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잊은 그대에게
추억의 낭만 콘서트
- 상암 벌이 울었다-
〈현장 스케치〉
2004. 9. 10. 17:45. 정확히 "추억의 낭만 콘서트"를 시작하기 1시간 45분 전.
상암월드컵축구장 주변과 주차장에는 40, 50대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평소 축구행사나 각
종 문화행사가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주차장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듯한 버스
가 3대 정도 있었고,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잔디밭에서 김밥으로 저녁을 해결하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만남을 위해서 핸드폰으로 연락을 취하는 분주한 모습들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아주머니끼리의 "윤형주 리허설하는 노랫소리에 가슴이 벌렁 돼서 죽을 뻔
했다"는 대화도 재밌습니다. 오후 6시가 넘자 여기, 저기 경기장 밖 잔디는 간이식당입니
다. 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평소 결코 그런 모습으로 식사를 할 거
같지 않은 신사, 부인들 모두가 조금은 흥분한 상태로 그렇게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입장을 하고 있지만 행사시작이 아직 멀어서인지 사람들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고 잔디에서
추억의 얘기들을 꽃피고 있습니다.
( 일몰 사진)
오후 6시 50분경 경기장 주변에는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고 서쪽 해넘이가 장관입니다. 입장
을 하는 입구주변에서 장사꾼이 형광막대기(가수들에게 흔들며 환호할 때 사용하더군요)를
팔고 있습니다. 50이 넘은 아주머니는 사기가 좀 창피했는지 괜히 옆에 있는 남편에게 왜 이런
걸 사자고 하냐면서 5천 원을 주고 두 개를 삽니다. 남편은 아내의 모습이 귀여운가 봅니다.
그렇게 모두 행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조금씩 흥분해서, 흥분한 만큼 나이도 잊은 행동을 하
고 있습니다. 결코, 밉지 않은 행동들입니다. 준비가 철저한 사람은 디카는 물론이고 망원경,
일기예보를 들었는지 우산, 날씨를 걱정한 이불을 준비까지 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분위기는 한껏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행사 팸플릿 사진)
행사는 1, 2부로 나뉘어 오후 7시 30분 정각에 고영수의 사회로 시작되어 예정보다 22분이
나 더 긴 11시 7분에 끝났습니다. 그만큼 가수들이 최상의 콘서트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최
상의 콘서트답게 상암월드컵축구경기장을 달군 사운드 또한 환상이었습니다. 또 제 생각에
는 개그계의 원조가 고영수, 장고웅이 아닐까 싶은데, 사회자의 입담이 얼마나 구수하고 재치
가 있던지…
보이는 순서에서 제1부 김상희 씨와 제2부의 최백호 씨가 순서를 바꿔 불렀고요. 행사가 예
정보다 길어진 것은 이용복, 배인순, 윤형주 씨가 1 곡씩 더 불렀고, 송창식 씨는 2곡을 그
리고 트윈폴리오(윤형주, 송창식)가 1곡을 더 불렀습니다.
프로그램 순서에서 보듯이 가수의 면면이나 주옥같은 히트곡들. 상암 벌에 모인 우리 7080
세대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지만 행사기획은 제1부는 어니언스, 제2부는 트윈폴리오를 중
심으로 했나 봅니다.
출연가수들이 나올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내가 몇 학년 때 어땠다는 둥, 각자의 추억들이 쏟
아집니다. 물론 저도 가수가 나올 때마다 그들과의 추억여행을 했습니다. 하남석 씨가 밤에
떠난 여인을 부를 때는 어느덧 중학교 2학년 때인가… 검은 바바리에 긴 하얀 스카프를 두
르고 낙엽 구르는 벤치에 앉아 노래 불렀던 그 하남석이 생각났고, 그 시절 14인치 흑백
TV도 생각났었습니다.
(블루코드의 사진)
꿈은 야무지게 먹고 찍어봤습니다만 이후로 나오는 사진들이 이 모양입니다. 이유는 아무래
도 디카도 성능이 떨어지고 기술도 없어서겠지요?
축하공연을 하는 Blue Code의 첫사랑 팝 메들리입니다. 이 노래를 시작으로 장내가 조금씩
정리되고 본격적으로 공연이 시작됩니다. 아마 포크 송 계열을 잇는 젊은 가수들인 모양입
니다.
