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상반기 〈시와 반시〉 신인상 당선작
정물화의 방 / 한유
지난밤 의자는 정물처럼 앉아 있었고 그 옆에 정물처럼 당신이 앉아 있었다. 당신은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고, 오래 비워두어서 모른다고 의자는 대답했다. 광장은 금세 어두워졌고 당신 옆에 또 다른 사람이 다가와 물었다. 여기가 어디냐고 그들은 같은 이유로 질문을 하고 있었다. 당신은 지난 일들을 천천히 들려줬고, 슬픔이 밀려올 즈음, 의자 옆에 한 사람이 눈물을 훔치고 나갔다. 또 슬픔이 밀려올 즈음, 당신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살짝 기대었다. 그러자 의자 옆에 서 있던 또 한 사람이 훌쩍이며 나갔다. 의자 하나가 다시 비워졌고, 그 옆으로 창문이 나 있었고 당신이 일어섰다. 거리는 아무도 없었다. 거리를 지나 편의점에 도착한 당신은 담배를 사고 잠시 머뭇거렸다. 홀로 둔 의자를 잠시 생각했지만, 당신은 누구에게도 길을 묻지 않았고 돌아가고 싶지 않은 눈빛이었다. 누군가 당신을 보고 길을 잃어버린 것 아니냐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가던 길을 돌려 처음 출발지로 노선을 변경했다. 의자는 허전했다. 밖을 서성이던 당신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이 잠시 딴 생각을 하다 길을 잘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녁까지 당신 모습이 유리창에 비춰지지 않았고 의자는 두고 간 체온처럼 만져지는 텅 빈 자리를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의자는 당신이 오래 머물러 주기를 원했을 것이다. 다리가 삐걱거리고 철사로 꽁꽁 옭아맬 수 있을 때까지 언젠가는 당신이 돌아올 거라고, 의자는 눈을 뜨면 닦고 쓸고 먼 산을 바라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마른침을 삼킨다. 그렇게 당신 옆에는 오래 비워둔 의자 하나가 아직도 덩그러니 놓여 있다. ▲한유 / 본명 한명희. 제17회 동서문학상 금상 수상. 한국방송대 국문과 중퇴.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과 재학.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 2026 상반기 〈시와 반시〉 신인상 당선작
페테르부르크 / 황재원 이끼가 먼저 말을 배운 성벽, 돌과 돌 사이는 오래된 별의 문법으로 갈라져 있다. 고철 같은 트럭 헐거워진 생을 지우고 있다. 빈자리에 낯선 이름이 걸린 도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번호를 부여한다. 별은 더 이상 예민하지 않고 낮게 매달린 채 성 위로 떨어질 시간을 계산한다. 의식은 마르고 바람만이 사라진 연대기를 암송한다. 성안에 남은 것은 녹슨 표정과 읽히지 않는 문장들. 이끼는 기억을 대신하여 천천히 번진다. 사람들은 성을 지나치며, 모르는 얼굴을 연습하고 각자의 시간표 속으로 분주히 흩어진다. 비는 뜨겁고 별빛은 색을 잃는다. 말들은 더 이상 부풀지 못한 채 약한 고리부터 풀린다. 철거된 자리 바람은 다음 숫자를 기다리고 트럭 한 대가 왕조의 무게로 밤에 가라앉는다. 별 하나 성벽에 박힌 채 끝내 꺼지지 않는 오해처럼 남아 ▲황재원 / 강원도 영월 출생. 호찌민디카시국제협력단 단장, 한국디카시창작지도사회 회장. 2024 구미디카시공모전 대상. 2025 〈한국디카시〉 신인문학상 당선. 계간 《시와 반시》 2026 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