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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학교 장년교과 보충교재(Ellen G. White Notes/예언의 신 인용구들)
(1) 이 보충교재(Supplemental EGW Notes)는 대총회가 매기 안교 장년교과와 함께 제공하는 자료이며, 매일의 교과 내용과 연결하여 살핌으로 새로운 통찰력과 관점을 얻도록 돕기 위한 목적으로 관련 ‘예언의 신’ 인용구들을 발췌한 것입니다. (한글 번역본이 없는 경우는 게시자가 번역함).
* 교재명: Ellen G. White Notes for the Sabbath School Lessons
(2) [활용방법] 매일 교과 내용을 공부한 후, 그날에 해당하는 부분을 연결하여 묵상하면 큰 유익이 됩니다.
<2024년 2기 – 대쟁투>
제10과 강신술의 실체
(Spiritualism Exposed)
<6월 1일/안, 서론>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죽은 자와 교통한다는 신념은 기독교 국가라고 공언하는 나라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강신술이란 이름으로 죽은 자의 영이라는 존재와 교통하는 행위가 널리 퍼져 있다.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사별한 자들의 호감을 사게 되었다. 때때로 영적 존재들이 죽은 친구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 그들의 생애와 관련된 사건들을 말하고 저희가 살아 있을 때 행하던 행위를 한다. 이런 방법으로 그들은 사람들이 죽은 저희 친구들이 천사가 되어 저희 위를 날고, 저희와 교통한다는 것을 믿게 한다. 이같이 죽은 자의 영인 체하는 자들은 확실히 맹목적인 숭배를 받고 그들의 말은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히 여김을 받는다. (부조, 684-685)
◎ 사람이 죽을 때 불사(不死)의 축복을 받는다는 소망이 부활에 관한 성경상 교리를 일반적으로 등한히 하게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경향에 대하여 아담 클라크 박사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부활의 교리는 오늘날보다 초기 교회가 더욱 중요하게 여긴 것 같다. 왜 그런가? 사도들은 항상 부활을 주장하였고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은 부활을 통하여 근면하고 순종하고 즐거워하도록 격려를 받았다. 그런데 그들의 후계자들은 오늘날 그것을 좀처럼 말하고 있지 않다. 사도들은 그렇게 설교하였고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믿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전하면 우리의 청중도 그렇게 믿게 될 것이다. 복음의 교리에서 이것처럼 중대한 교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강단에서 이것처럼 등한시되는 교리가 없다!”Commentary, remarks on 1 Corinthians 15, paragraph 3). …
…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을 떠나려 하실 때 그들이 미구에 그분께로 올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바울은 … 장차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을 형제들에게 알려주고 그때 무덤의 속박을 깨뜨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영생으로 부활할 것이라고 말한다.(쟁투, 547~548)
◎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자를 그분의 소유로 주장하실 것이다. 죽을 육신 가운데 거하는 그리스도 영의 소생케 하시는 능력은 모든 믿는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묶어 놓을 것이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저들의 생명이 하나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와 함께 숨겨져 있으므로 그분의 마음에 거룩한 존재들이다. 생명을 부여하시는 분께서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사 26:19)라고 명령하실 것이다.
생명을 베푸시는 주님께서는 그분의 피로 사신 소유물을 첫째 부활에 불러 내실 것이며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될 그 순간,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나고 천만 천사가 영원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모든 잠자는 성도들은 안전하게 보존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각자의 이름을 아시는 저들을 마치 값진 보석처럼 보호하실 것이다. 생전에 저들 안에 있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품성의 참여자들이 되었으므로 저들을 사망에서 불러 내실 것이다. (2기별, 271)
<6월 2일/일, 강신술의 치명적인 결과>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오늘날의 강신술은 이상한 두드림에서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단지 사람의 손재주나 교묘한 속임수가 아니라 악한 천사의 직접적인 활동으로 사람을 멸망시키는 가장 성공적인 기만 중의 하나가 되었다. 많은 사람은 강신술을 단지 사람의 사기라고 믿을 때 덫에 걸릴 것이요 또한 초자연적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현상을 목격하게 되면 하나님의 크신 권능으로 말미암아 된 일이라고 생각하여 또 속임을 당할 것이다.
