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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백일장 장원작품
<초등부 저학년 운문>
산의 비밀
김해 경운초등학교 3학년 홍예림
산은 깊은 마음속에
자연을 품고 있다
동물들은 천적을 피해
조용히 숨어 있다
산은 그 비밀을
구름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고요히 나무 사이사이로
꼭꼭 숨기고 있다
휘잉휘잉 가을바람이 불어도
산은 얼굴을 붉히며
감추고 있다.
<초등부 고학년 운문>
구지봉과 수로왕
김해 분성초등학교 4학년 박지우
구지봉 구지봉
사람들이 노래를 룰루랄라 부르네
첫 번째 알에서 수로왕이 태어났네
일주일만에 쑥쑥 커서
허황후라는 사람을 만나
수로왕은 거북이처럼
장수를 했다
우리 엄마 아빠 회사에서 만났네
그래서 나와 동생 세상에 빛을 보았네
가끔은 티격태격하지만
기쁜 하루를 위해 노력하는
사랑스러운 우리 가족
구지봉만큼이나 높은 마음처럼
서로를 아껴준다.
<중등부 운문>
비밀
대구 한울안중학교 1학년
매일 아침 뜨거운 햇살을
얼굴에 바르고 나가시는 엄마
나 몰래
사람들의 배고픔을 닦으신다
집에 오면
차가운 얼음인 우리 엄마
열기 가득한 자켓 올리고
언제 올지 모를 나를 기다리며
부엌 열기를 마신다
새벽 그림자가 길어질 무렵
집에 돌아온 나는 엄마의 꾸중을
억지로 삼킨다
억울한 한숨으로
어둠 속에 걸어간다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점점 어둑해진 길
차가운 바람에 손짓하면서
집에 돌아온다
안방에 가니
코 고시는 우리 엄마
엄마와 나의 관계처럼
식은 된장찌개를 먹는다
식탁에 보이는 흰 종이
거기엔 엄마의 편지가 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미안한 눈물을 터트린다.
<고등부 운문- 시>
비밀스러운 사랑
김해여자고등학교 2학년 하민정
넓은 하늘 아래,
숨겨둔 구름 한 조각처럼
높은 나무들 사이,
조그만 풀꽃처럼
붉은 심장 속 흰 동백을 품은 나는,
마음 위로 몇 겹의 사슬을 둘러
자물쇠를 채웠다
하얀 꽃잎이 더럽혀질까 두려워
여린 이파리가 찢길까 두려워,
그 꽃 한 송이를 뜨거운 심장 사이 꽂아두었다
순수한 새벽이 찾아와
새벽 별에 하얀 꽃잎이 비치니
그 꽃은 무엇보다 밝은 빛을 내뿜었다
따스한 빛줄기가 자물쇠를 감싸니
차가운 쇠의 구속은
밤의 색처럼 흩어져 내렸다
하늘이 밝은 푸른 빛을 띠고 있을 때,
흰 동백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고등부 운문 – 시조>
비밀
김해 중앙여자고등학교 3학년 장채희
저 멀리 일렁이는 푸른 바다 윤슬처럼
밤하늘 반짝이고 빛나는 별들처럼
마음속 말하지 못한 비밀들이 가득해
세월을 지나오며 비밀은 다복다복
계절을 지날수록 추억도 다복다복
나만의 밤하늘 바다 초롱초롱 빛나네
마음이 힘들 때면 해맑음 그립다면
저 멀리 빛나는 별 톡 따서 기쁨 느껴
아무도 모르는 나의 온새미로 하슬들
마음속 시원함과 끝없는 윤슬 만나
나 홀로 비밀 보고 만지고 혜윰 느껴
나만의 비밀 저장소 푸른 바다 윤슬들
나 혼자 알고 있는 나만의 비밀 쉼터
아무도 보지 못한 나만의 비밀 정원
누구나 말하지 않는 자신만의 비밀들
<대학일반부 운문>
비밀
대구광역시 달성군 심규성
회사는 더 이상 일자리를 팔지 않았다
유통기한이 지난 서류를 정리했다
이름이 잦았다
초침보다 촘촘했던 이름을
구둣발로 닦으며 웃지 못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웃음을 팔고 등을 보였다
급행버스에 몸을 욱여넣는다
버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집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창밖 풍경을 바라본다
살아가는 사람들
살고 싶은 사람들
살아야 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슴에 담는다
일 더하기 일은 이,
쫑알대는 아이의 수학 공식을 엿듣는 나
인생에도 공식이 있는 것일까
아침은 또 분주하다
구둣발로 깨우는 아침
하늘의 비밀을 풀 듯
가을바람에 요란한 나뭇가지를 만난다
다시 시작이다.
