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 팬덤은 디지털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공식 카페가 있지만 성향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개설한 여러 팬카페에서 Z세대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스타를 응원한다. 지지하는 스타의 활동기 때는 CD 구입, 음원 듣기, 각종 음악 방송 문자투표 등 매일매일 스케줄에 따라 바쁘게 움직인다.
비활동기 때는 팬카페에서 “다음 활동 때까지 ‘간장밥’을 먹고 ‘폐지’를 주우며 통장을 불리자”는 결의를 다진다. 스타가 활동을 시작할 때 확실하게 밀어주기 위해 힘을 축적하자는 뜻이다. 이렇게 다양한 이벤트와 Z세대식 유머를 주고받으며 아이돌 대상 각종 순위 투표에 열심히 참여한다.
Z세대 팬들은 스타들이 음악 방송 직캠이나 예능에 출연한 뒤 쏟아지는 3분 동영상에 열광한다. 이들은 홈 마스터들이 찍은 공연 실황 가운데 상태가 좋은 것을 엄선해 엄청난 조회 수를 올려준다.
스타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면 팬들은 ‘어뷰징’ 기사(조회 수를 올리기 위해 성의 없이 쓴 기사)를 걸러내고 ‘정성추’ 기사(기자 고유의 시각을 입혀 정성스럽게 쓴 기사)들을 골라내 ‘댓글’과 ‘좋아요’로 반응한다. ‘1위 싹쓸이’라는 별명이 붙은 가수 강다니엘이 다양한 랭킹에 오를 때마다 기사가 나고, 미디어 지수는 그대로 브랜드 평판으로 이어진다. 팬들의 반응을 기사화하는 매체들도 많아 스타와 팬, 기자가 삼각편대를 이루며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Z세대는 남자도 덕질한다
Z세대가 디지털에서만 유영하는 건 아니다. 인기 아이돌의 공연은 예매를 시작하자마자 매진되고, CD를 발매하면 오프라인 매장 앞은 북새통을 이룬다. 모 정치인이 “남자들은 게임하고 군대 가고 축구도 봐야 해서 여자들보다 불리하다”고 말하자, 또 다른 인사가 “여자들은 아이돌 덕질하느라 바쁘다”고 말해 둘 다 화살을 맞은 적이 있다. Z세대는 여자도 게임하고 남자도 덕질하는데 무슨 소리냐는 이유에서였다.
Z세대는 남녀 구별 없이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걸 찾아서 누리고 즐긴다. 상수역 근처 갤러리에서 트와이스 멤버들의 사진전이 열렸을 때 300m 넘는 줄이 하루 종일 이어졌는데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남자들이었다.
소비를 넘어 콘텐츠 생산까지
Z세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K팝 스타들의 영상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댄스, 립싱크 영상 등의 콘텐츠를 직접 제작한다. 나아가 스스로 아이돌이 되기 위해 실력을 기르고 각종 오디션에 도전한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문화를 대변하는 그룹을 만나면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며 곧바로 구매력과 홍보력을 발휘한다. 18개월의 활동 기간에 앨범 350만 장 판매 기록을 세운 워너원 멤버 열한 명 가운데 열 명이 Z세대고 데뷔 당시 다섯 명이 미성년자였다.
날마다 기록을 갈아치우며 K팝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BTS의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엄청난 규모의 팬덤 ‘아미’가 공유하며 든든하게 받치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일본 콘서트가 반한(反韓) 기류로 취소될 뻔했을 때 SNS를 무기로 전면에서 막아낸 이들도 바로 Z세대 아미였다.
음악과 영화도 꽂히기만 하면…
디지털 원주민인 Z세대는 스타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딱히 지지하는 스타가 없어도 마음에 드는 음악이나 영화가 있으면 같은 방식으로 소비한다. 연세대학교 환경공학과 졸업반인 L군은 “군인은 여자 아이돌을 무조건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노래가 좋지 않으면 외면받는다. 트와이스가 계속 사랑받는 건 예쁘기도 하지만 노래가 좋기 때문이다. BTS, 엑소, 워너원, 세븐틴 노래를 좋아하는데 이들은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Z세대의 역주행 움직임도 심상찮다. 〈슈가맨〉이나 여러 경연 프로그램에 오래된 음악이 자주 나오면서 기교나 퍼포먼스, 후크송에 질린 Z세대가 예전 발라드 음악을 찾는 일도 흔해졌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이후 멜론에서 퀸의 음악을 가장 많이 재생한 세대는 20대(43%)였다.
