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 중3입니다.
두 가지 글의 전체 내용의 일부를 올려봅니다.
교외 백일장에는 나가본 적이 없어서, 제 실력이 제 또래에서 어느 정도인지 꼭 알고 싶습니다.
(안양예고 문창과도 조금 고려 중이거든요.)
그럼, 훈수 부탁드리겠습니다.
<피아노>
언젠가 어머니가 피아노를 친 적이 있었다.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 내가 아주 어렸던 날에 단 한번, 어머니가 피아노를 친 적이 있었는데 그 모습은 정말이지 눈물겹도록 아름다워서 지금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반투명의 새하얗게 늘어진 커튼을 통과해 들어오는 옅은 햇살 끝에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그동안 장식품에 불과했던 먼지 쌓인 피아노는 그 날따라 눈부실 정도로 깨끗했다. 햇살을 맞으며 아마도 고운 열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건드렸을 어머니의 뒷모습은 새하얀 원피스와 새까만 피아노의 대비로 이룰 수 없이 아름다웠다. 4살이었던가, 나는 어머니의 등선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날개라 달려 있는 것만 같았다. 그대로 어머니가 하늘로 날아가 버릴까봐 조금은 불안했을 정도로, 한없이 천사와 닮아 있던 모습이었다. 사실 그 날 어머니가 어떤 곡을 연주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내 기억의 파편엔 햇살이 비춘 어머니와 피아노만이 남아 있다. 하얀 풍경이었다. 작은 미풍이 불어 어머니의 뺨이라도 간지러이 스치고 지나갔을 풍경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죽어 버렸다. 그 때 나는 세상을 다 알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어머니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피아노를 치던 그 눈부신 모습이 홀연히 하늘 어딘가로 올라가 천사가 되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랬을거라 믿는다. 내 어머니는 천사였다고. 그래서 그리 아름다운 장면을 내게 선물하고 갔노라고.
어머니가 단 한번 내 앞에서 쳤던 이후로 다시 피아노는 세월에 잊혀진 장식품이 되었다. 장식품치고는 나름대로 양지바른 자리에서 고고히 시간을 보냈다. 내가 10살쯤 되었을 무렵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던 날, 그 때 아버지는 피아노를 버리려고 했었다. 어머니의 손길이 닿았던 이후로 다시는 누군가의 어루만짐조차 없어 소리낼 기회도 갖지 못했던, 그러나 때때로 해 주었던 나의 걸레질에 그대로 고고하고 깨끗한 모습을 유지한 채 있던 피아노. 나도 아버지도 피아노를 칠 줄은 몰랐지만 나는 버리지 말자고 했다. 아버지는 아마도 그 옛날 어머니의 그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집 한 구석엔 소리내지 못하고 그저 이따금씩의 내 걸레질만을 맞는 피아노가 자리해 있다. 나는 그렇게 이따금씩 부질없는 짓을 하면서 상상했다. 눈부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새하얀 빛과 새까만 피아노가 조화를 이루었던 장면을. 영화 필름처럼 살아 움직이듯 떠오르는 어머니를 바라보면 나는 마음이 편안해지고는 했다. 허공의 잔상이었지만 순간 마음이 잃었던 제자리를 찾은 듯 했다. 어머니가 없던 빈 자리는 거의 느끼지 못하며 자랐지만, 이 것은 본질적인 문제였다. 그 어떤 것으로도 메꿔지지 않을 어머니라는 이름의 사랑. 대신할 수 없는 것의 빈 자리. 하지만 천사가 된 나의 어머니가 내게 선물을 주었기에 그렇다고 외로운 것은 아니다. 가끔 젖어드는 눈시울도, 드물게 아릿해지는 심장도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나의 어머니는 단 한 장면의 선물로 언제나 나를 어루만져 주었다.
<그 해 여름, 태양의 사랑>
한 여름의 찌는 더위다. 후끈후끈한 열기와 숨막힘이 아스팔트 길 위로 나를 집어 삼키고, 저 먼 별에서 떠나 온 강렬한 태양의 화살들이 내 정수리를 향해 쏟아진다. 눈에는 틀림없는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찬란한 여름의 지옥이다. 뜨겁고 시뻘건 모든 것들이 숨을 토해내는 고통의 시간이다. 분명 언젠가는 끝이 날 텐데 마치 영원의 나락에 선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스물스물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들처럼 내 인내심도 서서히 한계에 치닫는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기온이 30℃를 웃도는 한 여름의 열기는 이 땅을 사랑한 태양의 저주다. 대지를 향하여 태양이 가진 거라곤 하나뿐인 그 열기를 끊임없이 쏟아낸다.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며 눈으로 볼 수도 없는 박테리아까지, 온갖 미물들이 태양의 구원 속에 생명을 유지하는 동안 인간들만 지쳐 간다. 인간들에게만 이 더위가 위협적일 뿐, 사실 여름은 그 어떤 때보다 찬란히 사랑이 베풀어지는 구원의 시간이다.
그런 여름의 더위처럼 누군가를 맹렬히 사랑한 적이 있는가. 누군가의 손 끝에 닿았던 먼지와 폐부에 한번 들어갔다 나온 피폐한 공기마저도 축복 받은 것이라 여긴 적이 있는가. 이 땅을 사랑한 태양의 열기처럼 말이다. 강렬하고 숨막히고 위협적으로. 끝나지 않으리라 다짐할 만큼.
나는 그런 사랑을 했다. 그 것도 첫사랑이었다. 미친 듯이 사랑했었다. 말하자면 이렇게 쉽게 식을 줄을 그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이제 와 생각하는 건 그렇게 순간적으로, 아니면 나도 모르는 새에 천천히 조금씩 변해 버린 나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원래 사랑이 그런 건가 보다, 하는 거다. 무엇이 내가 사랑한 그 누군가와 내 사이를 잘라놓은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알아채기 훨씬 이전부터 막연히 괴리감도, 불안함도 아닌 그냥 비어버린 마음이 서로의 사이에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굳이 이유를 말하라면 이렇게 설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유가 아니라 결국 그 타오르던 열기도 재처럼 부서져 바람에 사라질 만큼, 이제는 다 식어 쓸모 없어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다만, 앞으로 다시는 그렇게 덥고 숨막히는 여름을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하기에 지나 온 여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 사랑은 다시는 그 여름날 아스팔트 바닥처럼 뜨거워질 수 없을 테고, 나는 다시는 그 여름날의 살인적인 태양이 될 수 없을 테다. 올 해 여름은 아마도, 내 생애에 가장 더웠다.
첫댓글 표현이 좀 난해한것 같네요. 짧은 문장 안에 많은 것을 함축한 문장이 좋은 문장임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주제넘은 참견인가요...-_-)
아니요, 조언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제 스스로 그런 부분을 많이 느끼고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말예요.
(보충) 예를 들어, '피아노'에서 <언젠가 어머니가 ~ 지금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는 없어도 좋습니다. 군살을 빼서 중언부언하는 부분을 덜어내야 하겠습니다.
제제나 소재가 너무 흔한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