<초등부 저학년 산문>
말하지 못할 비밀
김해신명초등학교 2학년 이지수
비밀이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이야기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꼭 지켜줄 거라는 약속을 깨뜨린 채 살아간다. 꼭 지킬 거라는 약속은 알고만 있는 채 그 비밀은 입에서 항상 맴돌고 있다.
우리 엄마는 나의 비밀을 귀신같이 알고 있다. 엄마는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 비밀을 다 알고 있을까? 나는 엄마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다. 내가 엄마에게 팔찌 만들기를 사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불같이 화를 내며 사주지 않는다고 했을 때 철벽처럼 느껴졌다.
나는 엄마와 함께 커플 팔찌도 만들어서 끼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요즘 따라 짜증나는 일이 생겨서 그런지 나에게 자주 화를 낸다. 물론 내가 예민한 것도 있겠지만 이런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게 엄마에게 미안했다. 나는 왜 엄마가 나에게 화를 내는지 알 것 같다.
엄마가 이모랑 요즘 많이 말다툼을 한다. 그런 엄마를 보면 따뜻한 엄마의 모습은 와자작 깨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지켜줘야 할 비밀이다. 엄마도 나의 좋은 점만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좋은 점만 말해주는 엄마가 고맙다. 그래서 나도 엄마의 비밀을 지켜주고 엄마도 나의 비밀을 지켜주는 우리는 서로의 수호천사다. 언젠가 날개를 달고 엄마와 행복으로 함께 날아가고 싶다.
<초등부 고학년 산문>
구지봉
김해봉황초등학교 4학년 김서환
3년 전 나는 다문화 친구들과 합창단을 꾸려서 노래를 불렀다. 1학년 때라 아무것도 모르면서 장난치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모두 다 함께 구지봉에 견학 가서 술래잡기하고 왕비릉과 파사석탑도 보면서 가야역사도 들었다. 그리고 영어 잘하는 친구가 영어 안내문을 읽을 때 신기했다. 그만큼 구지봉이 유명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경험을 담아 우리의 노래인 구지봉의 노래를 만들어 다함께 한목소리로 노래 불렀다.
그리고 몇 달 후 우리는 문화의 전당에서 공연을 했다. 공연할 때는 떨렸지만 구지봉의 노래를 부를 때는 김수로왕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느꼈다. 1년 후 우리는 마지막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제목은 구지봉의 노래이다.
3학년 때 김해를 배울 때 선생님이 그 노래를 들려주셨다. 그 노래를 다시 구지봉에 올라가 친구들과 부르니 친구들이 생각났다.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친구들과 구지봉에서 겪었던 소중한 추억 덕분이다. 가야의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구지봉을 아껴야겠다.
<대학일반부 산문>
가야의 배를 보며
창원시 성산구 원이대로 774, 김정경
여름내 뜨겁게 피었던 백일홍이 난분분 날리는 초가을이다. 남편의 정년퇴직과 함께 가까운 도시의 명소를 걸어보자던 작은 소망을 실행하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김해의 박물관을 가보았다. 놀랄 만큼 멋지게 변한 그곳은 하루종일 관람해도 될 만큼 유익함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아이들처럼 열심히 듣고 배우며 걷다가 ‘가야의 배’를 보게 되었다. 창원 현동에서 발견된 토기를 바탕으로 복원한 가야의 배와 창녕 비봉리 패총에서 발굴한 나무배 앞에서 멈추어 섰다. 역사는 허구가 섞이지 않아야 함에도 고대사는 사실과 상상의 경계가 모호하다. 각각의 유물들은 다양한 자신의 서사를 가질 것이다. 나는 아주 오래된 고대의 배들을 바라보며 가슴 한끝이 저려옴을 느꼈다.
30여 년 전에 아버지와 배를 탄 적이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배를 탈 뻔하였다. 그때도 여름은 지나갔지만 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계절이었다. 자가용을 사고 운전에 재미를 붙이시던 아버지께서 신문에 난 충주댐에 관한 기사를 보셨다. 인공의 어마어마한 내륙 호수가 생겼고 국내 처음으로 그곳에 유람선이 뜬다는 사실에 좀 흥분하셨다. 산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아니라 호수 중간에서 산을 볼 수 있는 것, 이제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셨다. 그리고, ‘가 보자’며 시간을 계산했다. 지금보다 도로교통이 좋지 않았기에 5시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충주나루에 전화해서 배 시간을 확인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가족은 충주로 출발했다. 6시간 가까이 걸렸고 도착하니 오후 1시가 넘었다. 매표소 직원은 1시 30분 배가 마지막 배이고 3시간 30분 걸려서 신단양에 도착하면 회항하는 배는 오늘 더 이상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나를 한번 보시더니 비장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신문 기사만 보고 확인을 못 했구나. 나는 차를 운전해서 신단양에서 기다릴 테니 당신이 아이들을 잘 데리고 타서 잘 보고 많이 보고 오너라.”
