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10 전북지방철우회 운영회 이존구선배님영상
자유인 조동화의 신조는 삶의 여로에서 이세상 살아가는 것이 모두가 “부질없다” 하면서 그냥 하루 하루 1만보 걷는일로 움직이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조동화 홍안의 시절에 철도에 부임하였건만 세월을 붙잡지 못해 석양의 노을을 즐기며 삽네다.
삶의 뒤를 돌아보니 이원형 선배님이 카톡으로 보내온 글을 인용하며 “인생은 일장춘몽이라 하룻밤 꿈같다고 누가 말했던가. 흐르는 세월따라 잊혀진 그얼굴들이 왜 이렇게 다시 떠오르나!
정다웠던 그 눈길 그 목소리 어딜갔나?.............”
화무십일홍!
청춘은 감쪽같이 지나가 옛시절이 그리워
4년전 영상 감상합세다.
아 옛날이여!
2019/4/10 익산철우회관에서 전북지방철우회 운영회(이사회)가 개최되었는데, 이존구선배님께서 “언제벌써” 노래를 악보도 보지않고 열창하는 영상이 남아 있어 4년전 영상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바이 오시다.
이존구선배님은 지금도 노인복지관 노래교실 동아리 활동을 하고 계시며 1935년생으로 한국나이로 89세이시다.
이존구선배님께서 부르는 노래가사를 음미하며 황혼의 세월에 인생의 참맛을 다보고 살아야지요.
내 나이 황혼이 오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인생의 참맛을 다 보고 살아 온 지금
내 나이가 제일 좋더라
살기 바빠 가는 세월 모르고 살아 왔는데
내 나이 언제 벌써 여기까지 왔는지
언제 벌써 여기까지 왔는지
내 나이 황혼이 오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인생의 참맛을 다 보고 살아 온 지금
내 나이가 제일 좋더라
가는 세월 막을 수 없고 지는 해 잡을 수 없어
내 나이 언제 벌써 여기까지 왔는지
언제 벌써 여기까지 왔는지
살기 바빠 가는 세월 모르고 살아왔는데
내 나이 언제 벌써 여기까지 왔는지
언제 벌써 여기까지 왔는지
언제 벌써 여기까지 왔는지
4년전 개최된 전북지방철우회 운영회가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북지방철도회관에서 단합과 친목을 다지고 현안사항 토의를 진행했었지요.
참석자는
유연복 박득권 박재기 김춘성 김병철 권태군 정만철 한기택 박병윤 황헌규 정창해 김경수A 송형종 채해석 김용석 전연도 임부영 이희진 조동화 서명조 이원형 손주열 안정훈 양병옥 윤귀중 노일동 임익현 유옥봉 김동규 나동열 노기안 김세중 이존구 소재영 나종일 김문섭 임재철 김영시 김부길 국준갑
참석자명단을 살펴보니
유연복님 박재기님 정만철님 한기택님 황헌규님 정창해님 송형종님 김용석님 이희진님 양병옥님 윤귀중님 노일동님 김부길님께서는 순서도 없이 저세상으로 가시여 이세상에는 보이질 않는군요.
저세상에서는 활짝 웃으며 구름따라 세월따라 편안한 여행 즐기며 행복을 염원합니다.
조동화의 벗님들!
세월의 노를 저으며 현업을 은퇴하고 철도를 퇴직한 선후배님들은 철도를 천직으로 삼아 여기까지 오신 것을 감사히 생각하시고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빌며,
어느 시인의 말처럼 추억이란 잊어버리려 해도 잊을 수 없어 평생토록 꺼내 보고 또, 꺼내 보는 마음속의 일기장이며, 추억은 지나간 그리움의 시간들이기에 추억을 더듬어 인생의 참맛을 느끼며 살아온 지난 세월에 감사합시다.
1970년 철도청 침대원 이야기
야간열차에는 침대차가 운행되고 있었다
야간에 편안히 잠을 자면서 여행목적지까지 가려는 사람을 위하여 마련된 것이다.
침대차에는 상단과 하단이 있으며, 하단이 상단보다 요금이 비싸다.
상단은 열차운행시 차의 흔들림이 심하다.
반면에 하단은 상단보다 안정적이며, 위로 올라가고 내려오는 불편이 없다.
침대차를 처음 이용해 보는 사람은 잠을 이루기가 어렵다. 덜그락대는 열차바퀴 소리와 고속으로 달리는 진동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외로 잠을 잘 자는 사람도있다.
침대차에는 침대차를 관리하고 승객을 안내하며, 차내에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도난사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침대원이 불침번을 선다.
침대차에는 절대로 동침은 안된다
다만 6세미만의 유아만 가능하다.
1970년대 초의 일이다. 강릉에서 청량리까지 운행되는 열차의 침대차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그 침대원의 이름은 황모씨 였다. 황모씨는 걸국 서울지방철도청의 징계를 받고 파면되었다.
