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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발견입니다. 관내에 서브웨이가 3개인데 처음에 <동구릉>을 올라탔다가 미아가 된 이후로 기피하게 된 것 같습니다. 오늘 보니 구리역에서 왕십리까지 겨우 7 정거장 15분 걸린다는 것 아닙니까? 경춘선의 추억이 새록새록 말을 걸면 셀카 한 장 찰칵해주고, 그래도 양이 차지 않으면 포스트에 낭만을 기록하시라. 영조와 정조 사이에 끼어 있는 <사도 2015>를 리레이팅 했어요. 좀처럼 보기 드문 작품성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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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도 김 혜숙, 송 강호, 유 아인이 아니면 러닝 타임 2시간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구성인데 감독과 배우가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간파했다고 생각할 만큼 탁월했습니다. 특히나 유아인 이는 두 선배들을 능가하는 대형 배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이 준익 감독은 사극의 타짜로 모실 생각입니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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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잘해야 아비가 산다!” 재위 기간 내내 왕위 계승 정통성 논란에 시달린 영조는 학문과 예법에 있어 완벽한 왕이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뒤늦게 얻은 귀한 아들 세자만은 모두에게 인정받는 왕이 되길 바랐지만 자신의 기대와 달리 어긋나는 세자에게 실망하게 됩니다.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생각하고, 또 자식으로 생각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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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남다른 총명함으로 아버지 영조의 기쁨이 된 아들. 아버지와 달리 예술과 무예에 뛰어났던 사도세자는 피해자인 동시에 패배자이지만, 우리는 앞의 것에만 주목하고 패배자라는 측면에는 덜 주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불리한 위치에서 패배한 인물이 아니라 매우 유리한 위치에서 패배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가 패배한 이유를 살펴보는 것은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도세자는 왜 실패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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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는 13년간 주상을 대신해서 국정을 운영한 대리청정의 주역입니다. 그는 단순히 대리청정만 했던 게 아니라, 대리청정을 통해 기득권 세력에 맞섰던 개혁의 투사였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임금은 아니었지만 개혁 의지를 갖고 13년간 통치권을 행사했던, 우리 역사에서 몇 안 되는 인물입니다. 사도세자는 비교적 수월하게 최고 권력에 오른 행운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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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행운을 갖고도 뜻을 성취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딴 데도 아닌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패배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역사 발전에 별로 기여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요. 그의 실패 원인 중 하나는, 그가 '실패한 아들'이라는 점입니다. 사도세자와 영조의 관계는 부자관계인 동시에 군신 관계였습니다. 또한 정치적 동지 관계였지요. 두 사람은 똑같이 탕평정치를 추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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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리청정을 통해 대권을 빌려주고 빌리는 정치적 동지 관계였습니다. 따라서 사도세자 입장에서는 '성공한 아들'이 되는 것이 정치적 성공과도 직결되었습니다. 성공한 아들이 되어야 성공한 신하가 되는 것이고 성공한 동지가 되는 것이어야만 공동의 목표인 탕평정치도 실현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실패한 아들로 남았습니다. 이것은 그의 정치적 실패를 초래한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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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인 효장세자를 잃고 7년 만에 갓난아이를 안아든 영조는 이 아이에게 모든 기대를 걸었습니다. 영조는 자상한 아버지가 되기보다는 엄격한 아버지가 되고 싶었습니다. 아들을 강력한 후계자로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었지요. 그래서 그는 생후 100일 된 갓난아이를 부모의 품에서 떼어내 궁녀와 환관들에게 맡겼습니다. 훌륭한 후계자로 키울 목적으로 특수교육을 시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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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가 그랬고 왕건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덕분에 사도세자는 대단한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성장과정을 기록한 궁중 문서에 따르면, 그는 생후 7개월 만에 동서남북을 분간하고 두 살 때 60개 정도의 글자를 썼다고 “한중록“에 인용되어 있습니다. 사도세자는 그저 똑똑한 아들로만 성장한 게 아니라 그는 정의로운 아들로도 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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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얼마나 정의로웠는지는, 열 살 때 보수파인 외척과 노론당의 문제점을 비판한 사실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이 중에서 외척은 보수파인 동시에 영조의 친위세력이었으므로, 외척을 비판한 것은 곧 아버지 영조를 비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아들이었기에 영조가 13년간이나 대리청정을 맡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리청정 이후로 사도세자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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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는 대리청정의 권한을 받은 뒤에도 아버지의 권위를 존중했습니다. 