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3관왕' 고려대 명예교수 오탁번 시인 별세(종합)
송고 시간 2023-02-15 13:36
이은정 기자기자 페이지
이충원 기자기자 페이지
50년 넘게 시·소설 집필…"시와 함께 생애 완성한 시인"
1980년대까지 소설 주력…'굴뚝과 천장' 등 역사·사회 탐색한 작품도
2023년 2월 14일 별세한 오탁번 시인
[한국시인협회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이은정 기자 =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인 국문학자 오탁번 시인이 지난 14일 밤 9시 세상을 떠났다고 한국시인협회가 전했다. 향년 80세.
1943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려대 영문학과와 동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 논문으로 1970년 당시엔 금기시된 정지용 시를 연구해 주목받았다.
고인은 고려대 재학생이던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철이와 아버지'가,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가, 1969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처형의 땅'이 당선되며 '신춘문예 3관왕'으로 화려하게 등단했다.
그중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는 난해하고 상징적인 시가 많이 발표되던 시단에서 김광균의 '와사등' 이후 참신한 감각을 보여준 시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육군 중위로 입대한 그는 1974년까지 육군사관학교 국어과 교관을 지냈으며 1974~1978년 수도여자사범대학 국어과 조교수를 거쳐 1978년부터 모교인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고인은 반세기 넘게 시와 소설, 평론을 오가며 다량의 문학 작품을 발표했다. 시인으로 더 유명하지만 1980년대 말까지 소설에 주력하며 중·단편을 발표했다.
시집으로는 '아침의 예언'과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 '생각나지 않는 꿈', '겨울강', '1미터의 사랑', '벙어리 장갑', '손님', '우리 동네', '시집보내다' 등이 있다.
'처형의 땅'과 '새와 십자가', '저녁연기', '혼례', '겨울의 꿈은 날 줄 모른다', '순은의 아침' 등의 소설집도 출간했다. 2018년에는 등단작 '처형의 땅'을 비롯해 절판된 창작집과 이후 발표작까지 60여 편을 묶은 '오탁번 소설'(전 6권)을 펴냈다.
이중 1973년 소설 '굴뚝과 천장'은 1972년 실종 11년 만에 발견된 고대생 사건에 충격을 받아 현실 정치에 맞서 투쟁하다가 희생된 지식인의 모습을 그렸다. 유신체제를 풍자한 '우화의 집'과 권력에 대한 인간의 탐욕을 비판한 '우화의 땅', 인간의 본능을 다룬 '혼례' 등 역사와 사회를 탐색한 작품도 다수 선보였다.
평론집 '현대문학산고'를 비롯해 '한국현대시사의 대위적 구조', '현대시의 이해', '시인과 개똥참외', '오탁번 시화', '헛똑똑이의 시읽기', '작가수업-병아리시인', '두루마리' 등 다양한 산문집도 냈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은 "화려하게 등단한 오탁번 시인은 이후 이어진 작품에서 인생과 함께 시가 익어간 대표적인 시인"이라며 "20대의 참신함은 장년으로 가면서 삶의 원숙함으로 영글어졌고 장년의 시에선 삶에 대한 고뇌와 번민을 읽을 수 있다. 60대 초반에 쓰러져 언어가 불편한 점은 있었지만 작품에선 우리 말의 아름다움과 고유한 맛을 잘 표현했다. 노년에는 모국어 사랑, 한국어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품을 많이 보여줬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이어 "한 생에 있어서 시와 함께 살아간, 시로 자신을 형상화한, 시로 생애를 완성시킨 대표적인 시인"이라며 "더 계셨더라면 한국 문학의 복이었을 텐데 안타깝다. 남기신 작품은 우리 문학계의 큰 보물"이라고 애도했다.
고인은 1998년 시 전문 계간 '시안'을 창간했다. 2008∼2010년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2020년부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었다.
한국문학작가상(1987), 동서문학상(1994), 정지용문학상(1997), 한국시인협회상(2003), 김삿갓 문학상(2010), 은관문화훈장(2010), 고산문학상 시부문 대상(2011)을 받았다.