아버지는 우리가 승선할 때까지 나루터에서 손을 흔드시다가 출항을 하자 차로 뛰어가셨다. 월악산과 일향봉을 보며 그림 같은 경치에 탄복하면서도 내 마음은 혼자 운전해 가셨을 아버지가 걱정되었고 신단양에서 혼날 생각에 기가 죽었다.
허허벌판 같은 신단양에 도착하자 멀리 나루터에 쪼그리고 앉아 우리를 기다리는 아버지가 보였다. 차로 1시간 만에 도착해서 2시간 30분을 기다리신 것이다. 어쩌면 그 배를 타고 새로운 경치를 보고 싶었던 사람은 우리보다 아버지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노느라 배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서 아버지의 소중한 기회를 놓치게 했지만 아버지는 그 후로도 그 얘기는 한 번도 하지 않으시며 비밀을 지켜주셨다. 자식들에게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해 고단한 삶의 무게를 숙명으로 받아들이셨기에 아버지의 생은 뿌리부터 마디가 깊었다. 우리를 보시더니 “잘 봤느냐?”고 웃으며 자식에게 밥 한 그릇을 다 먹인 듯한 흡족한 웃음을 지으셨다. 그리고 다시 6시간을 운전해서 돌아왔다.
나는 그 후 여러 번 배를 탈 기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신단양 나루터에 쪼그리고 앉은 아버지가 떠올라 마음이 저렸다.
김해박물관에 전시된 아주 오래된 배를 보며 생각한다. 창원 현동에서 외국인들과 교역에 쓰였을 가야의 배와 창녕 비봉리의 통나무배는 나의 아버지의 배와 같다. 새로운 것은 보고 받아들여라. 그리고 거침없이 나아가거라.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 한계는 필연이다. 매여있지 않은 배처럼 자유롭게 끝없는 가능성에 도전하라. 그래서, 오늘에 집중하고 자신의 색깔과 속도로 나아가야겠다. 가야의 배들을 보며 아버지와 나의 배를 기억한다. 눈빛 찡긋하며 지켜주신 그 비밀, 세월이 흘러 불혹을 넘긴 나는 여전히 애절하고 감사하다.
초등부 운문 산문 심사평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등재 1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2024년. 김해가야문화 축제 백일장의 글제는 ‘구지봉, 비밀’ 이었다.
초등부 고학년과 저학년을 심사한 결과 자신의 경험과 상상을 조화롭게 어린이다운 글로 표현된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글제 중에‘구지봉’은 김해의 지역성과 역사성으로 인해 표절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글과 단어들의 표현이 중복적으로 표현되어 작품성이 아쉬웠다.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여 가야의 이야기들이 어린이시각에서 문학적 향기를 담아내기를 바란다.
초등부 고학년 장원을 차지한 분성초 4학년 박지우 어린이의 작품 ‘구지봉과 수로왕’은 1연에서 구지봉에서 수로왕이 태어나고 자라서 허 황후를 만나 거북이처럼 장수했다고 표현하고, 2연에서는 아빠와 엄마의 만남을 수로와 허황후의 만남에 비유하여 과거와 현재를 조화롭게 엮어서 잘 표현해냈다.
초등 저학년에는 경운초 3학년 홍예림 어린이의 ‘산의 비밀’ 은 산의 조용하면서도 깊은 내면을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동물들이 천적을 피해 조용히 숨어있고, 산은 그들을 보호하려고 비밀을 간직하는 모습은 자연의 섬세한 면을 잘 이해하고 표현했다고 본다. “휘잉 휘잉 가을바람” 과 같은 표현은 소리와 움직임, 즉 의성어 의태어로 생동감을 더한 점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여 장원을 차지했다.
초등부 산문에서는 아쉽게도 참가자 모두가 ‘비밀’을 주제로 글을 썼다. 장원을 차지한 김해신명초 2학년 이지수어린이의 ‘말하지 못할 비밀’, 이 글은 비밀과 가족 간의 관계를 깊이 있게 성찰한 작품이다. 비밀을 지키는 것의 의미와 그 안에 담긴 감정들을 섬세하게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엄마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낸 부분이 감동적이고, 엄마의 감정 변화에 대한 이해와 비밀을 지키며 서로의 수호천사가 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잘 드러났다. 진솔한 표현과 글 속에서 느껴지는 깊은 감정이 심사위원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글은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는 도구이다. 글제가 생소해도 너무 잘 쓰려고 걱정하지 말고, 차분히 생각하며 도전해보기를 바란다.