이 사람들은 사탄과 그 부하가 행하는 이적들에 관한 성경의 증언을 무시한다. 옛날 바로의 술객들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흉내낼 수 있었던 것도 사탄의 힘으로 된 것이었다. 사도 요한은 마지막 때 나타날 이적의 능력에 대하여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계 13:13~14)라고 말한다. 이 말씀 가운데 기록된 것은 단순히 기만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사탄의 부하가 행할 능력을 가진 이적에 속을 것인데 이 이적은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다. (살아, 394-395)
◎ 이사야 선지자는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사 8:19~20)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만일 성경에 기록된 명백한 진리 즉 죽은 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말씀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강신술의 주장과 증거 속에서 사탄이 행하는 거짓 능력과 징조와 이적을 곧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살아, 397)
◎ 그들[성도들]은 이 진리를 성경에 기초하여 입증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죽은 자의 상태를 이해해야 하는데, 이는 악령들이 언젠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친척들이라면서 비성경적 교리들을 선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감을 자아내기 위하여 온갖 능력을 행사할 것이며, 그들이 선포하는 것을 확증하기 위하여 그들 앞에서 이적을 행사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에게 나타난 자들은 마귀의 영들이라는 성경의 진리를 가지고 이 영들을 물리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소망의 기초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는데, 이는 성경으로부터 그것에 대한 이유를 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만은 확산될 것이며, 우리는 그것과 얼굴을 맞대고 겨루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걸려들어 정복당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바로 앞에 놓여 있는 그 투쟁에 맞설 준비를 갖추는 일에 우리 편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분 편에서 하실 일을 하실 것이며, 그분의 전능하신 팔로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영혼들이 사탄의 거짓 이적에 속아 그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도록 버려두기보다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영광의 하늘에서 모든 천사를 보내셔서 그들 주위에 울타리를 치실 것이다.(초기, 262)
<6월 3일/월, 구약이 말하는 죽음>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사람이 죽을 때 의인은 상급을 받고 악인은 형벌을 받는다는 말을 성경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부조들과 선지자들도 그런 증언을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와 사도들도 그런 일에 대하여 암시조차 하지 않았다. 성경은 사람들이 죽는 즉시 승천하지 않음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부활할 때까지 자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살전 4:14; 욥 14:10~12 참조).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지는 바로 그날에 그 사람의 생각은 없어진다(전 12:6 참조). 무덤에 내려가는 자들은 침묵 가운데 있다. 그들은 해 아래서 행해지는 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피곤한 의인들에게 주어지는 복된 휴식이 아닌가! 그들에게 시간은 길건 짧건 간에 단지 한순간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듣고 깨어 일어나 영광스러운 불멸을 입을 것이다. … 그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날 때 그들은 그의 생각을 그치게 되었던 그 순간을 생각해 낼 것이다. 그들의 마지막 감정은 죽음의 고통이었고 마지막 생각은 그들이 무덤의 세력 아래 넘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무덤에서 일어날 때 제일 처음으로 갖게 된 그들의 기쁜 생각은 다음과 같은 승리의 함성 가운데 메아리칠 것이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쟁투, 549~550)
◎ 그리스도께서 인류와 하나가 되신 것은 인류가 그분과 영과 생명으로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 연합의 덕택으로 그분의 생명이 그들의 생명이 된다. 그분은 회개하는 자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잠, 곧 침묵, 어둠, 수면과 같은 것으로 여기셨다. 그분은 죽음을 아주 잠깐의 순간인 것처럼 말씀하신다.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믿는 자에게 죽음은 작은 문제일 뿐이다. 그분께는 죽는 것이 잠자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동일한 능력이 그분의 교회를 살리시고, 그분의 신부인 교회를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이 세상뿐 아니라 하늘에 있는 하늘 궁정과 위로부터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돌리실 것이다. 잠자는 성도들의 승리는 부활의 아침에 영광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My Life Today, 295).
