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대전환 저술의 배경
칼 폴라니(Karl Polanyi)의 ‘대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은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쓰여졌다. 경제사가인 저자 칼 폴라니는 Oxford대와 London대학의 외래강사로 활동하며 전쟁발발 당시인 1939-40년 켄터베리와 벡스힐에서 London Morley College의 「노동자 교육협회」에 의해 주최된 세미나에서 그 중심테제를 발전시키게 된다. 이어 1941-42년 사이에 필자는 미국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인 저술에 들어가게 되며 책은 최종적으로는 그가 초빙되어 간 Vermont에 있는 Bennigton College에서 완성 출판된다.*주) 필자가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이 책의 완성까지 그의 지인 뿐만 아니라 여러 국제적인 지적교류와 조언, 그리고 많은 동시대인들의 평가들이 책의 내용과 중심테제, 세부적인 역사적 사실 확인에 이르기까지 반영된 국제적 협력의 산물이라 할 만하다. 하나의 책이 그 시대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변함없는 진리를 전해주는 고전으로 기억되는 것은 저자 자신의 깊은 성찰은 물론 어쩌면 그와 같은 수많은 검증과 상호교류의 덕일 수 있을 것이다.
*주){{ K. Polanyi, The Great Transformation, 1990, Frankfurt/ M, pp. 11-12. 참조.}}
이 책의 의의는 폴라니가 이 대전환에서 기존의 지배적 경제이론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경제사와 사실의 단순한 재구성을 넘어 경제와 사회의 역사적 발전에 대한 심원한 통찰력을 가지고 독자적인 안목으로 완전히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데 그 중요한 가치가 놓여있다. 폴라니의 대전환이 쓰여지던 시기는 세계사적 격변기의 정점이었다. 그러한 ‘파국의 시대’*주) 정점에서 그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폴라니와 같은 성찰적 지식인에게 평화시기보다는 시대적 또, 세계사적 위기, 대전환의 원인과 그 발전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더 분명해 질 수 있었는지 모른다.
*주){{ E. Hobsbawm, Age of Extremes - The Short Twentieth Century, London 1995. pp. 21-224, 제1장, The Age of Catastrophe, 참조.}}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폴라니는 이 책에서 당대의 위기의 원인과 범주를 매우 심대한 역사적 구조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정의한다. ‘사회와 경제시스템의 정치경제적 시원’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폴라니는 생산과 경제의 ‘논리적 맥락’(logical time)으로부터가 아니라 ‘역사연구’(historical time)를 통해 위기의 원인을 진단한다. 같은 시기 ‘경제적 자유주의’의 맹신자였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A. Hayek) 같은 이가 정치와 케인즈주의적 개입주의적 국가의 역할을 ‘예속의 길’(The Road to Serfdom, 1944)로 표현하며 급진적인 경제적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을 때, 폴라니는 오히려 ‘자기조정적 시장’(selfregulated marketeconomy)의 ‘환상’을 바로 그 현재적 위기의 본질로 진단한다는 측면에서, 자유의 실현을 두고 두 가지 정반대 되는 해석과 접근이 대비된다고 하겠다.
폴라니는 파국의 20세기 초반 이래의 반복되는 전쟁과 갈등, 그 위기의 원인을 단기적인 정치적 군사적 요인에서 찾지 아니하고, 대신에 그 근원적 뿌리를 19세기이래 지속된 경제적 요인, 즉, ‘시장경제’의 발전형태로부터 규명하고자 한다. 폴라니에게서 ‘19세기적 자유시장경제의 발전’은 실존하는 정치적 질서와 사회적 관계의 대전환을 초래하는 매우 근본적인 과정으로 이해된다. 혼돈, 전쟁과 위기의 정점, 20세기 중반에 그 근원적인 위기의 시원을, 세기를 거쳐 전개되어 온 역동적인 ‘시장’과 ‘사회의 관계’로부터 도출한다. 사실 범세계적인 정치경제적 변화를 이러한 시장경제라는 중심 축에 국한하여 보는 것은 어쩌면 지나치게 경제나 시장의 차원을 과장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다양한 비판과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폴라니에게서 시장지상주의와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맹신이 궁극적으로 어떠한 심대한 변화와 도전을 초래하여 왔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게 된다. 2차 세계대전 후 나라와 국가들이 파국을 뒤로하고 냉전의 새로운 체제경쟁 하에서 ‘자본주의의 황금시대’*주)를 경과한 후 다시금 벌거벗은 시장의 도전이 세계화란 틀 속에서 대전환을 강요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것은 주요한 시사점을 준다. 즉, 냉전은 종결되었으나 시장의 적나라한 모습이 실재하는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문화, 제도적 질서를 구조적으로 변용시키며 그 토대를 침식시키고 있는 이때 폴라니의 대전환은 무엇보다 우리에게 현재의 ‘역사발전’과 그 속에서의 ‘사회발전의 동력’을 이해하게 하는 매우 유용한 틀을 제공하고 있다.