일반중고등대학부 산문 심사평
예년에 비해 일반인들의 김해백일장 참여가 많았다. 급변하는 세상의 중심이 되는 세대의 글에서 삶에 대한 굳건함을 읽었다. 누군가의 글을 평하는 일은 매우 조심스럽다. 심사하는 동안 글쓴이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듯이 원고를 차근차근 읽었다. 심사 기준은 참신함, 글을 이끌어 가는 문장력, 삶에 대한 진지함을 나타내는 표현력을 중심으로 보았다.
김정경님의 시제 ‘비밀’ <가야의 배를 보며>는 시공간 개념이 적절히 표현되었다. 박물관에서 ‘가야의 배’를 보면서 아버지와 함께했던 과거를 끌어냈다.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자칫 평범할 수 있는 소재를 짜임새 있는 문장 구성으로 극복했다. ‘허허벌판 같은 신단양에 도착하자 멀리 나루터에 쪼그리고 앉아 우리를 기다리는 아버지가 보였다.’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아버지가 있는 전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냈다. 배 승하차 시간을 확인하지 못한 실수를 탓하지 않은 아버지의 뜻을 굳이 설명하지 않고 독자에게 넘기는 여유가 엿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한 글에 마음길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김수정의 <비밀>은 들어가는 글에서 이어질 이야기 대한 호기심을 일으켰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의 무게를 유려한 문장으로 적절하게 표현했다. 자신의 졸업식에 아버지가 부끄럽다며 초대하지 않은 이유를 ‘운동장 구석에 말라버린 나무 밑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아담한 키의 노인이 말없이 서 있었다.’로 설명했다. 문체는 좋으나 글이 쉬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백분기님의 시제 ‘비밀’ <가슴 속의 아픔>은 남편과 갑작스러운 이별을 잔잔히 풀어내는 글이었다. 자신의 아픔을 글 쓰기로 승화하는 모습에서 삶에 대한 진지함이 묻어났다. 수려한 글솜씨가 아니어도 감동을 주는 작품이었다.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모아 작품을 선정했다.
산문을 쓰는 동안 사유와 성찰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 글은 자신의 감정에 빠지면 진일보하지 못한다. 설명하는 글이 많으면 표현도 줄어든다. 산문은 읽는 이에게 감동을 주는 포인트가 있고 지루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끈기있고 창의적이어야 한다.
한 주제에 집중하여 자신의 경험한 상황과 감정을 종이에 옮기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글밥이 많은 산문을 쓰느라 애쓴 예비 작가들에게 응원박수를 보낸다.
중고등부 운문 심사평
가야문화축제와 더불어 개최된 전국백일장은 미래의 작가를 미리 만날 수 있는 축제의 장이다. 예비 작가를 만나기 위해 중, 고등부 운문을 심사위원들이 바꿔가며 읽었다. 글제는 모든 장르 공통으로 ‘비밀과 구지봉’으로 각자의 경험과 상상력이 녹아있는 작품으로 비밀에 대한 작품이 많았다. 무엇보다 감성이 가장 풍부할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작품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내심 마음이 두근거렸고 기대감 또한 높았지만, 중고등학교의 학교시험 기간이라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지 못하여 아쉬움이 컸다.
하민정의 <비밀스런 사랑>은 마음 깊숙이 품은 흰 동백을 겹겹이 자물쇠로 채워두고서 심장에서 키우는 시적화자가 보였다. 긴 밤을 지새우며 새벽녘 빗줄기에 흩어져 내리는 사슬 너머로 희디희다 못해 붉어진 동백이 푸른 하늘 아래 얼굴을 내밀고 있다. 푸른, 하얀, 붉은 등 선명한 색체 대비를 보여주며 그 속에 숨어있는 또 내적 자아를 찾아가는 행로를 보여주는 듯하였다.
장채희의 <비밀>은 수신자가 자기 자신이며 발신인조차 자기 자신으로 혼자만 볼 수 있는 비밀편지다. ‘나’를 사랑하며 다독이며 시들기 전에 물주면서 가꾸는 마음밭에서 자라는 비밀 화초들의 합창이 들리는 듯했다. 시적화자는 밤하늘 바다와 같은 비밀정원에 지나온 세월과 시간과 함께 자랄 것이다. 윤슬, 해맑음, 온새미, 혜윰 등 순우리말로 풀어낸 작품이다.