글로벌 팬심
아미는 매일 BTS가 세계 어느 나라 방송과 신문에 등장하는지 일일이 체크하고, 해당 나라의 콘텐츠를 찾아 함께 보고 지지한다. 이는 해외 아미들이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해당 소식을 알려 가능한 일이다. 세계에서 최단기간 인스타그램 팔로워 100만 명을 돌파한 강다니엘이 기네스월드레코드에 오르자 팬들은 남미와 아프리카 기사까지 캡처해 공유했다. K팝 전도사를 자처하는 Z세대 팬들은 해외 팬들이 질문을 하면 즉각 답변해준다. 스타가 표지로 나온 잡지나 CD를 단체 구매하려는 해외 팬들을 위해 국내 팬들이 구매 대행을 해주고, 해외 팬들과 공동으로 자선행사를 벌이기도 한다.
해독 불가 그들만의 용어
Z세대 언어는 웬만해선 이해하기 어렵다. 영알못(영어 알지 못하는 자), 툽(투표), SNS(슨스), 설리(설레는 리플) 같은 줄임말을 겨우 익혀봤자 초성이 기다리고 있다. Z세대를 겨냥한 ‘ㅇㄱㄹㅇㅂㅂㅂㄱ(이거 레알 반박 불가)’라는 상표를 단 빵까지 나왔다. 별 걸 다 초성으로 표현하는 Z세대를 따라가려면 머리 싸매고 공부해야 ‘ㅉㄹㄸ(짜래따, 잘했다)’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렇다고 ‘아싸!’라고 환호성을 질렀다가는 ‘인싸(인사이더)’를 지향하는 Z세대로부터 ‘뭐야, 아싸(아웃사이더)였어?’라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른다. ‘서수 어른디를 만들자’는 웬만큼 추리력을 발휘해도 알아듣기 힘들다. ‘서수’는 서양 수박의 준말로 음악 차트 ‘멜론’을 뜻하고, 아이디를 ‘어른디’로 부른다. 유튜브는 너튭(you 너 tube 튭), 네이버는 초록창, V앱은 가위앱같이 한 번 더 생각해봐도 아리송한 그들만의 언어가 지금도 계속 생성되는 중이다.
지킬 건 지킨다
Z세대가 온라인에서 대화할 때는 ‘셀털 금지(셀프털이 금지, 신상 밝히지 마라)’가 기본이지만 “수능을 위해 잠시 덕질을 중단하겠다”는 인사를 하면 모두들 “시험 잘 치고 나중에 더 열심히 덕질하자”고 격려한다. “혐생(혐오스러운 인생) 중인데 브이라이브 못 봐서 애가 탄다”는 글이 올라오면 “나는 상사 피해서 화장실에서 보는데 꿀잼”이라는 초보 직장인의 일탈이 등장한다. 스타가 광고하는 제품을 너무 많이 사서 창조주(어머니)한테 등짝 스매싱(등을 맞았다)을 당했다는 Z세대는 스타를 응원만 할 뿐 궁예질(근거 없는 추측)이나 애미질(잔소리, 측은지심)은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스타와 팬, 쌍방 덕질
Z세대 스타들도 같은 세대 팬들과 소통에 적극적이다. 데뷔 7년 차인 BTS가 오늘날 세계적인 스타가 된 것은 초기부터 팬들과 쌍방향 대화를 해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유튜브와 트위터에 자체 제작한 아기자기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내보내며 팬들과 마주했다. 강다니엘이 손수 음악과 자막을 넣어 제작한 호주 스카이다이빙 영상과 생일 감사 영상을 선보이자, 팬들은 “이런 행복한 쌍방 덕질은 처음”이라며 환호했다. Z세대 스타들은 공식적인 무대 외에도 팬카페, V라이브를 통해 팬들과 수시로 소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