*주){{ 위의 책, 제2장, The Golden Age, pp. 225-402 참조. }}
2. 대전환의 구성
이 책은 구성에서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 먼저 폴라니는 19세기 경제적 자유주의 속의 시장경제, 즉 이른바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발전을 그 주 분석대상으로 하고 있다. 폴라니는 19세기 경제적 자유주의의 발전을 무엇보다 a) 세력균형으로 알려진 국제체제, b) 자기조정적 시장경제, 그리고 c) 자유주의 국가간의 틀 속에서 이해하고자 하였다.*주) 현대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을 이해하기 위하여 마르크스가 근대와 산업화가 가장 먼저 시작되고 발전된 영국을 대상으로 하여 자본주의를 분석하고자 했듯이 폴라니 역시 19세기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영국을 주 분석대상으로 하였다.
*주){{ K. Polanyi 위의 책, p. 19 참조.}}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장경제 발전의 분석에서 폴라니는 경제적 사실에 근거하여 19세기 시장경제 발전의 형태를 규명하고자 한다. 이 제1부에서는 1820년대와 1830년대의 격동의 시기가 서술된다. 그럼에도 이른바 19세기 ‘100년간의 평화’*주1)로 불리우는 ‘외연적 평화’와 ‘내재적 위기’의 관계가 어떻게 병존할 수 있었는지를 매우 흥미롭게 서술한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복고주의적 보수주의의 20년대와 다시 혁명의 30년대를 경과하며 1848년부터 전개되기 시작한 홉스봄(E. Hobsbawm)이 ‘자본의 시대’*주2)라 명명한 1873년까지의 자본의 개화기를 경과하면서도 크림전쟁, 보불전쟁과 보오전쟁 등 몇 차례의 전쟁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19세기는 자본의 축적에 부합하는 ‘세계평화’가 유지되는 구도였다. 그런 반면, 이러한 현상적인 평화적 분위기 아래 시장경제가 초래하는 근본적인 사회 변화 속에 실재 위기는 내재화하고 있었다.
*주1){{ K. Polanyi, 위의 책, p. 21 참조.}}
*주2){{ E. Hobsbawm, The Age of Capital - 1848-1875, 제10판, London 1997. 참조.}}
19세기는 무엇보다 또 영국의 패권을 중심으로 한 국제금본위제가 확립된 시기이기도 하다. 금본위제는 국제무역을 촉진하였으나 무역촉진을 통한 세계평화유지라는 이면에서는 상호 화해하기 힘든 국가간 이익대립의 구조화에 의해 그 시스템은 서서히 붕괴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이처럼 폴라니가 19세기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분석하려 하면서 국제체제의 분석을 통해 시장경제체제 발전의 ‘외연적 조건’을 동시에 고려하고 있는 점은 경제사가로서 그의 폭 넓은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어, 두 번째 부분에서 폴라니는 ‘시장경제의 상승과 몰락’을 다루고 있다. 시장경제의 모든 부문에로의 점진적인 파급은 사회적 관계를 침식 파괴하며 급속히 발전하게 된다. 시장이 스스로 제도적 발전의 산물이면서도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맹신은 거꾸로 그 존재의 기반을 허물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폴라니는 이러한 시장경제의 도전에 대하여 사회는 즉, 사회의 자기보호는 ‘최후의 조처’와 같은 것이라 하였다.
이어, 마지막 세 번째 부분에서는 그런 시장의 도전과 사회의 대응 속에서 전개되는 대전환이 어떻게 ‘지속’되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긴장과 갈등, 사회적 변화 속에서 역사와 복잡한 사회 속에서 궁극적으로 폴라니가 추구하는 ‘자유’의 본질에 대해 성찰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국제체제의 본질과, 자기조정적 시장경제, 그리고 사회의 대응 속에 전개되는 대전환과정과 궁극적으로 자유의 추구라는 상호 모순된 추구를 역사적 관점을 따라 흥미롭게 조망하며 분석하고 있다.
3. 대전환의 역사적 의의
폴라니는 ‘상품생산’과 ‘이윤추구’의 기본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되는 시장경제의 확산과 함께 전통적 공동체나 사회관계까지를 침식하는 - 상품화 될 수 없는 영역까지 완전 시장경제화 되는 - 추세가 이미 19세기에 그 절정에 달하였다고 보았다. 먼저, 역사적으로 시장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하여 사람들의 전통적 생존기반을 빠른 속도로 잠식해 들어가자 사람들과 사회는 ‘수공업자에 관한 법령’(1563) ‘구빈법’(1601)과 ‘정주법’(1662)의 제정을 통하여 그러한 시장의 무제한적인 발전에 일정한 제동을 걸고자 하였다.*주) 1795-1834까지 영국에서 도입된 ‘Speenhamland 법’은 그러한 시장경제의 벌거벗은 도전에 낙오되어 주변화된 사회계층을 구원하고 사회의 불안과 동요를 차단하려는 사회의 반응으로부터 발전된 획기적인 메커니즘이었다. 자유시장경제법칙과 배치되었던 이러한 ‘사회적 제도화’는 물론 시장경제의 철저한 이윤동기가 고려하지 않는 사회적 구성원인 ‘인간’의 존재를 보호하여야 할 필요성에서 발전되었다.