김정환의 <비밀>은 식은 된장찌개를 먹으며 엄마의 편지를 읽는 눈물 고인 소년이 그려진다. ‘새벽 그림자가 길’어진 시각에 귀가하는 시적화자인 소년을 기다린 엄마는 ‘뜨거운 햇살을/ 얼굴에 바르고 나가’며 ‘사람들의 배고픔을 닦’아주는 사람이다. ‘엄마의 꾸중을/ 억지로 삼킨다’와 같은 반짝거리는 시적표현들을 작품의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최유주의<비밀>은 글제에 대해 깊게 사유한 흔적이 보인 작품이다. ‘말’ 할 수 없어 ‘말’ 못한 것이 비밀이라지만 의도치 않게 일파만파 퍼져나가는 것이 비밀이기도 하다. 쓰나미 보다 힘세어 아무리 막아보아도 세어버려 떠밀려오는 비밀은 어찌할 수가 없다. 그래서 비밀은 비밀인 것이 아닐까.
김시윤의 <나만 알고 싶은 보석 비밀>은 보석보다 귀한 ‘나만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다. 마음 속 깊숙이 숨겨 놓은 이야기를 남들이 훔쳐볼까봐 감춰 놓고, 오로지 나만이 열 수 있는 열쇠로 열어 보석함을 들여다보는 시적화자가 있다. 먼 훗날 보석 비밀들이 삶의 밑거름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정해진 시간 안에 한 편의 작품을 쓴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작업이다. 중 고등부 운문을 심사하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구체적 묘사와 폭넓은 상상력이다. 구체적 묘사는 작품의 격(格)을 높여주기 때문에 상상력과 개인적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작품을 낸 중 고등부 학생들에게 독서와 작품 쓰기가 청소년기 삶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대학 일반부 운문 심사평
미래의 작가를 꿈꾸며 응모해 준 가야문화축제 전국 백일장 수상자를 축하한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영향인지 올해는 일반부가 많이 참여한 것 같다.
심사 기준은 블라인드 심사로 원고지 상부에만 개인 신상을 기재하고 하부에는 작품만 작성하게 했다. 운문은 문학창작성 30%, 문학적 압축성 20%, 서사성(스토리텔링/전개) 20%, 운율 20%, 글제 10% 심사 기준으로 합산한 점수로 공평한 심사로 수상자를 선정했다.
운문 산문 공통으로 주어진 글제로 ‘비밀과 구지봉’ 중에서 비밀이란 글제의 작품이 많았다. 한 번씩은 간직한 그 비밀들을 꺼내어 글감이 된다는 건 설레기도 할 것이다.
글쓰기는 지극히 자기 성찰적인 것 같다. 어떠한 주제로 쓰든지, 자신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게 우선인 것 같다. 참여한 대다수가 그러한 기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그중 잘 정제되고 많은 습작을 한 흔적이 엿보이는 작품도 있었다. 감각적 표현과 더불어 사유의 확장을 통해 주제를 잘 끌고 간 심규성의 ‘비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여러 군데 서류를 넣었고 유통기한이 지난 이력서는 많았지만 ‘회사는 더 이상 일자리를 팔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주하게 ‘구둣발을 깨우는 아침’이 분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살고 싶은 사람들/ 살아야 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슴에 담는다/ 시적 화자의 간절한 비밀을 풀어줄 또 다른 시작을 위한 분주한 걸음이 느껴졌다.
이정화의 ‘구지봉’(나의 아버지)은 구지봉에 비유해 봉우리 같은 아버지가 되어 딸을 지키겠다 약속한 아버지, 나지막한 산에서 바다로 연결된 문장에서 다른 시적 장치로 병환 중인 아버지가 딸을 위한 마음들이 연결되어 있다. 시적 화자인 딸을 거북이에 비유해 ‘파도는 부서져야 다시 바다로 가고’ 더 단단한 걸음으로 ‘너는 잃어버린 춤을’ 추길 바라는 가족의 따뜻한 정과 아버지의 맘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두 작품에서 장원과 차상을 두고 심사위원의 의견을 두고 몇 차례 더 읽고 토론한 결과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시적 사유를 잘 풀어낸 심규성을 장원으로 하는데 이의가 없었다.
운문에 비해 일반부 시조 작품 출품작은 다른 해보다 참여 수가 저조했고 올해는 장원작이 나오지 않았다. 심사를 하다 보니 아쉬운 점은 운문인데도 시적 비유와 함축성보다는 스토리만 나열되거나 일기나 산문을 행갈이로 표현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짧은 시간, 현장에서 다 표현할 수 없는 환경에서 참여한 모든 분들께 응원과 감사와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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