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맛신학교! 29년 전 우연한 방문이 길이 되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사랑하는 교회와 교우님들에게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른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충심으로 빕니다!
또한 전쟁과 각종 폭력으로 신음하고 있는 지구촌의 평화를 빕니다.
지구 차원의 위기감, 불안감이 코로나 때보다 더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온 세상이 요동치고 있다. 200여 개 국가들의 생명의 위협과 경제 위기로부터 자국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부산하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 그룹, 러시아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그룹, 그리고 중립적인 국가 그룹들의 이합집산이 어디서 어떻게 충돌하여 세계전쟁이 발발하고 경제공항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1950년, 추악하고 비열한 전쟁의 고통과 아픔을 깊이 겪은 우리 민족이야 말로 누구보다도 평화를 염원하며 전쟁 방지를 위해 혼신의 지혜와 뜻을 모아야 할 때이다.
전쟁의 폭력과 악으로부터 80억 인류와 피조물들을 지켜주시길 사랑하는 교회들과 교우님들과 함께 기도드리며 평화의 새벽이 속히 동터오길 빈다.
세상이 비록 어수선하고 혼돈하며 혼란하여 내일 세상 끝이 오더라도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의 길을 가야하기에 마음을 여미며 선교 현장 소식을 교회와 교우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지난 4월 24일에 실맛신학교 신임 학장인 조나단 목사님으로부터 졸업생 21명의 명단과 졸업식 예배 순서지와 사진들을 받았다. 21명의 졸업생 중에 우리 후원자들의 비전아시아 장학금으로 공부한 학생이 12명이나 되었다. 그 중에 학사 졸업생이 7명이었고 목회학 석사 졸업생이 5명이었다. 졸업생 12명 중의 5명은 선교 현장으로 떠났고 나머지는 교회 목회현장으로 갔다.
졸업생들의 소식에 가슴이 뛰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기가 자르르 흘렀다. 그리고 눈물이 쏟아졌다. 감히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그 졸업생들이 계속 나가서 한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그 신학교를 섬긴지 29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차고 넘치도록 풍성한 열매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한 것이다
1994년 여름 우연히 방문하게 된 실맛신학교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단 한 번도 선교사가 될 꿈을 꾸어 본적이 없는 나는 뉴델리에서 만난 노 선교사님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해 그 분에게 끌려서 동북인도 오지에 있는 신학교를 방문하였다. 당시 전체 학생이 3명이었고 그나마도 학생들이 가뭄으로 1달에 1만원인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학교가 폐교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나는 단순하게 1달에 3만원을 장학금으로 보내기로 작정하며 자퇴하려는 학생들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그 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내 가슴에는 실맛신학교 장학금과 뉴델리 빈민가에 있는 어린이집 아동들의 점심 급식과 어린이 집 자립 프로젝트가 담겨 있었다. 전자는 학생들과 이미 이야기를 나눈 것이었지만 후자는 어린이들의 영양결핍과 주변 환경의 열악함을 목격한 자로서 가슴이 아파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혼자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하기로 작정하였던 것이다.
두 가지를 품고 기도하며 어떻게 일을 시작해야 할까 연구하는 중에 기장교회에 가서 인도 방문에 대한 보고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성령님께서 일하심을 목격하였다. 순식간에 장학금 명목으로 100만원이 모금되고 뉴델리 어린이 집에 보낼 급식비와 자립 비용이 채워진 것이다. 일이 항상 내 생각 이상으로 잘 진행되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입을 열어 증언만 하면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고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헌금을 해주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일이 발생하였다. 신학교로부터 받은 건물 설계도와 함께 건축비 도움 요청 편지를 10월 기장여신도회 실행위원회에 제출하였는데 그날 저녁에 바로 응답이 온 것이다.
할렐루야를 연발하며 나는 그 해 마지막 3개월을 꿈같이 보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단순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길이 되고 이정표가 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기획하고 주관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공급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하나님을 믿고 행하는 사람을 통해서 진행된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반드시 드러낸다.
97년에 인도에 들어간 나는 99년 기장총회의 요청에 따라 사역지를 뉴델리에서 남인도교단이 있는 첸나이로 옮기게 되었다. 당시 나는 한국의 IMF 상황과 방대한 남인도교단의 에큐메니칼 코워커의 자리가 주는 스트레스가 커서 실맛신학교 장학금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마음이 너무 약해서 신학교에 ‘장학금 프로젝트를 끝낸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남인도로 내려 왔다. 그러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 제 손은 짧지만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손은 짧지 않으니 주의 종이 되고자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학비가 없어서 못하는 일이 없도록 공급해주십시오. 제 마음이 약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내려왔으니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필요를 공급해주십시오.” 라고 무시로 아뢰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장학금이 중단되지 않았다.
할렐루야! 처음에는 학생이 몇 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원에게 장학금을 주었지만 점점 학생들이 늘어감에 따라서 부담이 너무 커서 전체 학생의 1/3만 감당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15명분의 장학금을 보내다가 4,5년부터 20명이 되고 지금은 22명이 되었다. 그 사이에 등록금도 많이 올랐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한번도 장학금을 제 때 지불하지 않은 적이 없다.
목회학 석사과정을 만들면서 석사과정 교수 사례금을 몇 년 동안 지원하기로 하였는데 그 무거운 후원을 하나님께서 놀랍게도 어느 가족을 통하여 응답해주셨다.
작년 8년 만에 신학교를 방문하였을 때 초대 학장으로부터 독립교단의 목회자 대부분이 실맛신학교 졸업생이라는 말을 들었다. 목회자들이 같은 신학교 출신이라는 동질의식이 있어 유대관계가 좋아졌고 목회 협력을 이전보다 더 잘 해서 좋다고 하였다. 이는 참으로 29년 사이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였다. 뿐만 아니라 다른 교단이 신학생을 많이 보내고 있으며 졸업생들이 목회학 석사과정에 대거 입학하면서 실맛신학교가 일대에서 명문으로 통한다고 하였다.
할렐루야!
시골의 작은 신학교와 작은 종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일을 찬양한다.
십여 년 전 15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면서 부터는 5명은 선교사 지망생 중에서 선발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해마다 10명은 교회로 들어가고 5명의 졸업생들은 선교사가 되어 미얀마, 네팔, 시킴, 부탄과 서남아시아 그리고 인도 본토를 향해 길을 떠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동아시아 특히 북한의 선교 소명을 받은 졸업생이 나오길 기도하고 있다.
할렐루야!
나의 발이 비록 인도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묶이고, 코로나로 한국에 묶이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그 땅을 밟지 못하도록 묶였지만 나는 결코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올해 우리 실맛신학교 졸업생 12명이 나의 바통을 받아서 주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다섯 명의 졸업생들이 내가 가지 못하는 험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연을 길과 사명으로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권능이 내전의 공포에 시달리는 미얀마 소수민족들과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민들과 전쟁의 소문으로 바짝 긴장하여 울부짖고 있는 우리 민족 위에 충만히 임재하시길 빈다. 발 빠르게 그룹을 형성하며 자국 방어에 힘쓰는 세상 모든 나라들에게 화해와 용서의 기쁜 소식! 칼을 쳐서 보습으로 만드는 주님의 평화가 넘치기를 기도한다.
2023.5.5.목.인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