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8월 16일이면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집 앞은 수행원과 취재진들로 북적인다. 정 명예회장의 부인인 고(故) 변중석 여사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범(凡)현대가 식구들이 이곳에
집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이곳은 조용했다. 고인의 제사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자신의 용산구 한남동 자택으로 옮겨서 지냈기 때문이다.
정몽구 회장은 큰형인 정몽필씨가 일찍이 교통사고로 죽은 뒤부터 사실상
장남 역할을 대신해 왔다. 2001년 정 명예회장, 2007년 변 여사가 별세한 이후 범현대가 식구들은 매년 3월과 8월이면 청운동 자택에 모여
제사를 모셔 왔다. 범현대가 식구들이 청운동이 아닌 곳에 모여 창업주 부부의 제사를 지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0년
가까이 모셔온 제사 장소를 옮긴 데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지난 8월 18일 종로구 청운동의 정주영 명예회장 자택을 찾았다. 서울
청운초등학교 뒤편에는 인왕산 끝자락인 나지막한 언덕이 있다. 언덕에 위치한 집들 사이로 난 골목길을 따라 걸어서 5분 정도 올라가다 보면 굳게
잠긴 회색 쇠문이 있다. 근처에 다가가 보니 집 주위로 푸른 나무가 우거져 있을 뿐 오가는 사람도 없이 한적했다. 이
철문 안쪽에 정주영 명예회장의 자택이 있다. 철문 양쪽에는 5m가 넘는 높은 돌담이 있고 철문 안으로 오르막길이 한참 이어져 있다. 양쪽 돌담
너머로는 집이 각각 한 채씩 있는데 두 집 모두 정 명예회장의 이웃집들이다. 정 명예회장의 집은 철문 안쪽 오르막길을 더 올라가면 또 다른
철문이 나오는데 그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첫 번째 철문 밖에서는 집이 보이지 않는다. 외부인에게 보이는 것은 잘 가꿔진 소나무 몇 그루가
전부다. 정 명예회장이 40년 이상 살았던 이 집을 고인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으로 바꾼다는 이야기는 2001년부터 꾸준히
나왔다. 올해도 정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 집을 고인의 생애를 기리는 기념관으로 바꾼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집에는 정 명예회장이 쓰던 낡은 구두와 TV 등 고인이 생전에 쓰던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20여년 전부터 써온 소파와 17인치 TV 등 가구도 그대로 보존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명예회장의 생전 모습을
느끼기 위해 후손들이 가구와 집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택의 관리를 맡고 있는 현대차그룹 측은 기념관 건립과 관련해 아직
별다른 계획이 없다고 했다.
그룹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이 집을 기념관으로 바꾸는 방안은 아직까지
검토 중일 뿐 확정된 사안은 없다”며 “변중석 여사의 기일을 올해 한남동에서 모신 이유는 청운동 자택 내부를 수리 중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이 집이 아직도 세간의 관심을 받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한때 재계 서열 1위에
있었던 옛 현대그룹을 세운 정주영 명예회장은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맨주먹으로 시작해 엄청난 성공을 이룬 만큼 그의 생애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특히 정 명예회장이 1958년 지은 청운동 집은 호사가들의 단골 입담거리였다. 정 명예회장은 이
집을 짓는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1961년 청운동 자택의 소유권을 등기한 그는 별세할 때까지 줄곧 이곳에서 살았다.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집단으로 일구기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것이다.
정 명예회장은 매일 이 집에서 계동의 현대 본사까지 걸어서 출근했다고
한다. 자택과 사옥 간의 거리는 3㎞로 걸으면 45분 정도 걸린다. 매일 걸어서 출근하다 보니 구두 밑창이 일찍 닳았고 이를 막기 위해 굽에
징을 박아 신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워낙 큰 성공을 일군 이가 살던 집인 만큼 이 집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풍수가들은 이 집이 들어선 위치를 국내에서 손꼽히는 명당이라고 평한다. 인왕산을 뒤에 두고 청계천을 앞에 둔 청운동은 예로부터 명당으로 꼽힌
곳이다. 특히 정 명예회장의 집이 위치한 인왕산 중턱은 조선 초기 무학대사가 궁궐터로 정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밖에서 집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특이한 점 중 하나다. 산 중턱에 있기 때문에 아예 산 위에서 보면
모를까 오르막길인 집 아래쪽에서는 집 내부는커녕 건물 자체가 눈에 띄지 않는다.
청운동 토박이로 인근에서 부동산을 10년째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김모씨는
“실제로 집을 지을 당시 정 명예회장이 풍수가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집터를 직접 골랐다”며 “풍수지리학상으로 남들에게 보이는 집은 기운이
빠져나간다고 해 일부러 외부인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에 집을 지은 걸로 안다”고 했다. 지가도 꾸준히 올랐다. 1995년
㎡당 40만원대(국토부 개별공시지가 기준)였던 가격은 매년 올랐다. 올해 기준으로는 ㎡당 241만원에 달한다. 정 명예회장 본인도 1998년
펴낸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 나의 살아온 이야기’에서 “우리집은 청운동 인왕산 아래 있는데 집 오른쪽으로는 커다란 바위가 버티고 서 있고
산골 물 흐르는 소리와 산기슭을 훑으며 오르내리는 바람소리가 좋은 터이다”라며 자택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위치는
손꼽히는 명당이지만 집 자체는 검소하다. 슬래브 지붕에 2층집 구조로 된 건물이 ‘ㄴ’ 자 모양으로 배치돼 있다. 집터는 905㎡ 규모에 건물
연면적은 650㎡(약 196평)쯤 된다. 생전에 검소하고 소탈한 성품으로 유명했던 정 명예회장인 만큼 집에도 돈을 들이지 않았다.
공인중개사 김씨는 “(정 명예회장이) 워낙 집에 투자를 하지 않는 분이라
수십 년 된 집인데도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은 안 하고 그냥 사셨다”며 “고인들의 제사를 모실 때면 이곳에서 가족들이 모이기 때문에 지난 봄부터
장남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주도해 내부 공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빗물이 새거나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소규모
보수공사는 있었지만 눈에 띌 만큼 큰 공사는 아직까지 없었다는 설명이다. 2001년 정 명예회장이 별세한 이후 이 집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상속받았다. 하지만 현재 이 집에 살고 있는 현대가 일가는 없다. 대신 관리인 두세 명이 상주하면서 집 내부를 유지하고
관리하고 있다.
본래 정 명예회장 아래에 있었던 관리인들도 재산이 상속되면서 함께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 소속으로 들어갔다. 관리인들은 “이 생가를 기념관으로 바꾸는 방안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며 구체적인 답변은
꺼렸다. 현대차그룹 홍보실 측은 “정몽구 회장이 사실상 장남이라 범현대가 전체를 대표해 청운동 집을 상속받았고 관리하기는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전체의 창업주인 만큼 청운동 집은 현대차그룹뿐만 아니라 범현대가 전체에 의미 있는 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