(수와진 사진)
수와진은 동생이 아파서 혼자만 활동하다가 최근 같이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라나에로스포 사진)
라나에로스포는 딸과 아버지가 같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랑해- 당신을… 예~ 예~예~…를
부를 때는 상암 벌이 떠나갈 거 같더군요… 시종 관중이 난리가 아닙니다. 마치 흘러간 세
월 돌려달라고 절규하는 듯 싶었습니다.
(김세환 사진)
사회자 고영수 씨로부터 얼짱, 몸짱, 꽃미남으로 소개된 김세환 씨가 나오자 노래를 부르기
도 전에 아주머니들 자지러집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 애들 뭐라고 하기 전에 이해하려는 노
력도 필요할 거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솜사탕 같은 목소리로 사랑하는 마음을 부르며
흥분되기 시작한 분위기는 관중과 혼연일체가 되어 부른 토요일 밤에… 또 한번 상암벌을
울렸습니다.
(어니언스 사진)
이수영 씨가 사업에 어느 정도 성공하고 2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선다고 합니다. 사회자 고
영수 씨는 올해 포크 송 계열에 최대의 수확이라고 하던데 "머나먼 사랑"이라는 신곡도 불
렀습니다. 빠-빠-빠~로 시작되는 사랑의 진실이 불리자 드디어 관중 중에 더는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아마도 동창계모임에서 참석한 듯한 다수의 아줌마들이 일어서서 치어걸 이상의 몸동작을
보여주고, 저위 3층에서는 멀리서도 대머리가 뚜렷한 50대인 듯한 아저씨 셋이서 그 유명한
알리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저씨들은 이후로 끝날 때까지 어깨동무하고 춤추고 몸속
에 남아 있는 모든 에너지를 불태웠습니다. 아마 상당 양의 알코올의 영향인 듯싶습니다.
(이영복 사진)
어쩝니까. 그냥 이용복이려니 하고 봐야지요.
처음 알았습니다. 이용복 씨가 입담이 좋다는 사실을. 사회자 고영수 씨와의 재담도 전혀 밀
리지가 않고 슬슬 웃으며 관중에게 박수를 유도하는 말들. 대단한 수준입니다. 남자도 좋고,
자기보다 나이 많은 할머니들도 오빠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능청. 하여튼 모두가 반가웠는지
관중은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는 소녀처럼 자지러집니다. "쥴리아"는 좀 그랬지만 "그
얼굴에 햇살이 "는 거침없이 올라가는 고음에서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습니다.
(배인순 사진)
얼마 전 자신의 노래 제목 "커피 한 잔"을 따서 동아건설 최원석 회장과의 불행한 결혼생활
등을 담은 자서전을 내기도 했던 배인순. 혼자서 "커피 한 잔" "님아"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신곡도 한 곡 불렀는데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네요.
그녀는 옛날에는 시민회관, 그러니까 지금의 서울시의회 본관에서 노래 불렀던 것이 가장
많은 대중 앞에서 불렀던 것인데, 이렇게 30년이 지나 넓은 무대에 서서 이렇게 노래를 부
를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하는데, 예술인은 예술을 할 때가 행복한지 모르지만, 내맘은 왜 이
리도 안됐는지…
내가 그녀를 처음 알게 된 때는 언젠가 생각해 봤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러면 35년
전인가요. 친구 2명과 함깨 우린 어렵게 물어서 창경원을 갔었습니다. 부모님에게도 말씀드
리지 않고요. 그러니까 지금의 창경궁이지요. 아마 일제가 우리 조상에게 모욕을 주려고 궁
궐을 동물원으로 만들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언젠가 서울대공원이 만들어지고 궁궐은 다시 복원되었지만. 하여튼 그때 처음 코끼
리, 공작새 등도 봤는데 무슨 기념일이었는지는 모릅니다. 축하공연이 있었는데, 그래서 촌
놈 셋인 눈이 휘둥그래해서 봤는데, 늘씬한 펄시스터즈가 높은 단상에서 미니스커트를 입고
"커피 한 잔"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녀와 난 그렇게 대충 35년 5개월 만에 같은 공간에서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이 사실을 죽었다 깨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윤형주 사진)
아줌마 팬이 많은 윤형주 씨는 능변입니다. 노래 중간 중간에 전혀 막힘이 없이 관중들이
공감하는, 시대를 같이 살아 온 사람들만이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지나온 시간들을 회고합니
다.
