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따먹기 –이관수-
“난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영토와 성이다.”
TV연재물 삼국지에서 본, 한 문장이다.
사람은 땅에 발붙이고 사는 존재이기에 자기 땅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땅을 차지하는 놀이도 생기지 않았을까?
땅따먹기란 내가 어릴 적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놀이 중의 하나다.
땅바닥에 네모나 둥근 원을 커다랗게 그려놓고,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기점으로 하고 손가락을 펴서 돌린 구역을 거점(據點)으로 삼는다.
작은 돌멩이를 손가락으로 튕겨서 세 번 만에 돌아오면 자기 땅으로 차지해 나가는 놀이였다. 마지막에 자기 땅을 많이 확보하면 이기는 것이다.
비록 놀이에 불과하고 끝나면 내 것도 네 것도 아니었지만 땅을 많이 차지하면 기분이 좋았던 추억이 있다.
어린 시절에 청주 변두리의 ‘영월이’(영운동)라고 부르던 동네에서 자랐다. 그 동네에는 기생연못이라 부르던 작은 연못과 여름이면 아이들이 몰려가 풍덩거리며 헤엄치던 작은 저수지도 있었다. 바위툼벙이라고 부르던 그 작은 저수지에는 불쑥 튀어나온 커다란 바위가 있어서 아이들이 기어 올라가 마치 수영장의 도약대처럼 툼벙툼벙 물로 뛰어들던 여름철 추억이 생생하다.
동네 아이들이나 아우들과 갖가지 놀이를 하며 지냈는데, 놀이기구가 별로 없던 시절이어서 우리의 놀이는 직접 손으로 만든 것을 가지고 놀았다. 자치기, 팽이돌리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썰매 타기, 제기차기, 눈싸움, 비석치기, 술래잡기, 말타기, 공기놀이, 숨바꼭질 등등...
나는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봄이 오면, 때로는 논두렁 밭두렁에 나가 벌금자리나 국수댕이 냉이 같은 봄나물도 캤다. 정월 보름께면 언덕 너머 ‘생이’(청남동)라는 이웃 마을 아이들과 돌팔매질을 하거나 깡통에 불을 댕겨 던지는 등 패싸움에 가담하기도 했다. 그때는 싸움이라 여기지 않고 그저 즐기는 놀이 정도로 알았었다.
지구의 어느 지역에서는 지금도 부족 혹은 국가 간에 땅따먹기 전쟁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아직도 여전히 공방을 계속하고 있는데, 인간욕망 중의 하나로 땅따먹기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땅덩이는 일정하고 변함없건만 갖고 싶은 사람은 많으니 세상은 항상 시끄럽고 요란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만 해도 자기 소유의 땅은 한 평도 없었다. 가나안 땅에서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12:7) 했을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창15:18) 할 때도 역시 아브라함 소유의 땅은 한 치도 없었다.
자기 땅 없이 유랑하며 목축을 하던 그에게 자기 소유의 땅을 갖고자 하는 열망은 그 누구 못지않게 큰 꿈(소망)이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헷 족속에게 대가를 치르고 막벨라 굴(헤브론 지역)을 사서 장례를 치르므로 비로소 자기 소유의 땅을 갖게 되었다. (창23:16~20)
인류의 조상이라 하는 아담과 하와에게도 에덴동산이 있어야 했듯이, 생존을 위한 조건 중에 땅은 빼놓을 수 없는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다. 들짐승들과 날아다니는 새들도 자리를 잡고 둥지를 틀어야 비로소 새끼를 치고 알을 깔 수 있다. 그러므로 둥지(영토와 성)는 종족보존과 번영을 위한 최소한의 생존조건인 셈이다.
형태와 내용은 달라졌을지라도 지주(地主)계급에 대한 농노(農奴)계급의 반감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러기에 어릴 적의 땅따먹기 놀이는 '내 아버지 집'에 갈 때까지 현재진행형이지 않을까?
-觀-
2023. 8. 9 송고 (대한기독문인회 대한기독문학23집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