국정을 임의로 처리하지 않고 아버지의 의견을 듣고 처리했던 것이니 대리청정 자체가 부자간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사도세자는 대리청정을 통해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고 보수파의 권력 독점을 견제함으로써 공평한 정치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외척과 노론 당을 비판했고, 이로 인해 그들의 견제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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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도세자가 보수파와 갈등을 일으키다 보니, 이것은 사도세자뿐만 아니라 영조의 입지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영조가 탕평정치를 추구했다 하더라도 보수파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는 국가를 운영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리청정을 하는 사도세자가 보수파와 갈등을 일으키다 보니 영조 정권 자체에 부담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사도세자에 대한 영조의 태도에 영향을 미쳤고 사도세자에게 실망감과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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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영조가 아들에게 이것저것 간섭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엄격한 아버지인 영조는 엄격함과 함께 잔소리까지 갖춘 아버지로 바뀌어 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넘는다는 것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장 성공적인 아들은 아버지를 극복하는 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뛰어난 아들 사도세자는 무서운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맞서지 못했고, 아버지를 자신의 정치적 목표에 대한 지지자로 만들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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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아버지로 인한 스트레스만 느낄 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아버지가 내준 과제를 충실히 수행하는 아들도 있다지만, 사도세자는 이마저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질책이 늘어나자, 그는 어떻게든 아버지를 회피하려 했습니다. 아버지와 부딪히지 않는 최선의 길은 방안에 누워 있는 길뿐이었을 테고, 그러자니 자연히 꾀병을 부리는 일도 많아졌을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아버지에 대한 문안을 게을리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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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가 몇 달씩이나 아버지를 피해 다니는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아버지 몰래 평안도 여행을 갔다가 반역 혐의를 썼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아버지와의 관계 파탄은 아버지와의 관계만 망친 게 아니라 사도세자 자신의 정신 건강까지 망치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발생한 스트레스를 정상적으로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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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보다는 “영조실록”이 객관적 기록이라고 본다면 혜경궁 홍씨는 자기 집안이 사도세자를 죽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사도세자의 정신병을 어떻게든 과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정조 정권은 그럴 이유가 없었는데 “영조실록”은 사도세자의 정신병을 어느 정도는 인정했습니다. 제 생각에도 그 상황에서 미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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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에서는 사도세자가 궁녀와 환관을 죽인 뒤에 후회한 적이 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런 점을 보면, 사도세자가 아버지로 인한 스트레스로 제정신을 잃고 궁녀나 환관에게 화풀이하는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풀지 못해 결국 자기 자신까지 파탄으로 몰아넣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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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파탄으로 몰아넣고 아버지와의 관계를 파탄으로 몰아넣은 것은 사도세자의 정치적 몰락을 초래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일은, 보수파의 공격을 초래하는 명분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보수파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버팀목을 없애버리는 결과를 초래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는 아버지와 보수파의 암묵적 합의 속에 쌀통에 갇혀 8일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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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는 분명 억울하고도 불쌍한 사람입니다. 또 그는 똑똑하고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웅대한 개혁 의지를 품었고 그런 의지를 실현시킬 만한 권력이 있었습니다만 그는 허망하게 패배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실패한 아들'이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2.
