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배우 윤정희가 지금 파리 외곽의 아파트에 버려진 채, 홀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발 남편 백건우에게서 윤정희를 구해주세요.”
2021년 2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런 충격적인 글이 올라오면서 대한민국 전체가 뒤집혔다.
그리고 더 소름 끼쳤던 건, 이 글을 올린 사람이 다름 아닌 윤정희의 친동생들이었다는 사실이었다.
한국 영화계 1세대 ‘트로이카’ 중 한 명.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와의 세기의 로맨스.
윤정희는 평생을 동화 같은 이미지 속에서 살아온 여배우였다.
그런 그녀가 타국에서 알츠하이머를 앓으며 동물처럼 방치당하고 있다는 폭로.
사람들은 분노했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남편 백건우를 향해 마녀사냥을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드러난 진실은, 치매보다 더 끔찍하고 역겨운 것이었다.
바로 ‘가족의 탐욕’이었다.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윤정희는 아마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속 우아한 노년의 배우 정도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1960~70년대의 윤정희는 감히 누구도 쉽게 바라볼 수 없는 절대적인 ‘신화’였다.
300편이 넘는 영화.
청룡영화상, 대종상 석권.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정점.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에서 시대의 우아함을 봤고, 그녀의 눈빛에서 슬픔과 품격을 동시에 읽었다.
1976년, 그녀는 돌연 파리로 떠나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비밀 결혼식을 올렸다.
세상은 열광했다.
“완벽한 예술가 부부가 탄생했다.”
두 사람은 늘 함께였고, 서로의 예술을 존중하는 이상적인 커플처럼 보였다.
적어도 대중 눈에는, 그 40년의 결혼이 완벽한 동화였다.
하지만 그 동화를 산산조각 낸 씨앗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 인생 마지막 대표작 <시>(2010) 속에서 이미 자라고 있었다.
영화 속 윤정희는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 환자 ‘미자’를 연기했다.
칸 영화제에서 기립박수를 받으며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소름 끼치는 건 현실의 윤정희 역시 당시 이미 치매 초기 증상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사를 기억하지 못해 스케치북에 적어놓고, 울면서 촬영을 이어갔다고 한다.
예술이 현실을 흉내 낸 걸까.
아니면 현실이 예술의 저주를 받은 걸까.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는 그렇게 조금씩 기억을 잃어갔고, 점점 하얀 백지처럼 변해갔다.
그리고 그녀의 판단력이 흐려지기 시작한 순간, 기다렸다는 듯 가족 간의 피비린내 나는 ‘돈 전쟁’이 시작됐다.
동생들은 국민청원에 “누나가 버려졌다”고 울부짖었다.
대중은 분노했고, 백건우를 향해 돌을 던졌다.
하지만 프랑스 법원과 한국 법원의 판결은 전혀 다른 진실을 보여줬다.
윤정희를 유기한 건 남편과 딸이 아니었다.
오히려 윤정희 재산을 관리하던 동생들이 수십억 원대 자산을 빼돌린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백건우 측은 약 21억 원 규모라고 주장했다.
결국 한국과 프랑스 양국 법원은 남편과 딸이 성실하게 보호자 역할을 했다고 인정했고, 동생들의 성년후견인 자격은 박탈됐다.
결국 동생들의 눈물 섞인 “구해주세요”는, 누나 건강을 걱정하는 절규가 아니라, ‘누나의 통장과 건물’을 잃게 된 사람들이 벌인 처절한 여론전이었다.
평생 수백 개의 인생을 연기했던 대배우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딸과 형제들이 남은 재산을 두고 서로 물어뜯는 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사람들은 치매가 잔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쩌면, 자신의 이름을 이용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피를 빨아먹고 있다는 현실을 끝까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신이 그녀에게 남긴 마지막 자비였는지도 모른다.
2023년 1월 19일.
윤정희는 파리의 한 병원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향년 79세.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언론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아름다운 별이 졌다”는 추모 기사들을 쏟아냈다.
생전에는 그녀 가족의 진흙탕 싸움을 자극적인 드라마처럼 소비하던 언론이, 막상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갑자기 고상한 척 예술혼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정말 역겨울 정도로 위선적이었다.
우리는 윤정희를 단순히 ‘치매를 앓았던 비운의 배우’로 기억해서는 안 된다.
그녀의 마지막은, 대한민국 사회가 가진 가장 추악한 민낯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예술가조차,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숨은 탐욕 앞에서는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준 비극.
300번 넘게 남의 인생을 살아낸 완벽한 배우.
부디 그곳에서는 잃어버리는 기억도, 돈 냄새 가득한 욕망도 없이, 당신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미소 그대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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