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사망자를 넘어선 가자 폭격 사망자
지상군 투입 이후 예상되는 엄청난 대량 학살
인질의 안전도 무시하고 진행되는 폭격과 보복
국제적 전쟁 확산을 낳을 수 있는 심각한 위기
"가자지구 거의 절반이 어린이…재앙 막아야"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지구를 폭격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을 ‘집단 처형’하던 이스라엘 군대가 이제 곧 지상군을 투입한다고 한다. 조그만 땅에서 갈 곳도 없는 가자지구 주민의 절반인 110만 명에게 일방적으로 ‘남쪽으로 대피하라’는 명령도 내렸다.
실제 지상군이 투입된다면 이것은 ‘지상전’이라 부를 수도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군사력과 최첨단 무기들을 과시해 온 이스라엘 군대가 가자지구로 들어서면 일방적인 인종청소와 대량 학살이 벌어질 뿐이다. 팔레스타인에는 전투기나 탱크를 가진 정규군대가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물론, 도심 게릴라전 속에서 희생될 이스라엘 병사들의 죽음도 끔찍할 것이다.
서방 언론에 따르더라도 이미 10월 15일 현재 팔레스타인 사망자 규모는 2000여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것도 비슷한 규모로 추산되는 하마스 전투원 사망자들을 뺀 수치이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사망한 이스라엘 사망자 1200여 명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네타냐후 정부는 ‘이스라엘 사람 1명이 죽으면 팔레스타인 사람 10명을 죽인다’는 그동안의 관행과 법칙을 반드시 지키려는 듯이 야만적 보복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 군대가 가자지구 앞에 집결하고 있다. Israeli Defense Forces soldiers near the border with Gaza, on October 10, 2023, in Kfar Aza, Israel. (Alexi J. Rosenfeld / Getty Images)
이것을 뒷받침한 것은 먼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비인간화’하는 일이었다. 이스라엘의 갈란트 국방장관은 하마스를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라며 “우리는 동물과 싸우고 있으며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도 “하마스는 순수하고 완전한 악”이라고 말했다. 전 유엔대사이자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중 하나인 니키 헤일리도 "그들을 끝장내버려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이러한 ‘비인간화’는 모든 대량 학살과 전쟁 범죄에 항상 뒤따르는 것이다. 그래야 지금 저기서 피 흘리고 울부짖으며 죽어가는 것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생명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양심의 가책을 덜면서 ‘살인면허’를 받은 듯 부담 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폭탄을 떨어트릴 수 있다. 쌓여가는 시쳇더미에 죄책감이 아니라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또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는 하마스를 편들지 않으면서도 이스라엘의 ‘피의 보복’을 비판하는 어떠한 목소리도 곧 ‘하마스를 지지하는 반유대주의’라고 낙인찍으며 입을 막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도 출마했던 버니 샌더스는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는 것은 누가 하든 전쟁 범죄”라며 하마스와 이스라엘 모두를 비판했는데, 이런 주장조차도 반유대주의라는 혐의를 씌우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과 미국의 정치인과 언론들이 확인되지 않는 가짜뉴스를 퍼트리며 하마스를 지나치게 악마화하고 증오심을 부추겨서 가자지구 폭격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미국 바이든 대통령까지 기자회견에서 언급했던 ‘하마스가 아이까지 참수했다’는 보도는 아무 근거가 없는 과장된 헛소문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더구나 극우 파시스트라고 비판받아온 이스라엘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은 “인질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마스에 잡혀 있는 이스라엘 인질들의 생명을 걱정하며 폭격과 지상군 투입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 군대는 ‘가자지구의 건물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이라며 무차별 폭격을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헤르초그 대통령은 ‘가자지구 주민들도 하마스를 몰아내지 않고 지지해 온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 이것을 정당화했다.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통행을 금지하고 전기·가스·수도·식량의 공급을 차단하면서 5일 동안에만 2450여 곳에 맹폭격을 가했다. 그래서 1500여 명이 사망하고 30만여 명이 집을 잃었다. 이미 주민의 3/4이 난민 상태였던 가자지구에서, 유엔에 따르면 새롭게 33만여 명이 난민이 됐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의 모습/ 출처 Getty Images
그러면 이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하마스를 증오하며 이스라엘의 말을 따라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을까?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새롭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증오하며 하마스에 들어갈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평화로운 비폭력 시위조차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이스라엘의 대응이 오히려 이번에 하마스의 폭력적 공격을 낳았듯이 말이다.
이것은 다시 사법 개악으로 국내적 비판과 정치 위기에 직면해 있던 네타냐후 정부가 화살을 외부로 돌릴 수 있게 해줬다. 네타냐후 정부는 하마스의 폭력을 핑계로 지금의 대량 학살을 정당화하고 있다. 하마스의 민간인 살상을 지지한다는 오해를 살까 봐 주춤하게 되면서, 팔레스타인의 저항에 연대하는 국제적 목소리도 과거보다는 커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네타냐후 정부가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유도한 게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제기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느 나라의 어떤 저항운동도 그렇듯이 팔레스타인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과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저항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마치 일제 강점기의 조선에도 외교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 총독부 요인 암살에 주력하던 세력, 무장 투쟁을 중시하던 세력, 노동자 파업과 농민 쟁의를 건설하던 세력이 있었듯이 말이다.
더구나 일본의 보통 시민들을 살상하는 방식은 지지받기 어려웠다. 지금 상황과 흔히 비교되는 베트남 민족해방군의 ‘구정 공세’도 민간인이 아니라 침략 미군에 대한 공격이었다. 팔레스타인에도 하마스같은 이슬람원리주의만이 아니라 세속적 좌파가 존재한다. 이런 좌파들의 목소리와 성장을 지지해온 단체인 ‘제 4인터내셔널 집행위원회’는 최근 이런 입장을 발표했다.
”우리가 하마스의 전략과 전술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이 방식으로는 점령을 종식시키고 폭력을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팔레스타인 대중의 집단적 저항과 이스라엘 내부의 연대, 국제적 연대의 지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실제로 1987~88년의 팔레스타인 1차 인티파다(민중항쟁)와 2000년의 2차 인티파다가 이스라엘 권력자들을 위협했던 것은 그것이 거대한 민중항쟁과 광범한 국제연대의 형태로 발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 국제적인 BDS(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하는 보이콧, 투자 철회, 제재 요구) 운동은 더욱 중요해졌다는 주장들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지금 펼쳐지고 있는 이스라엘 정부와 군대의 피의 보복, 무자비한 폭격, 임박한 지상군 투입과 대량 학살에 반대해서 즉각 중단을 요구하는 국제적인 항의의 목소리와 행동들이다.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은 이란, 헤즈볼라 등의 개입을 낳으며 전쟁의 확산과 국제적 대재앙까지 부를 수 있기 때문에 너무나 위험천만하다.
미국에서 민주적사회주의자(DSA) 소속의 민주당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는 "인류가 위기에 처해 있다. 가자지구의 거의 절반이 어린이다. 우리는 이것을 막아야 한다"고 절박하게 호소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모든 보복과 폭격과 학살을 당장 중단하라는 국내외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으로 보인다.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아이가 울부짓고 있다. A child mourns after a relative was killed in Israeli attacks on Gaza, Friday, October 13. (Abed Zagout / Anadolu via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