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에 사는 새
김도종
서울에서 직장 다니던 것 팽개치고 부산 집으로 온지 벌써 6개월이 지났지만 나는 직장을 구하지 않고 있었다. 누가 물으면 나의 대답은 지극히 명료하고 짧은 대답뿐이어서 사람들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왜 남들처럼 서둘러 돈 벌 생각을 하지 않고 하릴없이 빈둥거리는지 걱정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나이가 이제 한창 혈기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해서 경제적으로 기반을 잡아야 할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동안 흐르는 시간 속에 나를 잠재우는 일에 무척 익숙해져 있었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냥 침묵으로나 희미한 미소로만 지켜볼 뿐이었다. 그들에게 비친 그런 나의 모습은 마치 세상을 등지고 살기로 아예 작정한 사람 같기도 했을 것이고, 심한 정신병을 앓은 나머지 정신병동이나 요양소에서 한 삼 년 지내다 온 사람으로 여겨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것은 분명, 불과 일 년 전 까지만 해도 매사에 적극적이고 낙관적이었던 나의 모습과는 상반된 내 모습이었다.
가슴이 답답하면 늘 찾곤 하던 해운대 바닷가로 바람을 쐬러 갈 요량으로 내 방을 빠져 나왔다. 집 앞에는 제대로 닦지 않아 희뿌연 먼지가 가라앉은 '스쿠프'라고 하는 100cc짜리 소형 오토바이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오토바이의 작동은 비교적 용이했다. 핸들의 브레이크를 동시에 움켜쥐고 오른쪽 핸들 밑에 달려 있는 스타트 버튼만 누르면 곧바로 시동이 켜지는 오토바이였다. 근처 장산( 山) 약수터에서 아버지가 약수터 물을 길러 나르기 위해 구입한 것이었지만 최근 아버지가 앓아 누우신 뒤로는 아버지 대신 내가 타고 다녔다.
그런데 몇 번씩이나 스타트 버튼을 눌러보았지만 오토바이는 시동이 좀처럼 걸리지 않았다. 연료 게이지를 보니 지시침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기름을 넣을 만한 돈이 없어서 방으로 다시 올라가 돈을 꺼내왔다. 구깃구깃한 오천원권 지폐를 손에 쥔 채 오토바이를 밀고 주유소까지 갔다. 자전거가 아닌 바에야, 주유소까지 오토바이를 밀고 가니 꽤 힘에 겨웠다. 주유소는 집에서부터 십여 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얼마치 드릴까예?"
노즐을 주유기에서 빼내면서 내게 묻는 주유소 아르바이트생은 노란 염색 머리를 하고 있었다. 아직 숫기가 채 가시지 않은 앳된 얼굴이었다.
오천원권 지폐를 건네며 금액만큼 기름을 넣어달라고 하니 그녀가 몸에 배인 상냥한 미소로 '오천원 받았습니다' 하고 허리를 굽히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오토바이의 연료통 뚜껑을 개봉하고 그 안에 노즐을 걸어 놓았다. 그녀가 기름을 넣을 동안 나는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놓은 채 멀뚱멀뚱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잠시 그렇게 있자니 기름을 다 넣은 주유소 아르바이트생이 기름때가 진득하게 묻은 노즐을 걷어 내며 주유소 입구로 진입해 들어오는 소나타 승용차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나는 노란 염색 머리 아르바이트생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곧 바로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고 바람을 가르며 해운대역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해운대 바닷가로 통하는, 도로 공사 중인 횡단보도를 무법자처럼 질주해 갔다.
'해운 낚시 상회'에서 오토바이의 액셀러레이터 핸들을 있는 힘껏 쥐어 틀자 도로 면에 오토바이의 앞바퀴가 살짝 미끄러지는 듯 하다가 곧장 빠르게 질주해 갔다. 만일 달리다가 돌부리라도 울뚝 솟아오른 곳이 있어 자빠지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대형 사고를 일으킬 만한 스피드였지만 몇 년간 오토바이를 탄 이력이 있어서 설사 오토바이로 막 달려가기엔 다소 위험한 길이라고 해도 공중으로 수십 센티 튀어 오른 다음 안정된 착지를 할 수 있었고, 그런 자신감에 액셀러레이터 핸들에 실어 놓은 손아귀 힘을 빼지 않았다.
봄 햇발이 나른한 봄날 속으로 달려가고 있는 내 주위를 휘감고 있었다.
오륙도 유람선 선착장이 있는 미포(尾浦)와 웨스턴 조선비치호텔을 무릎 아래로 내려놓은 동백섬 사이를 두 차례나 신나게 질주했다. 불과 삼십여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동백섬 정상에 위치해 있는 최치원 동상 근처에서 바다를 구경했다. 녹음 짙은 그림자는 몇몇 은밀한 연인들을 봄날 속에 가두어 놓고 있었고 나는 시야가 훤히 뚫린 곳에서 해운대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왼편 저만치에서 다정하게 어깨를 감싸안고 있던 연인이 내가 가까이 있는 것이 그들의 데이트에 방해라도 되는 듯 흘깃 날선 눈치를 주곤 해서 나는 피식거리며 그 자릴 피해 주었다. 그리고 동백섬 내리막길로 오토바이의 시동을 끈 채 브레이크를 걸어가며 내려가서 부르르 시동을 걸고 오륙도 유람선 선착장이 있는 미포로 다시 질주하였다.