"조개껍질 묶어"는 자신이 1970년도에 여고생들을 마음을 흔들어 보려고 준비해서 대천해수
욕장에 가서 처음 불렀다는 옛 얘기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율동을 곁들여서 함께 불렀습
니다. 조금은 흥분해서 즐겼기에 한곡 더 불렀는데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기억이 나질않습
니다.
(트윈 폴리오 사진)
윤형주 씨의 소개로 무대에 오른 송창식 씨는 절 두 번 놀라게 했습니다. 하나는 소개를
들으면서 대머리인 모습을 그렸는데 가발을 썼는지, 머리를 심었는지 아주 젊은 시절의 모
습으로 돌아가 있었고요. 또 하나는 프로그램 순서와 달리 이 사진 보다 앞서 혼자서, 아
니 아들 친구라고 소개된 클래식 통기타 반주자와 같이, 느닷없이 "한번쯤 말을 걸겠지"를
불러서 절 포함한 관중들은 판타스틱한 분위기로 몰고 갔고, 연이어 "우리동네 아가씨(제목
은 틀릴 거 같음)" "고래사냥"을 불렀습니다.
송창식 씨의 판타스틱한 분위기는 그만의 노래와 기타 솜씨로도 충분했지만, 아들 친구라는
클래식 기타 반주자의 기타 솜씨가 일품이었습니다. 마치 가야금을 켜는 듯한 소리가, 연주
기법이 아주 좋았습니다. 하긴 그 정도의 실력이 되니까 송창식 씨 옆에서 반주를 할 수 있
겠지만 말입니다.
이어 다시 무대에 오른 윤형주 씨의 멘트가 이어집니다. 송창식 씨와 윤형주 씨는 관중 앞
에서도 서로 반말로 소개하고 얘기합니다. 그만큼 한 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주로
윤형주 씨만 얘기하고 송창식 씨는 그 바보 같은 웃는 표정만 짓고 있습니다. 윤형주 씨가
자신들을 소개하기를 둘이 만난 지가 37년이 되었는데 서로 변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아직
도 목소리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내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딱 하나 변한 것은 어느 날 송창
식 씨가 고구려 복장을 입고 다닌다는 것이랍니다.
"우린 왜 이 촌스런 가사에 매료될까요?" 라고 하면서 "하얀손수건", "웨딩케익"의 가사를
윤형주 씨가 미성으로 낭독합니다. "웨딩케익" 노래에 날이 새면 원하지 않는 남자에게 시
집을 가야한다는, 그런 가사가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절묘한 화음을 자랑하는 트윈폴리오의 "하얀 손수건"과 "웨딩케익" 그리고 사회자 고영수
씨의 앙코르 청에 의해서 "축제의 밤(이것도 제목을 잘 모름)"을 부르면서 3시간 37분의 콘
서트가 막을 내렸습니다.
사진을 부지런히 찍었지만 거의 다 까맣게 나왔어요. 그래서 올리지 못한 가수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사월과 오월의 "화"와 "장미"는 정말 오랜만에 반갑게 들었고요.
김상희 씨의 노래를 들으면서 어머니 생각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생전에 김상희 씨가 TV에
나오기만 하면 무슨 좋은 정보를 아는 듯이 가수 김상희 씨는 비록 저렇게 노래를 불러도
고려대 법대 출신이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어머니는 가수라는 직업
은 광대라는 생각을, 고려대 법대 출신은 존경할 만큼의 높이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
었나 봅니다.
40, 50대를 위하여 기획된 "추억의 낭만콘서트"는 프로그램 출연 가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출연한 모든 가수들과 우리들은 나름대로의 추억이 있습니다. 출연가수들과의 각각의 추억
을 풀어보면 책 한 권도 쓸 수 있을 거 같고요. 그러한 상념들과 콘서트 분위기를 압축해서
상암벌이 울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흐르는 음악 (그날 - 라나에로스포)
첫댓글 이 시키 얼메 뭇노?
이시키 뭔 소리야?
시키들 농담도 잘하눈군..ㅡㅡ;;
ㅎㅎㅎ 아름다운 밤예요..멋진 콘서트였네....위에 남자들은 모라 하능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