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아가 부활 승천 했는가?
가톨릭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부활 승천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단순히 그리스도를 낳은 어머니로 존경은 하지만 숭배하진 않는다. 그리고 신학적 대상이나 주제로 연구하지 않는다. 마리아 숭배는 초대시대에는 없었던 교리인데 수년의 역사 흠름에서 이방 여신(女神)들의 숭배사상의 영향을 받아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지 성경에 진리는 아니다.
1. 마리아 숭배
마리아 숭배
마리아를 숭배하는 신앙은 초대교회 시대인 사도 시대에는 없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바벨론 종교문화를 수용한 그리스 종교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 바벨론 종교 아스타롯처럼 또는 그리스 신화 가이아, 뉙스, 데메테르, 아프로티데,등 여인상들을 공경 했듯이 일부 교인들이 처음에는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존경하다가 점점 기도하게 되고 더 발전하여 숭배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A.D. 1500년경에 이르러 마리아 부활 승천을 교황이 선포한 후로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어 졌다.
초대 교회시대에는 마리아가 어떻게 어디에서 죽었는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도들이나 초대 교회가 언급하지 않는 마리아 숭배를 A.D. 1500년 후에 주장한 것은 믿을 수 없는 만들어진 교리임을 쉽게 알 수 있다.
2. 마리아 신앙은 A.D.1500년 역사를 지나오면서 발전되었다.
주의 어머니
A. D. 300년경 교황 마르첼리오(Marcellius, A.D. 296-304)때 까지는 주의 어머니로 존경의 대상이었다.
A. D. 400년 경 교황 다마소 1세(Damasus 1, A. D. 266-394)때에 극 소수의 사람들이 마리아에게 기도하게 되었다.
A. D. 431년 교황 첼리스티노 1세(Cellistnus 1, A. D.422-432.)때 하나님 어머니로 공언되었다. 부궤로의 작품 천사들에게 둘러싸인 성모자.’성모 마리아가 테오토코스, 즉 하나님의 어머니(또는 천주의 성모)라는 교리는 A.D.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선포된 것이다.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호칭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하나는 마리아가 낳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인간임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예수가 참된 하나님임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으로는 한 처음부터 성부와 같은 몸으로 하나님의 제 2위(성자)이며,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성령으로 인하여 스스로 동정 마리아의 태중에서 인성을 취하였다. 이것이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3. 가톨릭에서는 마리아를 하나님 어머니 하늘의 여왕으로 숭배 한다.
하늘의 어머니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마리아가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올 때 신성과 인성을 가지기 위한 탄생으로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지만 영원한 하나님 어머니(하나님 아내)는 될 수 없다. 그것은 다신과 이원신(二原神)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 어머니에 대해서 언급 한 기록이 없다. 그리고 삼위 일체 하나님이 아니라 성부 성모 선자 성령 사위 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바알신 니므롯
하늘의 어머니는 바알 신앙의 원조인 바벨탑을 주도한 니므롯의 아내인 세미라미스를 신격화 하여 하늘의 어머니 하늘의 여왕(女王)이라고 칭했다. 그것은 세미라미스가 니므롯의 아내이기도하고 또한 세미라미스의 아들인 담무스의 어머니이기도하고 아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미라미스는 니므롯의 아내였다. 니므롯이 전사하자 이름모른 남자를 통해 아들인 담무즈를 낳았다. 세미라미스는 담무즈가 죽은 남편 니므롯이 인간으로 환생 했다고 하고 담무스와 결혼하여 니므롯와 아내인 그는 자기 아들의 아내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니므롯과 담무스를 태양 신(바알)으로 자신 세미라미스는 월신(月神-아스타롯)으로 신격화 했다. 세메라미스는 담무스의 아내로서 하늘의 어머니 아들 담무스의 아내로서 하늘의 황후로 신격화 했었다. 가톨릭의 하늘의 어머니 하늘의 황후 사상은 바알 신앙 사상 영향을 받은 것이다.