◎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는 부르짖음이 죽은 자들 가운데도 들렸다. 이 음성은 무덤의 벽을 뚫고 들어가 자는 자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리스도의 음성이 하늘에서 들리게 될 때도 그러할 것이다. 그 음성이 무덤을 뚫고 들어가 무덤의 문을 열겠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는 일어날 것이다. 구주께서 부활하시던 때에는 몇몇 무덤밖에 열리지 않았으나 그분이 재림하실 때에는 값있게 죽은 모든 사람이 그분의 음성을 듣고 영광스러운 불멸의 생명으로 부활할 것이다. (소망, 787)
<6월 4일/화, 신약이 말하는 죽음> 예언의 신 보충자료
◎ 바울의 편지를 열어 읽었을 때, 죽은 자의 진정한 상태를 나타낸 말은 교회에 큰 기쁨과 위안을 가져왔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살아있는 자들이 예수 안에서 잠자는 자들보다 먼저 주를 만나러 가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이 자는 자들에게 울리겠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자들에게 불멸의 생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부활할 것이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이 보증이 데살로니가의 어린 교회에 가져다 준 소망과 기쁨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저희 복음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보낸 편지를 믿고 소중히 여겼고 그들의 마음이 그에 대한 사랑으로 기울어졌다. 그가 전에 이런 일들을 그들에게 말하였었으나 그때 그들의 마음은 새롭고 이상스러운 것처럼 보인 교리들을 붙잡고자 노력하였으므로, 어떤 중요한 문제들이 그들의 마음에 생생하게 감명을 주지 못하였던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갈급하였으므로 바울의 편지는 그들에게 새로운 소망과 활력을 주었으며 그분의 죽으심을 통하여 생명과 불멸을 밝혀 주신 그분께 대한 확고한 신앙과 깊은 사랑을 심어 주었다.(행적, 258-259)
◎ 사도는 수긍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부활의 대진리를 진술하였다. 사도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13~20). (행적, 320)
◎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라고 바울은 기록하였다. 많은 사람이 이 성경절을 자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올 것이라고 해석하나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는 성도들을 그들의 무덤에서 불러내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로 데려가시리라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것은 데살로니가 교회뿐 아니라 어느 곳에 있든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얼마나 귀한 위안이며 영광스러운 희망인가! (행적, 259)
<6월 5일/수, 마지막 때의 강신술-1> 예언의 신 보충자료
◎ 현대 강신술은 하나님께서 옛날에 정죄하시고 금지하신 마술과 마귀 숭배를 새로운 모양으로 부활시킨 데 불과하다. 성경에는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딤전 4:1)라고 예언되어 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보내는 그의 두번째 편지에서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일어날 사건으로서 사탄이 강신술을 행할 것에 대하여 지적하였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는 “사탄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살후 2:9)이 일어나리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베드로도 말세에 교회가 당면해야 할 위험들을 묘사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을 죄악으로 인도한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장차 거짓 선생들이 일어나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벧후 2:1)라고 하였다. 여기서 사도는 강신술사들의 뚜렷한 특성 중 하나를 지적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기를 거절한다. … 강신술은 그리스도를 부인함으로 아버지와 아들을 모두 부인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것을 적그리스도의 출현이라고 선언한다. (부조, 686)
◎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눅 22:31~32)라고 하신 말씀은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우리가 홀로 떨어져 있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하자.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그분은 하나님과 사람의 원수와 대결하는 싸움에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눅 10:19)라고 말씀하신다.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가운데 생활하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결코 놓지 않을 손으로 그대를 굳게 붙들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이해하고 믿으라. 그리하면 안전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랑은 사탄의 모든 기만과 공격에 대해 난공불락의 요새가 된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 18:10).(보훈, 119)
◎ 강신술의 가르침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단지 강신술을 믿는 사람들 뿐 아니라 사탄과 그의 부하들도 공격하는 것이 된다. 그들은 정사와 권세와 공중에 있는 악의 영들을 대적하는 싸움에 참여하고 있다. 사탄은 하늘 천사들의 힘이 아니면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리의 구주께서 “기록하였으되”라는 성경 말씀으로 대항하신 것처럼 사탄을 대적할 수 있다. 사탄도 그리스도 당시처럼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자기의 기만을 유지하기 위해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시킬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명백한 말씀은 어떠한 투쟁에든지 유력한 무기로 무장시켜 준다.(살아, 397-398)
<6월 6일/목, 마지막 때의 강신술-2> 예언의 신 보충자료
