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아직도 안올라왔네요. 그 위대한 여정이 사무국의 나태함(ㅡ,,ㅡ 지송)으로 많이 지체되고 있군요.
내일 올리려고 했는데... 궁굼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미흡하지만 급히 쓴 글로 하루 앞당겨 올려드릴께요.
첫째날....막동계곡
인사동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한 버스가 오후 4시반경 첫 번째 숙소가 있는 평창 막동계곡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스케치를 시작했다.

가방싸면서 기대했던 강원도 산골짜기 심심유곡은 비에 가려 간데없고 숙소 처마아래에서 앞마당
장독대와 나무한그루, 바람에 휩쓸려 휙휙 쓰러지고 있는 노란 달맞이 꽃들만 그려야 했다.
먼저 숙소옆 한무리 노란 달맞이꽃들과 언덕위에 보이는 하얀 별장이 눈에 들어왔다.
세찬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리면서도 작은 별장을 수호하느라 애쓰는 달맞이 병사들...
히스클리프의 격정이 있는 폭풍의 언덕과 닮은 풍경...비바람에 쓰러져있는 파라솔을 세워 그 밑에
앉아 첫 번째 그림을 시작했다. 캔버스에 바람을 가두고 비를 뿌리고 노란 병사들의 춤사위도 초대
하고 비와 범벅이 되어 허물어진 하얀 별장과 깊고 푸른 계곡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다시 두 번째 그림...비를 피해 숙소 처마밑으로 파고들 수 밖에 없었다.
숙소앞 조그만 마당...보잘것없이 밋밋해보이는 작은 풍경에 한숨이 절로 나는가 싶었는데....계곡의
깊은 맛을 품은 옹기종기 모여있는 장독대들과 마당 한가운데서 끄떡없이 버티고 있는 큰 나무
한그루가 중심을 세우면서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비어있는 빨래줄까지 그렸는데...뭔가 허전하다. 앞그림에 비를 가뒀으니
뒷그림은 태양을 가두고 싶었다.
태양의 기운으로 바싹 마른 형형색색의 빨래와 청정한 날 햇빛에 반사돼 마당을 반짝거리게 하는
흙과 햇살 버무린 장맛을 품은 장독대로... 이 궂긴날, 반전을 주었다.
산골짜기 작은 마당과 햇살은 환상의 궁합 아니런가...고달픈 인생살이는 흙과 마당이 사라지고
시멘트 벽에 갇히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니까 말이다.

한시간거리의 은두령 송어횟집에서 비싸고 귀한 송어회를 실컷 먹고나서 다시 숙소로 돌아와 밤늦게
까지 술과 노래로 여흥을 달랬다.
비오는 날 밤 깊은 계곡의 마당에서 젓가락 두둘기며 부르는 노래소리에 세상의 시름은 실려 사라져
갔다.
둘째날....세번째 그림.
황태해장국으로 아침을 먹은 후 오전 그림은 숙소 근처로 정했는데...비가 그치질 않는다.
숙소 아래 건너편 계곡을 끼고 작은 집 위에 큰 소나무들의 멋들어진 풍경에 발길을 멈췄다.

우비를 쓰고 캔버스는 우산으로 방어하면서 세 번째 그림을 그렸다.

이번 그림은 유화로 하기로 했다. 유화만을 준비하기엔 캔버스 무게가 감당이 안될 것 같아 빠렛트에
물감을 짜 왔고 아크릴 물감은 별도로 가져왔는데,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아크릴로 그리다가
유화로 소나무를 치니 착착 감기는 맛이 일품이다.

근데...거기까지다. 나머지 원경, 근경은 워낙 비가 세차게 와서 정신없이 휘둘렀는데, 비가 잦아들고
보니 근경이 조잡스러운 산만한 구성이 됐다.