*주){{ K. Polanyi, 위의 책, pp. 124-125 참조.}}
이것은 다가오는 ‘자본의 시대’의 본격적인 노동시장의 발전을 아직 억제하며 사회적 보호의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1834년 신빈민법의 도입과 함께 전개된 노동시장의 발전과 함께 시장 법칙은 본격적인 자본의 시대를 알리며 사회를 시장 법칙에 종속시키게 된다. 사회의 대응은 이러한 도전에 직면하여 정치적 기본권운동인 차티스트운동*주)과 이어 조직화된 노동의 이익결집, 즉 노동운동과 노조운동 또, 사회보장법 등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폴라니는 이후 19세기 후반 제국주의와 결합된 시장은 다시 이러한 사회의 대응을 억압하게 되고 그러한 사회체제의 위기는 궁극적으로 국제적 갈등과 전쟁의 대 파국으로 이어지게 되고 마는 운명에 처하였다고 본다.
*주){{ 19세기 중엽 영국의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전개된 보통선거권 요구운동. 이 운동은 1832년의 제1차 선거법 개정운동이 불충분하였던 점과 34년의 신 빈민구제법에 대한 반대, 10시간 노동법운동, 신문인지세 반대운동 등이 기점이 되어 일어났다. 특히 38년 5월의 인민헌장 선포를 전후로 6개항의 의회개혁 요구안을 내걸면서 전국적 운동결집이 이루어졌다. 또한 당시 노동자들의 생활상태 악화도 운동확산의 계기가 되었는 데 경기침체에 따라 1839년, 1842년, 1848년 등 3번의 전환기가 있었고 1852년 하니․존스등의 사회주의적 지도자의 출현으로 「Peoples Paper」를 간행하는 등 운동의 재편성을 도모하며, 전국헌장협회를 중심으로 재건을 위한 노력을 다하였지만 결국 쇠퇴하고 말았다. }}
이 대전환 과정에서, 서서히 침식되어 붕괴된 금본위제하의 과도한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심화가 초래한 비극은 인간과 인간사회를 시장의 목적이 아닌 그 수단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그 경쟁과 이익추구의 모든 것을 갈아 삼키는 ‘악마의 맷돌’(satanic mills)*주1)속에서 사회의 ‘급진적 반응’은 오히려 필연적인 결과였다. 폴라니의 이러한 ‘시장경제’와 ‘사회’ 사이의 ‘이중운동’(double movement)*주2)은 바로 오늘날의 경제적 관계와 시장경제의 발전 형태에 비추어 매우 유의미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주1){{ K. Polanyi 위의 책 pp. 59. 참조.}}
*주2){{ K. Polanyi, 위의 책 p. 112. 참조.}}
그러면서도, 폴라니의 시장 분석은 정치경제적으로 어떤 법칙론적이며 단계적으로 잘 완성된 경제학적 이론의 틀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한편, 여하한 경제법칙론적 이론의 틀이 부재하면서도 폴라니는 시장경제의 발전을 매우 독자적 시각에서 추적하고 있다. 즉, 폴라니의 시장경제 분석에는 역사를 추동하는 특정한 주체가 등장하지 아니한다. 때문에, 노동계급과 부르주아지와 같은 사회계급이 자본주의 내 대립적 갈등의 두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엄격히 정의된 사회계급론적 시각은 찾아볼 수 없다. 또, 폴라니의 접근법이 로버트 오웬(R. Owen)식의 ‘공상적 사회주의’ 전통*주1)과 성서 내 ‘반자본주의’적 관점*주2)을 취하고 있는 반면 생산 조직, 화폐 이론, 축적 법칙에 관한 엄밀히 정의된 경제 이론의 틀을 갖고 있지도 아니하다. 때문에 정치경제학비판에서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그러한 사회계급의 분석 틀에서 도출된 부르주아 지배시대를 종식시키는 역사적 소명을 갖는 프로레타리아와 같은 분명히 정의된 사회계급의 존재나 그들의 역할을 제시하지도 아니한다. 그럼에도 시장경제에 대한 대항 축은 ‘사회’ 또는 ‘사회의 자기보호’라는 매우 포괄적 개념 속에 농축되어 있다.
*주1){{ K. Polanyi의 위의 책, p. 182. 참조.}}
*주2){{ K. Polanyi의 위의 책, p. 343. 참조.}}
다시 말해, 이처럼 정통 정치경제학비판에서 보이는 ‘과도한’ 이론화가 범할 수 있는 역사발전의 기계론적 해석이나 ‘도그마’로부터 폴라니적 접근방식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하겠다. 무엇보다 폴라니는 사회를 상품화되는 데 있어서 구조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인간공동체’와 ‘전통적 비시장적 규범이 유지되는 곳’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떤 심화된 계급분석이나 사회구조분석을 전제하지 않는 것은 폴라니의 정치경제학 분석의 특성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반면, 그런 접근방법은 현재 위기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지속적으로 재생산 팽창하고 있거나 계급구조가 19세기보다 더 분화되고 상대화되었으며 물질생산의 발전과 함께 개인주의가 날로 심화되어가는 현대자본주의 발전에 비추어 오히려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데 더 유용한 분석틀로 되고 있는 역설적 결과를 낳고 있기도 하다.
