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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영국의 풍경 하나.
어떤 남자 하나가 살인죄로 체포된다. 그런데 증거가 애매모호해서 이남자가 살인자인지 아닌지 가리기가 쉽지 않다. 이남자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고(물론 당시엔 누구나가 다 독실한 신자이긴 하다) 자신은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고 성경에 맹세를 한다.
이 경우에 오늘날의 사법제도라면... 증거불충분으로 무죄가 선고되는 게 보통일 것이다. 그런데 중세엔 그게 아니었다. 전지전능한 신이 판단을 내려 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일정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면 무죄고 통과 못하면 유죄가 확정된다. 이를 시죄법, 영어로는 ordeal이라고 한다.
그 테스트란 무엇이냐, 가령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재판관인 사제가 막대기 두개를 준비한다. 하나는 십자가가 그려져 있고 다른 하나는 그냥 막대기다. 이 두개를 사제는 미리 같은 색 천으로 둘둘 감고는 제단에 올려놓는다. 혐의자가 끌려와서는 십자가 앞에 꿇어앉아 열심히 기도를 드린다. 신이시여, 당신의 전지전능함을 믿사오니 부디 저의 결백함을 증명해 주소서... 웅얼웅얼...
기도가 끝나면 사제가 온다. 그리고 천으로 싸인 막대기 두 개중 하나를 집어든다. 그리고 거룩한 몸짓으로 천을 둘둘 풀어 막대기를 꺼낸다. 막대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으면 무죄, 십자가 없는 막대기를 고르면 유죄, 그렇게 재판은 결판난다.
문제는, 사제는 둘중 어느 막대기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지 이미 안다는 것이다. 아무리 비슷하게 했다 하더라도 자기 손으로 감은 천, 아주 조금만 모양이 틀리더라도 어느 게 어느 건지 알 수가 있다. 결국 결과는 신부 맘대로 되는 것이다. 혹 잘못 판단할 경우에도 신에게 뒤집어 씌우면 되니까 비난받을 필요가 없다. "그때 그넘은 신앙이 약했나보지" 라고 둘러댈 수 있으니깐.
또다른 풍경.
노르망디 공작 리차드의 딸이자 영국 에드워드 참회왕 (Edward the Confessor, 1066부터 재임)의 어머니인 엠마가, 어느날 윈체스터 주교하고 바람을 피우다 걸렸다. 말하자면 대비마마가 이조참판이랑 바람피다 걸린 꼴이다. 걸렸으니 재판을 하긴 해야겠는데, 무죄를 선고하자니 증거가 있고, 유죄를 선고하자니 나라꼴이 망신이라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때 비슷한 방법을 쓴다. 재판관인 사제가 불에 달군 시뻘건 쇠를 여기저기에 흩어 놓는다. 구원받은 자는 지옥불에 타지 않는다는 원리를 응용, 결백하다면 뜨거운 쇠를 밟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열심히 기도를 마친 대비마마는 눈을 가린 채 앞으로 걷는다. 물론 그 뜨거운 쇳덩어리 배치는 사제 맘대로이며, 도저히 발에 걸리지 않게끔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은 건 물론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사이를 무사히 걷는 데 성공한 대비마마, 무죄가 증명되었다.
즉... 재판하는 사람 맘대로였던 것이다. 아주 어렵게 배치해 놓으면 어찌 걷다가 발뿌리에 걸리지 않을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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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종류의 시죄법. 죽은 남편이 죄가 있는지 없는지 보기 위해서 부인이 한 손에는 남편의 목을, 다른 한 손에는 뻘겋게 달군 쇠를 들고 있다. 멀쩡하게 잘 잡고 있으면 죄가 없다는 건데... (이런 경우는 대개 막대기에 색칠한 경우가 많았다) Dieric Bouts 그림 |
그런데 이런 건 귀족에게나 적용되던 테스트 방법이었지, 평민이나 거렁뱅이 같은 사람들은 이 정도의 혜택도 받지 못했다.
