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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날의 삽화(揷話) 5
박 완 서
그들은 서울의 매연을 벗어난 그린벨트 안에 살고 있었다. 교통이 불편하고 신축이나 증축의 허가가 나지 않아 땅값이 싸고 공기가 좋았다. 시간 맞춰 출퇴근할 필요가 없는 은퇴한 영감님과 흙 주무르는 게 취미인 마나님 양주가 살기엔 더할나위없이 좋은 동네였다. 그들은 아주 가끔씩 따로따로 시내에 볼일이 생겼고, 시내에 나갔다 들어올 적마다 파김치가 되곤 했다. 몇 번씩 갈아타야 하는 불편한 교통 탓도 있으련만 그들은 언제나 시내의 고약한 공기 탓으로 돌리고 시내에서 떨어져 살게 된 걸 새삼스럽게 행복해하곤 했다. 그리고 유난히 자주 심호흡을 하면서 앞산과 탁 트인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하루만 그러고 나면 폐부 속의 그을음이 깨끗이 닦인 것처럼 다시 정정해지곤 하는 것이었다.
영감님은 내년이 환갑이고 마나님은 그보다 이 년 손아래였다. 두 양주가 다 그 나이라면 누구나 한두 가지씩은 지녔음직한 지병 없이 건강했고 염색하는 대신 서로 가끔 흰머리를 뽑아주는 걸로 족할 만큼 칠칠하고도 검은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험하고 고된 농사일 아니면 막노동을 생업으로 삼아 일찍이 겉늙은 그 동네 토박이들은 그들의 실제 나이를 알면 한결같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도회지와 도회지 생활에 대한 동경과 질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은퇴 후의 전원생활이 그들에게 회춘의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들은 지병뿐 아니라 아무런 걱정도 없었다. 공직생활을 정년이 될 때까지 채운 영감님은 일하지 않고도 죽는 날까지 연금을 받을 수가 있었고, 그 연금은 영감님이 먼저 죽더라도 마나님에게 죽는 날까지 계속 지불될 터였다. 그 액수 또한 검약이 몸에 밴 그들에겐 구태여 돈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했다. 아들 둘 딸 둘이면 자식 울타리도 남부럽지 않게 근검하다 할 만하다.
이렇게 충족됐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고위직도 못 되는 주제에 관운이 평탄치 못하기는 고위직보다 더하면 더해 굴욕을 무릅쓰고 붙어 있어야 했던 기간도 결코 짧지 않았다. 하필 그 시기에 대학생이 둘씩 겹치고, 또 결혼과 대학이 겹치기도 해 이태가 멀다 하고 집을 줄여먹어야만 자식들 뒷바라지를 할 수가 있었다. 막내딸 결혼시키면서 마지막으로 줄여먹을 때 기어코 특별시를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나 더는 줄여먹을 일 또한 없어졌다는 안도감 때문에 더는 줄여먹을 여지도 없는 시골집 한 채가 그렇게 대견하고 편안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이미 퇴임할 날짜까지 받아놓고 있을 때라 불편한 교통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 고생 안 해도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즐거움
을 더해주었다. 그 집은 여러모로 그들에겐 복가(福家)였다. 그 집 때문에 영감님은 은퇴 후 갑자기 많아진 시간을 두려워하거나 우두망찰하지 않아도 되었다. 워낙 지은 지 오래된 시골집이라 낡았을 뿐 아니라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은퇴 후 대부분의 시간을 영감님은 집을 손보는 데 보냈다. 두꺼비집 퓨즈 하나 못 갈던 솜씨가 느리긴 해도 진국스러운 목수 미장이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어떡하면 마나님을 편하게, 같은 일이라도 즐거워하며 하게 할 수 있을까에 그는 솜씨와 정성을 다 했다. 처음부터 그럴 작정은 아니었다. 너무 허술한 안전과 너무 초라한 미괸을 좀 어떻게 해볼 수 있기를 요행처럼 바라고 시작한 일이었다. 지봉을 비가 안 샐 때까지 고치고, 방고래를 없애고 온수가 도는 파이프를 깔고, 벽마다 단열재를 집어넣곡 다시 한 겹을 더 쌓는 일 등은 가끔 품을사야 할 만큼 힘든 일이었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그에게 난관이 되었던 것은 재래식 가옥의 기본 구조였다. 그 기본 구조까지 어째볼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이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 기본 구조에 손을 대지 않고는 집을 고쳤달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목수일 미장일에 어느 정도 문리가 트고부터였다. 우리의 재래식 가옥이 여자에게 더 불편하게 돼 있다는 건 대물림의 한옥에서 처음으로 개량주택으로 이사 갔을 때 아내가 얼마나 좋아했던지, 그때부터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름난 반가(班家)는 물론 시정의 여염집, 시골구석의 초가삼간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악착같이 고수해온 기본적인 틀이 여자에게 단지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악랄하고도 교묘하게 설계된 형틀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된 것은 손수 집을 고쳐보고 나서였다. 그는 오늘날까지,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에 그랬듯이 은근히 생색내지 않고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며 아내와 입장을 바꿔보며 형틀의 고의적인 불편을 고쳐나갔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 일을 해내는 동안 그는 집에 대한 애착과 아내에 대한 애착을 거의 구별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다. 아내가 임종을 지켜주리라 생각하면 죽음이 그닥 두렵지 않은 것처럼 그 집이 이승의 마지막 집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비애에 가까운 편안감이었다. 그는 특정한 종교를 가진 적은 없지만 죽은 후 영혼이 있다면 연옥쯤에 가고 싶었다. 천당은 너무 과람하고 지옥은 무서울 뿐 아니라 억울했
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 때 그는 자기보다 잘나고 남에게 이로운 사람도 수없이 봐왔지만 자기만 못하고 남에게 해악을 끼치는 사람도 수없이 봐왔기에 연옥쯤이 가장 분수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성당에 나가는 아내의 기도문 중에 연옥 영혼을 위해 비는 대목이 있는 것도 연옥에 가고 싶은 이유 중의 하나였다. 요컨대 죽은 후까지도 아내의 근심 걱정과 관심을 끌고 싶었고 아내의 정성스러운 기도에 의지해 구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곳에 있고 싶었다.