폴라니는 완전한 ‘시장의 지배’를 비판하면서 ‘주체’가 없으나 해방된 사회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폴라니는 신학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모순을 극복하려 하면서 ‘경제적 자유주의’는 비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마르크스와 같이 해방된 사회 속의 인간의 자유, 사회의 경쟁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 그와 함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자유로운 만남과 교분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이상적인 상태를 그리고 있다. 반면에 마르크스와 달리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의 극복이라는 명제에 집착하지 않는 신학적 내지 공상주의적 사회주의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 지적했듯이 폴라니의 역사해석이 현재의 시점에서도 유효한 것은 그의 접근이 생산과 경제체제를 다룬 엄밀한 이론적 분석이 아니라 하더라도 시장경제의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드러나는 법칙과도 같은 ‘시장경제’와 ‘사회’의 분리와 재결합의 상호변증법 관계를 탁월한 경제사가적 안목에서 재구성, 이론화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연계된 자본주의’(embedded capitaism)로부터 탈구되어 시장의 지배가 날로 심화되어 가는 현재에 그 시장지배에 저항하는 사회의 도전은 사회의 최후조처라는 그의 경종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할 것이다.
폴라니는 시장경제 이외의 다른 분배/교환메커니즘이 현대적 대안이 되기 힘들다는 것을 인지하였다. 그러나, 시장의 본질은 이윤추구이며 그것이 무엇보다 상품화될 수 없거나 되어서는 아니 되는 a) 인간노동력, b) 토지, c) 대지와 같은 것까지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사회의 비극은 심화되고 시장경제는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환상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기반을 침식해 들어간다고 보았다. 폴라니는 이들 세 가지를 이른바 ‘허구적 상품’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이들 상품은 이윤을 목적으로 생산될 수 없는 - 되어서는 안 되는 - 상품이기 때문이다.*주) 이렇게 볼 때 폴라니는 인간사회의 기본적인 교환관계와 그 활동의 장으로서 시장의 기능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대신에 그것이 ‘어떤’ 시장이냐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논리적으로 a) 임노동의 완전한 철폐, b) 노동력의 상품화를 매개하는 화폐의 물신화의 지양, 그리고 c) 그러한 시장제도의 메커니즘을 보장하는 국가의 궁극적 철폐만이 인간과 사회가 이윤추구의 도구로 되지 않고 인간과 인간의 자유로운 교류와 진정한 만남을 가능케 하며 무한한 생산력발전을 가능케 한다고 보았던 마르크스와 일정한 차이를 보인다고 하겠다.
*주){{ K. Polanyi의 위의 책, p. 108. 참조.}}
또 폴라니는 경제구조를 a) 하층단위에서의 물질생산, b) 중간단계에서의 시장경제, 그리고 c) 맨 위층의 신용자본이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되는 현대자본주의의 단계로, 자본주의를 세 층으로 구분하여 보았던 페르낭 브로델(F. Braudel)의 시각*주)과도 비교된다. 브로델과 유사하게 폴라니는 현대자본주의의 이른바 ‘고도금융’(haute finance)의 기능에 주목하였다. Pax-Britanica 하 국제금본위제 속에서 시장경제는 비약적 발전을 하게 된다. 그러나 브로델에게서 사회와 개인의 대응은 신용자본이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현대자본주의 거대한 ‘구조’의 흐름 속에 함몰되어 버리고 만다. 그에 비해 폴라니는 그러한 자본의 지배에 궁극적으로 다시 도전하는 ‘사회의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비교시사점을 주고 있다.
*주){{ F. Braudel, Die Dynamik des Kapitalismus, Stuttgart 1986.}}
반면에, 마르크스에게서 구조와 행위는 법칙론적 변증법을 갖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역사추동의 엔진으로서 계급투쟁과 그 핵심으로서 노동계급의 역할이 중심적 의미를 갖게 된다. 이에 비해 폴라니에게서는 그 어떤 구조결정론도 또 역사적 과업을 분명히 구현할 특정의 사회적 계급도 전제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폴라니에게 중심개념은 ‘자유’이다. 그리고 시장전제에 대항하는 ‘사회의 발견’이 그 자유를 수호하며 추구하는 것을 가능케 할 핵심으로 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폴라니에는 전술한 바와 같이 실제 사회내의 계급이익이 어떻게 분화되는지는 ‘블랙박스’로 남아있다. 때문에, 이윤을 추구하는 것도 자본가계급이라기보다는 시장체제의 존속 그 자체에서 찾고 있다. 동시에 폴라니는 시장자체가 ‘제도화’이자 ‘제도화과정’이라고 본다. 반면, 사회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시장이 스스로 조정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그에 따르면 환상이라는 것이다. 시장은 본질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통제되지 아니하면 그 스스로가 서있는 사회의 기반을 파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메시지는 바르게 기능하는 인간사회, 공동체적 미덕이 보존될 수 있는 방향으로 시장이 작동하도록 시장이 통제되어야 하는 사회이다. 그러나 시장의 기능과 존재를 인정하는 한 과도한 시장의 통제는 다시 생산과 교환의 효율성을 저해하며 시장의 반발을 초래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폴라니는 ‘반시장주의자’라기보다는 결국 ‘시장조절론자’였다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냉전기에 중앙집중화된 현실 사회주의의 분배체계와 권력의 집중이 오히려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 결과를 초래한 반면, 폴라니의 ‘시장경제’와 ‘사회’의 변증법을 통해 제시된 ‘조절된 시장경제’는 전후 복지자본주의의 발전에로 이끄는 길을 열어놓은 셈이다.