- 출처 연합뉴스 chungwon@yna.co.kr, mimi@yna.co.kr
고 오탁번 소개
1943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6년 동아일보(동화), 1967년 중앙일보(시), 1969년 대한일보(소설)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창작집으로 『처형의 땅』(일지사, 1974), 『내가 만난 여신』(물결, 1977), 『새와 십자가』(고려원, 1978), 『절망과 기교』(예성, 1981), 『저녁연기』(정음사, 1985), 『혼례』(고려원, 1987), 『겨울의 꿈은 날 줄 모른다』(문학사상사, 1988) 등이 있으며, 50년간 써온 소설들을 묶어 『오탁번 소설』(전 6권, 태학사, 2018)을 냈다.
시집으로 『아침의 예언』(조광, 1973),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청하, 1985), 『생각나지 않는 꿈』(미학사, 1991), 『겨울강』(세계사, 1994), 『1미터의 사랑』(시와시학사, 1999), 『벙어리장갑』(문학사상사, 2002), 『손님』(황금알, 2006), 『우리 동네』(시안, 2010), 『시집보내다』(문학수첩, 2014), 『알요강』(현대시학사, 2019)이 있다. 문학선 『순은의 아침』(나남, 1992)과 시선집으로 『사랑하고 싶은 날』(시월, 2009), 『밥 냄새』(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눈 내리는 마을』(시인생각, 2013)이 있다.
산문집으로 『현대문학산고』(고려대 출판부, 1976), 『한국현대시사의 대위적 구조』(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출판부, 1988), 『현대시의 이해』(청하, 1990), 『시인과 개똥참외』(작가정신, 1991), 『개정/현대시의 이해』(나남, 1998), 『오탁번 시화』(나남, 1998), 『헛똑똑이의 시 읽기』(고려대 출판부, 2008), 『병아리 시인』(다산북스, 2015)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1987), 동서문학상(1994), 정지용문학상(1997), 한국시인협회상(2003), 김삿갓문학상(2010), 은관문화훈장(2010), 고산문학상(2011), 목월문학상(2019) 등을 받았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오탁번은 육군사관학교(1971년~1974년), 수도여자사범대학(1974년~1978년)을 거쳐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교수를 역임했다(1978년~ 2008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을 역임한 오탁번은 많은 국문학자, 문학평론가, 시인, 소설가를 길러낸 국문학자이자 교육자였다.
인물과 욕망
서사가 욕망의 형식임을 주목한르네 지라르 (Rene Girard)는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Mensonge Romantique et Verite Romanesque)』에서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의 『돈키호테』와 구스타프 플로베르(Gustave Flaubert)의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 그리고 스탕달(Stendhal)의 『적과 흑 Le Rouge et le noir 』등을 텍스트로 하여 소설 속의 인물들이 어떻게 욕망하는가 하는 인간 욕망의 구조를 분석했다.
돈키호테(Don Quixote)는 자기 개인의 근본적인 특권을 아미디스를 위해 포기하였다. 그는 이제 자기 욕망의 대상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를 대신해서 욕망을 선택하는 것은 아마디스인 것이다. 아마디스의 제자가 된 돈키호테는 그에게 지시된 대상을 향하여, 또는 지시된 것처럼 보이는 대상을 향하여 덤벼들게 되는데, 이때 이 대상들은 기사도 전체의 모델(modèle)이라 하겠다. 우리는 이 모델을 욕망의 중개자(médiateur du désir)라고 부를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방이라는 의미에서, 기사로서의 삶은 바로 아미디스의 모방(imitation)인 것이다.9)
- 르네 지라르,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Mensonge Romantique et Verite Romanesque』), 김치수· 송의경 옮김, 한길사, 2013, pp. 40〜41.
르네 지라르는 욕망의 형식과 소설의 형식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를 탐구했다. 그는 욕망은 욕망의 주체에 의해 자발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욕망의 주체와 대상 사이에 그 대상을 욕망하게 만든 중개자인 타자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주체, 매개체, 대상이라는 욕망의 삼각관계는 언제나 욕망의 주체로서의 남자가 경쟁자를 통해 욕망의 대상인 여성을 욕망하는 구도로 설정된다. 부연하면 모든 욕망은 타자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고 타자의 욕망을 모방한 가짜 욕망이라는 것이다.