그의 소망처럼 그의 집 또한 그에게 과람하지도 아쉽지도 않았다. 겉모양이 유별나게 달라진 건 없었지만 써볼수록 영감님의 자상한 마음과 공교스러운 솜씨가 안 미친 데가 없는 집이었다. 구미구미 소일 삼던 집 고치기가 끝났다고 해서 영감님이 무료해진 건 아니었다. 식수도 할 겸 운동 삼아 약수터까지 등산을 하는 것도 그의 중요한 일과였다. 도봉산이나 북한산 관악산처럼 이름난 산은 아니지만 옛 성터가 남아 있는 아차산의 한가닥이 흘러내리면서 이룬 아늑한 골짜기 속에 그 동네는 있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아기자기하고 꼭대기엔 간단한 운동틀이 마련돼 있었지만 주봉은 아니어서 일 킬로도 안 되는 길이었다. 영감님보다 훨씬 나이 많은 노인들도 거뜬히 오르내릴 만한 만만한 산이었다. 그러나 주말에 서울서 가족 단위로 나오는 소풍객도 적지 않아서 봄이나 가을의 날씨 좋은 주말에는 골짜기에서 온종일 고기 굽는 냄새와 풍악 소리가 피어오르기도 했다. 그런 다음날이면 영감님은 으레 커다란 비닐망태를 어깨에 메고 기다란 집 게를 들고 계곡길뿐 아니라 숲속과 바위 틈까지 더듬으며 행락의 쓰레기를 주워담았다. 행락의 절정기 때는 한 행보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서둘거나 화내지 않고 며칠씩 걸려 쉬엄쉬엄 했다. 일거리가 없는 동네 노인들이 따라나서서 거들어줄 적도 더러 있었지만 그가 그걸 바란 적은 없었다. 될 수 있으면 혼자 하고 싶었다. 그게 좋은 일이라서 독차지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건 물론 아니고 쉬엄쉬엄 즐기면서 하고 싶은 그는 남들과 일의 장단을 맞춰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고 깡통 하나 비닐봉지 하나 주워담을 때마다 망할 자식들 여기가 즈네집 쓰레기통인 줄 아나, 처먹을 아가리만 가져오고 손모가지는 얻다 모셔놓고 왔남, 하는 그들의 걸찍한 욕지거리에 장단을 맞추기엔 입심이 모자라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는 가끔 그러게나 말입니다, 하는 정도의 재미없는 대꾸밖에 못 했다. 그런 애매한 동조는 그의 공무원 시절의 버릇이기도 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러게나 말일세, 윗사람에게도 아랫사람에게도 정면으로 맞서기를 피하는 데 참으로 편리한 말이었다. 그의 밥줄을 부지해온 그런 어법을 은퇴 후까지 써먹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동행이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은퇴 후의 동반자는 아내 한 사람이면 족했다. 아내는 옆에 있어도 그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부엌에서 아내를 도와 콩나물이나 파를 다틈는 일을 좋아했고, 아내와 겨끔내기로 설거지를 하는 것 또한 좋아했다. 더 좋은 건 사랑방에 앉아서 미닫이문에 달린 손바닥만한 유리를 통해 채마 밭이나 꽃밭을 돌보는 아내를 내다보는 일이었다. 산에서 약수물을 길어 나르고 행락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 그만의 일이듯이 마당의 흙을 주무르는 건 아내의 일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일을 넘보거나 간섭하지 않는 대신 저만치서 바라보면서 은근히 아꼈다.
디귿자 집의 안뜰은 볕드는 데다 장독을 보기 좋게 자리잡아 주고 나니 응달밖에 남는 게 없었다. 마당이라 부를 만한 땅은 도시의 집과는 달리 대문 밖에 딸려 있었다. 텃밭에 해당되는 땅인데 문서에 등기된 토지가 칠십팔 평이니 집과 안마당이 들어 앉은 대지를 빼면 아마 사십 평에도 못 미칠 터였다. 그러나 집이 마을의 가장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딴 집이 앞을 가로막지 않아 실제보다 훨씬 넓어 보였다. 덩굴장미 뻗으라고 엉성하게 엮어놓은 울타리 밖은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었고 그 길과 나란히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고 개울 건너로는 하천 부지라 불리는 공터가 있고는 곧 숲이었다. 정남향의 그의 집 마당에 서렇 갈대 무성한 공터와 숲이 그의 마당과 잇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공터와 숲의 사계의 변화는 절묘했다. 달라는 값을 다 주고 그 집을 산 것도 전망에 반해서였다. 그때의 그 고장 땅값으로는 터무니 없이 비싼 값이라고들 했지만 그 나름으로는 숲과 공터를 덤으로 얹어 받았다는 속셈이어서 횡재였다. 숲이란 바라보고 즐기고 수시로 드나들며 좋은 공기 마시면 그게 임자지 문서 가진 임자가 무슨 소용인가. 손님이 와도 집 자랑보다는 경치 자랑을 먼저 했다. 숲은 산자락이 치마폭 끌리듯이 평지에 밋밋하게 퍼진 형태여서 곧 조급한 경사를 취하게 돼 있지만 그의 집 앞을 훨씬 지나서부터였다. 따라서 약수가 있는 산봉우리는 그의 집에서 서쪽이 되기 때문에 해가 약간 일찍 진다는 것 외에는 전혀 그의 집을 답답하게 하지 않았다. 봄의 숲속에는 산나물이 지천이었
다. 산나물에 대해선 마을 사람들이 더 많이 알고 있어서 그들에게 배워가며 조금씩 캐다 먹는 정도였지만 봄이 끝나갈 무렵 계곡을 감미롭고 환상적인 향기로 가득 채우는 은방울꽃에 대해선 그만이 알고 있었다. 밋밋하게 웅덩이가 진 골짜기는 은방울꽃의 군생지였다. 넓고 건강해 보이는 잎 사이에 숨다시피 고개를 숙이고 피는 잗다란 흰꽃 어디에 그런 요요하고 강렬한 향기의 꿀샘이 있는지, 그 골짜기는 눈 감고도 찾을 수가 있었고 그 한가운데 들면 생전 못 빠져나가지 싶은 공포와 절망에 가까운 황후경에 빠지곤 했다. 그러나 그 골짜기의 이상한 꽃에 대해 동네 사람한테 묻는다는 건 부질없는 일이었다. 아무도 그런 풀꽃의 군생에 대해 알지 못했고 안다고 해도 시들했다. 약초도 산나물도 아닌 것은 이름 없는 풀에 불과했다. 그가 은방울꽃이란 이름은 알아낸 것은 식물도감을 뒤져서였다.