평민이 재판을 받게 될 경우, 배에 태우고 강에 나가서 물에다 빠뜨려 버린다. 물에 빠진 이 사람, 물에 뜨거나 어푸어푸 헤엄쳐서 나오면 유죄가 증명된 것으로 간주되어 사형당한다. 물에 가라앉아 빠져죽으면 무죄다. 어느 경우에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빠져죽고 나면 친구들이 모여 "그래 그넘은 착한 넘이었어" 라며 탄식할 수 있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랄까.
그럼 반대로 최고위계급인 사제가 재판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중세 영국의 재판제도에서 재판관은 사제계층이 담당했다. 끼리끼리 친한 자기 친구 성직자를 유죄로 몰아서 죽일 사제는 없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무죄를 주자니 쪽팔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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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때 비슷한 테스트를 한다. 성당에 고관대작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모인다. 성가대가 장엄한 노래를 부르고 각종 경건한 의식이 행해지는 사이, 제단 위에 빵 한조각과 치즈 한 조각을 올려놓고 혐의를 받는 사제가 그 앞에 꿇어앉는다. 그리고는 온 정성을 다해서, 목숨을 걸고 맹렬하게 기도를 드린다.
"신이시여, 제가 만약 죄가 있다면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사 제 목을 졸라 주소서..."
그리고는 빵에다 치즈를 얹어 경건한 몸짓으로 먹는다. 꿀꺽, 무사히 넘기면 무죄. 먹다 목에 걸려서 켁켁거리면 유죄.
정말 재수 옴붙어서 빵 먹다가 하필이면 목에 걸린 사람의 수는? 수많은 시선과 장엄한 예식에 긴장해서 먹다 걸려서 켁켁 할 법도 하건만, 이 테스트를 통과 못한 사람은 역사상 단 한명도 없었다. 역시 신부님들은 특별하다. 이렇게 어려운 시련을 한명도 빠짐없이 이겨내다니...
첫댓글 유,무죄를 확증하는 유일한 방법은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묻는 것이었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방법은 선서였다. 주교와 같이 지위가 높은 사람은 자기 혼자만의 선서로도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한 무리의 "선서보조인"을 필요로 했다.
12명 또는 25명으로 이루어지는 선서 보조인은 피고인이 믿을만한 사람임을 선서하여 피고의 선서를 뒷받침하였다. 이는 죄를 지은 자가 그렇게 많은 정직한 선서 보조인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며 선서인으로서는 감히 거짓 선서를 함으로써 신의 노여움을 받으려 하진 않으리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선서는 세밀하게 규정된 의식에 따라 행해졌으며, 한마디라도 더듬거리면 신이 선서자의 선서를 거짓이라 판별한 것으로 간주되어, 선서자의 패소가 결정되었다.선서 대신에 쓰인 또 하나의 방법은 여러 가지 잔혹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시죄법(試罪法:ordeal)이었다.
달군 쇠에 의한 시죄법에서는, 피고가 빨갛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집어들고 정해진 거리만큼 옮기도록 요구되었다. 그 다음 화상을 입은 손을 붕대로 감고는, 3일 뒤에 상처를 조사하여, 상처가 깨끗이 나았으면 무죄로, 상처가 곪고 있으면 유죄로 판결하였다. 뜨거운 물에의한 시죄법도 비슷한 방식이었다.
피고는 가마솥의 끓는 물에서 돌 하나를 집어내야 했고, 화상을 붕대로 감은 뒤 3일이 지난 다음 조사하게 되어 있었다. 차가운 물의 시죄법에서는, 피고가 미리 축성된 물속에 들어가야 했다. 그 신성한 물이 피고를 거부하여 피고가 물위로 떠오르면,유죄로 판결하였다.
피고가 완전히 물속에 잠기면 피고는 무죄로 인정되었고 익사하기 전에 구조되었다. 중세 후반에 유행했던 매우 단순한 형태의 시죄법은 결투였다. 원고와 피고는 어느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웠고 살아 남은 자가 결백하다고 인정되었다. 두 소송당사자는 손수 싸우거나 대리 결투자를 지명하여 대신 싸우게 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