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1(월) 색다른 투어 cafe의 아침편지
아버지의 술잔에 채워진 눈물
시인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아버지는 손수레에 연탄을 가득 싣고
가파른 언덕길도 쉬지 않고 오른다
나를 키워 힘센 사람 만들고 싶은 아버지...
"아버지가 끌고 가는 높다란 산 위에
아침마다 붉은 해가 솟아 오른다"
이렇게 연탄배달해서 시인을 키워냈던 아버지...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 상(像)이 아닌가 싶다 .
경기가 안 좋아질수록
아버지의 등에 얹힌 삶의 무게는 무겁다.
연탄 배달을 해서 자식을 키운 아버지도 계시고
운전을 해서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도 계시고
매일... 쳇바퀴 돌듯 직장생활을 하는 아버지도 계시다.
아버지.
언제나 강한 존재일 것만 같던 그분...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강하지도 않고
더 이상 힘세지도 않고
더 이상 용기 있지도 않은
비굴과 연약함이 묻어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들의 아버지...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고 싶다.
그건 바로 가족 때문이겠지--
자식을 위해서는 가족을 위해서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버리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기성세대라고
비웃고 싶어했던 적은 없었을까?
속물이라고 마음에서 밀어냈던 적은 없었을까?
어느 시인은 우리들의 아버지를 이렇게 노래한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 송정림의 마음풍경 중에서 -
송정림(宋貞林) 작가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방송작가로 데뷔했습니다. 1989년 라디오 청소년 일일 드라마 '청소년 극장'으로 데뷔했으며, 이후 <미쓰 아줌마> <녹색마차> <약속> <너와 나의 노래> 등의 TV 드라마를 집필했으며, 지은 책으로는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 《신화처럼 울고 신화처럼 사랑하라》 《사랑하는 이의 부탁》 《감동의 습관》 《명작에게 길을 묻다》 등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언니 송정연씨와 함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책을 쓰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1983 숙명여대 경영학과 졸업. 동대학원 정보방송학과 졸업. 1987 부산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1989 라디오 청소년 드라마 〈청소년 극장〉으로 방송계 데뷔. 1993 교직을 그만두고 전업 방송작가로 활약. 라디오 프로그램 〈성시완의 음악천국〉,〈심혜진의 시네타운〉, 〈이주향의 책마을 산책〉, 〈출발 FM과 함께〉 등을 담당.
[상훈]
1999 실험정신상.
2005 KBS 작가상.
[소설]
『늘푸른 학원의 출사표』, 글사랑, 1991, 장편.
『내사랑 바보천사』, 여러분, 1992, 장편.
『슬픔이 아름다울 때』, 글사랑, 1993, 장편.
『라디오 러브스토리』, 유스북, 2004, 장편.
[수필]
『마음풍경』, 글로세움, 2005, 수필집.
[기타]
「어제 불던 바람」, 라디오미니시리즈, 극본.
「가을과 노을」, 라디오미니시리즈, 극본.
「약속」, KBSTV소설, 극본.
「세상의 아침」, KBS밀레니엄특집드라마, 극본.
「파도타기」, KBS일요베스트, 극본.
「나의 사소한 연애의 역사」, KBS일요베스트, 극본.
「새드 무비」, MBC베스트극장, 극본.
「너와 나의 노래」, KBSTV소설, 극본.
「성장 느낌 18세」, SBS청소년드라마, 극본.
「그 집에는 술이 있다」, KBS인간극장, 극본.
「경찰서여 안녕」, KBS드라마시티, 극본.
「비엔나 커피처럼」, KBS드라마시티, 극본.
「정을 늙지도 않아」, KBS드라마시티, 극본.
「두 번째 첫사랑」, KBS드라마시티, 극본.
「숭늉과 블랙커피」, KBS결혼이야기, 극본.
『성장 비타민』, 글로세움, 2006, 논저.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 회상(어제의 이야기)
토요일 지난밤엔 재경고교동창생들과 부부 합동 송년회 행사를 하고 새벽시간에 귀가했으나, 일요일 아침 성당에 가야만 했습니다. 용산성당 10시 교중미사에 참석했는데, 예상한 바 대로 미사 후에 주임사제께서 21대 새로운 사목회장님을 선임하고 임명장을 주셨습니다.
휴~ 하는 안도의 마음이 놓였으나 한편으로는 연세가 아주 많으신 분이 선임되셨기에 그분을 돕는 사목위원분들이 좀 경험이 풍부한 분들이 구성되길 기대해 봅니다. 어떻든 주님의 사업은 실패란 있을 수 없기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요.
교중 미사후 우리 용문동 12구역 남성 구역장 회합이 교육관에서 열렸는데, 저는 기존 사목위원들과 회합을 해야하므로 구역모임에는 끼지 못하고 마지막 인사시간에 참석한 후, 우리 용문동 가족들을 모두 모시고 원효로 2가 소재의 대선장 음식점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그간 우리 동네를 떠나 먼 타지역으로 떠났고 또 얼마전에는 딸아이 혼사도 잘 마쳤기에 감사의 뜻으로 코스 요리집으로 우리 용문동 형제님들을 모두 초대하였습니다. 참으로 기쁘고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무엇보다 전임사목회장님께서도 어렵게 자리에 함께 해주시어 자리가 더욱 빛났습니다. 초대행사를 마친 후에는 회사 사무실에 들렸습니다.
그런데 일요일 오후시각까지 어제에 이어 우리 회사 지하 1층의 '무한창조공간'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드론 띄워 장애물 피해 목적지에 안착하는 경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보기가 좋고 신기하여 잠시 현장을 관람하다가 술이 깰 시간까지 사무실에서 밀린 업무와 저의 blog를 정리했습니다. 일을 하다보니 시간이 가는줄 까마득히 입었습니다. 어쩌면 취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는 줄 몰랐는지도 모릅니다.
어떻든 5시간이 지난 시각쯤. 술이 깬 말짱한 정신으로 돌아온 시각에 승용차를 몰고 귀가를 서둘렀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무거웠던 중책의 직을 내려놓았고 또 늘 날짜만 손꼽던 우리 용문동 형제분들을 초대한 자리를 드디어 마련했기에 어느때 보다 기뻤습니다. 하여 歸家 발걸음이 아주 가벼웠습니다. 야심한 밤이지만 차도 막히지 않고 잘 달렸습니다. 정말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 오늘의 일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