여름이 되면 숲의 푸르름엔 독이 올랐고 한낮의 햇볕이 무수한 잎의 독기와 예리한 스파크를 일으키며 작열할 때 낭자한 매미 소리를 듣는다는 건 허무의 극치였다. 그가 여태껏 의지해온 사물의 의미, 삶의 가치가 자자한 조소 소리를 남기고 증발해버리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활엽(闊葉)이 비를 맞는 소리에 어느 날 갑자기 청승이 섞이면 걷잡을 수 없이 가을이었다. 잎의 허영도 날로 고조돼 온갖 색깔로 자신의 쇠락을 위장하려 들었다. 숲이 일 년 중 가장 현란할 때였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변덕을 부릴 때였다. 그러나 한밤중 작은 바람에도 견디지 못하고 우수수 잎 떨구는 소리는 숲의 정직한 탄식이었다. 그 소리에 잠을 설치면 그는 어쩔 수 없이 밤오줌을 지린 소년처럼 막막하고 헐벗은 마음으로 안방으로 스며들어 아내의 시들고 따뜻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래도록 그 온기를 탐했다. 관능보다 진한 슬픔 때문에 발기하지 않는 노처 (老妻)의 젖꼭지에 이빨 자국을 내기도 했다.
지금은 겨울의 문턱이었다. 성급하게 벌써 눈보라가 한차례 지나가긴 했지만 숲의 마지막 잎을 떨구고, 집집의 창문을 흔들며 김장 재촉을 했을 뿐 첫눈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무에 따라 엉성하기도 하고 혹은 조밀하기도 하고, 하늘 향해 쭉쭉 뻗기도 하고 혹은 자유롭게 휘기도 한 벌거벗은 가장귀들이 망사처럼 숲속의 밋밋한 둥성이와 골짜기의 땅 모습을 훤히 드러냈다. 한때 다채로웠던 잎의 허영도 지금은 고담(枯淡)한 갈색으로 퇴색하여 대지를 향해 조용히 침잠하고 있었다. 어찌 저리 보기 좋게 헐벗을 수 있을까. 그는 겨울나무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한편 두터운 낙엽 밑에 잠들었을 은방울꽃의 뿌리를 생각했다. 사랑에서 누웠다 앉았다 책을 읽다 말다 한가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겨울숲이 제일 마음에 스몄다. 하긴 올 일 년은 봄, 여름, 가을이 다 한가했었다. 이사 온 후 처음으로 연장통으로부터 놓여날 수 있었던 한 해였으니까.
별안간 산 그림자가 숲과 하천 부지의 양지에 빗금을 그으며 침범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내가 외출하면서 한 전화벨 소리잘 들으라는 부탁 때문에 좀전에 명료하게 들은 시계 소리는 세 번밖에 안 쳤는데 벌써 해가 지려 하다니. 그러잖아도 햇볕이 감질나는 계절이었다. 그는 그의 시야의 햇볕을 한 시간도 넘게 단축시킨 산봉우리에 느닷없이 신경질이 끓어요르는 걸 느꼈다. 산그림자는 불길한 예감처럼 신속하게 피졌다. 그는 어쩌면 네 시 치는 소리를 놓친 게 아닌가 싶어 안채에다 귀를 기울이고 다음 시계 소리를 기다렸다. 안채가 멀지 않은 까닭도 있었지만 사랑방은 무엇보다도 속기(俗氣)를 멀리해야 한다는 그의 이상한 고집 때문에 전화나 시계 라디오 따위를 두지 않고 있었다. 온종일 전화 한 통 없었다면 아내는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안 왔길래 못 들었으련만 괜히 떳떳지가 못했다. 숙제 안 한 아이가 핑계를 꾸미듯이 아내의 부재중 오로지 전화벨 소리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노라고 억지로라도 생각하려 들었다.
별안간 숲속에서 한 떼의 새가 곧장 하늘로 날아올랐다. 참새일까. 가랑잎 빛깔의 새였다. 살얼음판같이 차고 반투명한 허공 어디에 그런 중력이 있었을까. 새들은 그가 보기에 날갯짓도 없이 마치 끈 끊어진 추가 곧장 낙하하듯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허공으로 빨려들었다가 미끄럼 타듯이 유연히 흩어졌다. 그가 샅샅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숲속이건만 새둥지를 본 기억은 없었다. 새들을 만난 기억도 없었다. 먹이가 있을까 해서 찾아온 타관의 새일까. 아니면 여름엔 초록빛으로 가을엔 가랑잎 빛깔로 겨울엔 백설처럼 흰빛으로 변신해 감쪽같이 숨어 사는 걸까. 어디로 간 것일까. 살얼음빛 하늘에 새들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날아오르는 새떼를 보고 느낀 섬뜩한 불안감은 감쪽같이 떨쳐질 것 같지 않았다. 그가 모처럼 획득한 평화속에도 불길한 운명들이 요변하는 새들처럼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고 숨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떨치고 일어나 날아오를지도 모른다는 사고의 비약엔 스스로도 아연해지고 말았다.
안채에서 시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네시였다. 열두시 결혼식에 간 아내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점심 얻어먹고 시장 들렀다 와도 저녁 지을 시간 넉넉할 테니 제발 뭐 해놓으려고 부엌 드나들지 마슈. 남 볼썽사나워요.”
“남이 누가 본다고…….”
혼인집에 가는 아내와 주고받은 말이었다. 아내는 자기가 부엌 일을 할 때는 영감님한테 요것조것 잔시중을 잘도 시키면서도 영감님 혼자서 부엌에서 꿈적대는 건 질색이었다. 남 보기에 궁상스럽고 처량해 뵌다는 것이었다. 단둘이만 사는 집에서 남이 누가 본다는 건지. 남이 누가 본다고, 소리는 영감님만이 하는 건 아니었다. 아내도 곧잘 그 소리를 써먹었다. 외출했다 돌아와서 쉬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저녁을 지어먹고 나면 아내는 으레 설거지는 영감님한테 맡기고 자기는 안경 끼고 다리 꼬고 앉아 석간신문을 보면서 여보 나 커피 한잔, 하고 호기 있게 외쳤다. 그는 오후엔 커피를 안 마셨지만 아내는 저녁식사 후의 커피를 가장 즐겼다. 그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라도 얼른 커피를 타다가 아내 앞에 대령하고는 특별히 맛있게 탔다고 생색을 낸 적도 있었지만 남이 보면 당신이 나를 벌어멕이는 줄 알겠소, 하고 슬쩍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럴 때 아내의 대답도 역시 남이 누가 본다고? 였다.
