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비처럼]
농원을 구입할 당시에는 아로니아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원래 주인이었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연로하셔서 관리가 잘되지 않아 죽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비닐하우스 시설을 설치해 블루베리를 심을 계획이라서 아로니아를 천 평 이상 파내야 했다.
우리 농원이 아닌 곳에, 12월 중순이지만 아직도 환하게 이파리가 살아있는 아로니아가 보인다. 멀리서 보면, 맑고 깨끗한 하늘을 배경으로 빨간 불꽃같기도 하고, 붉은 나비 같기도 하다.
뜨거운 심장을 가진, 붉은 마음이 보이는 것 같다. 불꽃처럼 나비처럼, 아로니아는 무슨 말을 들려주고 있는 것일까? 이 강추위에도 붉은 그 마음으로 승리하리라~♡♡♡
[나무의 민낯]
무성하던 잎들이 모두 떨어져 버렸다. 평생 가지에 붙어서 살랑살랑 흔들거리는 줄 알았던 잎새들이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하나 둘 나무를 떠나가더니 센 바람이 휘몰아치던 어느 날, 약속이나 한 듯 우수수 떨어졌다.
그래도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가지를 붙잡고 있던 몇 장의 잎새들도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나가떨어져 내렸다. 나무가 살고자 스스로 잎들을 떨어뜨렸다고 해도 의미가 크게 달라질 것은 없는 듯하다. 아직도 몇장 붙어 있는 나뭇잎들이 보인다. 얼마남지 않았다. 촘촘히, 치밀하게 바람이 오고 있다.
앙상한 나뭇가지 참, 쓸쓸하다~~
[철 모르는 장미]
동짓달에 핀 장미를 만났다. 시절도 모르고 꽃을 피웠다. 지금이, 이럴 때냐고! 세 살짜리 아기도 알 수 있는 것을 빨간 얼굴을 하고, 천연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수많은 눈송이가 쏟아져 내리고 여기저기서 바람이 불고 있다. 철 모르는 장미여!
곧 시들어 갈 네 운명을 원망할 생각은 하지 말아라! 시대를 모르고, 왜 이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고, 날씨는 춥고, 사방에서 바람은 불고, 꽃 한 송이를 지켜주는 이파리들도 점점 떨어져 내리고... 네가 스스로 이 추운 시대에 피운 꽃이라는 걸 기억하거라!
[탈탈탈 확실하게~]
콩타작을 했다. 1차로 털어놓고, 비닐하우스에 다시 널어서 말렸다. 콩타작은 날씨가 좋은 한낮에 환한 상태에서 해야 한다고 엄마가 누차 말씀하셨다. 흐린 날에는 조용하던 콩대들에서 날씨가 좋은 날에는 타닥타닥 콩깍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바빠서 미뤘던 콩대.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흐린 날이 많아서 서둘러 2차로 콩대를 털었다.
야무지게 털어서 빈 깍지들을 노란 콘티 박스에 담아서 바깥의 밭으로 운반하려고 차곡차곡 담아 두었다. 타닥타닥, 콘티 박스 속에서 속닥이는 소리. 앗, 아직도 털리지 않은 콩깍지가 많다. 샅샅이, 낱낱이, 더욱더 꼼꼼하게 털어야겠다.
옆에 바짝 말려 두었던 들깨는 조그만 흔들어도 우수수 우수수 깨알이 쏟아진다. 비결을 알았다. 물기 한 방울 없이 바짝 말릴 것!!!
[가지가 너~~ 무 많아요]
복숭아나무 결과지를 만들기 위한 동계전정은 2월 초가 적기라고 한다. 늦가을에 유인작업을 하면서 가지치기를 했던 나무를 전문가가 점검해 주셨다.
"필요 없는 잔가지가 너~무 많아요. 모두 열매가 열릴 것 같지만, 이대로 두면 서로 엉켜서 좋은 열매를 딸 수 없어요."
전문가는 유인줄에서 가깝게 긴 가지를 잘라야 한다고 말한다. 가지의 등 부분에 있는 굵은 가지는 자르고, 양옆으로 간격을 줘서 겹치지 않도록 공간을 여유 있게 만들어 줘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모두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듯 우후죽순 올라온 가지들 중에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진짜만 살려 둬야 한다.
'직녀에게'라는 시를 쓰신 문병란 시인님이 한 문학행사에서 "가짜는 정말 진짜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잘 살펴서 진짜를 잘 선택해야 한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직접 들었다. 진짜를 잘 선택해서 살려 두고, 필요 없는 가지들은 과감하게 잘라내야 한다. 나무 전체가 건강하게 자라서 최고의 복숭아를 생산해 낼 수 있도록 신중 또 신중해야겠다.
첫댓글 농장은 겨울에도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빈 가지에 담긴 사연, 철 잃은 꽃 송이, 벌써 움트기를 준비하는 과일나무들...
농부의 세상 읽기는 곳곳에 눈을 돌려 자연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하네요.
나무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조용히 있는 것 같은데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휴면기라고는 해도 벌써 꽃눈과 잎눈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신기해서요~ 가지치기를 하면서도 꽃눈이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있습니다. 농사와 세상일을 연결지어 보고 있습니다. 흙속에 살지만, 세상사에 등돌리고 살 수는 없는 상황이라서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