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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병원 조기테니스 모임 '윔블던' 회원들 |
삶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매일 아침 테니스를 하는 91세 박순배 원장(녹십자의원)의 삶이 더욱 그렇다. 박 원장은 일요일과 눈·비오는 날을 빼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서울대학교 병원 코트에서 아침마다 테니스를 한다. 박 원장의 일과는 다음과 같다. 테니스를 한 뒤 서울 순천향병원 앞에 있는 녹십자의원에 출근한다. 아침나절 신문 3개를 보다 어느새 잠에 빠지기 마련이다. 간호사도 없는 병원인지라 환자가 와서 단잠에 빠진 의사를 깨운 적도 있다고 한다. 하루 환자는 10명 내외. 해가 저물쯤에는 간혹 말벗들이 찾아와 저녁식사를 하고 밤 10시전에 잠자리에 든다. 일요일 오전에는 영락교회 의무실에서 서너시간 환자를 받으며 하루를 보낸다. 2년전까지만 해도 캄보디아, 미안마 등 동남아 의료 선교에 동참했는데 이제는 그 마저도 여의치 않다. 다만 아침에 테니스하고 병원 출근하는 것이 백수를 바라보는 박순배 원장의 소소한 일상이다.
흔히 하루 10명을 만나고, 100자의 글을 쓰고, 1000자 이상의 글을 읽고, 1만보 이상을 걸으면 정신 건강과 육체 건강에 좋다고 한다. 박 원장의 삶이 제격이고 건강의 비결로 비쳐진다. 박 원장은 하루 10명의 환자를 보고, 100자 이상의 진료기록부를 적고, 신문 3개를 정독하면서 1000자 이상의 글을 읽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거기에 90이 넘도록 매일 테니스 2~3게임을 하면서 1만보 이상을 걷고 있다(보통 테니스 3경기가 1만보 정도 된다). 평안남도 평원이 고향인 박 원장은 1943년 평양 제2중학교 시절에 연식 정구 선수로 라켓을 잡았다. 세브란스 의대에 입학하고 해방을 맞아 서울에 그대로 눌러 앉았다. 박 원장이 라켓을 잡은 것은 전쟁 혼란기가 지난 1965년경. 1970년에 서울대학병원에 코트가 생기고 <론테니스클럽>이 만들어지면서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 테니스협회가 Lawn Tennis Association이라 하고 인도를 비롯해 여러 나라가 테니스협회를 창립하면 영국의 전통을 따라 'Lawn Tennis'라는 말을 넣는데 박 원장의 클럽도 그 전통을 따랐다. 박 원장은 출신 학교인 연세의대 동문테니스회장도 맡고, 병원 지역구인 용산구 지역 테니스대회도 빠지지 않고 다닐 정도로 테니스 일이라면 무조건 앞세웠다. 심지어 아들(박석산 부산백병원 원장)도 테니스를 시켜 의사테니스연맹을 만들게 할 정도로 테니스로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이가 박 원장이다.
박 원장은 사람의 몸을 자전거에 비유했다. "세워놓고 있으면 녹이 슬고 굴러가지 않는다. 매일 움직이고 기름치고 굴려야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사람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주는데 좋은 것이 바로 테니스고 건강을 지켜주는 보약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테니스처럼 인생도 꾸준한 노력하고 움직여 주어야 기대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하루 일과를 테니스 하기 위해 잡고 그 일정을 지킴으로 건강과 삶을 유지하고 있는 이가 바로 박 원장이다. 이러한 박 원장의 건강을 수치로 평가하면 어느 정도일까. 몇년전 신체 나이와 뇌의 상태를 측정했는데 30년이나 젊은 60대라는 검진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건강하다 보니 부수적으로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도 많았다. 자녀를 키우고 가정생활을 하는데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동아일보에 잠시 광고를 내 병원을 운영했는데 2년만에 서울 중구에 대지 100평의 택지를 마련하기도 했다.
박 원장이 테니스를 하면서 아들이 테니스를 하게 되어 의사테니스회를 조직해 전국 의사들 사이에 테니스 바람을 일으켜 현재까지 테니스로 건강한 의사가 국민 건강에 일조를 하게 하고 있다.
박순배 원장은
1924년 평안남도 평원 출생 1948년 연세의대(세브란스) 졸업 현 녹십자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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