네시 치는 소리를 듣고 나서부터 아내를 기다리는 마음이 갑자기 다급해졌다. 아내는 그 나이에도 굽 높은 구두를 즐겨 신었고 젊은 사람처럼 또박또박 스타카토로 걸었다. 사랑방이 면한 바깥마당은 반은 채마밭이고 반은 꽃밭이었다. 지금은 서리도 이긴다는 노란 토종국화가 한 귀퉁이에 약간 남아 있을 뿐 양쪽 밭이 다 텅 빈 공터였지만 그 한가운데 통로 겸 경계선 겸해서 깐 돌 때문에 그냥 빈 밭하곤 다른 운치가 있어 보였다. 보일러를 시공하면서 필요 없게 된 구들장 중에서 반듯한 걸 골라 잇대서 깐 건 참 잘한 일이었다. 보기에 좋을 뿐 아니라 아내의 발짝 소리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났다. 그는 아내의 구두굽 소리가 경쾌하게 또박또박 스타카토로 돌길을 밟으며 가까워오는 소리를
듣는 걸 좋아했다. 아내의 걸음걸이는 이십대 적과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신혼 시절 아내는 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당당한 직업여성이었건만도 동부인해 나갈 때는 구식 여성처럼 몇 발짝 뒤에 처져 걸었다. 그러나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오는 발짝 소리는 순종적이라기보다는 맹랑하도록 당차고 자주적이었다. 그때부터도 아내는 또박또박 스타카토로 결었다. 비록 몇 발짝 처져서 따라올망정 아내의 발짝 소리를 들을 때처럼 아내를 대등하게 느낄 적도 없었다. 그는 그 대등한 느낌을 좋아했다. 잎에 떠는 빗소리를 즐기려고 초당 앞에 한 그루 오동나무를 심은 옛 선비가 들으면 시러베아들놈이라 비웃을 일이나 그는 생전 늙지 않는 아내의 구두 발짝 소리를 들으려고 그의 앞마당에 돌길을 깔았나보다. 창호지문에 달린 유리를 통해 돌길을 걸어오는 아내의 상반신을 엿보는 것도 아내를 반기는 낙 중의 하나였다. 아내는 마치 보이지 않는 줄이 위에서 양쪽 귀를 수직으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고개를 거만하게 곧추세우고 결었다. 그러면서도 고갯짓이 부자연스럽거나 경직되지 않고 유연해서 자신 있는 모델처럼 보였다. 옷이나 장신구에 구애되지 않는 타고난 듯 몸에 밴 아내의 떳떳함과 당당함을 바라본다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었다. 여태껏 호강은 못 시켰어도 남한테 비굴하거나 아쉰 소리 한마디 안 하고 살 수 있도록 세파로부터 아내를 지켰다는 자부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자부심이란 단지 그가 책임져야 할 몫에 대해서일 뿐 그게 아내의 전부가 아니란 걸 안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실상 아내에게 그가 책임질 수 없는 다른 얼굴이 있다는 건 그에게 적지 않은 사건이요 충격이었다.
새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새들의 비상은 자의 였을까. 새보다 힘세고 흉포한 짐승이 새들을 위협했을지도 모른다. 그럴 리는 없었다. 그는 숲속 사정을 손바닥처럼 빤히 안다고 여기고 있었고 여태껏 토끼 한 마리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저 사는 일에 대해서도 한치 앞을 못 내다보는 주제에 어찌 새들의 삶 속의 복병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있으랴.
그의 집엔 방이 넷이다. 원래는 안방, 건넌방, 아랫방 셋이었는데 아랫방 옆에 붙은 광을 터서 크게 넓히고 ˙바깥마당 쪽으로 마루를 깔아 사랑채의 규모를 갖추자 아내가 별안간 샘을 내면서 자기도 따로 방이 하나 있어야겠다고 했다. 사랑이 남편의 방이라면 안방은 아내의 방이 되련만 아내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뉘 집이건 안방은 개인의 방이 아니라 식구들의 방이라는 것이었다. 식구가 단둘밖에 안 된다고 해도 예외일 수 없다는 아내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는 사랑 아랫목에 맏며느리가 시집올 때 예단으로 해온 보료를 깔아놓고 거기서 뭉그적대다가 그대로 아침까지 자버리는 적도 있었지만 대개는 안방에 들어가 잤고 또 그래야만 다음날 개운했다. 물론 옷도 안방에서 갈아입었고 밥도 안방에서 먹었다. 부엌은 입식으로 만들었지만 양주가 다 걸상에서 밥 먹는 건 질색이어서 상을 봐다가 안방에서 겸상하고 편안히 앉아서 먹었다. 아내가 사랑에 볼일이 있어 나갈 땐 그 볼일이 물렁물렁한 연시를 들이밀어준다든가 인삼차나 유자차를 한잔 타 내갈 때라도 꼭 밖에서 인기척을 내고 미닫이문을 연었지만 그는 그런 절차 없이 수시로 안방에 드나들었다. 그러니까 안방이 아내 개인의 영역이란 생각이 없었고 그 생각은 앞으로도 고쳐질 가망이 없었다. 아내는 아주 작아도 좋으니 아무도, 영감님일지라도 노크 없이는 못 들어올 그녀만의 방이 갖고 싶다고 했다. 건넌방이 남아 있었지만 손님 방으로 비워놓고 있었다. 묵어가는 손님이 자주 있는 건 아니었지만 사남매나 되는 아들딸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으니 그들이야말로 늘 예비하고 있어야 하는 상객 (上客)이었다. 건넌방을 분통같이 꾸며놓고 정결한 비단 이부자리와 자식들이 처녀 총각 땐 아끼다가 결혼하면서 헌신짝처럼 버리고 떠난 책이나 수집품 취미생활의 흔적 같은 것들을 정리해 갖춰놓고 쓸고 닦는 일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는 것은 아내의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다. 결국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선 방을 하나 새로 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행히 부엌이 필요 이상 넓었다. 인근 산에서 나무를 해다 땔 때 지은 집이라 부엌이 나무광을 겸하고 있었다. 부엌을 입식으로 고치면서 나무광을 떼어내어 방을 만들고 아내의 소원대로 노크를 할 수 있게 도어를 달고 나니 방이 어두워 뒤란 쪽으로