4. 대전환: 국제체제 - 시장경제의 상승과 몰락 - 사회의 자기보호
4.1. 국제체제
폴라니의 분석이 여태까지의 경제이론분석과 다른 점은 ‘세력균형으로 특징지어지는 19세기적 국가체제’의 분석과 그 배경에 대한 통찰이다. 폴라니는 이러한 ‘유럽의 협주’나 1814년에서 1915년까지 지속된 100년간의 평화는 결국, 자본 축적을 보장하기 위해 요구되었던 ‘국제평화’의 배경이라고 보았다. 여기에, ‘금본위제도’와 ‘자유시장경제’ 그리고 ‘자유주의국가’는 이 시기를 특징지은 다른 세 개의 축이었다. 즉, 두 개는 ‘정치적’인 것이고, 두 개는 ‘경제적’인 것인 반면, 두 개는 ‘국내적’인 것이고 나머지 둘은 ‘국제적’인 것이었다고 본다. 폴라니는 이러한 19세기 세력균형의 붕괴의 동인이 무엇보다 ‘금본위제도’로 그것이 파국의 다른 기원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금본위제도는 국내시장경제를 국제적 차원에서 확대하려는 시도였으며 자유주의 국가는 자기조정적 시장의 창조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까지 비교할 수 없는 부의 증가를 가능케 할 것이 자기조정적 시장경제라는 관점은 결국 조야한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 것으로 그것이 장기적으로는 사회의 인간적이며 자연적인 본질을 파괴하지 않고는 존속될 수 없다고 보았다. 결국 19세기 질서의 붕괴와 그에 이은 위기의 지속은 고삐 풀린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과다한 확산에 그 근본원인이 있는 것으로 본다.
4.2. 시장의 상승과 몰락
폴라니는 현대시장경제의 발전 이전에 사회적 생산물의 분배방식을 먼저 분석한다. 서멜라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아프리카 등지의 원주민사회에서의 연구를 통해 경제와 사회가 통합되는 지배적 형태와 구조로 호혜성(reciprocity)과 대칭성(symmetry), 재분배(redistribution)와 중심성(centricity)을 분석하고, 시장경제 하의 교환(exchange)과 시장을 비교 분석한다.*주) 그에 따르면 근대이전 사회에서 교환과 시장이 ‘지배적’ 경제 형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는 ‘호혜성’과 ‘재분배 원리’에 의해서 생산과 분배의 질서가 유지되었다. 호혜성은 대칭적인 관계에 놓인 개인 또는 집단간의 지속적이고도 의례적인 선물교환방식으로 정의된다. 여기에서는 시장교환에서와 같은 엄격한 의미의 등가교환은 성립되지 않으나, 호혜성은 경제 통합원리인 동시에 사회적 결속과 유대의 고리 역할을 한다. 특히 이 원리가 의례화 되었을 때는 소속의식을 강화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재분배는 한 집단 내의 재화, 자연자원, 토지 등의 분배에서 이것들을 일단 한 곳에 모은 후 관습, 법 그리고 중앙집권적 결정 등에 의해 분배하는 시스템이다. 여기에는 중심성이 전제된다. 정치군사적 목적 외에 재분배기구로서의 중앙집권적 조직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었다. 이에 반해, 교환이란 이득을 목표로 수행되는 사람들 간의 재화의 이동이다. 그 가장 단순한 형태로 물물교환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가격형성시장’이라는 구조를 필요로 한다.
*주){{ K. Polanyi의 위의 책, pp. 77-101. 참조. }}
폴라니에 의하면 대체로 부족공동체에서는 호혜성이 지배적 형태였으며, 재분배가 부차적 역할을 하였다. 고대사회에서는 재분배가 지배적 형태였지만 호혜적 원리에 기초한 대규모 외국교역도 함께 존재하였다. 반면, 시장교환이 지배적 형태로 등장하는 것은 19세기 이후라고 본다. 한편, ‘가계의 운영’과 ‘화폐획득’을 경제활동의 두 목적으로 정의한 아리스토텔레스이래 폴라니는 교환, 즉 이윤을 목적으로 한 시장과 경제의 의미가 비로소 최초로 선보였다고 제시한다.*주) 전통적 교환분배체제와 달리 현대적 의미에서의 교환, 즉 이윤을 위한 이윤의 시장경제는 산업화와 더불어 본격화되었다고 본다.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산업혁명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이전 17-18세기 중상주의시대 역시 자본과 시장 그리고 대외적 팽창이 급속히 발전하였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이런 튜더와 스튜어트왕가 초기 중상주의 시기에 ‘국가의 강력한 개입’과 ‘독점의 형성’, ‘무력의 개입’ 등 시장은 여전히 국가와 절대주의 ‘정치’에 종속되어 있었다.