침대칸에 돈을 받고 동침을 허용했다는 것이 그의 죄명이다.
당연한 죄값인지도 모르겠다.
청와대 모 비서관이 강릉에 출장을 갔다 돌아올 때 침대차를 이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침대차에서 편히 잠을 자고 내일 근무에 임해야 했던 비서관은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윗간인지 옆칸인지 알 수 없었으나, 둔다한 열차소리와 더불어 이상한 남녀간의 소리가 들려와 신경이 날카로워셔 버린 것이다. 애써 귀를 막고 잡을 청해 보았으나 허사였다.
밤새 화기 나있던 그는 새벽에 청량리역에 도착하여 침대차에 서 내리려다 안녕히 가라고 인사하는 침대원을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는 밥새 잠음못 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자 침대원이 오히려 화를 내듯 말하였다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그 비서관은 침대원의 항변이 괘씸하기도 하고 은근히 화가 치밀어 그 자리에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아침에 출근하자 말자 철도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 침대원을 피면시기라고 요구했다.
그 침대원의 이름은 황모씨 였다.
황모씨는 결국 서울지방철도청의 징계를 받고 파면되었다.
침대간에 돈을 받고 동침을 허용했다는 것이 그의 죄명이다.
부정을 저지른 공무원으로서 당연한 죄값인지도 모르겠다.
비서관은 그 후 그 일은 까맣게 잊고 지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 그 비서관은 아침에 출근하다가 이상한 광
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허름한 옷차림에 한 손에는 깡통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을 매일 보게 된 것이다.
수상하게 생각한 비서관은 어느 날 그 사람을
불러 물어 보았다.
“당신은 왜 내일 여기 서있는 거요?"
그러자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으면서 “당신이 밥줄을 끊어 놓으니, 내가 같곳이 어니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소리를 들은 비서관은 내심 뜨끔 했으리라.
자초지정을 알게 된 비서관은 고심끝에 그에게 야단도 쳐보고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보았으나 허사였다.
그 침대원 황씨는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어느 날 비서관은 고심 끝에 부인과 상의하여 부인이 잘 설득해 보기로 했다.
비서관이 출근하자 부인은 황씨를 집안으로 들어오도록 권했다.
그리고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10만원짜리 수표 3장을 황씨의 손에 쥐어 주면서 생활에 보태 쓰라고 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황씨는 부인에게 물었다.
“이 돈을 정말로 저에게 주시는 것 입니까?"
“물론이지요. 가져다 생활비에 보태쓰세요."
"정발 저에게 주시는 것입니까?"
-정말 저에게 주시는 것이지요?"
이렇게 반복해서 재차 3번을 묻고는 그 아까운 수표를 갈기갈기 찢어서 마당에 화 뿌리고 마루에서 일어나 대문으로 향하면서 혼자말로 중얼거렸다고 한다.
저 아이들이 불씽 하구먼.
마루에서 놀고있는 두 아이들을 두고 한 말이다.
부인은 깜짝 놀랐다.
수표를 찢어버린 행동이며,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더욱이 황씨가 들고 있넌 깡통에서 휘발유 냄새가 역하게 풍기던 것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던 것이다.
혹시나 밖중에 우리 집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이라도 지르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을 지울수가 없었다.
운수 계통 열차승무원들 사이에 주고받는 말이 있다. “죽어도 꽥하고 죽지 그냥 죽지 않는다"고.....
하루에도 수백명씩 여객을 상대하고 항상 자신들의 행동과 일처리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철도청 윗분들이나, 감사관실 사람들, 심사사무소 직원들, 공안원들, 그뿐인가 지방철도청 감사실, 운수과 직원들, 심지어는 역 주재 형사들, 군 보안대 직원들, 어쭙잖은 신문기자들까지도 승무원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돈을 뜬어 내려는 무리들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자연히 대항 수단 또한 강해지지 않을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승무원들은 닳고 닳은 사람이 되어가고, 자기 나름대로 뒤에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소위 백을 만들어 놓곤 하였다.
누군가 돌보아 주는 사람없이는 승무원 생활이 어려웠다.
아무리 맑고 깨끗하게 일하려고 해도 사회가 용납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봉급만 가지고는 생활이 어려웠고 먹고 살 수는 있어도 체면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승무를 나가서는 밥도 사먹어야 하고, 승무원 숙소에 쳐
박혀 있기가 무료하여 다방에 가거나 술이라도 한잔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승무를 마치고 사무소에 들어와서는 열차조역이나 교번원 또는 회계담당자에게 얼마씩을 주어야 하는 것이 당시에는 관행이었다.
황씨는 얼마 후에 그 비서관이 마련해 준 직장에 취직이 되었다.
70대 전후의 우리 인생
꽃다운 젊은 날들 돌아보면 굽이굽이 눈물겨운 가시밭길
그 길고도 험난했던 고난(苦難)의 세월(歲月)을
당신은 어떻게 살아 왔는지요?
