깝치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 다 보고 싶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일절이다. 대구 지방 사투리를 써서 시적 정서를 한껏 높이고 있다. 사투리의 보존과 사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수년 전에 어느 저명한 교수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깝치지 마라.”를 “까불지 마라.”로 풀이하는 것을 보았다. 또 어떤 책에는 ‘깝죽거리다’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설명은 다 잘못된 것이다. 그 지방에서는 “재촉하지 마라.” 혹은 “서두르지 마라.”란 뜻으로 지금도 쓰고 있는 말인데, 사투리를 이해하지 못한 탓으로 엉뚱한 해석이 빚어진 것이다.
들마도 사전에 올리어 있지 않은데, 덩굴 풀로서 잎과 줄기는 마와 비슷하나 그 크기가 아주 작은 야생마다. 곧 들에서 자라는 마다.
지심은 기심이 구개음화된 말인데, 훈몽자회에는 '기+반치음ㅅ+ㅡㅁ'으로 적혀 있다. 후대에 김으로 변한 말이다.
고운 사투리는 단순히 사투리로 버릴 것이 아니라, 복수 표준어로 정해서 국어의 외연을 넓혀 나가는 일이 중요하고 급한 일이다. 표준어에는 없는 고유한 말이 지방의 방언에 얼마나 많은가? 경산 지방의 사투리에 ‘상적바르다’란 말이 있다. 매사에 조심하고 요령이 있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이와 반대되는 말은 ‘우지바르다’이다. 매사에 덜렁대고 위험스럽기까지 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말들이 사투리라는 이름으로 방치되고 사라지는 것은, 너무나 아깝고 속상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