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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진리의증인
메시지283(설95) 부자와 거지 나사로
“19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16:19-31)
서론: 어떤 도시에 큰 부자가 살았습니다. 부자는 값비싼 옷을 입고 날마다 잔치를 베풀고 먹고 마시며 사치와 향락을 즐겼습니다. 어느 날 이 부자의 대문 앞에 병에 걸린 한 거지가 와서 자리를 잡고 누웠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을 ‘거지 나사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사로는 병이 심해져서 거동을 할 수 없게 되자, 부잣집에서 버려지는 음식쓰레기로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부잣집 대문 앞에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부자는 질병과 굶주림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나사로에게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거지 나사로도 죽고 부자도 죽어서 세상을 떠났는데 죽은 후에는 두 사람의 운명이 완전히 역전됐습니다. 나사로는 천국에 들어가고 부자는 지옥에 떨어진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부자는 병든 거지 나사로에게 무관심했기 때문에 하나님 심판을 받았습니다.
본문 19절에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다.”고 부자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자색 옷은 값이 비싼 겉옷을 말하고 고운 베옷은 고급 속옷을 말합니다. 옛날에 이스라엘에서는 바다에서 나는 조개에서 자색물감을 추출했는데 겉옷 한 벌을 염색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조개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웬만한 부자들은 자색 옷을 입는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자색 옷은 왕이나 왕족이나 돈이 많은 귀족들만 입었으며 자색 옷은 신분과 부를 나타내는 척도가 됐습니다. 부자는 자색 옷을 입고 날마다 잔치를 베풀고 먹고 마시며 사치와 향락을 즐긴 입니다.
역사가들은 로마제국이 사치와 향락으로 멸망했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도 부자들의 사치와 낭비가 매우 심각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식사할 때 포크나 나이프나 내프킨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윌리암 바클레이). 부자들은 맨손으로 음식을 먹은 다음 두껍게 썬 빵 덩이에 손을 닦고 그 빵 덩이를 버렸는데 나사로는 버려지는 빵 덩이와 음식 부스러기를 얻어먹기 위해 부잣집 대문 앞에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부자의 죄가 무엇이냐? 질병과 굶주림으로 고통하며 죽어가는 거지 나사로에게 무관심한 것이 부자의 죄입니다. 나사로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을 때, 부자는 너무 많이 먹고 배가 불러서 헐떡거렸습니다. 또 길거리의 개들이 나사로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와 고름을 핥으며 나사로를 괴롭히고 있을 때, 부자는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습니다. 부자는 거지라고 나사로를 조롱하지도 않았고, 나사로에게 고통을 주거나, 협박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부자는 나사로가 당하는 고통과 굶주림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무관심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질투와 증오심은 관심이 있기 때문에 갖습니다. 관심이 있기 때문에 질투하고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관심은 살든지 죽든지 전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무관심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자비한 태도입니까?
사람이 무엇을 소유하고 있든지 소유에는 사회적인 책임과 의무가 따릅니다. 그러므로 돈이나 권력이나 지식이나 명예나 무엇을 소유하고 있든지 자기가 소유한 것으로 봉사하고 베풀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부자는 병든 나사로를 보고도 가난하고 병든 자를 돌봐야 할 부자의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가난한 고아의 아버지와 가난한 고아와 과부의 재판장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과 고난 중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이 세상의 삶에 의해 천국과 지옥이라는 인간의 최후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본문 22절 이하에는 두 사람의 사망 소식과 함께 죽은 후에 역전된 두 사람의 운명이 자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22절에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었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죽어서 장사되었다고 기록돼 있지만 나사로는 장사되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나사로는 장례식도 치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가난한 거지 나사로를 위해 누가 장례를 치러주겠습니까? 나사로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하다 슬퍼하는 사람 하나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반면에 부자는 많은 사람의 애도 속에 호화스럽게 장례식을 치르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죽은 다음에는 두 사람의 운명이 완전히 역전됐습니다. 한평생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하다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거지 나사로는 천사들의 영접을 받고 천국에 들어갔지만 부자는 지옥에 떨어져 뜨거운 불꽃 가운데서 고통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지옥과 같은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들어갔지만 부자는 사치와 향락과 죄악의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지옥에 떨어져 불꽃 가운데서 고통하고 있던 부자는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것을 보고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호소했습니다. 지옥의 불꽃 가운데 떨어진 부자는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혀만 조금 적셔도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극심한 갈증과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자를 도와줄 수 없는 이유로, 천국과 지옥은 이생, 즉 이 세상의 삶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도와줄 수 없고, 한번 정해진 죽은 자의 운명은 바뀔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나사로를 보내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부자의 이 요청도 거절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으면 된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않으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이 가서 전해도 권함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은 구약성경의 모세오경과 선지서를 말합니다. 성경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있어 지옥에서 나가거나 천국에서 지옥으로 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부자에게 한 이 말에 근거해서 연옥설을 주장하는지 모르겠지만 카톨릭에서는 연옥(천국과 지옥의 중간지대)에 있는 영혼을 위해 살아 있는 성도가 기도하고 그 사람을 위해 선행을 많이 하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연옥이란 말은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죽는 순간에 하나님에 의해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 내세의 운명은 절대로 바뀔 수 없습니다.