집을 나선 지 한 시간 삼십 분 가량 지났다. 오토바이를 미포의 포장 횟집 앞에 세워 둔 나는 잔잔한 골을 파고 연신 일렁거리는 바다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정확히 여덟 명이 주위에서 낚싯대를 바닷물 속에 드리워 놓고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틀림없이 꾼들 일 거였다. 하나같이 단단히 중무장을 하고 있었고 미끈하게 뻗은 릴 낚싯대를 바닷물 속으로 던져 놓았는데, 그들은 예리한 바다 사냥꾼들 같았다.
나는 이 해운대 바닷가에서 꼬박 25년을 살았지만 단 한 번도 낚시를 해 본 적은 없었다. 기껏해야 코흘리개 시절 둘째형을 따라가서 평소에 입던 팬티 하나만 달랑 걸치고 미포 바다에서 헤엄쳤던 기억밖엔. 집안 형제들 가운데에서 유난히 피부가 검었던 둘째형은 자맥질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잠수 한 번하면 아가미 달린 물고기처럼 한참만에 물 밖으로 나오곤 했는데 물 밖으로 나올 때마다 곧잘 싱싱한 해산물이 손아귀에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둘째형에 비해 나는 수영을 즐기지 않았고 바닷속에 거뭇거뭇 일렁거리는 해초(海草)가 두렵고 무서워서 살짝 몸만 담그고는 물 밖으로 튀어나오곤 했다. 그리고 하루종일 둘째형이 건져 낸 해산물을 까먹기에 바빴다. 집 나서기 전에 둘째형은 미리 찌개를 끓일 용기와 미제 버너, 갖가지 양념장을 만들어 가져와선 막 잡아 올린 해산물로 요리를 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때 당시 둘째형이 차려 낸 즉석 음식의 맛은 입에 슬슬 녹을 정도로 기가 막힌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 둘째형은 결혼해서 경기도 어디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둘째형을 볼 수 있는 날은 기껏해야 부모님 생신날이나 명절날, 또는 제사가 있는 날 이외엔 볼 수 없었다. 그런 둘째형을 두고 부모님은 장가를 잘못 갔다는 둥 시절을 잘 못 만났다는 둥 푸념을 자주 터뜨리곤 했다. 하지만 그런 푸념 속에서도 형의 생활을 십분 이해하려는 쪽은 응당 부모님의 몫이 되곤 했다.
최근에 그런 부모님에게 부담을 안겨 주고 있는 사람이 나였다. 한창 배울 때는 총기가 있어 집안의 자랑거리였던 나. 더군다나 수재라는 소리를 듣고, 또 한 인물값 할거라는 소리를 누누이 들었던 내가 세월이 지나면서 아닌 말로 백수건달이 되어 돌아왔으니 부모님은 겉으로는 표현 안해도 속병을 앓고 계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기대하는 마음이 변함없으셔서, 무슨 큰 뜻이 있을 게야, 펄쩍 뛰기 위해 개구리처럼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게야 하는 마음으로 그저 관망만 하실 뿐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뜻과는 달리 내 입장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인생에 대한 심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지독한 매너리즘, 권태, 짜증, 피로함, 지치고 힘듦 따위의 말들이 내게 어울릴 성싶은 말이었고 그것들은 어느 새 내 머릿속에, 내 몸 속 깊은 곳에 침투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바다 수면은 하늘을 닮아 있었다. 푸른 하늘 사이사이로 구름이 큼지막하게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아주 높은 곳에 구름들이 위치 해 있었고 바람이 부는지 재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구름들은 잠시 해를 삼켰다가 훅하고 저만치 내뱉어 놓기도 했다. 그럴 때면 바닷물은 어김없이 검푸르렀다가 빛났고 다시 검푸르게 변해 가는 것을 반복했다. 마치 바다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 같았다.
포장 횟집 앞으로 걸어가자 물기 묻은 돈주머니를 허리에 두른 포장 횟집 주인 아주머니가 내 행색을 더듬어 보았다.
"회 좀 드시고 가이소."
"……"
"싸게 드릴께예 손님예."
횟집 주인 아주머니가 포장을 걷고 선 채로 입을 볼락처럼 쩍 벌리고 빙글 웃어대며 들어오라고 내게 손짓했지만 나는 팔을 두어 번 흔들고나서 1미터 가량 높이의 선착장 제방을 훌쩍 뛰어넘었다. 해운대 토박이의 익숙한 거절의 몸짓이었다. 몇 미터 앞까지 죽 그어진 제방 모서리엔 콘크리트 바닥 깊숙이 박힌 녹슨 강철에 포장 횟집을 지탱하는 튼튼한 밧줄이 여러 갈래 걸려 뻗어 나와 있어서 나는 애써 허리를 굽혀 밧줄 밑으로 통과해야 했고 그런 다음 제방을 지탱시킬 용도로 겹겹이 포개놓은 십자형의 콘크리트 구조물들을 밟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아버지와 나눴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직장 다시 잡아야지."