◎ 강신술 교사들의 웅변적인 말에 매혹된 어떤 가련한 영혼들은 그 세력에 굴복당한 후에 그 치명적인 성격을 깨닫고, 그것을 버리고 거기서 빠져나오고자 하지만 할 수 없다. 사탄은 그의 능력으로 그들을 단단히 붙들고, 그들에게 자유를 주고자 하지 않는다. … 그처럼 가련한 영혼들이 사탄을 정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순수한 성경의 진리와 꾸며낸 이야기를 구별해 내는 것이다. 그들이 진리가 요구하는 바를 인정하게 되면, 그들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에 스스로를 두게 된다. 그들은 신앙 경험을 가진 자들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그들을 위하여 강한 구원자에게 간구해 달라고 애원해야 한다. 그것은 치열한 싸움이 될 것이다. 사탄은 이 사람들을 지배해 온 그의 악한 사자들을 증강시킬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성도들이 크게 겸비한 마음으로 금식하고 기도하면, 그들의 기도는 승리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천사들을 명령하여 사탄을 저항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면 사탄은 뒤로 물러가고, 그의 세력은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꺾이게 될 것이다. (1증언, 343-344)
◎ 과거의 경험이 반복될 것이다. 미래에는 사탄의 미신들이 새로운 형태를 취할 것이다. 오류들은 마음을 즐겁게 하고 비위를 맞춰 주는 모양으로 제시될 것이다. 빛의 옷을 입은 거짓 이론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제시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탄은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속이고자 애쓸 것이다. 가장 크게 미혹시키는 감화가 발휘될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은 최면술에 걸리게 될 것이다. … 그는 자신의 계획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정신력으로 정신을 지배하려 들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슬픈 생각은 사람들이 사탄의 기만적인 영향 아래서 하나님과의 진정한 연결 없이 경건의 모양을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
나는 모든 사람에게 말한다. 정신을 차리고 경계하라. 사탄이 빛의 천사처럼 그리스도인 교역자들의 집회에서 그리고 모든 교회에서 사람들을 그의 편으로 가담시키고자 애를 쓰면서 걸어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갈 6:7)라는 경고를 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8증언, 293~294)
◎ 사탄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광경을 모조하도록 허락되어 있지 않다. 구주께서는 이 점에 속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경고하시고 재림의 광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분명히 예언하셨다. …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27). 이러한 재림은 위조할 수 없다. 온 우주가 그 사건을 알고 온 세계가 그 일을 목격할 것이다. …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은 감정적 증거에 의하여 흔들리지 않을 만큼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 있는가? 그들은 이와 같은 위기를 당하여 성경, 오직 성경만을 붙들고 놓지 않을 것인가? 사탄은 할 수만 있으면 그날에 설 준비를 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방해할 것이다. 그는 그들의 길을 가로막고 세상 재물에 얽히도록 일을 주선하고 그들이 무겁고 어려운 짐을 지게 함으로 이 세상 걱정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눌리게 하여 마치 도적과 같이 시련의 날이 그들에게 이르게 할 것이다.(쟁투, 625-626)
<6월 7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신비주의를 조심하라”(This Day With God, 247)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사 8:19).
강신술은 속임수의 걸작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무덤에 장사한 사람들의 동정심을 사로잡기 위해 고안된 사탄의 가장 성공적이고 매혹적인 속임수다. 악한 천사들은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으로 와서 그들의 삶과 관련된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했던 행동들을 한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사람들이 그들의 죽은 친구가 천사들이 되어 그들 위에 맴돌며 그들과 소통한다고 믿게 만든다. 죽은 친구들로 가장하는 이 악한 천사들은 일종의 우상숭배로 간주되며, 많은 사람에게 그들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하여 남녀들은 진리를 거절하고 “미혹하는 영들을 주의”하도록 인도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긍정적인 용어로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전 9:5~6). 이 명백한 성경은 강신술의 가르침과 직접적으로 모순되며, 만일 주의를 기울인다면 영혼을 원수의 올무에서 구원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단지 호기심으로 강신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 없으며 영매가 된다는 생각에 겁에 질려 다시 시작하지만, 그들은 금지된 위험한 땅에서 모험을 하고 있다. 그들이 속이는 자의 투쟁에 빠졌을 때, 그들은 자기의 종들을 가장 비참한 노예로 만드는 자의 권세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능력 외에는 아무것도 그들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은 하나님의 말씀의 지시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충실히 따르는 것뿐이다. 성경은 멸망의 함정을 피하는 좁은 길을 표시해 주는 유일한 지도다. …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의 패역함을 참으시고, 그분의 뜻을 행하고 죄를 버리기를 원하는 모든 영혼에게 도움을 보내시는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사람이 하늘의 대리자들과 협력하기만 하면 그는 정복자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가장 혐오스러운 죄를 지을 수 있는 타락한 존재이지만 승리자가 될 수도 있다.