창을 크게 냈다. 한 평이나 겨우 될까 말까 한 골방이었다. 그러나 그가 노크를 해야 할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아내를 찾을 때 아내가 그 안에 있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다는 건 공연한 심술이었을 뿐 정말 필요해서 그런 건 아닌 듯했다. 언젠가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무심히 그 골방 도어를 밀어본 적이 있었다. 안을 엿볼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고 잠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내가 노크할 수 있는 문을 특별히 강조할 때 그는 한술 더 떠서 안에서도 밖에서도 손쉽게 잠글 수 있는 손잡이를 달아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어는 슬며시 열렸다. 방 안은 지나치게 검소하고 쓸쓸했다. 문과 반대쪽에 난 창은 커튼도 없이 노출돼 있어 좁은 뒤란에 괸 어둠과 옆집과의 사잇담의 균열을 음습한 추상화 액자처럼 가득 담고 있었다. 벽 쪽으로 놓인 다락에서 꺼낸 듯한 투박한 반닫이 하나가 그 방의 세간살이의 전부였다. 반닫이 위쪽 벽에도 십자고상이 걸려 있고 반닫이 위에도 성모상과 성경책이 놓여 있었지만 그가 보기엔 그런 것들은 아내의 신심과는 무관한 것들이었다. 아내는 몇 년 전 친구의 인도로 영세를 받긴 했지만, 영세받을 때 별로 달가워하지 않던 그가 되레 그러려면 뭣하러 영세를 받았느냐는 핀잔을 줄 정도로 어쩌다 한 번씩이나 성당에 나갔다. 그 방에 있는 성물도 영세 때 대모로부터 받은 후 가까이 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아마 자기만의 방을 꾸미려고 자기만의 물건을 찾다보니 그것밖에 없었으리라 싶어 아내의 빈곤이 측은하게 여겨졌다. 들어가볼 엄두도 흥미도 나지 않아 문을 닫으려다 마지막으로 눈에 띈 것 때문에 그는 화들짝 놀랐나. 반닫이 위에 촛대도 없이 맨몸으로 서 있는 두 자루의 초 때문이었다. 아마 금년 부활절 때였을 것이다. 오랜만에 성당에 갔다 온 아내가 가방에서 미사포랑 성가책이랑 꺼내놓고 나서 백지에 싼 묵직해 보이는 걸 꺼내기에 마침 시장했던 그는 성당에서 먹을 걸 주었나보다고 생각했다. 끌러보니 아이들 팔뚝 굵기의 양초 두 자루였다.
“먹을 거나 주지 겨우 이런 걸 주어?”
“주긴요, 샀어요. 먹을 건 여기 있잖아요.”
아내는 가방에서 껍질을 은종이 금종이로 장식한 달걀을 꺼내 놓으며 말했다.
“예전처럼 정전이 잦은 것도 아닌데 초는 뭐 하러 사누. 얼마야?”
“한 자루에 천원씩이에요.”
“비싸긴.”
“성당에서 파는 거니까 이익이 남아도 좋은 일에 쓰겠죠 뭐.”
“그럼 이 달걀도 샀겠네.”
“네에, 그것도 산 거예요. 오늘 당신 좀 이상하구려. 왜 그렇게 공짜를 받쳐요.”
그러면서 그때 주섬주섬 치운 양초가 거기 있었다. 아내가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보통 양초가 아니라 축성받은 성촉이라는 건 막연히 알고 있었으니 십자고상 아래 성모상 앞에 있다는 게 조금도 놀라울 게 없었지만 언제 그렇게 불을 켰을까. 남아 있는 길이가 겨우 엄지손가락만밖에 안 됐다. 그는 보아서는 안 될 아내의 프라이버시를 훔쳐본 것처럼 민망했고 가슴이 울렁거렸고 부도덕감마저 느꼈다. 그러나 아내가 그 방에서 몰래 불 밝히고 뭘 하나까지 보고 싶다는 궁금증의 유혹은 사믓 강렬했다. 그후 며칠 동안 그는 망을 보듯 아내의 동정을 살피다가 마침내 좁다란 뒤란에서 불 밝힌 아내의 골방을 들여다볼 수가 있었다. 아내는 반닫이 위에 촛불을 밝혀놓고 방바닥에 꿇어 앉아 무엇인가를 간절히 빌고 있었다. 밖이 어두웠기 때문에 그는 구태여 몸을 숨길 필요 없이 아내를 관찰할 수가 있었다. 그는 일부러 택시 속 같은 데 흔히 걸려 있는 ‘오늘도무사히’ 를 비는 소녀의 모습을 잡은 시선과 같은 각도에서 아내를 바라보려고 했다. 각도뿐 아니라 기도에 대한 그의 상상력도 그 소녀에 대한 심미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기도할 때는 누구나 용모의 미추와는 상관없이 아름다워 보이려니 하는 기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의 얼굴은 웃는 것도 같고 우는 것도 같았다. 너무 처참하게 구겨져 있어서 갈가리 찢어진 사진처럼 그가 알고 있는 무뚝뚝하고도 도도한 아내의 얼굴로 다시 뜯어맞출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기도라기보다는 너무도 비천한 아부였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저리도 비굴하게 빌붙는 것일까. 그가 있는 자리에선 십자고상도 성모상도 잘 안 보였지만 신도 아내의 추악한 아부에는 얼굴을 돌리고 있을 것 같았다. 아내의 뜻밖의 얼굴은 .그에게도 뜻밖의 천박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혹시 아내가 그가 모르는 거액의 빚을 걸머지고 어쩔 줄을 모르는 거나 아닐까. 아니면 서방질을 하고 나서 잘못 걸려든 젊은놈한테 협박을 당하고 있든지. 그날 밤 그는 훔쳐본 아내의 얼굴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다음날도 어지러운 꿈자리처럼 그 얼굴은 그를 뒤숭숭하게 했다. 그가 애써 뜯어맞출 필요 없이 아내의 얼굴이 평상시의 표정으로 돌아와 있는 것도 기분이 나빴다. 그는 아내의 이중성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어느 날 짐짓 자연스럽게 그 얘기를 할 꼬투리를 잡았다. 아내를 도와 오순도순 아침 설거지를 하고 나서였다. 담배를 피워물자 아내가 질색을 했다. 하루 한 갑씩 피우던 걸 아내의 성화로 다섯 개비까지 줄였는데 아내는 아주 끊게 할 작정인 것 같았다. 콜록콜록 헛기침을 해가며 유난을 떨었다. 그는 부엌으로 난 아내의 골방문을 열면서 능청스럽게 말했다.
“이 방 이거 꾸며달랠 땐 언제고 당신이 안에서 특별히 하는 일도 없잖아. 내가 끽연실로 쓸까봐.”
“끽연실 좋아하시네. 내가 왜 안 써요. 거긴 내 기도실이란 말예요. 함부로 담배연기 피우지 말아요.”