"아뇨, 당분간은……."
"서울에서 무슨 안좋은 일이 있었던 게로구나."
"……"
"살다 보면 때론 그런 일이 많아. 이런 것 저런 것 꼴사나운 것도 많이 보게 되고 때로는 지 맘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 다는 것도 알게 돼. 하지만 너무 소일하고 세상일에 무관심해지면 나태하고 게을러져서 결국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 거야. 색시도 얻어야 될 게 아니냐. 니 형들은 모두 장가를 갔고 이젠 너만 남았어. 너한텐 택도 없는 여잘지 몰라도 친
구 딸래미가 막내 며느릿감으로는 괜찮더라. 은행에 다닌다던데 너하고 동갑이고, 이참에 그 아가씨나 한 번 만나 보자."
"……"
"기왕 말 나온 김에 요번 주에 만나 보자. 그 동안 네가 벌어 놓은 돈으로 장가 밑천은 되잖아. 결혼하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거야.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니 애비 애민 따로 돈 대줄 형편도 못되니 우선 전세방이라도 구해서 살면 따로 방도가 나올 거고."
"아버지……"
"됐어. 다른 말 말고 일단 만나나 보자."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그 주말에 나는 마지못해 하이얏트 호텔 커피숍으로 가서 난생 처음 맞선이란 것을 보았다. 커피숍에는 어머니와 함께 나갔고, 그 쪽에선 한껏 멋을 낸 아가씨와 그녀의 어머니로 보이는 뚱뚱한 아주머니가 나와 있었다.
"우리 딸래민 비록 고등학교까정 밖에 안 마쳤어도 참 야물어요. 요즘 딸아 같지 않십니더. 건강하고. 또, 착하고."
형식적인 양가 인사가 끝나자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뚱뚱한 아주머니가 딸자식 자랑을 했다. 뚱뚱한 아주머니의 말에 옆에 앉은 아가씨는 엄만, 하며 그녀의 옆구리를 찔러 대곤 했다. 맞선 상대는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고 언뜻 안면도 있어 보였다. 나하고 동갑이라면 결국 서른 한 살이라는 나이일 것인데, 나잇값 하느라 그런지 벌써 아줌마 티가 났다. 얼굴은 부푼 호빵처럼 둥글다 못해 커 보였고 키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유전적으로 뚱뚱한 체질(體質)을 가지고 있는 집안의 여식 같았다.
나는 어머니와 뚱뚱한 아주머니가 우리들의 눈치를 보며 자리를 비켜 줄 때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줄곧 테이블 밑에 깎지를 낀 내 손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양가 부모가 나간 후 오랫동안 내가 침묵을 지키고 있자 그녀는 자리가 불편했던지 엉덩이를 몇 차례 뭉그댔다. 그리고 이내 내가 참 멋대가리 없는 남자라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다 마신 커피잔 속에 시선을 쑤셔 넣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새침해져 있었다.
"그만 나가죠……."
나는 불편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이얏트 호텔 커피숍에서 나온 다음 해변가로 발길을 옮겨갔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그리고 바다 경찰서 앞 모래사장에 풀썩 엉덩이를 던져 놓자 그녀는 한 사람은 족히 끼어 앉을 만한 공간을 만들어 내 왼쪽에 다소곳이 앉았다.
그 날도 바다는 푸르렀다. 그리고 바다는 뱀이 슬금슬금 기어가는 형태의 고랑을 만들며 흰 포말을 모래사장 쪽으로 연달아 뱉어내고 있었다.
담배를 피워 물고 두 무릎을 가슴 앞으로 당겨 앉은 나는 줄곧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겐 단 한차례의 배려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어느 순간엔가 그녀는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고 곧 그 자리를 뜨고 말았다. 필터까지 담뱃재가 기어들어 오고 있어서 나는 손가락으로 담배꽁초를 툭 쳐버렸다. 허공에 내던져진 담배꽁초는 바람을 타고 포물선을 그리며 전방으로 떨어졌고, 담배꽁초는 곧 들이닥친 파도에 안겨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오니 부모님은 씁쓸한 낯빛을 하고 있었다. 벌써 무슨 말이 맞선 상대측과 부모님 사이에 오간 것 같았다. 그 내용은 분명 부모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전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내게 아무런 말씀도 건네지 않았다.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차단된 방문 밖에서 희미하게 들려 오고 있었다.
릴 낚싯대를 바다로 힘차게 뿌리고 있는 바다 사냥꾼에게 다가갔다. 그는 오십 줄은 족히 되어 보였다. 광대뼈가 툭 불거져 나온 중년 남자였는데 금테로 된 검정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잠시나마 그의 얼굴을 본 나는 그가 고교 시절 무척 싫어했던 교련 선생님을 닮아 있어서 새삼 돌아다 봐졌다.