라파엘로의 작품 ‘성모 대관식.’마리아가 하늘에 들어 올림을 받아 천상 모후의 관을 썼다는 교리는 초대 교회의 교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나지안주스의 성 그레고리오는 마리아를 “우주의 임금의 어머니”, “온누리의 임금을 낳은 동정 어머니”라고 하였으며 시리아의 성 에프렘은 “위엄 가득하신 하늘의 여인이시며 모후이시여, 멸망의 씨를 뿌리는 사탄이 저를 지배하여 의기양양해하는 일이 없도록, 악이 저를 거슬러 승리하는 일이 없도록 당신의 날개 아래 저를 보호해 주소서.”라는 내용의 동정 마리아에게 보호를 청하는 기도를 바쳤다. 예루살렘의 총대주교 성 모데스토는 “현세 인간들의 모후이자 지극히 거룩한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말하였다. 여러 교황도 마리아에게 찬사의 표시로 ‘하늘과 땅의 모후(비오 9세)’, ‘세계 통치자들의 모후(레오 13세)’, ‘세계의 모후(비오 12세)’ 등 각종 수식어를 붙였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예형론의 관점으로 요한 묵시록에서 열두 개의 별로 된 면류관을 쓴 여인이 천상의 모후로 등극한 마리아를 예시한다고 보고 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또는 하나님의 독생자란 관계를 우리 인간의 질서 관계에서 이해하려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있다고 하면 하나님 어머니도 계셔야 한다는 논리가 된다. 그리고 더 나가서 하나님 어머니가 계셔야 한다면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니 할아버지가 계셔야 하고 하나님 어머니가 계셔야 하고 하나님 할머니가 계셔야 한다는 논리로 해석하여 끝없는 족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쉽다. 이런 논리에서 만들어진 것이 성모 마리아 숭배이다.
4. 가톨릭에서는 마리아가 원죄 없는 영원한 동정녀라고 말한다.
1) 사도 시대에는 마리아는 한 목수의 아내로 한 가정의 어머니였다.
원죄 없는 어머니
그리스도 당시나 사도 시대에는 마리아는 한 여성 어머니로 존재했다.
[마 13:53-56]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 곳을 떠나서 54)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55)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마리아는 신으로서의 어머니가 아니기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을 때에 제자인 요한에게 어머니의 장래를 의탁했다.
[요 19:25-27]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 이다 하시고 27)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로서 신이었다면 그리스도가 제자에게 마리아의 장래를 의탁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마리아가 부활 했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이 복음이었다면 마리아의 복음도 당연히 전해져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리아의 부활을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되어야 했을 것이다. 마리아는 그리스도 부할 이후 사도 요한을 따라 에베소로 갔고 에베소에서 죽었다. 만약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였다면 사도요한이 당연히 죽은 사실을 기록했을 것이다. 그리고 엄밀하게 말하면 죽지 않았어야 한다. 그러나 죽었고 사도 요한이 요한 계시록을 기록하기 전에 죽었다 그런데도 기록이 없다. 죽은 사실도 날짜도 기록되지 않았다.
2) 마리아 숭배는 교황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교황이 만든 교리
A. D. 553년 교황 비질리오(Vigillius)때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마리아는 동정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하였으며, 예수를 낳을 때도 동정이었으며, 예수를 낳은 뒤에도 계속 동정으로 살았다고 결의 선언했다.
A. D. 687년-701년에 세르지오 1세(Sergius 1)가 최초로 로마 전례력 안에 성모 마리아의 축일을 포함시켰다.
A. D.1708년에 교황 클레멘스 11세(1700~1721)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12월 8일)을 로마 전례에 속한 모든 교회의 의무 축일을 선포하였다.
17세기에 들어서 ‘로사리오 성모 축일’(10월 7일), ‘성모 통고의 축일’(9월 15일), ‘마리아의 성명(聖名) 축일’(9월 12일), ‘자비의 성모 축일’(9월 24일) 등이 거행되었다.
A. D. 1907년에는 루르드에서의 성모 발현 50주년을 맞이하여 ‘원죄 없으신 동정녀 마리아의 발현 축일’(2월 11일)을 비롯하여 ‘마리아의 모성 축일’(10월 11일), ‘성모 성심 축일’(8월 22일), ‘여왕이신 마리아 축일’(5월 31일) 등이 제정, 거행되었다. 그리스도인은 마리아 축일을 거행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마리아가 보여 주는 신앙인으로서의 모습을 자기 존재 안에서 실현해야 하며, 그런 이유로 마리아를 공경해야 할 것이다.