네 번째 그림...이대로 마무리하기엔 독야청청 저 근사한 소나무가 너무 욕심이 났다.
좀더 강렬하게 표현하고자 아크릴로 다시 재도전.
빨간색 배경은 일단 포인트를 살려주지만 까딱 잘못하다간 유치해지기 십상이다.
한틈 가라앉힌 그린 디프의 소나무로 중심을 잡고 그 아래 작은 농가 한 채가 주는 적막감이 계곡의
침묵을 대변해 주고 있다.

점심은 예정이 바뀌어 길가다 갑자기 정한만큼 기다림도 길었다.
지루한 두시간의 기다림 끝에 나온 매운탕을 먹고나니 끝도없을 것 같던 비가 서서히 개고 있었다.
오후 3시...두시간의 여유를 남기고 오후 스케치를 위해 다시 화구를 풀었다.
다섯 번째 그림...산위에서 내려다 본 계곡아래 풍경
내가 늘 고대하던 풍경중의 하나...현장에서 화구메고 위에서 땅밑을 내려다 본 풍경을 만나기란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고 귀한 구도이다.

조물주의 시선, 신의 구도...해안가에서나 어쩌다 볼 수 있는 구도로...
육지에서는 먼길 여행갈 때 차안에서나 섬광처럼 휙! 지나치면서 얼핏 맛만 보는....귀한 경치인데 지금
내 눈앞에..화구멘 내 발밑 아래 생생히 펼쳐져 있다.
이번 여행의 핵심 포인트가 될 풍경을 뛰는 가슴 진정시키며 다섯 번째 갠버스를 펼쳐들었다.
계곡을 끼고 구비 구비 휘돌아가는 강물과 산과 산 사이 작은 밭고랑들과 샛길들, 옹기 종기 색색의
집들과 나무들이 선을 이루며 아기 자기 잘 조합해 놓은 우리의 아름다운 지형이다.
그리는 중간에 또 다시 시작된 빗님의 심술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점을 완성해냈다.
이 성취감이라니....로또에 당첨되면 이 감정을 느낄 수 있으려나...아싸!!

두 번째날 저녁...새로운 숙소에 도착했다.
처음 개장한 팬션에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여자동, 남자동.... 건물 두동에 짐을 풀고 유명한 오삼
불고기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먹은 식당은 첫날부터 “유명한” 집으로 정하기로
했다. 세상이 정해놓은 유명한 집이 아닌 우리 일행이 먹기로 정한 집만 “유명한”걸로 정한 것이다.
매번 큰 소리로 “유명한”집을 외치며 먹는 바람에 쥔장의 어깨는 으쓱해지고 우린 유명한 맛에
도취된 걸로 착각했다. 코에 걸면 코걸이..그게 우리회 오래된 규칙인걸!

세 번째날...추암계곡, 아무리 유명한 촛대바위라 한들...저 많고 많은 바닷가 바위중 하나에 불과한
걸 괜한 호들갑이야...
그런데...바다속에서 우뚝 솟아오른 저 바위 하나가 심상찮은 모습으로 내 눈의 정기를 빨아들이고
있다.
울끈 불끈하기만한 다른 바위들은 촛대 바위만을 수호하고 있는 머슴들이었고 고고하게 하늘향해
쪽 뻗은 촛대바위를 향해 온몸으로 부딪히며 끊임없이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는 촛대바위의 마음을
얻기위한 자연의 애닯픈 구애처럼 보였다.

다시 여섯 번째 그림...유화는 레드와 바리올렛만 빠렛트에 조금 남아있다.
심상찮은 이 두가지 색상만으로도 촛대바위를 향한 붉은바다의 열정을 표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곱 번째 그림...아크릴로 그린 오렌지와 골드 브라운의 촛대바위
해가 넘어가려는 찰라의 석양은..붉은 태양의 기운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어둠으로 교체되기 직전의
관조적이면서 신비스런 오렌지 빛깔이고, 오렌지의 금빛이 바위에 잠깐 머물때 살짝 나타나는
그 고고함의 절정을 금장의 촛대바위로 표현했다.