지라르는 돈키호테의 욕망이 돈키호테 내면에서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아마디스라는 타자의 중개자의 개입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대상(이상적인 기사)
▷ 중개자
주체(돈키호테)
위대한 소설은 대체로 주인공의 삶과 욕망을 보여주면서¸ 주인공을 행동하게 하는 욕망이 거짓된 욕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거나 진정한 욕망의 의미를 일깨우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르네 지라르의 이론은, 소설 그 자체는 훼손된 가치인 자본주의사회 속에 있지만, 진정한 가치의 추구에 대한 이야기라는 게오르그 루카치(Georg Lukács)의 이론과 일치되고 있다.
오탁번의 「아버지와 치악산」을 욕망의 삼각형 구도를 통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
산림계장인 나는 토요일마다 치악산으로 자연보호운동을 나갈 때마다 향도(嚮導) 노릇을 했다. 등산객이 오르내리는 계곡을 찾아 병이나 깡통을 주워서 구덩이를 파서 묻고 휴지를 모아 불을 지르고, 또 적당한 휴식처에 운동원을 집합시켜서 자연보호헌장을 함께 낭독하는 것이었다. 중고교 학생들과 부녀회원들도 참가하는 날이 있었지만 그럴 때면 나는 휴대용 확성기를 손에 들고 일일이 그들을 지도했다.
나는 치악산으로 자연보호운동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듣게 된다. 금지분교의 교장인 아버지가 출근길에 목교(木橋) 위에서 개울바닥으로 떨어져 골절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금지(金池)로 가는 버스 안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며 차창 밖의 모습들과 이런저런 생각들로 자꾸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워 나갔다. 공의 진료소의 젊은 공의가 시내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데 아버지가 가기를 거절하고 있다고 했다. 진통제조차 거부하는 아버지는 나에게 어김없이 괜찮다고 하신다. 그에 부자간의 차단감을 느끼는 것이다. 사고 소식을 들으며 가슴이 뛴 것도 아버지의 최초의 열등감과 패배를 경험하게 됐다는 데서 오는 쾌감이었다. 평생 동안 계속된 아버지와의 대결(對決)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이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고 소식을 접한 뒤 가슴이 뛴 것도 승리의 순간이 다가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모습에서 역전(逆轉)의 기회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차로 금지를 떠난 나는 자발적인 자연보호운동에 매달리게 되고, 이로 인하여 도지사 표창장까지 받게 된다.
금지분교가 화재로 잿더미가 되고 정년이 한 달쯤 남은 분교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버스정류장으로 뛰었다. 숲으로 둘러싸인 분교는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나는 교사들과 함께 잿더미를 파헤쳤다. 아직도 뜨거운 불기운이 그대로 있는 잿더미에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재가 된 아버지의 유해(遺骸)를 추렸다. 사람들이 자꾸자꾸 울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완전한 생애를 마치려고 면밀한 준비를 하고 있던 아버지, 정년이 되어 늙고 나약해지는 노년을 거부한 아버지, 오재수 분교장의 완전무결한 힘에 눌려 몸을 가눌 수도 없는 꼴이 되어, 그의 유해를 안고 나는 금지를 떠났다. 그날 오후 나는 혼자 치악산으로 가서 아버지의 유해를 뿌렸다. 나는 울지 않았다. 이제 치악산에는 다시 오지 않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버지의 유해 대신에 이러한 예감을 안고 큰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치악산」은 전적으로 서술자 자신의 일을 서술하고 있다. 서술자인 ‘나’는 모든 중요 행동의 주체이며 모든 사건의 주인공이다. 등장인물의 내면세계를 묘사하는 데 적합한 방법인 일인칭 서술 시점으로 씌어진「아버지와 치악산」은 아버지처럼 완벽한 인격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나’의 욕망을 그리고 있다. 아버지는 ‘나’의 삶의 교과서이고 중개자이다. 아버지가 죽자, ‘나’는 혼자 치악산으로 가서 아버지의 유해를 뿌린다. ‘나’는 울지 않는다. ‘나’는 이제 치악산에는 다시 오지 않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나’가 치악산에 오르내리는 것은 욕망의 대리충족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아버지라는 이름의 ‘욕망의 중개자’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욕망의 중개자’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은 욕망 자체도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버지의 유해 대신에 이러한 예감을 안고 큰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는 마지막 문장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 출처: 김종성, 『글쓰기와 서사의 방법』, 서정시학, 2016. pp.390-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