새로운 발견이다. 관내에 서브웨이가 세 개나 있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건, 구리역에서 왕십리까지 겨우 일곱 정거장, 15분이라는 거리다. 한 번 미아가 된 이후로 기피하던 노선도, 막상 다시 타보면 기억은 추억으로 바뀐다. 경춘선의 기억이 말을 걸고, 셀카 한 장을 남기고, 그래도 허전하면 포스트에 낭만을 기록하면 된다. 그렇게 다시 꺼내 든 영화가 영조와 정조 사이에 끼어 있는 작품<사도 2015>다. 그리고 다시 보니, 이 영화는 좀처럼 보기 드문 작품성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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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부터 던져보자. 이 영화는 사도세자를 ‘불쌍한 희생자’로만 그리고 있는가? 캐스팅부터 쉽지 않은 작품이다. 김혜숙, 송강호, 유아인. 이 셋이 아니었다면 2시간의 러닝타임은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과 배우는 이 작품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특히 유아인. 그는 두 선배 사이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를 통해, 언젠가는 이 둘을 넘어설 배우가 되겠다는 예고를 남긴다. 여기서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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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는 배우의 연기로 완성된 영화인가, 아니면 배우를 각성시킨 영화인가? “자식이 잘해야 아비가 산다!” 왕위 계승의 정통성 논란에 평생 시달린 영조는 완벽한 왕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한 인물이다. 그가 뒤늦게 얻은 아들 사도세자에게 모든 기대를 걸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그러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변한다. 그리고 세자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터져 나온다.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생각하고, 또 자식으로 생각했소!” 이 대사는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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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극은 정치의 실패인가, 아니면 관계의 실패인가? 사도세자는 피해자다. 동시에 패배자다. 우리는 보통 피해자라는 위치에만 주목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는 왜 패배했는가? 사도세자는 불리한 위치에 있던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13년간 대리청정을 맡았고, 개혁을 시도할 수 있는 권력과 명분을 모두 갖춘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뒤주에서 죽었다. 이 패배는 너무 크고, 너무 허망하다. 사도세자의 실패 원인 중 하나는 그가 실패한 아들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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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는 단순한 부자 관계가 아니다. 군신 관계이자 정치적 동지 관계였다. 둘은 같은 목표, 탕평정치를 공유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다. 정치적 동지가 되기 위해서, 그는 먼저 어떤 아들이어야 했을까? 영조는 자상한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강력한 후계자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생후 100일 된 아이를 부모의 품에서 떼어냈고, 특수한 교육으로 ‘왕이 될 존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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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사도세자는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아이로 성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묻게 된다. 훌륭한 왕을 만드는 교육은, 훌륭한 인간을 만드는 교육과 같은가? 사도세자는 정의로운 인물이기도 했다. 열 살에 이미 외척과 노론의 문제점을 비판했고, 이는 곧 아버지의 정치 기반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영조는 그에게 13년간 대리청정을 맡겼다.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믿음은 점점 부담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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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가 개혁을 시도할수록 영조의 정권은 보수파의 눈치를 더 보게 된다. 이때 묻게 된다. 아들이 옳을 때, 아버지는 언제나 아들의 편이 될 수 있을까? 영조는 점점 잔소리하는 아버지가 되었고, 사도세자는 점점 회피하는 아들이 되었다.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한 아들, 아버지를 지지자로 만들 엄두조차 내지 못한 정치가, 결국 그는 방 안에 눕는 선택을 한다. 피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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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들은 조용히 질문한다. 아버지를 넘지 못한 아들은, 정치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까? 관계의 파탄은 정신의 파탄으로 이어진다. 사도세자는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했고, 그 분노는 약한 존재에게로 향했다. 기록들은 엇갈리지만, 그가 무너져 갔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 파탄은 보수파에게 완벽한 명분을 제공한다. 그를 보호해 줄 정치적 버팀목은 사라진다. 결국 그는 아버지와 보수파의 암묵적 합의 속에서 뒤주에 갇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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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는 억울하다. 동시에 그는 실패했다. 똑똑했고, 정의로웠으며, 개혁 의지도 있었고 권력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패배했다.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사도>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누가 사도세자를 죽였는가’가 아니라 ‘왜 그는 끝내 아들이지 못했는가’가 아닐까? 연말의 시간에 이 영화를 다시 보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동시에 누군가의 기대 속에서 실패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오래 남는다.
2016.12.30.tue.mon.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