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어 들일 것이 없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둘것이다.
이를 알기에 농촌에서는 빈 공간만 있으면 봄에 빽빽히 여린 모종으로 심기 시작한다.
저도 텃밭에 고구마, 옥수수를 심고 여분의 공터에 들깨를 심기 위해 들깨 모종을 뿌려 놓았다.
여리고 여린 모종과 작은 씨앗이 5개월 후에는 열매가 맺히고
곡식이 되어 사람의 입으로 식량
이 된다는 생각을
모와 식물을 심고 씨를 뿌릴 때는 까마득한 일로 여겨진다.
호정골에도 봄에 심은 모종이 하루가 다르게 색깔과 자태가 변하고 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논에 심은 모가 뿌리를 내리지 못해 바람이라도 불면 곧 쓸어질 것 같다.
오랜 가뭄으로 마을 방죽의 물을 다 빼서 논으로 흘러 들어가 모종이 뿌리가 땅에 박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방죽에 물이 다 말라 물고기들이 물이 아주 적어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 둥둥 뜨 있는 폐사하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하늘이 제 때에 비를 내려주지 못하니까 모든 생태계가 교란되는 현상을 보게 된다.
그래서 농사에는 농부가 할 일과 하늘이 내려 주어야 할 일이 따로 있음을 안다.
농부는 먼저 땅을 일구고 비옥하게 만든 다음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안 된다.
농부는 밭을 갈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할지라도 오히려 인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작은 씨에서 살아있는 식물이 나오도록 할 수 없다.
사람은 자기의 최대의 노력을 다한 후에 파종에서 수확기까지 하늘의 전능자에게 의존해야 한다.
씨에는 생명이 있고 땅에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무한하신 능력이 밤낮으로 역사하지 아니하면 씨는 아무런 수확도 내지 못한다.
바싹 마른 밭에 수분을 주기 위하여 비가 내려야 하고, 태양이 온기를 보내 주어야 하고,
땅에 묻힌 씨에는 전기가 전달되어야 한다.
창조주께서 넣어 주신 생명은 오직 창조주만이 불러낼 수 있다.
모든 씨가 싹이 트고 모든 식물이 자라는 것은 창조주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일은 일종의 신앙 행위이다.
씨가 발아해서 성장하는 신비를 씨를 뿌리는 자가 이해할 수 없으나
그는 초목을 무성하게 하시는 하늘의 능력을 확신한다.
농부가 씨를 땅에 뿌릴 때에는 마치 자기 가족들이 먹고 살 귀중한 곡식을 던져 버리는 것과 같이 보인다.
그대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기심 없는 사랑의 정신과
그들을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는 정신은 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과 동일하다.
이런 정신과 행동으로 영혼이 자라나고 영혼 안에 열매가 그대의 품성에 무르익게 될 것이다.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생애에는 자라나는 일도 없고 열매맺는 일도 있을 수 없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열심히 뿌려서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것처럼
영혼의 밭에도 선의 씨앗을 열심히 뿌려서 영혼의 풍성한 열매와 수확을 이루어 낼 때 영혼이 가치롭게 된다.
사도 바울은 고백을 들어보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고은 시인은 '외로울땐 하늘을 보라, 우주에서 우린 무한생명인 것'이라고 했다.
여린 모 심은 무논을 바라보면서 잔잔히 설명하고 있다.
"그 가득 채워진 물 속에 어린 모들이 아직 제 뿌리를 내리지 못한
불안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 생명의 첫걸음이 진행되는 모논!
그런 모논이야말로 내 아버지고 할아버지이다.
내 근원이다. 고향이다.
끝내 고향이란 농업의 산물이다.
고향의 향(鄕)이란 농업의 현장인 것이다.
그런 고향에서 영락없이 무논 개구리 울음소리가 밤을 꽉 채운다.
아 신성한 충만의 시간이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개구리의 합창으로 호정골의 밤은 깊어만 간다.
밤마다 신성한 충만의 시간을 경험하니 필자의 영혼이 영적으로 날마다 자라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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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소중하게! 단순하게! 즐겁게!
1%만 바뀌도 인생이 달라진다!
청주에서, 삼육대학교 재단 정종병드림/ 時兆社;敎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