부자는 재물과 좋은 옷을 사랑했고 잔치를 베풀고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일로 인생을 보냈습니다. 부자는 그가 원한 것은 다 해보았습니다. 부자는 이 세상의 사치와 향락이 죽은 후에 심판과 형벌의 근거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부자가 얼마나 저주받은 인생을 살았습니까? 그리스도인 중에도 “나는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았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의 물질관은 하나님의 물질을 관리하는 청지기의 물질관입니다. 물질은 내가 소유했다고 내 것이 아닙니다. 물질은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물질 자체는 악하지도 않고 선하지도 않습니다. 물질을 악하게 사용하고 불의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물질을 모으고 축재하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가난한 것보다는 돈을 벌어서 선한 사업에 사용하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은 언제나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게 윤리적인 책임과 의무를 요구합니다. 물질을 어떻게 사용했느냐고 사회적인 책임과 의무를 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물질을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삶에 의해 천국과 지옥이라는 인간의 최후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습니다.
천국은 가난한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이나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가난하고 불쌍하다고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가난은 공로나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1970년대에 시작된 남미(南美)의 해방신학자들은 본문을 가지고 부자는 지옥에 가고 가난한 사람은 천국에 간다고 구원의 진리를 왜곡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밖에 없습니다. 부자가 돈 가지고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불쌍하다고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나사로처럼 가난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이 천국에 간다면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은 예수 믿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라고 지옥에 간다면 누가 열심히 일하고 누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집에서 개인적으로 보유한 군사가 318명이나 될 정도로 큰 부자였습니다. 또 예수님을 장사한 아리마대 요셉도 큰 부자였고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도 공회의원으로 큰 부자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부자였지만 다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가난이 죄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부자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가난이 공로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부자의 재물도 정죄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사업에 부자가 유익하겠습니까? 가난한 사람이 유익하겠습니까? 부자가 물질로 구제하고 사랑을 베풀고 선을 행하면 얼마나 하나님 사업에 유익하겠습니까? 물질은 구원과 관계가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신학자와 목사 중에는 ‘나사로’란 이름을 가지고 말장난을 하는 정신나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사로란 이름은 히브리어 엘라자르(אלעזר)로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부자가 경건한 하나님 백성에게 인색하고 무관심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나사로의 믿음이나 나사로의 경건이 아닙니다. 이 비유의 핵심 교훈은 고난당한 이웃에게 무관심한 부자의 죄를 책망하고 동시에 나사로처럼 병들고 가난한 인간도 예수 믿으면 구원받고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하나님 백성이 아니고 불신자였다 할지라도 부자가 나사로에게 무관심했다면 하나님은 부자에게 책임을 물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불신자였다면 나사로도 지옥에 갔을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부자는 병든 나사로에게 무관심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자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이 세상의 삶에 의해 천국과 지옥이라는 인간의 최후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일과 선하고 의로운 일에 열심을 내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나사로가 불쌍하거나 가난해서 천국에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가난한 이웃과 고난 중에 있는 사람에게 인색한 부자 되지 마시고, 가난한 이웃과 고난 중에 있는 형제자매에게 부요하신 천국 부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 6,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