◎ “비판하지 말고 행하라” (보훈, 139~140).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그 입구가 험하다. 만일, 늘 따라다니는 어떤 죄가 있다면, 그대는 그 길이 들어가기에 너무 좁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만일 주님의 길을 계속해서 가고자 한다면, 자신의 길과 자신의 뜻과 자신의 악한 습관과 행동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하는 자는 세상의 의견을 따르거나 세상의 표준에 맞출 수 없다. 하늘의 길은 높은 지위와 부를 그대로 가지고 들어가기에도 너무 좁고, 자기중심적인 야망을 불태우기에도 너무 협소하며, 안락을 즐기며 오르기에도 너무 험하고 거칠다. 그리스도의 몫은 고통, 인내, 자아 희생, 비난, 궁핍, 그리고 그분을 대항하는 죄인들의 반박이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낙원에 꼭 들어가고자 한다면, 우리도 이러한 몫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올라가는 길은 힘든 길이며 내려가는 길은 쉬운 길이라고 결론을 내리지 말라.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에도 줄곧 고통과 형벌이 있고, 슬픔과 실망이 있으며, 가지 말라는 경고가 있다. 부주의하고 완고한 사람들이 쉽게 자멸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사탄의 길이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모두 기만이다. 악의 길에는 쓰라린 후회와 점점 깊어지는 고뇌가 있다. 우리는 교만과 세속적 야망을 좇는 것을 즐겁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종말은 고통과 슬픔이다. 이기적인 계획은 전도가 유망하게 보이도록 하고 즐거운 희망을 간직하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자아 중심의 소망 때문에 행복이 깨지고 생애가 비참하게 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리막길은 그 입구가 꽃으로 밝게 빛날지 모르나 가시가 있다. 입구에서 빛나던 희망의 빛이 절망의 흑암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끝없는 밤의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된다.
“궤사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그러나 지혜의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잠 13:15, 3:17).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모든 행동, 그분을 위한 모든 극기의 행동, 훌륭하게 견뎌 낸 모든 시련, 유혹에서 거둔 모든 승리는 최후 승리의 영광을 향하여 나가는 행진의 발걸음이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도자로 삼으면, 그분께서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길을 잃어버릴 필요가 없다. 떨고 있는 어떤 구도자도 순결하고 거룩한 빛 가운데서 걸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비록 길이 너무 좁고 너무 거룩하기 때문에 죄가 용납되지 않을지라도,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비록 의심하고 떠는 영혼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지 않으신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길이 험하며 오르막길이 비탈져 있고 우편과 좌편에 함정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여행길에서 겪는 고통을 견디어야 할 것이다. 피곤할 때도, 안식이 그리울 때도 계속해서 수고해야 하며, 연약할 때도 싸워야 하고, 낙심될 때도 계속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인도자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마침내 소망의 항구에 틀림없이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보다 먼저 그 험한 길을 친히 걸어가셨고, 우리의 발을 위하여 그 길을 평탄하게 하셨다.
그리고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은 비록 가파르지만 하나같이 피곤한 자들에게 생기를 주는 기쁨의 샘이 있다. 지혜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은 환난을 당할지라도 크게 기뻐한다. 왜냐하면 그들을 사랑하시는 그분께서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들 곁에서 동행하시기 때문이다. 위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갈 때마다 그들은 그분의 손길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고, 발걸음마다 보이지 않는 분에게서 나오는 더없이 밝은 영광의 빛이 그들의 길을 비추어 준다. 그리고 저들의 찬양의 노래는 더 높은 곡조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천사들의 노래와 합하기 위하여 상달된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잠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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