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의 본 53 선지식 18차. 23. 한국 비구니는
젠더의 스승
한국 비구니는 젠더의 스승
불교계에는 비구 비구니 평등
출가 승려로서 여래의 집에
거주할 수 있는 복을 받았다.
성불에는 비구 비구니 따로 없다.
언제부터인가 비구와 비구니가
수행에 구분하였던 것이 있었던가?
출가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목적
비구 비구니에게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오직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방에 들어가
여래의 평등 성을 실천하는 수행정진데
온몸을 다해 여래의 법을 실천함이다.
나는 사미 시절에 대구 동화사 상선 원에서
용맹정진을 수행할 때 비구니 무착 스님과 정진을
백일 동안 용맹정진하였던 동안거 결제
그때에도 비구 비구니의 구분이 없었다.
정진하는 데 있어서 오히려 힘이
나에게 주어진 그것을 알았다.
팔공산 동화사 시절에 나와 뜻을 같이했던
무착 비구니 스님을 단식을 50일 수행하다가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비구 비구니란
젠더라는 말의 의미를 초월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우리 시대에 현명한 판단력을 기르는 것이
가장 소중한 시대의 평등 성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현상을 우리가
어떻게 변화를 맞이할 것인가에 있어
참으로 소중한 수행의 덕을 본이라고 말함이다
비구 비구니의 차별이 없는 평등성을
우리 시대에 선양하여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의 위대한 평등성을 실천하는 운동
이것이 바로 여래의 방에 들어감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참으로 위대한 평등성의 존재를 실천하는 몸
수행의 몸이라고 선언하려고 한다.
비구 비구니 평등 성을 선언한다.
누가 비구니에게 성불할 수 없다고 말하는가?
오늘날에 비구니 수행자들이 더 정진에
힘을 다하고 있는 선원을 보면 안디
비구는 나무 아래에 앉아서 정진하면
그것으로 최고의 수행으로 여긴 시대
그러나 오늘날에는 수행자들이
선어록을 탐독하지도 않는다
뜰앞에 측백나무를 뜰앞에 젓나무로
여기고 화두를 타파한다고 하니
이것은 정진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도 지금도 고승들이 설법할 때
뜰앞에 잣나무라고 외치고 있다,
아 슬픈 날의 수행자여
그러한 정진을 허수아비나 다름이 없다
수행자여 자기 몸을 살펴보아라.
한국 불교계는 비구 비구니가 공동으로
여래의 가르침을 전하는 실행을 해야
여래의 법을 실천할 수 있다,
나는 필리핀에서 열리는 세계 여성
국제대회에 참석한 일이 있어
그 대회에서 연설을 한 일이 있어
그날을 지금에 와서 회상해 보니
그 시기에는 막연하게 외치였지만
세월이 지난 이후에 나는 선언적
말을 잘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 대회는 독일 여성이 후원한 대회
국제 여성 대회였기에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 대회에서 한국에는 종교 가운데 비구니
여성을 중심으로 종교의 독창적 비구니
비구니에게도 독자적인 평등적인
여성으로서의 최고의 지위 비구니
비구니계에 최고의 지위 비구니계
여성으로서의 종정이 있다고 발표했다,
독일 여성은 나로 연설이 끝난 뒤에
통역을 통해 들었는데 독일 여성은
다음에 자신이 죽어서 한국에
태어나겠다는 발언하기도 했다
한국에는 비구 비구니의 평등성을
한국에 그러한 교단이 있는 것도 모르고
한국불교 계에는 국제적인 활동이 필요함을
필리핀 국제 여성 대회에서 나는 나를
반성하기도 했던 일이 기억난다.
비구 비구니에 공동체 수행이라는 동공 체적인
그러한 수행을 전 세계 여성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그러한 여성운동을 실행한다면 한국불교 계에
여성 평등성을 알릴 수 있는 주최 잔 적
수행의 존재를 바르게 성찰할 수 있다,
여성에게 주어진 것은 평등성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방에서
용맹 정진을 수행한다는 것이야말로
여성에게 주어진 평등성이다,
한국 불교계는 남녀 비구 비구니에 대한
최고의 이상을 실현하는 깨달음에 있어 평등
용녀에게도 성불할 수 있는 여래의 수기
수기를 받고 비구니에게 주어진 깨달음
불교계에 있어서 최고의 덕목을 깨달음
그러한 깨달음을 성취하는데 평등
비구 비구니에게는 차별이 없다.
한국의 비구니들이여 참으로 위대하다
자신의 존재를 수행에 이르게 하여
용녀에게도 깨달음 수기하였던 여래의
가르침을 전승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가장 위대한 선택이라고 칭함이다
이것이야말로 여성으로서의 최고의 이상
인간 평등성을 실현할 수 있는 수행 공동체
전 세계 여성들에게 부러움을 받을 수 있노라.
이러한 수행집단이 어디에 있는가 말이다,
위대한 평등성을 실천하고 있는 한국에 여성
비구니를 성의 스승이라고 칭한다.
2022년 12월 3일
출처: 불교평화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진관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