“기도실? 당신이 기도를 한단 말야? 성당에도 한 달에 한 번이나 갈까 말까 한 당신이.”
“글쎄 말예요. 당신 보기에도 우습죠?”
아내가 기도에 대해 숨길 뜻이 전혀 없어 뵈는 게 그에게는 뜻밖이었다. 그래도 그는 기도의 제목까지 알아내기 위해 미리 꾸민 각본대로 엄지손가락 길이밖에 안 남은 초를 보고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이 초 이거 부활절날 사온 초 아냐? 그러니까 당신 그 초가 이렇게 닳도록 기도를 했단 말야, 정말?”
“그렇다니까요.”
아내는 무안한 얼굴을 했지만 말 못 할 고민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도대체 뭘 그렇게 매일 빌 게 있어. 남편한테도 의논 못 할 고민이 있단 얘기 아냐, 그건.”
“죽고 사는 건 사람의 소관이 아니니까요.”
“그건 또 무슨 해괴한 소리야. 우리 둘 중의 하나가 죽을병이라도 들었단 소리야 뭐야.”
“그게 아니구요. 내가 허구한 날 비는 한 가지 소원은 우리 식구가 순서껏 죽게 해달라는 거니까요.”
“순서껏?”
“네, 우리 부부가 퍼뜨린 아들딸들과 그 애들이 짝을 맞아 다시 퍼뜨린 손자들 중 우리 직계 식구들 사이의 죽음만이라도 태어난 순서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빌 때처럼 마음이 간절해질 때는 없다우. 그 밖의 욕심은 아예 부려본 적도 없건만 너무 욕심 많다 하실 것 같아 내가 얼마나 열심히 알랑거리는지 아마 당신은 모를 거유.”
그가 엿본 건 결코 아내의 비밀이 아니었다. 아내가 그에게 감추거나 속이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에게 뭔가를 음흉하게 감추고 있는 건 그의 아내가 아니라 현재 그가 누리고 있다고 믿는 유유자적인지도 몰랐다.
그가 장가들 무렵의 처가 식구들은 참척을 두 번이나 겪은 노인들과 청상과부들로 되어 있었다. 장인은 일제 말기에 군속으로 근무하던 일본 지방도시에서 폭사를 했고 국군 장교이던 처남은 6·25사변 중 전사를 했다고 했다. 처가 식구 중에서 부부가 해로하고 있는 건 아들과 손자를 차례로 앞세운 처조부모뿐 장모도 처남의 댁도 과부였다. 특히 혼인한 지 일 년도 안 돼 그 지경을 당하고 유복자를 낳아 기르고 있는 처남의 댁은 아내와 동갑이어서 그 창창한 젊음이 볼수록 애잔했다. 자식이나 손자를 앞세우지 않은 노인이 오히려 드문 전시(戰時)라 그도 그런 처가 형편을 그닥 흉 된다고 여기지 않았는데 아내는 그렇지 못했나보다. 난리가 끝난 후에도 순서를 어긴 죽음은 그 집을 떠나지 않아 장모가 오십도 안 된 나이에 먼저 세상을 뜨고 나서 그 이듬해 팔순을 바라보는 처조부가 뒤따랐다. 친정어머니의 너무 이른 죽음에도 좀 면구스러울 정도로 태연하던 아내가 할아버지의 상중에는 통곡통곡하면서 단장의 넋두리까지 했다. 일 년만 일찍 돌아가셨으면 좀 좋아요. 네, 할아버지 왜 이제야 돌아가세요. 세상에 이런 해괴한 애통도 있을까. 그러나 몇 년만 더 살았으면 하고 아쉬워하는 애통보다 몇 배 더 애간장이 끊어지는 애통이어서 순서껏 죽지 못한 집안 꼴에 대한 아내의 맺힌 한의 덩어리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후 처가에는 다시는 순서를 어긴 죽음이 생겨나지 않았고 유복자인 처조카가 자수성가해서 가계를 잇고 있다. 아내만이 아직 그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건 국민학교 때 만들었다는 조각보나 궤불 따위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때때로 꺼내보면서 어떤 감회까지를 이르집어내려고 시도하는 집요한 반추벽 (反芻癖) 같은 거여서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상처는 그의 탓이 아니었고 그가 어째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런 아내가 측은했다.
아내가 돌아오고 있었다. 또박또박 스타카토로 디딤돌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어린애처럼 반색을 하며 미닫이를 열었다. 아내는 씩씩해 보였지만 시내에 나갔다 들어올 때의 버릇으로 지친 시늉을 했다.
“뭘 보고만 계슈. 이 보따리 좀 받으시잖구.”
그는 얼른 뎃돌로 뛰어내려가 아내의 보따리를 양손으로 받았다.
“주책없이 뭘 이렇게 많이 샀소.”
“잔치 끝나고 친구들이 가락시장에 구경 간다기에 따라가서 수삼도 좀 사고 과일이랑 생선도 좀 샀어요. 어찌나 시장이 큰지 아마 이십 리 길은 돌아다녔나봐.”
“싸면 얼마나 싸다고 그 먼 데까지 갔다 와. 집에서 눈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 생각은 쬐끔도 안 하고, 쯧쯧.”
그는 짐짓 아내를 나무라며 우줄우줄 앞장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 양반이 별걸 다 갖고 트집이셔. 당신은 내가 집에서 눈 빠지게 기다린다고 퇴근시간 전에 집에 오신 적 있수?”
“아, 돈벌이 나간 사람하고 돈 쓰러 나간 사람하고 같아?”
“돈 쓰는 일이 훨씬 더 어려워요. 알지도 못하고.”
“내가 벌어놨으니까 쓰지, 어디서 거저 난 돈 쓰남.”
“난 돈을 벌어보기도 하고 써보기도 했으니까 확실히 말할 수 있는데 쓰는 게 버는 것보다 얼마나 어렵다구요.”
“알았어. 알았으니 괜히 기운 빼지 말아요.”
그는 아내와의 입씨름이 즐거워서 생기가 나면서도 일단 한번 져주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보따리를 끌렀다. 옷을 갈아입고 난 아내가 민첩하게 사온 것들을 분류해서 다듬고 씻고 절이면서 말했다.
“우리 동네가 그린벨트에서 해제된다고들 해요.”
“공연한 소리. 땅값 좀 오르면 무슨 수가 나겠다고 이 동네 사람들은 꼭 남산골 샌님 역적 바라듯 그 희망에 산다니까.”
“이 동네 소문이 아니라 오늘 그 방면에 유력한 남편 가진 친구한테 들은 거예요.”
