 글은 경주말의 조사, 연구, 보존 및 활용을 위한 로드맵을 위해 작성된 글이다. 필자 자신이 경주말의 전문가도 아니고 경주말 구사자도 아니기 때문에 더구나 경주 문화에 익숙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논의 과정에서는 현실과 맞지 않는 것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평소 지역어의 조사, 연구, 보존 및 활용에 애착을 가진 사람으로 특히 타 지역과 구분되는 경주 지역의 특성을 고려할 때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경주말과 문화가 조사, 연구, 보존 및 활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평소 지역어와 지역 문화에 대해 생각해 오던 것을 여러 선행 연구의 견해를 참조하여 작성하였다. 앞서 논의하였던 내용을 요약하여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첫째, 경주말의 조사는 지역어 전문가의 협조를 받아 지역어 실태를 조사하여야 하며, 권역별 지역어 조사·연구 센터를 설립하여 경주말 지역어· 지역 문화 연구 센터를 중심으로 경주말의 조사·보존·활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경우 지방자치단체는 관련 학회나 연구소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지역에 소재한 대학의 협조도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또한 전통 지역어 구사자에 대한 정보 수집 및 대우가 뒤따라야 함도 물론이다.
둘째, 경주말 보존을 위해서는 조사 결과를 디지털화해서 영구 보존하여야 하며, 연구를 위한 공간도 별도로 마련되어야 한다. 보존은 단순히 보존만으로는 그 효과가 미미하며 연구가 함께 진행될 때 보존 기능도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이러한 조사 결과의 디지털화는 지역민은 물론 국민 전체가 활용할 수 있는 웹 데이터 베이스 구축을 목표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경주말의 연구·활용을 위해서는 개방형 사전의 형태로 지역어 사전이 구축되어야 한다. 지역어 사전은 오프라인 형식의 인쇄 사전 발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홈페이지를 구축하여 전자사전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사전의 개념도 인쇄 사전이라는 편협한 사전 개념에서 탈피해야 한다. 또한 지역 방송의 지역어 방송 프로그램 개발, 방송 시간 운영 및 확대 지원도 필요하며 지역어 교육용 교재, 부교재 등 교육자재 개발과 활용도 필요하다. 지금 개최되고 있는 ‘신라문화제’ 등 지역 문화 축제와 연계된 지역어 경시 대회, 지역어 공모전 등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또한 경주말 지역어 조사·연구 센터 설립을 전제로 한 지역어 연구 센터나 연구소의 설립이 뒤따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관련 학회와 연구소에 대한 지원은 물론 지역 소재 대학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새로 설립되는 경주말 연구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경주말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이다. 다른 일은 시간을 두고 계획할 수 있으나 경주말의 전면적인 조사만은 훌륭한 제보자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경주말의 경우 김주석 선생님의 방언, 속담 조사나 권순채 선생님의 지명 조사와 같은 훌륭한 업적이 있어서 지금 경주말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한다면 학술적으로나 경주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나 더 없이 좋은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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