십자형의 콘크리트 구조물 밑동은 물에 푹 담겨 물기를 절반쯤 머금고 있었다. 나는 그 비스듬한 구조물의 모서리에 엉덩이를 가라앉히고 바다와 십자형 콘크리트 구조물의 밑부분에 철벅거리는 파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몇 분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자니까 오륙도 유람선이 곧 출발한다는 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들려 왔다. 나는 허리를 틀어 오륙도 유람선 선착장 쪽을 바라보았다. 위태롭게 사람들을 태운 오륙도 왕복 유람선이 선착장 근처 수면 위에서 선체를 일렁거리고 있었다.
자리가 불편했던 탓에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그 때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가 '걸렸다!' 하고 소리질렀다. 낚싯줄이 팽팽하게 바닷속으로 뻗친 것으로 보아 꽤 큼지막한 물고기가 걸린 듯했다. 릴 낚싯대의 끝부분이 수면을 향해 금세 빠져 버릴 듯 휘어져 있었다.
얼른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 곁으로 다가간 나는 그가 건져 올릴 물고기를 기다리며 낚싯줄이 드리워진 수면 쪽을 바라보았다.
"으샤, 이 놈 꽤 입심이 좋은데!"
그의 입이 조개 입처럼 벌어지며 그렇게 소릴 질렀다.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릴을 풀었다 감았다 하며 익명의 물고기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근처에 있던 바다 사냥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바다 사냥꾼들은 바닷속을 팽팽하게 가르고 있는 낚싯줄을 보고 그것이 월척이 틀림없다고 하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나는 그들 틈에 섞여 엉거주춤 앉아 그놈이 어서 수면 위로 걸려 올라오길 바랐다.
"김형요, 그노마(그놈) 내 보이 월척잉기라!"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를 '김형'이라고 부른 사람은 구레나룻을 기르고 있었다. 바로 내 뒤에 서서 말하고 있었는데 깡마른 외모와는 달리 목소리가 굵었다.
낚시바늘을 문 고기는 십 분이 지나도 좀처럼 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가 힘에 부치는지 이를 악물었다.
"시펄, 웬놈에 주둥아리가 이리 쎄노!"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가 릴을 느슨하게 풀며 말했다. 그리고 오른발을 한 발짝 앞으로 내딛어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뒤로 젖히면서 다시 릴을 휙휙 감았다.
"넘 강하게 당기면 끊어지삔다, 조심하소!"
구레나룻이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에게 말했다.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는 깜빡했다는 듯 그의 말에 따라 릴을 다시 주르르 풀다가 손바닥으로 릴 손잡이를 정지시켰다. 그러자 끊어질 듯 팽팽하던 낚싯줄이 허얼렁 달아났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수중에 있는 익명의 물고기의 몸놀림이었다. 마치 릴을 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물살을 가르며 힘차게 달아나고 있었는데 거뭇하게 생긴 것이 삼십 센티는 더 될 듯 했다.
"우와, 세상에! 진짜로 크데이, 커!"
구레나룻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쳤다.
"무, 무슨 물고기야 저게?"
물고기가 물 속에 대가리를 처박고 있었기에 형체를 보지 못했던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사람들이 방금 본 물고기의 크기에 해당하는 갖가지 물고기 이름을 말했지만 물고기가 대가리라도 수면 위로 빼곡 내밀었으면 모를까 그 이름을 알기란 힘들 거였다.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의 손아귀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바다낚시 경험 중에 이렇게 힘든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배를 대절해서 바다 한 복판으로 나가지 않고 이런 얕은 물에서 월척이 걸린 것은 생전 처음 있는 일이라고도 했다.
어느 새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의 이마엔 구슬땀이 흥건히 맺혀 있었다.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는 자신의 이마에 번진 땀을 훔쳐낼 생각도 잊은 채 수면 위로 팽팽하게 치달은 낚싯줄에 시선을 박아 두고 릴의 강약을 조절하고 있었다.
"내가 대신 잡아 주까? 김형?"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가 힘에 겨워하자 구레나룻이 그에게 다가들며 말했다. 그러자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아이다! 지가 죽나 내가 죽나 한 번 해보자, 시펄!"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가 독기 오른 눈으로 뇌까렸다.
한참을 앉아 있었더니 다리가 저려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그리고 좀 더 자리가 편한 곳으로 올라서려는데 '그래 새꺄! 흐흐흐……'하고 선글라스의 중년남자가 소리치는 바람에 나는 발걸음을 되돌려 놓아야 했다.
물고기와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의 사이는 상당히 좁혀지고 있었다.
"그래! 인자 힘이 빠진 모양이데이! 쪼매만 더 버티믄 되겠다!"
구레나룻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은 무척 바쁜 생활이었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생활. 습관적인 아침 식사 거르기. 월 고정 저축 금액을 제외하고 월세, 식비, 교통비, 노후를 위한 국민 연금 한 구좌, 거기에다 회사로 진드기 같이 찾아오던 보험 아주머니에게 못 이겨 든 암(癌)보험비와 각종 경조사비 등등, 비록 총각이었지만 월급을 이것저것 쪼개 쓰다 보면 한 달에 가용할 수 있는 돈은 겨우 십여 만원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개인 살림을 꾸려 나갔으면 모를까 재테크 한답시고 주식 투자로 천만 원이나 들였던 것이 절반이나 적자를 보고 말았고 친구 신용카드 펑크난 것 도와준답시고 근 백여 만원을 빌려준 것도 함흥차사였다.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에 나의 직함은 과장 대리였다. 같이 회사에 입사한 동기들 중에서 내가 진급이 가장 빨랐던 케이스. 그리고 그에 상응, 회사 간부들로부터 하달된 업무는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와 업무상의 일로 해서 서울 생활에 염증을 느끼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 보다 더 주요한 원인이 있었다. 그것은 비교적 내 곁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던 한 여자 때문이었다.
