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일)
7월 31일 ‘강정생명평화대행진’ 3일째, 동진과 서진 두 행렬 중 서진은 7월 29일 강정을 출발, 중문-안덕-화순-대정-무릉을 거쳐 이날은 고산-판포-금릉-협재해수욕장를 지나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에 도착했다.
35도를 넘나드는 한여름 고온에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되고, 얼굴은 자외선에 검게 그을렸지만, 그 힘찬 발걸음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감탄스러울 만큼 대행진 참가자들은 활기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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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31일 오후 한림읍 협재해수욕장을 지나는 '강정생명평화대행진' 참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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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행진을 마무리하며 하룻밤 여정을 풀 한림체육관에 도착한 참가자들이 주차장 에 앉아 지친 몸을 풀고 있다. 방학을 맞아 여러 부모들이 자녀들을 동반해 대행진에 참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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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용인에서 엄마와 함께 온 아이도 이틀째 제주길을 걸었다. 이틀을 폭염에 시달 리며 걷고도 마냥 즐거운듯 쾌활한 모습이다. |
“공사가 강행되면서 강정 투쟁을 많은 사람들이 이미 끝난 싸움으로 알고 있으나, 강정 투쟁은 결코 끝나지 않았고, 지든 이기든 투쟁은 영원할 것입니다.” 서진을 이끄는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은 이날 여정을 풀 한림체육관에 도착해 잠시 그늘에 앉아 지친 몸을 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작년 여름 대행진이 워낙 힘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싸움은 이미 끝난 것으로 생각해 이번 대행진 참여가 저조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열기가 작년보다 더 높습니다. 멀리 있어서 그동안 같이 못해 안타까웠다며 이번 대행진이라도 참가해 끝까지 같이 걷겠다며 전국에서 참가자들이 모였습니다. 휴가철이라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해 가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미안하다는 연락도 많이 왔습니다.”
서진 대행진에는 이날 180여명이 걸음을 함께 했다. 강 회장의 검게 그을린 얼굴은 이들이 함께 하는 걸음과 응원에 환한 웃음이 넘쳤다. “폭염에 힘들지만, 함께 걷는 한걸음 한걸음이 모든 이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틀림없이 그럴 겁니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강정마을 사람들은 7년 동안 이어진 처절하고 힘든 싸움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물 맑고 풍광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강정에서 농사짓고 생선을 낚으며 물질하던 평화로운 삶을 지키기 위해, 그저 부당하게 농토와 바다를 빼앗긴 것이 억울해 애초에 시작된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싸움은 점차 세상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깨우치는 여정이었다.
그들은 그들을 탄압하는 해군을 비롯한 공권력을 어느 때부터인가 해적에 비유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대의를 추구하는 성인들이 아니라 이기적인 인간들로 구성돼 있다는 것을 그들은 온몸으로 깨달았다. 정부란 그리고 대부분의 선량들이란 자신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들의 희생 위에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늘리기 위해 무던히 협잡을 부리는 관료들과 이익집단의 도구라는 것을 체험했다. 그들에게 정부란 사회적 이익을 제공하는 공평무사한 기구는 결코 아니었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의 어머니 고병현 여사는 애시 당초 공권력이라는 것이, 권력이라는 것이 그러하다는 것을 몸서리치게 깨닫고 있었다. 어린 시절 제주4·3을 겪으며 강정마을에서 가깝게 지내던 수많은 이웃들이 학살당하는 현장을 목격해야 했던 고 여사는 아들이 마을회장을 하겠다고 하자 심하게 말렸다고 한다. “절대 그건 안 된다. 회장 하려면 니 아들 둘하고 마누라허고 나허고 묶엉 바당에 던진 다음 허라”며…. 고 여사의 뇌리에 새겨진 4·3의 트라우마는 공권력에 저항한다는 것은 죽음을, 그것도 처참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는가 보다.
하지만 7년 이어진 싸움에 고 여사는 강 회장의 든든한 보호막이자 누구보다 치열한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사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깊게 새겨져 60년 넘게 이어진 트라우마는 그 과정에서 점차 녹아내리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애초에 강정을 해군기지 입지로 결정하기까지의 절차적 부당성과 삶의 터전을 부당하게 빼앗기는 것에 저항에 시작된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싸움은 강정마을 사람들이 강정의 평화가 강정만의 평화로는 지탱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싸움이었다.
생존을 위해 삶을 바쳐 저항한 7년은 국제정세와 국가간의 역학관계,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싸움, 지정학적 위치상 그런 틈바구니에 낀 우리나라와 제주도의 상황, 그런 상황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갖는 의미, 자연환경을 보전한다는 것의 의미,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의 연대의 소중함과 마을사람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한 사회와 국가를 넘어 이웃 나라들과의 공존…, 이러한 것을 깨달은 7년인 듯하다.
그렇기에 강정에 해군기지 공사가 계속되든, 그리고 해군기지를 기어코 완공하든 강 회장의 말처럼 “강정 투쟁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고, 지든 이기든 투쟁은 영원”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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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종일 걸으며 지친 몸에 길거리에 앉아 먹는 세끼 식사는 그래도 매 끼니마다 꿀맛 이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매일 참가자 4백여명의 세끼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새벽 3~4 시에 일어나 밤 늦게까지 매달리고 있다. |
31일 밤 한림체육관 바닥에 비닐을 깔고 지친 몸을 달래는 이들 180여명은 8월 1일에는 곽지해수욕장을 지나 애월까지 행진하고 애월체육관에서 또 하룻밤 여정을 풀 예정이다.
1일에는 인천항에서 100명이 ‘평화크루즈’를 타고 출발해 2일 아침 제주항에 도착하면 행진 대열에 합류해 3일까지 같이 걷고, 4일 강정에서 열리는 뒷풀이마당인 ‘평화의 인간 띠 잇기’ 행사에까지 함께 할 예정이다. ‘평화크루즈’ 참가 신청자가 넘쳤으나 좌석수가 제한돼 선착순으로 100명을 모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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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식사가 끝나고 한림체육관 주차장에 노래와 춤을 펼치는 간이 무대가 마련됐다. 하루종일 걷고도 지친 기색 없이 광주에서 참가한 일행들이 활기찬 노래와 활발한 율동 을 선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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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저녁 한림읍농민회와 한림읍여성농민회가 그들이 가꾼 야채에다 막걸리를 준비 하고 격려차 방문했다. 노래·춤 공연에 곁들인 막걸리 한잔이 그들의 피로를 말끔히 씻 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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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를 따라걸은 아이들은 하루 종일 쌓인 피로에도 불구하고 저녁 공연이 마냥 즐겁 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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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행진이 끝나고 다음날 다시 입기 위해 땀에 젖은 옷을 대충 빨아 말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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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푸른 경희한의원'의 김수오 원장과 '김성진한의원'의 김성진 원장이 무료진료 활동 을 펼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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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종일 걷느라 발에 맺힌 물집과 벗겨진 살갗은 대충 반창고로 치료하고 다시 걸을 준비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