지금은 무심(無心)한 세월의 파도 때문에 밀려
육신(肉身)은 이미 여기 저기 성한대 하나 없고
주변의 아까운 지인(知人)들은 하나 둘씩
불귀(不歸)의 객(客)으로 사라지고 있는 이 때
정신(精神)은 자꾸만 혼미(昏迷)해가는 황혼(黃昏)길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힘든 세월 잘 견디며 자식(子息)들 잘 길러
부모(父母)의 의무(義務) 다하고 무거운 발걸음 이끌고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는 얽매인 삶 다 풀어 놓고
잃어 버렸던 내 인생(人生) 다시 찾아
남은 세월(歲月) 후회(後悔)없이 살다 갑시다.
인생(人生) 나이 70을 넘으면 이성(異性)의 벽이 허물어지고
가는 시간(時間), 가는 순서(順序) 다 없으니
남녀(男女) 구분 없이 부담 없는 좋은 친구만나
산이 부르면 산으로 가고 바다가 손짓하면 바다로
하고 싶은 취미(趣味)생활 즐기면서
남은 인생 후회(後悔)없이 즐겁게 살다 가요
한 많은 이 세상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없이 훌쩍 떠날 적에
돈도, 명예도, 사랑도, 미움도 가져갈 것 하나 없는 빈손이요.
동행(同行)해줄 사람 하나 없으니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다 쓰고 쥐꼬리만큼 남은 돈 있으면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다 쓰고 행여라도 사랑 때문에
가슴에 묻어둔 아픔이 남아 있다면 미련 없이 다 떨쳐버리고
" 당신이 있어 나는 참 행복합니다."라고
진심으로 얘기 할 수 있는 친구 만나
남은 인생(人生) 건강(健康)하게 후회(後悔)없이 살다 갑시다...
-옮긴 글-
인생은 두 번은 살지 못한다..
누가 그럽디다
인생을 나이별로
구분을 해보면..
10대 때는,
부모님이 가는 곳은 무조건 좋아라
따라 나섰던 나이..
인생은 신기했습니다
20대 때는,
친구들과 함께라면 무엇을 하던
어디를 가던 그냥 좋았던 나이..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흠모하는
연보랏빛 마음 인생은 무지개였습니다
30대 때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행선지를 묻지 않았던 나이..
인생은 데이트였습니다
40대 때는,
어디 한번 가려면 애들 챙겨야 하고
이것저것 준비로 걸리적거리는 게 많지만
꼭 한번 가보고 말겠다고 다짐했던 나이..
인생은 해외여행을 꿈꾸는 것 같습니다
50대 때는,
종착역이 얼마나 남았나
놓고 내리는 물건 없나 이것저것
살피는 나이..
인생은 가차여행 같습니다
60대 때는,
어딜 가도 유서깊은 역사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나이..
인생은 고적답사 여행 같습니다
70대 때는,
나이, 학벌, 재력, 외모 등
아무것도 상관없이
어릴적 동무를 만나면 무조건
반가운 나이..
인생은 수학여행입니다.
80대 때는,
이때는 누굴 찿아 나서기 보다는
언제쯤 누가 찿아올까?
기다려지는 나이..
인생은 추억 여행입니다.
드문나이 90대 때는,
지금 누굴 기다리십니까? 아니면
어딜 가시려 합니까?
아무도 오지 않고 갈 데도 없는 나이..
인생은 시간 여행입니다
인생이란,
가는 승차권은 있어도
오는 승차권이 없으니 한장만
손에 쥐고 떠나는
단 한번 뿐인 여행입니다.
인생은 되돌아오는 길이 없습니다.
인생은 다시 라는 말이 없습니다.
소풍(逍風)이라는 단어(單語)가 아주 정겹게 느껴지는 하루 어느 시인(詩人)의 시(詩)귀처럼
나 소풍 끝내고 돌아가리라! 우리 인생 삶이 별겁니까? 돈 좋아하다가, 사랑 좋아 하다가, 인생 끝 장면(場面)은 그렇게 끝이 난다니까요!!..
<詩庭 박태훈의 해학이 있는 아침 중에서>
백범 김구선생의 인생 조언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으며 늙고 나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 없다.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
칭찬에 익숙하면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고, 대접에 익숙하면 푸대접에 마음이 상한다.
문제는 익숙해져서 길들여진 내 마음이다.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산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를 수 없다. 사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내야 그곳에 이른다.
갈 만큼 갔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지 누구도 모른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한다. 또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이다.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며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
거칠게 말할수록 거칠어지고, 음란하게 말할수록 음란해지며 사납게 말할수록 사나워진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다스려야 뜻을 이룬다. 모든 것은 내 자신에 달려 있다.
===백범 김구선생의 인생 조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