"오빤 서울이란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아."
"……"
"함께 있어도 왠지 나 혼자 있는 것 같고…… 여자는 말야 오빠…… 누군가가 늘 곁에서 미풍처럼 귀를 간질여 줘야 하구…… 사랑한다는 말을 쉴새 없이 속삭여 줘야 하구…… 그래야 그 사람을 신뢰하게 된다구."
그녀와 나 사이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 그녀에게서 나온 말이었다.
"엄마가 괜찮은 남자를 한 사람 봐 뒀데. 이번에 인턴 과정을 밟았는데…… 그 사람하고 내가 잘 어울릴 것 같다구 그래."
"……"
"오빠? 오빠아…… 무슨 말이건 내게 해 줘야 할 게 아냐? 자그마치 6년이야, 6년! 오빠하고 나하고 ?映? 지도…… 오빠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내가 엄마 말대로 그 사람과 결혼하길 바래? 으응?"
아주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내 숨통 위로 굴러 떨어진 것 같았다. 그녀는 나와의 이별 이유를 삼각 함수 공식처럼 잘 조작해 내 머릿속을 죄어 왔고 나는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 위를 걷는 기분으로 점차 차가운 우울을 경험해야 했다. 그녀를 사귀고 나서 처음 몇 년간은 우리들의 만남은 참으로 순수했다. 우리 둘 사이엔 오직 순수한 고갱이만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그녀는 은연중에 사회에 동화되어 갔다. 거기서 나보다 멋들어진 우물을 발견했고, 그들이 치장한 화려함을 좇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녀가 점차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몇 번인가, 나는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거의 신파극의 대사 같은 말로, 우리는 우리들의 사랑만으로 이 세상을 정말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설득했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던 그녀의 눈언저리엔 순수에 대한 조롱이 섞여 있었다. 그 때 나는 그녀가 왠지 전에 내가 알았던 연인이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적어도 우리들의 만남을 천생의 연(緣)이 지상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그러한 믿음이 어느덧 새파랗게 금이 가 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녀·는·결·코·사·랑·을·원·하·지·않·았·다!
결국 나는 그녀와의 사랑을 끝맺어야 했다. 아니 그녀 스스로 나를 떠나갔던 것이다. 더욱더 화려한 꽃, 겉이 화려한 꽃을 찾아서.
8개월 전, 우리는 퇴근 후에 한 카페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 때 그녀는 내게 서류 봉투를 건넸다.
"?……"
"그건, 오빠 하구 나하구 찍은 사진이야. 그리구 편지도 들어있구."
"……"
"그 사람 만났더랬어. 엄마가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셔. 아빠두."
"……"
"그럼 나…… 그만 가 볼께. 참, 오빠 이젠 나한테 연락하지 않아도 돼.
연락하지 않아도……"
릴 낚싯대를 들고 있는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의 입이 묘하게 이죽거리고 있었다. 얼마 안 있으면 완전히 정체를 드러낼 물고기의 포획에 대한 희열감이 그의 입가에 머물러 있었다.
"더 빨리 감으소!"
구레나룻이 소리쳤다.
"이 씨…… 흐우……"
물고기가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모양, 다시 낚싯줄이 팽팽해졌고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도 신음 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릴 낚싯대를 계속 감아댔다. 수중에 드리워져 있는 낚싯줄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거뭇거뭇하던 형체의 물고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가 힘차게 감는 릴 낚싯대의 줄 끝에 매달려 끌려오는 물고기가 수면 위로 튀어 오르자 릴 낚싯대가 청청,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고기의 무게에 금방이라도 낚싯대가 툭 부러져 버릴 것 같이 위태롭게 휘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는 마지막 까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 모습이 꼭 전장에 나간 병사의 모습과도 같았다. 적이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그런 집요하고도 치열한 정신이 그에게 엿보였다.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줄곧 그 광경을 시선 속에 담아 두고 있었다. 고기가 완전히 힘이 빠진 것 같았다. 릴을 감아 돌리는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고 있었다.
"자, 여기!"
구레나룻이 뜰채를 그의 발 밑으로 끌어다 놓으며 말했다. 구레나룻도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가 완전히 물고기를 잡은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와 헤어진 날, 그러니까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날, 나는 한강 고수부지를 하염없이 걸어다녔다. 그곳엔 나같이 발걸음을 비척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한창 그녀와 내가 사랑했을 때 취했던 포즈를 똑같이 취하며 다정하게 앉아 있는 연인도 있었다. 서글펐다. 모든 것들이.
서글픔은 곧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내게 소주 두 병을 안겨 주었다. 소주 한 병을 완전히 비우고 나자 정신이 꽤 맑아지는 것 같았다. 술을 즐겨 마시던 사람도 아닌데 그날 따라 술 한 병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해서 다시 나머지 한 병을 일회용 라이터로 땄다. 마셨다…… 꿀꺽꿀꺽…… 다시 꿀꺽꿀꺽…….