*주){{ K. Polanyi의 위의 책, p. 85. 참조.}}
4.3. 사회의 자기보호
한편, 점증하는 산업화와 함께 시장경제로의 대전환 속에 도시에 비하여 경쟁력을 상실한 농촌지역의 방출인력의 대량 궁핍화가 진척되게 되었다. 폴라니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1776년 ‘국부론’(Wealth of Nations)을 저술할 당시만 해도 그와 같은 대량궁핍화를 예측하지 못하였다고 본다. 이런 조건 속에서 결국 250년을 지탱하여 온 근로능력이 있는 빈민과 근로능력이 없는 빈민을 구분하여 온 구빈법을 대신하여 모두에게 최소의 생계를 보장하는 형태의 최저생계보조제도가 과도적으로 도입되게 되었다. 즉, 1795년에 Birkshire 지역의 ‘지방판사’(justice of peace)들에 의해 사회의 궁핍화를 지양하고 그로 인한 농촌의 저항을 억제하며 오늘날의 이른바 최저생계보조에 해당하는 기본임금을 보장하게 된 ‘Speenhamland 법’의 도입은 시장 법칙에로의 ‘무자비한’ 예속으로부터 인간을 어느 정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노동의 제공여부와 무관하게 제공된 그러한 최저생계비는 자유로운 노동시장의 발전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특히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로 인해 임금이 이 보조금보다 낮을 경우 노동을 기피하게 되고 이것은 많은 사람을 구빈원에 의지하게 함으로써 대중의 구조적 궁핍화 현상을 초래하였다. 보수주의 세력은 대량노동력이 필요한 본격화되는 산업화시대 따라서 그러한 거추장스러운 메커니즘으로부터 시장을 해방시키고자 하였으며 인간노동력 상품이 자기조정적으로 규제되는 시장에서 능력과 노동의 질에 따라 일반 상품처럼 자유로이 거래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혔다.*주)
*주){{ K. Polanyi의 위의 책, p. 119 참조.}}
이 결과, Speenhamland 법을 폐지하고 1834년 도입된 신 빈민법은 사실상의 자유로운 노동시장의 허용을 뜻하는 것으로 종래의 구빈법이 지녔던 공적부조의 성격을 제거함으로써 노동의 가격이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이 시기 벤담주의자들은 과잉인구를 빈곤의 최대 원인으로 지목한 맬더스의 인구법칙을 수용했다. 즉, 신 빈민법은 배급제 폐지를 통해 인구억제를 목표하는 인구법칙을 제도화하고 그 결과, 임금이 자유노동시장에서 결정되게 됨에 따라 시장이 사회에 의해 일정하게 통제되었던 시기에서 다시 사회가 시장의 경쟁메커니즘에 내맡겨지게 되었다. 동시에 전국적으로 지방정부의 선거제가 도입되면서 종래 지방유지들에 의해 임명되던 지방판사의 권위가 자동적으로 소멸되게 되었고 교구로 분산되어 있던 구빈업무가 단일한 중앙행정에 의해 통일되게 되었다. 휘그와 토리의 지방유지들이 지역에서 그들 자신이 행사하던 전통적 권한이 이처럼 침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신 빈민법을 수용한 것은 그것이 실시되면서 자신들의 빈민세 등 납세부담이 그만큼 경감될 수 있다는 경제적 동기가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였다. 노동력의 상품화에 이어, 1846년 이른바 곡물법의 폐지*주)는 농산물이 자유시장에 포섭되고 또 다른 ‘허구적 상품’인 토지와 함께 자연자원의 시장화가 제도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주){{ 역사적으로 1846년에 이르기까지 곡물거래 내지 수출입규제와 관계되는 법률을 말한다. 12세기부터 왕정복고기까지는 주로 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시장에서 곡물의 매점, 독점, 가격의 인위적인 인상 등 곡물거래 규제에 중점을 두었다. 초기에는 곡물생산이 국내수요를 충족하였으므로 수출은 규제하는 반면 수입은 별로 규제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왕정복고가 실현될 무렵 이 시기에는 소비자의 입장보다 생산자의 입장이 우선적으로 보호받게 되었다. 즉, 이제는 곡물수입이 관세에 의해 규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1689년부터는 수출된 곡물에 대해 국가가 보장금을 지불하는 곡물수출장려금제도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영국이 곡물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바뀌고, 곡물수출장려금이 해마다 국가재정을 압박하게 되었으며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부르주아의 계급이 번창하게 되었다.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부르조아계급은 마침내 1838년에 R. Cobbden과 J. Bright를 필두로 반곡물법동맹을 결성 의회에 압박을 가하여 46년 드디어 곡물법철폐에 성공하게 되고, 이 사건은 영국에 19세기 사실상의 자유무역을 확립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
아울러 1830년대와 1840년대를 경과하며 안정적 통화에 기반, 국내적으로 디플레이션을 억지하며 동시에 안정적 국제무역거래를 보장할 관련 제도 및 관련법의 제정을 겪으며 ‘근대적 의미의 중앙은행’이 확립되게 된다.*주1) 이러한 ‘중앙은행의 확립은 화폐시장에 대한 국가차원의 보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노동력, 토지에 이어 화폐의 상품화가 체계화되는 것으로 이로써 19세기 시장경제의 기반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허구적 상품의 확립과정은 거센 사회의 반발과 반응을 초래하였다. 무엇보다도 인간노동력의 상품시장에의 종속은 공동체의 파괴를 초래하며 공동체가 이에 자연발생적으로 반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 공장법*주2)과 단결권의 획득, 노조의 결성, 오웬주의, 차티스트 운동, 노동조합운동, 사회주의운동, 1870-1880년대 광범한 보호주의 운동과 입법 등이 그러한 시장지배에 대한 사회의 도전 내지 그 결과이었다.*주3)