A. D. 1,854년 교황 비오 9세(Pius 9)가 마리아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아 원죄 없이 잉태되어 태어났다고 선포했다.
A. D.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Pulus 6)가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is)]를 통해서 전례력의 성모축일을 개정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분명하게 모든 사람처럼 잉태 되었고 그의 부모를 통해서 태어났다. 그러기에 원죄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만약 마리아가 원죄 없이 태어났다면 그를 낳은 아버지 어머니가 원죄가 없어야 하고 마리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그의 모든 가문에 원죄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그가 원죄가 없으려면 성령으로 잉태 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에나 그리스도나 제자들 모두 마리아의 탄생이나 무죄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인간에 의하여 만들어진 교리인 것이다.
초대 교회의 일부 교부들은 마리아와 하와를 대비시켜 “하와의 불순종이 묶어놓은 매듭을 마리아의 생명이 풀어 주었고, 하와가 불신으로 맺어놓은 것을 마리아가 믿음으로 풀었다.”라고 하였으며, 마리아를 ‘새 하와’ 또는 ‘제2의 하와’라고 불렀다. 즉 하와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세상에 죽음과 불행을 가져왔으나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생명의 원천인 그리스도를 낳고, 마침내 세상에 구원과 축복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기독교 교리(진리)는 다수가결로 결정 되는 것이 아니다. 절대자의 계시이어야 하고 역사적인 사실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사도라 한 것은 그들은 그리스도의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십자가에 대속을 목격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로 복음이란 그 사실을 전하는 것이다.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낳은 후 요셉과 결혼하여 자녀들을 적어도 5명을 두었다. 그러므로 그렇다면 이들도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마리아가 영원한 동정녀라는 말은 억지 중에 억지주장이다.
[마 13:53-56]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 곳을 떠나서 54)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55)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5. A.D 1850년에 교황 비오 9세(Pius 9)는 마리아가 부활하여 승천했다고 선포했다.
마리아 부활
마리아는 지상 생애를 마친 다음, 하느님에 의해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로 들어 올림을 받았다.고 했다.
파리노스의 작품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원죄 없는 잉태는 무염시태(無染始胎)라고도 하는데, A. D. 1854년 교황 비오 9세가 회칙에 의해 교의화하였다. A.D.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는 회칙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is)]를 통해서 전례력의 성모축일을 개정했다
A. D. 431년 에베소 회의에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채택한 이후, 마리아 숭배사상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리고 A. D. 1854년 교황 피우스 9세가 "마리아의 무죄 잉태설"을 선포하고 14년 후 바티칸회의를 통해 확정지었다. 이후 마리아는 일생 동안 죄를 짓지 않았다는 교리가 생겨나고 A. D. 1950년 12월에는 "마리아 부활 승천설"이, A.D. 1962년 바티칸회의에서는 "마리아 종신 처녀설"이 선포되었다. 이렇게 마리아 신격화는 가톨릭 성경에 없는 사실을 역사 속에서 만들어 낸 것임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의 복음의 중심이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이다. 사도들은 이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고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 재속과 부활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로마의 250년의 가혹한 박해를 받으며 목숨을 바쳤다.
만약 마리아가 부활했고 승천했다면 그것은 복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 부활 못지않게 큰 사건이기에 당당하게 전해져야 하고 성경에도 기록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은 후 마리아의 행적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조차도 분명하지 않다. 구전에 의하면 마리아는 사도 요안을 따라 에베소에 거주했다가 거기에서 죽었다고 전해진다. 마리아가 구원에 관계가 있다면 사도들은 반드시 가르치고 기록에 남겼어야 하고 그의 죽음과 부활 했다는 사실을 온 천하에 아려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1,500역사가 흐른 후에 마리아 부활의 사건이 공언 된다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말이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그것을 진리로 믿는 다는 것이 웃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마치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은 신앙이라 말할 수 있다. [출처] 73-마리아가 부활 승천 했는가?(기독론-13)
|작성자 광야의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