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존재해야 될 이유.
지난 4월 이후에 예정된 부흥성회 인도를 몸이 아파 세 곳이나 못하였다.
한데, 또 요청이 왔다. 광주 성안 교회와 좋은 교회서다.
수락(受諾)은 하였으나 두려움이 앞선다.
지난 4월에 아직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벌교, 조성, 순천교회들의 집회 인도를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는 만용(蠻勇)으로 서울에서 순천행 고속버스로 내려가다가
더 이상 어쩔 수 없어 중도하차 되어 구급차로 병원에 옮겨 응급처치를 받고
집에까지 돌아온 일이 있었기에 두려움을 안고 내려갔다.
가족과 나를 위해 기도하는 분들 걱정을 뒤로하고,
그러니 더욱 주여, 주여 매달릴 수밖에 없다.
좋은교회 장 목사님이 전도사님과 함께 송정 역까지 마중을 나오시고,
좋은 식사를 대접해주시고 숙소에까지 데려다 주셨다.
효녀 딸집이지만 잠자리가 바뀌니 제대로 잠을 못 잤다.
주일 오전 예배 때, 우리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의 역사가 나타났다.
예배가 끝이 났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
그리고 성도들의 각오와 결심들이 그 얼굴에 나타나고 있음을 직감(直感)한다.
담임 목사님께서 “오늘의 말씀은 나를 위해 특별히 주신 것이라 깊이 감사드린다”고 하신다.
저녁 예배는 성안교회 여전도회 헌신 예배다. 날마다 부흥하는 교회다.
담님이신 김재영 목사님은 나에게 언제나 강단을 내어주시는 분이신데 그날 밤의
은혜로운 광경을 자신의 입으로 말할 수 없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연약한 것을 또 사용하여 주신 것이다.
이 작은 종이 해야 할 일이 너무 중대하고 절실함을 재 확인시켜주심을 엎드려 수용(受容)하고,
이 종의 남은 생명(삶)을 어떻게 드리고 돌아가야 할 것을 감히 부복하여 고민합니다.
최고 최상의 설교는, 주님의 말씀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라.
살고자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하는 자는 살 것이라.
진정한 생명운동, 갈한 영혼의 채움, 방황하는 양 무리의 안식은
말씀에 정통성(正統性)과 그 진수(眞髓)를 미음으로 수용하고,
십자가(고난)를 지고 삶의 현장에 양 무리를 앞장서서,
주님을 위해서, 그의 몸 되신 교회를 위해서,
사상적 무장과, 주님을 사랑하는 샘솟는 감격과,
당연하게 드려지는 십자가의 길(삶)이 있을 뿐이다.
그곳에, 주님이 계시고. 생명운동과, 세상을 구원한
역사(役事)가 있다고 확신(確信)한다.
여수에 계신 목사님에게서 밤중에 전화가 왔다.
내가 쓴 책 (복음의 능력)을 읽고 은혜와 감동을 받아 계속해서 두 번을 읽었다면서,
다음 책은 언제 나오느냐고 묻는다. 이런 격려를 직, 간접으로 해 주심으로
용기와 사명의식을 새롭게 해주신다. 지금까지 아홉 권(시집포함)을 통하여 역사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역사(役事)를 감히 앙망하며 자신의 사명을 새롭게 다짐하게 된다.
인터넷 카페(다음)에 글을 올리고 있다.
노동교회 박병돈 목사 문집. 596회. 2019년 6월 20일 현재
진중교회 박병돈 목사 문집. 253회. 사랑나눔교회 박병돈 목사 문집에 334회
그 글들을 보고 댓글이 올라오고 있는데,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제자를 뽑으신다면 목사님을 제일 먼저 뽑으실 것 같습니다.
사역 속에 예수님 사랑, 교회사랑, 성도사랑이 넘쳐나기에 수제자로 뽑으실 것 같습니다“.
할렐루야! 2018년 12월 31일
인천도화교회 정철선 장로.
나는 이러한 글들을 보면서 진정으로 황공무지(惶恐無地)와 두려움을 철저히 느낀다.
허나 나의 둔필(鈍筆)의 작업은 계속해야 된다고 두려움으로 재확인하게 된다.
그러하기 위하여서, 건강관리, 영성관리, 지성관리, 덕성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존의식을 새롭게 철저하게하고,
존재이유(存在理由)에 대한 지각(知覺)과,
바울 사도의 소원하신 골로새 1장 24절.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 몸 되신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는
일사(一死)의 각오(覺悟)를 감히 수행(修行)하기 위하여,
우리 하나님의 장중에 의탁하고 두려움을 안고 이 생명을 드리는 길이다.
이 모든 일들은 전능하시 하나님 아버지의 함께하심이 없이는,
자신의 의지나 결심이나 수행(遂行)이 절대 불가능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소자를 긍휼히 여겨주소서.
아멘, 아멘, 아멘.
2019년 6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