그러다가 갑자기 내 눈자위가 빙글 돌아갔다. 나는 풀밭 위에 큰 대자로 누워 버렸다. 사람들이 내 곁에서 뭐라고 떠들며 지나갔다. 눈을 감았다.
붉은 망막이 슬로비디오로 실밥 같은 것을 추려 내고 있었다. 내 망막은 이본 동시 극장의 스크린처럼 지저분했으며 실밥같이 생긴 것이 자꾸 망막 밑으로 힘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그것을 애써 끄집어내 다시 망막 중앙으로 떠올려 보려고 애썼지만 눈이 아파 왔다.
나는 공중전화를 찾았다. 그녀가 말했던 남자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전화하지 말라고 했던 말도 떠올랐다. 하지만 전화부스에서 수화기를 집어든 내 손가락은 그녀에 대한 연민이 묻어 있었다. 연민이 전화기의 버튼을 쿡쿡 눌러 대고 있었다.
"아직 안 들어왔네!"
무척 딱딱하고 냉랭한 한 마디가 내 귓전에 울려 퍼졌다. '여보세요'란 물음에 대한 대답치곤 무척 신속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가, 아니 어쩌면 장모가 되었을지도 모를 사람이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는 바람에 신경이 곤두서고 말았다. 나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고, 거의 동시에 내 손아귀를 물고 있던 소주병이 땅바닥에 퍽, 하는 소리를 내며 깨져 버렸다.
그 후 나는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런 날들이 계속되었다. 급기야는 사직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봐 윤경훈, 사직서라니? 갑자기 왜 그래? 응?"
부장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의 책상 앞에 선 내게 그 이유를 물어왔으나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 고개를 정중히 숙여 절한 후 내 책상으로 돌아갔다.
어느 새 내가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소문이 사원들 사이에 퍼졌고 그 소문이 친한 동기가 있는 자금부에까지 흘러들어 간 모양이었다. 자금부에 있는 동기가 깜짝 놀란 얼굴로 달려왔지만 그에게 나중에 알려주겠다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 짐 정리를 마저 했다.
사직서를 제출한 다음 나는 자취방에서 줄곧 지내고 있었다.
퇴근 후나 주말에 동기들이 자취방으로 찾아 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윗사람과 다투어서 사직서를 제출 한 것으로 짐작하고는 회사 욕을 신랄하게 해댔다.
"그게 아냐. 장사나 해 볼까 하고."
불씨가 오만 데로 튀어 나가자 나는 그렇게 둘러대야 했다.
"거짓말 마! 그런 말 안 해도 다 알아. 민 차장 때문이지? 그 자식 때문에 사표 쓴 거지? 그렇지?"
나의 사직서는 잠시 회사 사람들을 혼란하게 만들었다.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할 만한 뚜렷한 이유가 없었던 탓에 동기들을 비롯한 회사 간부들이 전화로, 집 방문으로 나를 달래려고 했다. 장사를 하려고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건 도무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서울을 떠나 있었다. 그리고 서울을 떠나기 전날 밤에 직장 동기에게 말했다.
"그 동안 힘들었어. 누가 말했지…… 나는 서울 생활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사표 썼어. 서울 생활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이곳에 남아 있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딨겠어. 그래서, 그래서 가는 거야. 서울이 아닌 곳으로. 도시 생활을 영원히 할 수 없을 곳으로."
드디어 잡혔다! 무려 한 시간 가까이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와 힘 겨루기를 했던 물고기가!
나는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가 낚아 올린 물고기를 보고 있었다. 물고기가 아가미를 벌렁벌렁 벌리며 호흡하고 있었고, 쩍쩍 아가리를 벌릴 때마다 아가리 가장자리에 자잘하게 솟아오른 이빨이 날카롭게 빛났다. 고기는 몸통에 햇발이 산만하게 번져 빛나고 있었다.
"야, 이기(이것이) 근데 무슨 물고기고? 첨 보는 기데이!"
구레나룻이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 가까이 다가서며 물었다.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는 물고기가 도망칠까 봐 아가미에 엄지손가락을 깊숙이 집어 넣고 물고기를 가슴에 바짝 끌어안고 있었다.
"글쎄, 나도 이기 무신 고긴 지 통……"
그도 정작 자신이 들고 있는 물고기를 본 적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고기 이름을 물어 보려는 듯 그가 빙 둘러보았지만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다 사냥꾼들은 웬만한 물고기 이름은 줄줄 꿰고 있을 거였지만 정작 처음 보는 물고기인 듯 했다. 그 때 구레나룻이 언제 준비했는지 줄자를 길게 빼내 물고기의 몸통 길이를 쟀다.
"오십 삼 센티…… 참, 기도 안찬데이!"
구레나룻이 비스듬히 세워 놓은 릴 낚싯대를 돌아다보며 그걸로 잡은 거라곤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아저씨 오늘 땡잡았네예! 그나저나 우리 가게 앞에서 잡았응께네 술 한 잔 팔아 주소 마!"