“선거 때마다 나는 헛소문 아니구?”
“아니라니까요. 그 친구는 우리가 이 집터 말고 밭뙈기라도 더 가지고 있는 줄 아는지 당신이 겉으로는 어수룩해 뵈도 선견지명이 있다고 그러대요. 약간은 샘이 나는 투로요.”
“다시는 이사 같은 거 안 하고 싶은데.”
“그린벨트 해제되면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 살게 되겠지. 사는 사람을 내쫓게야 될라구요.”
“그럼, 나더러 저 숲을 불도저로 갈아엎고 집이 들어서는 꼴을 보란 말요. 말도 안 돼. 내 방에서 숲을 볼 수 없게 되다니.”
“그래도 난 우리집 값이 오른다고 생각하면 신이 나요. 집을 줄여만 먹었는데 이번엔 늘여갈 수가 있잖아요.”
“오오라, 이제야 당신 본심이 드러나는군. 이 집 팔아서 서울에 아파트로 갈 수 있을까 해서 그러지. 꿈도 꾸지 말아요. 이까짓 집이 그렇게 오를 리도 없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도 안 갈 테니까.”
그는 언성을 높여 역정을 냈다. 그의 눈앞에서 곧장 숲을 떠나 허공으로 빨려들어가던 새떼 생각이 났다. 예감에 있어선 미물일수록 영물이라니까, 그들을 놀래킨 건 짐승이 아니라 미래의 불도저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이득을 본다는 계산보다는 길들이고 정들인 걸 억울하게 빼앗긴다는 상실감이 앞섰다. 아내는 당신 마음 내가 안다는 따뜻하고 너그러운 눈길로 그를 감싸며 다독거리듯이 말했다.
“넘겨짚지 마슈. 내가 언제 아파트가 좋댔어요. 우리 이번엔 큰마음 먹고 뎌 멀리 나갑시다. 어디 간들 저만한 숲, 저만한 산 없겠수. 이 땅에서 마을 들어설 만헌 데는 다 엇비슷하게 생겼으니 염려 마세요.”
“당신 그게 정말이오?”
“당신은 숲과 산과 개울물 보고 이 집에 반했다지만 난 시내에서 멀고 교통불편한 게 첫눈에 듭디다. 내 욕심이 훨씬 적으니 당신 좋고 나 좋은 고장 골라잡기도 쉬울 거 아뉴.”
“그럴 리가. 교통이 불편해서 마음에 들었다는 건 억지야. 비꼬는 거라구.”
“당신하고 나하고는 시내에서 멀찌거니 교통이 불편한 데 살아야 마음이 편해요. 내 말뜻 아직도 못 알아들으시겠수. 멀리 있는 자식은 엎어치면 코 닿을 데 있는 자식처럼 매일매일 기다리지 않아도 되잖아요. 자식들 쪽에선 또 얼마나 편하겠수. 부모님이 시골 사셔서 차주 못 찾아뵙는다는 핑계가 생겼으니. 오잖는 자식 기다리는 것처럼 지치고 치사한 일이 있는 줄 아슈. 여기 와서 그 못할 노릇 안 하니 살 거 같아요. 다시는 안 하고 싶은 게 그 노릇이라우.”
아내가 쓸쓸하게 웃으며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는 얼른 아내의 눈길을 피했다. 아내와의 공감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아내의 장보따리에 손을 넣어 남은 걸 뒤져냈다. 구럭같이 생긴 망태 밑에는 푸성귀에서 떨어진 흙과 막대기가 달린 동그란 알사탕이 몇 개 더 있었다.
“그건 철우 몫이에요. 건드리지 마세요.”
철우는 담 너머 집에 세들어 사는 젊은 부부의 첫아이였다. 한참 예쁠 때여서 즈이 엄마가 일손이 바쁠 때는 아내가 즐겨 데려다가 봐주었다. 남편이 가구공장에 다닌다는 철우 엄마는 여간 바지련하고 눈썰미 손재주도 있어서 일 년 내내 일거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 여자의 소원은 부부가 같이 벌어서 한시바삐 셋방이라도 좋으니 특별시 내에서 살아보는 거였다. 요새 그 여자는 앙고라 스웨터에다 반짝이는 구슬로 꽃이나 공작의 날개 같은 걸 수놓는 부업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툭하면 그 집에 놀러갔다.
그 꽃 하나 놓는 데 얼마나 받수. 애걔걔 고거밖에 안 줘? 앞 가슴에 그 꽃이 들어가니까 값이 곱절은 더 나가 보이는데. 곱절이 뭐야, 이런 건 배우들이나 사 입는 몇십만 원짜리로 둔갑을 했구먼.
이렇게 그 여자의 작업을 신기해하고 나서 아기를 어르다가 슬며시 안고 나오는 것이었다. 아기는 어려서부터 막 길러서 혼자서도 보행기에 앉아서 잘 놀았다. 그러나 아내는 그 여자의 방의 경대랑 호마이카 상이랑 쌀통, 라디오, 텔레비전 등에 골고루 내려앉아 미세하게 꼼작대는 털먼지를 보면 불현듯 아기를 그 방에서 데려나오고 싶어졌다. 그 역시 아내가 그 집에 가서 오래 머물러 있는 것보다 아기를 데려오기를 바랐다. 아기는 순하지만 낯은 좀 가리는 편이어서 그에게 안기면 꼬집는 것처럼 울었기 때문에 그는 주로 아내와 아이가 어우러져 노는 걸 바라보기를 즐겼다. 어찌나 입을 헤벌리고 바라보았던지 여보 당신 침 흘리고 있는 거 아뉴? 하고 놀리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아내는 아기의 군것질까지 대고 있었다. 과일 같은 건 집에 있는 걸 저며도 멕이고 갈아서도 멕이면 되는데 언젠가 한번 신장개업한 쇼핑 센터에서 덤으로 얻어온 막대기가 달린 알사탕을 아기가 환장을 하게 좋아하는 걸 보고 나서는 시내에 나갈 때마다 그걸 몇 개씩 사다두고 아기가 보챌 때마다 하나씩 주고 있었다. 지난 여름이던가, 아기의 아랫니가 두 개 솟아오른 걸 보고 그가 밥풀이 붙어 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아내는 당신은 왜 그렇게 멋이 없으시우, 하고 구박을 하고 나서 분홍빛 언덕 위에 양이 두 마리 나타난 것 같다고 멋을 한껏 부렸었다.
그는 아내가 사온 막대기사탕을 삼층장 서랍에다 갖다두면서 말했다.