여덟번째 그림...원형의 촛대바위
내 심상에 맺혀 감각으로 빚어낸 촛대바위가 아닌 자연의 빛이 머문 촛대바위를 제 모습 그대로 원형
으로 복원시켰다.
회색의 구름을 몸에 걸치고 아득한 푸른 바다 위에서 저 홀로 독야청청한...

촛대바위에 홀려 내리 세점을 그리는 순간, 내 가방속에서 지난 10년간 변함없이 아우성을 치는 비키니
수영복...이젠 내 몸의 꼬리표(상표)를 좀 떼어내 주세요 흑!...그림에 미쳐 이번에도 수영한번 못해
보고..온몸은 뙤약볕에 살타는 냄새로 진동하건만...시원한 바닷물에 발한번 못담그고..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아쉬운 마음으로 짐을 꾸려야 했다.

세 번째날, 마지막날은 광란의 밤을 보내야 하건만....
모두들 온몸 부서져라 붓질과 칼질을 해댄탓으로...기진맥진...

회장님의 대책없는 큰턱 덕분에 근처 회시장에서 싱싱한 놈들로 골라온 광어회와 숭어회로
배 두둘기며 포식하고 누군가...“아, 마지막날엔 노래방이라도 가야하지 않을까요?”하는데, 모두들 풀린 동태눈과 흐느적거리는 팔 다리 부여잡으며 들은척 만척....겨우 겨우 버스에 올라타 숙소로 향했다.

잠시 쉬는 동안...몸은 다시 충전이 되는지, 온몸에 화기가 서서히 솟구치고 숙소의 서늘한 바람을 맞아
풀린 눈들이 다들 총총해진다.
다시 남동으로 모여 다 같이 둘러앉아 온몸이 아닌 온 입만 불태우기 시작했다.
예전같으면 몸으로 열정을 불태웠는데, 이젠 불라 불라....입만 불태우고 있다. 그럼에도 절대 세월탓이
아닌 장소탓만 하면서 자신들의 스러져가는 몸을 부정하고 있다.
흐이그...아무렴요, 언제나 마음만은 이팔청춘인걸요...ㅡ,,ㅡ

마지막날 아침...숙소 근처 마을에 핀 해바라기를 눈여겨 보아 두었다.
하늘은 청정하게 맑고 푸른데 노란 해바라기들의 청순함이 돋보인다. 그런데...난 이제 청순할
나이는 지났다. 지금 내 상태는 사그라지는 청춘을 조금이라도 붙잡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지점대에
머물러 있다.

그럼 오렌지 빛깔이 제격이다. 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색, 해도 아니요, 달도 아니지만...
안간힘을 쓰며 무언가를 빛나게 꾸며주기 위해 존재하는 색....
태양을 향한 노란 해바라기의 열정을 오렌지로 하여금 부각시킨 그림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그림,
그 아홉 번째 그림으로 간택되었다.
귀경길 마지막 식사는 메밀 막국수와 수육이 선택되었고, 남들 수육 먹을때 독기품고 쏘아보던
내 눈의 레이져는 시원한 막국수 한그릇에 사르륵 녹아들었다.
이렇게 해서 여름 하계 스케치는 9장의 그림을 그렸고, 유명한 식당들에서 온갖 산해진미의 푸짐한
식사와 그럴수없게 정다운 화우들과 꿈결같은 시간을 보내고 무사히 짧지만 아쉬운여정을 마무리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속이 쓰린 한가지....이번 여행의 VIP의 원대한 포부가 미상이 언니한테
돌아갔다. 선물도 내 입맛에 꼭 맞게 내가 골랐건만...흑! ㅠ..ㅠ
고문님들께서 무언가에 홀리셨는지...그래도 미상언니의 촛대바위 그림은 멋졌어요 힝~~




















첫댓글 잘 봤어요. 좋았겠다... 나중에 사진이라도 내려서 그려봐야지. 현장감 없는 죽은 그림이 되겠지만...
보고회는 잘 끝났나요? 이그...우째 날짜가 그리 어긋날 수 있는건지... 우린 무쟈게 재밌었지라~~용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