포장 횟집 주인 아주머니가 뒤에서 소리쳤다.
"야야, 아줌마 말맨키로 지금 한 잔 사그라! 봉께네 요노마 요거 정력에 대끼리겠다! 보소, 아지메! 여짜 소주 몇 병 꺼내 오소!"
"가만 있어봐라! 누구 사진기 읍나? 사진이나 한팡 찍고 삶아 묵든 고아 묵든 하자!"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가 그렇게 말하자 구레나룻이 조끼 호주머니에서 일회용 카메라를 빼냈다.
"요 있능기라! 내사 마 준비성 하나는 투철한 사람 아이겄나? 히히. 그나저나 아지메 기다리니까, 소주나 후딱 시키자. 아지메요, 인자 소주 내오소 마!"
포장 횟집 주인 아주머니는 구레나룻의 그 말에 입이 헤벌쭉해지면서 포장을 걷고 사라졌고 이내 소주 세 병을 들고 나타났다.
구름에 가려 햇발이 풀죽어 있었다. 짙은 그림자가 사방에 드리워져 있었고, 바다 사냥꾼들이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가 낚아 올린 월척에 대한 기대, 곧 횟감으로나 매운탕 감으로 차려져 자신들의 입맛을 더해 줄 거라는 포식의 기대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포장 횟집 주인 아주머니 역시 모처럼 술을 팔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는지 지금 모인 사람들이 전부 몇 명인가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 때 내 시선은 줄곧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가 끌어안고 있는 물고기에게 던져져 있었다. 순간적이나마 뭔가가 그 물고기의 눈에서 내 눈으로 반사되어옴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선글라스의 중년남자 곁으로 자석처럼 빨려 들어갔다. 유들유들한 물고기의 비늘은 햇빛을 받아 빛났고, 물고기의 대가리 중앙에 자리잡은 눈알이 커다랗게 확대되어 내비쳤다. 나는 순간적으로 아련한 현기증 같은 것을 느껴야 했다. 물고기의 눈알이 광채를 띠며 나를 물기어린 눈으로 쏘아보았던 것이다. 언젠가, 그러니까 내가 그녀와 헤어지고 난 후 한강 고수 부지에서 엉망진창인 꼴로 집으로 돌아와서 거울을 들여다보았을 때의 바로 그 눈빛이었다.
"너, 넌!……"
나도 모르게 그렇게 소리쳤고, 그와 동시에 귀밑까지 입이 찢어져 클클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선글라스의 중년남자의 팔을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자 선글라스의 중년남자가 어어, 하며 십자형의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헐거워진 그의 품안에서 물고기가 허공으로 지느러미를 홰치며 날아올랐다가 이내 십자형의 콘크리트 구조물의 옆면을 타고 미끄러져 때마침 철썩 밀어닥친 파도 속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갑작스런 사태에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를 비롯한 구레나룻과 바다 사냥꾼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몰렸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들을 휙 둘러본 후 앞뒤 잴 필요도 없이 그 자리에서 빨리 달아나야만 했다.
십자형의 콘크리트 구조물들을 훌쩍훌쩍 뛰어넘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잠시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는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식하지 못한 듯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도망치는 내 등뒤에서 벼락같은 고함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나는 오토바이 시동이 제때 걸려 주기를 바라면서 오토바이를 세워 둔 곳으로 뛰어갔다. 뒤에서 몇 사람이 내 뒤를 바투 쫓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야이, 시팔 노무 새꺄! 거기 안 서!"
신랄한 욕지거리까지 들려오자 내 가슴이 불같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바다 사냥꾼들이 불과 몇 미터 앞까지 다가왔을 때 나는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고 오토바이의 액셀러레이터 핸들을 힘껏 쥐어틀고 있었다. 그 때 투박한 주먹 하나가 내 어깻죽지 위를 콱 내리찍었다. 구레나룻이었다.
이어 구레나룻 앞으로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와 또 한 명의 장정이 허겁지겁 내 오토바이 앞을 막고 있었다.
"막아, 저 새끼!"
눈 깜짝할 사이에 몇 사람의 바다 사냥꾼들이 가세했다. 나는 그들에게 걸리면 만신창이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방금 얻어맞은 어깻죽지가 아파 왔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고 구레나룻이 내 옷자락을 강하게 끌어 잡으려는 순간 오토바이의 액셀러레이터 핸들을 힘껏 뒤로 젖혔다. 오토바이 바퀴가 지면을 거칠게 짓밟는 소리가 들렸다. 그 바람에 구레나룻은 오토바이의 추진력에 밀려 어쿠쿠하며 나자빠지고 말았다. 무조건 정면돌파였다! 바다 사냥꾼들이 내 앞을 막고 있었지만 여차 하면 받아 버릴기세로 오토바이의 바디 위에 상체를 바짝 숙여 움츠리고 오토바이를 돌진시켰다.