“밥풀떼긴지 두 마리 양인지 당신이 그렇게 예뻐하던 이빨 썩으면 어쩔려고 맨날 이렇게 단걸 사와요, 사오길. 가뜩이나 애 봐준 탓은 있어도 낯나는 법은 없다는데.”
“덧니니까 썩어도 상관없어요.”
“당신 남의 애라고 너무 무책임힌 거 아냐?”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낯나라고 봐주는 건 아네요. 그냥 예뻐서 내 맘대로 예뻐하고 싶어서…… 왜 그러면 안 돼요.”
“그렇게 아기를 좋아하면서 왜 손자나 외손자들한테는 그렇게 서툴고 쓸쓸하게 굴어? 걔들 에미 애비가 당신 이러는 거 보면 속으로 섭섭해할 것 같아.”
“중하기로 치면 내 손주를 남의 애에다 대겠어요. 그렇지만 예뻐하는 건 정작 내 손주한테는 잘 안 돼요. 주눅이 들어요.”
“주눅이 들다니 거 참 별일이구먼.”
“당신도 그러시면서 뭘 그래요. 즈이 에미 애비들이 하도 유난스럽게 제 새끼들을 위하니까 자연히 우리는 주눅이 들어 어쩔 줄을 모를 밖에요. 비싼 그릇에 물 마시기도 겁이 나는 촌스러운 마음인지 모르지만 내 손주는 한번 안아보려다가도 별안간 안는 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쩔쩔매게 된다니까요. 당신이나 나나 참 변변치도 못하죠?”
“왜 나까지 싸잡아서 등신 취급을 하려고 그래. 나는 내 손주한테나 철우녀석 한테나 똑같이 쩔쩔매지만 당신은 그게 아니 잖아.”
“참 오늘 전화 온 데 없어요?”
아내가 딴청을 부렸다. 그가 없었다고 말하고 나서 돌아본 문갑 위에선 수화기가 대롱대롱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 철우 짓이었다. 오늘도 아내는 아침나절에 한 차례 철우를 데려다 놀아주고 나서 외출을 한 것이었다. 아내도 동시에 그것을 보았다.
“온종일 전화벨 소리가 한 번도 안 들리면 한 번쯤 들어와보시잖구. 아이고, 이 끈적거리는 것 좀 봐. 누가 제 녀석 짓 아니랄까봐.”
수화기를 올려놓으려다 말고 아내는 질겁을 했다. 아마 사탕을 먹던 손으로 전화 장난을 한 모양이었다. 아내는 물수건으로 수화기를 닦으면서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방 싱글벙글이었다. 철우가 장난치는 모습이 눈에 선한 모양이었다. 알사탕 한 개를 다 빨아먹고 나면 으레 철우의 열 손가락은 서로 엉겨붙을 만큼 끈끈해졌다. 녀석도 불편한 건 알아서 끙끙대며 아내 앞에 두 손을 내밀었다. 그럴 때 아내는 물이나 물수건으로 닦아줘도 될 것을 긴 혀를 내밀어 열 손가락의 것을 말끔히 핥아먹었다. 너무 샅샅이 핥아서 꼭 단것에 걸신들린 사람 같았다. 아내도 아기도 그 일을 얼마나 즐긴다는 걸 표정으로 알 수가 있었다. 매우 육감적인 교감이었다. 노소(老少)의 그런 천진한 쾌락을 바라보면서 그는 아릿한 슬픔을 맛보곤 했었다.
다 닦은 수화기를 올려놓자마자 벨이 울렸다. 온종일 괴었던 게 한꺼번에 울리는 것처럼 사정없이 강렬한 소리였다. 아내는 수화기를 드는 대신 에그머니나, 하면서 한 걸음 물러앉았다.
“원 사람도 얼뜨긴. 전화 소리 생전 처음 들어보나.”
이러면서 대신 전화를 받는 그도 까닭 없이 가슴이 내려앉아 목소리가 떨렸다.
“여보세요.”
“사돈어른이시군요. 도대체 무슨 전화를 그렇게 오래 쓰세요. 큰일났어요. 아, 이 노릇을…….”
말끝을 못 맺고 엉엉 우는 소리가 났다. 옆에서 아내는 사색이 되고 그는 정신을 죽어라 가다듬고 울음소리를 뿌리치려 들었다.
“뉘십니까? 댁은 도대체 뉘십니까?”
잘못 걸려온 전화일 가능성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울음소리가 뚝 그치더니 악에 받친 듯한 쇳소리가 들렸다.
“보람이 외할머닙니다. 보람이 할아버님 아니신가요?”
보람이는 그의 맏손자였다.
“예, 그렇습니다만.”
“시상에 이 판국에 사돈어른은 어쩌면 이렇게 태평이십니까? 오늘 보람이네 무슨 일 일어난 줄 아세요? 온 식구가 차 사고를 당했어요. 식구들을 다 태우고 나가서 고속도론가 국도에서 타이탄을 들이받았대요. 아이고, 내 딸 불쌍해 어쩌나. 그놈의 자가용이 웬수라니까.”
“여보세요, 여보십시오. 암만 해도 전화 잘못 거신 것 같습니다. 즈이 자식은 아직 자가용이 없거든요.”
그는 아직도 그 유일한 희망에 매달려 있고 싶었다.
“아직 모르고 계셨군요. 한 보름 됐어요. 걔네가 차 산 거.”
그는 스르르 수화기를 떨어뜨리고 사색이 되어 떨고 있는 아내를 끌어안았다. 아까처럼 대롱대롱 매달린 전화기 속에서 울려나오는 사돈마님의 울부짖음은 마치 귀에 바싹 갖다댄 확성기 소리처럼 뇌수를 사청 없이 짓이겼지만 무슨 뜻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죽은 사람은 운전자 하나래요. 딴 식구들은 다 중상이구요. 여기 영감님은 운전자가 에미였는지 애비였는지도 미처 확인해 보지 않고 달려가신 후 아직 연락이 없답니다. 에미도 운전을 하거든요. 면허도 먼저 땄으니 에미가 운전대 잡았는지도 모르죠. 저도 같이 갈 건데 댁에 연락이 안 돼 여직껏 전화통 붙들고 있느라고. 병원은 이천에 있는 한외과래요. 듣고 계십니까?”
그들은 오로지 전화기가 무서워 떨고 있는 것처럼 사색이 되어 겁먹은 눈으로 전화기를 바라만 볼 뿐 아무도 그걸 만지거나 올려놓을 엄두를 못 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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