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물을 좀 주소 물을 좀 주소 목마르요 물 좀 주소
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
2.
아! 가겠소 난 가겠소 저 언덕위로 넘어 가겠소
여행 도중에 처녀 만나본다면 난 살겠소 같이 살겠소
3.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물 좀 주소
그 비만 온다면 나는 다시 일어나리 아! 그러나 비는 안 오네

대한민국 가수 한대수.
(1948년 3월 생)
핵물리학자인 아버지 한창석과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박정자 사이에서 부산에서 태어났다.
한대수가 7살 무렵 미국에서 유학중이던 아버지가 실종되고,
뒤 이어 어머니가 재가하는 바람에 신학자인 할아버지와 외롭게 살았다.
부산 남일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3년 뒤인 1958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할렘에 있는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62년 한국으로 돌아와서 경남중, 경남고를 다녔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발견되어 1965년 다시 도미, 롱 아일랜드의 어느 고등학교로 전학, 미국에서 고교졸업했다.
그 이듬해 뉴햄프셔 대학교 수의학과에 입학했지만 곧 자퇴하고 적성을 찾아 뉴욕 사진학교에 입학하는 등,
그의 성장기는 한마디로 외롭고,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던 힘겨운 세월의 연속이었다.
1968년 귀국한 한대수는 본격적인 음악활동에 집중했다.
그런 와중에 해군에 입대하여 만기전역했다.
코리아 헤럴드에서 기자로 일하던 1974년, 그가 작곡을 해서 다른 가수에게 주었던 두 곡
-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 - 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런 연유로 한대수는 한국에 포크 록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최초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앨범이 박정희 정권하에서 판매금지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암울한 시대였다.
연애활동 중지, 다시 도미, 민주화가 정착된 1989년에 귀국,
이처럼 성인이 된 뒤에도 그는 여전히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귀국 후 몇 장의 앨범을 냈으며 현재는 사진을 찍거나 공연을 하며 지내고 있다.
1970년대 2집 시절 무용가인 김명신을 만나 결혼, 20여년 만에 이혼했다.
그 후엔 뉴욕 월가 출신인 몽골계 러시아인인 옥사나 알페로바 (Oxana Alferova)를 만나 재혼했다.
60이 넘은 나이에 그녀와의 사이에서 귀염둥이 딸 한양호를 얻었다.
한대수의 아내, 22살 연하인 옥사나는 현재 극심한 알콜중독증으로 치료중이다.
그의 아내를 향한 애정과 헌신이 방송을 타자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국에 포크 록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가수, 한대수.
환갑을 넘긴 나이에 이제 세살짜리 딸을 둔 아빠이자, 심각한 알콜의존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22살 연하의 러시아인 여성을 아내로 두고 있는 가장, 한대수.
어려서부터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때론 외롭고, 때론 힘겹게 성장했던 한대수.
이제 인생 후반부.
좀 더 편안하고, 안락한 상황속에서 별 탈 없이 살아가기를, 옛날부터 그를 많이 좋아했던 한 사람의 팬으로서
두 눈 감고 조용히 기도해 본다.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 같은 주옥같은 음악을 작곡한, 자유와 낭만의 냄새가 그의 옷깃에서 솔솔 풍겨나는,
우리 모두의 큰 형님같은 대한민국 포크 록의 대부, 한대수.
"사랑하는 님이시여, 당신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부디, 부디 건승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