*주1){{ K. Polanyi의 위의 책, pp. 260-270. 참조.}}
*주2){{ 공장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건을 국가적으로 규제하여 여러 업무를 사업주에게 행하게 하는 법. 산업혁명이후 기계제 공업이 출현하자 종래의 숙련노동이 대신 미숙련 노동으로 충당되어 성년 남자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크게 줄고 여성이나 아동노동자가 노동시장에 쏟아져 나와 전반적으로 임금수준이 낮아지게 되었다. 여기에 여성이나 아동노동자의 하루 노동시간은 연장되어 노동계급의 참상을 낳았으며 이에 노동자가 폭력적으로 반항하기에 이르렀다. 국가는 처음에는 노동자의 조직적 투쟁을 억압하기 위해 단결금지입법을 체결하였으나 이것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할 수 없게 되자 단결권을 용인하게 되었다. 이어 국가는 노동력보호의 필요성도 인식하여 영국에서는 1802년 「도제의 건강 및 도덕보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노동시간을 제한하여 밤일을 금하고 그밖에 의식주에 관한 규정 등을 정하게 되었다. 근대공장법의 효시인 이 법은, 뒤에 프랑스(1841), 오스트리아(1842), 이탈리아(1843), 스웨덴(1846)등에서 각각 공장법이 제정되고 일본에서는 1911년 공장법이 제정으로 이어졌으며, 한국에서는 각국이 공장법에서 규정한 내용을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여 노동조건의 최저기준을 보장하는 의미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3){{ 김 균, “칼 폴라니와 자유주의 비판”, 이근식․황경식편,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 자유주의의 의미, 역사, 한계와 비판』, 삼성경제연구소, 2001, pp. 355~356 참조. .}}
폴라니는 이로써 결국 ‘시장의 과잉’이 인간의 공동체적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며 결국 이것은 사회의 반격을 초래하게 된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폴라니는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를 옹호하진 않는다. 그는 그것이 다른 측면에서 인간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 본다. 폴라니가 비판하는 것은 시장 스스로가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 시장 맹신주의이다. 즉,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환상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의 규제와 통제를 받는 시장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의 구체적 형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임금 격차가 존재하되 노동의 비금전적 측면이 무시되지 않는 경제, 토지와 자연자원의 가격이 시장외부적 요인들과 함께 고려되면서 결정되는 경제, 화폐에 대한 통제권이 시장에서 제거된 경제”*주)
*주){{ 위의 책 pp. 357. 참조}}
5. 대전환의 지속: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대전환의 새로운 의미
폴라니의 ‘이중운동’은 결국 시장경제와 사회간의 그러한 통제와 지배 그리고 그 대응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적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폴라니는 시장경제와 사회의 그처럼 이분화 된 틀 속에서 19세기적 조건이었던 이른바 ‘자유주의 국가’의 성격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 폴라니는 시장경제와 그러한 자유주의 국가에 대한 대안으로서 사회문화적 차원의 제도적 전환을 통한 경제문제의 해결을 모색한다. 이렇게 볼 때 그의 사회적 규제와 제도는 국가와 정치적 해법보다는 국가와 시장 사이에 놓인 영역 즉, 시민사회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폴라니에게 사회란 시장, 경쟁, 이윤추구로부터 독립되어 개인들간의 다양한 관계망이 유지되며, 그 속에서 개인의 유일성에 입각한 자유가 펼쳐지는 공동체적 공간인 것이다. 그러한 ‘(시민)사회의 발견’이 폴라니가 시장통제를 가능케하는 대안으로 상정하는 것이라 하겠다.*주)
*주){{ 위의 책, pp. 358. 참조.}}
오늘날, 신자유주의 이후 이른바 ‘초자유주의 시대’*주)에 이르러 시장의 지배가 전일적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 그리고 ‘유연화의 정치’가 정치의 지배적 패러다임이 되어가고 있는 이때, 폴라니는 그러한 제어되지 아니한 고삐 풀린 자기조정적 시장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커다란 위험을 내재하고 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환경의 파괴, 고용의 위기, 생명공학 등 현대과학기술이 안고있는 의도하지 않은 위험성, 금융자율화의 극단화로 인한 화폐시장의 불안정성의 증가, 경제적 부의 증식에도 불구하고 증대하는 사회적 빈부의 격차, 성간, 지역간의 격차와 남북간의 격차 등의 문제점이 시장경제가 심화시키는 현대사회의 주요 문제들일 것이다. 폴라니는 전술한 바와 같이 19세기적 조건을 영국의 패권에 기반한 금본위제로 특징지어지는 국제체제, 자기조정적 시장경제, 자유주의 국가로 특징지었다. 그리고 그러한 내재적 위기로부터의 해방을 사회라는 다소 구체화되지 않은 영역에서 찾고 있다.