"뭐, 뭐야?……"
이판사판으로 무섭게 눈을 부릅뜨고 오토바이를 밀어붙이자 선글라스의 중년 남자와 바다 사냥꾼들이 양옆으로 훌쩍 몸을 던져 피하며 내게 가르마 길을 터주고 말았다. 그래도 내 뒤를 힘차게 쫓는 발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그들을 너끈히 따돌렸다. 불과 몇 초만에 내 오토바이는 그들로부터 삼십여 미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얼마쯤 나아가다가 왼쪽으로 핸들을 꺾었을 땐 그들과의 거리가 백여 미터 차이가 났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이삼백 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서 액셀러레이터 핸들을 조금 풀었지만 흥분한 가슴은 여전히 벌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한국 콘도 앞쪽으로 오토바이를 몰아갔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온 이후 처음으로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으로 가슴이 뜨겁게 방망이질치는 것을 느꼈고, 처음으로 가슴 후련함을 느꼈다.
바다 사냥꾼들은 더 이상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그 물고기는 바다 사냥꾼들이 자신을 잡지 못할 저 심해 어딘 가에서 유연하게 헤엄쳐 다닐 것이다. 그리고 그 물고기는 최대한 멀리, 최고 깊은 곳으로 가서 낚시바늘을 피할 수 있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그래서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곳으로 달아나고 있을 거였다.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나는 오토바이를 해변가 도로 한켠에 세워 놓고 조개 목걸이나 산호초 같은 관광 상품을 파는 가게 앞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 들고 해변으로 나갔다. 어느 새 하늘은 잔뜩 찌푸린 날씨였고 바람이 차갑게 불고 있었다. 모래사장에 앉아서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오륙도 근처에는 아까 미포 유람선 선착장에서 보았던 그 유람선이 하얗게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오륙도는 술 취하고 보면 다섯 섬인지 여섯 섬인지 헷갈린다고 어느 시인이 오륙도를 보고 그렇게 시를 지었다는데, 문득 그 시가 생각났다. 그리고 많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무슨 뜻이 있어서가 아니고, 그냥 노랫말이 은연중 내 잠재의식 속에 박혀 있는 노래였다. 그 노래는 조관우라는 가수가 리바이벌 해서 부른 노래였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그 꽃잎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내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집에 돌아오면서도 나는 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랫소리 위로 뚝뚝……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은 점차 굵어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었다. 일방통행 도로인 해운대 구청 앞 도로로 오토바이를 몰고 집에 도착 할 때쯤 노래는 끝나 있었다.
집 앞에 오토바이를 세워 두고 있는데 어머니가 빨랫줄에 매달린 옷들을 걷어 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어머니에게 다가가서 빨래 걷는 것을 도와 드렸다.
"어디 갔다 오는 거냐?"
"바람쐬고 왔어요."
"바닷가에 갔었니?"
"네."
"아버지가 아까부터 널 찾으시더라. 빨래는 내가 걷을 테니 올라가 보렴."
"무슨 일로요."
"글쎄…… 아마 둘째형 때문일 게다. 이번에 부산에 짐 싸서 오겠다고 전화가 왔거든."
"?……"
"형 직장이 부도가 났댄다. 그래서 여차여차해서 집 근처로 이사 올 모양이야. 아무래도 객지에서 고생하는 것 보단 부모 형제가 가까이 있는 이곳이 더 나을 거라고 아버지도 허락하셨고."
"……"
"그래서 아버진 형이랑 너랑 장사를 시작했음 하는 바람이셔. 어릴 적부터 둘째형하고 너하고 마음이 잘 맞았잖니. 자, 그건 인주고 어서 올라가 보거라."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발걸음을 돌렸다. 발걸음을 옮기면서 서울에서의 생활을 돌이켜본다.
직장 생활에 얽매이다가도 문득문득 바다 생각이 난 것, 그래서 갑갑한 서울 생활에 정을 느끼지 못한 것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박혀 있던 바다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연애의 결말은 결국 나를 해운대 바다로 돌아오게 했고 나는 바다 근처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부산으로 와서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바다를 매일 같이 지켜보고 모래사장을 거닐면서도 뭔가 답답했던 것은 분명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에야말로 그녀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왠지 홀가분하고 자유스러워졌음을 느꼈다.
뜻밖이긴 해도 둘째형의 귀향소식이 반갑다. 비록 그것이 둘째형이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난 바람에 귀향하는 것이긴 하지만…….
아버지가 누워 계실 곳으로 발걸음을 가볍게 옮기며 오늘은 보고싶은 둘째형에게 전화를 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래서 수화기에 대고 '둘째형, 아무 걱정마. 너무 힘들어하지도 말고. 그리고 이번에 집에 오면 예전에 둘째형이 어릴 때 내게 해주었듯이 이젠 내가 미포 바닷속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건져 올려 형이 먹을 수 있게 해줄 테니' 하고 말하리라.
큰방 문을 열자 아버지가 시름 섞인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며 앉아 계시다가 전에 없이 밝은 얼굴로 큰방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당신의 얼굴에서 습관적이던 불안한 기색은 이내 사라졌고 곧 넉넉한 미소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신 앞에 무릎을 꿇어앉는 내 입 밖으로 '그래요, 아버지. 우리 형제들은 이제 마치 산란기에 회귀하는 연어처럼 이렇게 다시 바다로 돌아오고 있는가 봅니다.' 하는 말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바닷속에사는새.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