*주){{ R. W. Cox, Approaches to World Order, Cambridge 1996, pp. 197-201 참조. 여기서 Cox는 1980년대 Thatcher과 Reagan model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경제적 자유주의에 고전적 자유주의가 낳았던 사회․정치적 반응을 수용했던 종래의 신자유주의 시도를 거부하며 다시 단순한 ‘19세기적 경제적 자유주의’로의 회귀를 꿈꾼다는 점에서 그런 경향을 ‘초자유주의’라 구분하여 부른다. }}
이에 비해, 흥미로운 것은 현재의 정치경제적 조건이 브레튼우드체제 이후의 새로운 변동환율제로의 이행, 케인즈주의적 내수시장지향에서 세계화된 자유시장경제 속으로의 ‘편입강제’, 정보․통신산업 등 국경을 초월하여 영향을 미치게 된 생산과 기술패러다임의 발전, 그리고 복지국가를 경과한 새로운 포스트복지국가시대로의 재편의 와중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폴라니의 19세기적 민주주의와 사회는 이런 관점에서 여전히 일국적 차원에서의 민주주의 즉, 영역적으로 제한된 국민국가적 민주주의를 상정하고 있는 반면, 현재적 상황은 시장경제로의 대전환이 가속화된 속에 이제 민주주의 조건과 사회의 구성이 더욱 탈국민국가화*주) 되어가는 새로운 상황을 맞고있다는 점이다.
*주){{ M. Zuern, Regieren jenseits des Nationalstaates - Globalisierung und Denationalisierung als Chance, Frankfurt/ M. 1998. 참조.}}
다시 말해, ‘자본주의’와 ‘국민국가’의 역사적 필연성의 재편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재편을 검토하게 하고있다.*주1)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초국적화’*주2)와 ‘경제적 세계화’에 맞설 ‘정치의 세계화’가 점차 요구되는 점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즉, 위기의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환상이 지속되는 속에서 이제 사회의 대응은 그러한 정치, 경제, 사회, 기술의 구조적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탈국민국가화 경향, 탈중앙화의 경향과 함께 국민국가차원의 대응만으로는 부족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정치와 정부로부터 다층적으로 분리된 통치와 분권화의 민주주의가 더욱 의미를 띄게 되는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주3)는 점이 성찰되어야 할 것이다. 폴라니의 사회 개념이 역사의 단순반복을 적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적으로 확대 적용되어야 할 필요가 거기에 있다.
*주1){{ J. Hirsch, Der nationale Wettbewerbsstaat, Berlin; Amsterdam, 1995, p. 13. 참조.}}
*주2){{ A. McGrew 편, The Transformation of Democracy - Globalization and Territorial Democracy, Cambridge 1997. 참조.}}
*주3){{ 이 호근, 「세계화 경제속의 국가의 변화와 서유럽 다층적 통치체제의 발전」, 한국정치학회보 제35집 2호, 2001년 여름호, pp. 345-365. 참조.}}
마지막으로, 폴라니는 결론에서 세 가지를 언급한다. 그는 성서적 차원의 ‘죽음에 대한 지식’을 과학의 기본으로 전제한다. 두 번째, 존재의 세계에서 결국 인간과 인간 사회의 궁극적 희원은 ‘자유의 추구’에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 결국 폴라니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그 자유가 실현되는 구조적 조건이요 무대인 ‘사회와 사회의 발견’을 지식의 결론으로 본다. 철학적, 변증법적으로 성찰된 폴라니의 사회와 자유에 대한 통찰은 단순히 경제사에 관한 저작을 넘어 시대를 초월하여 철학과 정치․사회․문화적으로 우리에게 깊은 시사점을 주는 진정한 고전으로 다가온다는 데 또 다른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 균, 칼 폴라니와 자유주의 비판, 이 근식․황경식편,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삼성경제연구원, 2001, pp. 341-359.
-안 청시, 폴라니의 정치경제학 - 『거대한 변환』 과 시장, 국가, 사회로의 새로운 이해, 안청시․정진영편, 현대정치경제학의 주요이론가들, 아카넷, 2000, pp. 83-154.
-이 호근, 세계화 경제 속의 국가의 변화와 서유럽 다층적 통치체제의 발전, 한국 정치학회보 제35집 2호, 2001년 여름호, pp. 345-365.
-F. Braudel, Die Dynamic des Kapitals, Stuttgart 1986.
-R. W. Cox, Approaches to the World Order, Cambridge 1996.
-J. Hirsch, Der nationale Wettbewerbsstaat, Berlin; Amsterdam 1995.
-E. Hobsbawm, Age of Extremes, London 1995.
-E. Hobsbawm, The Age of Capital, 제10판, London 1997.
-A. McGrew 편, The Transformation of Democracy - Globalization and Territorial Democracy, Cambridge 1997.
-K. Polanyi, The Great Transformation - Politische und oekonomische Urspruenge von Gesellschaften und Wirtschaftssystemen, Frankfurt/ M. 1990.
-J. R. Stanfield. The Economic Thought of Karl Polanyi: Lives and Livelihood, Macmillian, London 1986, 원 용찬 옳김, 『칼 폴라니의 경제사상』, 한울, 1997.
-M. Zuern, Regieren jenseits des Nationalstaates - Globalisierung und Denationalisierung als Chance, Franfurt/ M.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