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마음의 기능이 오근(五根)입니다. 오근은 믿음, 노력, 알아차림, 집중, 지혜입니다. 오근이 서로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 오력(五力)이 되어 수행을 이끕니다. 오근은 각각의 기능을 하면서 함께 조화를 이룰 때 큰 힘이 됩니다.
첫째, 믿음은 굳건해야 합니다. 믿음은 수행을 이끄는 선봉장입니다. 믿음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닌 직접 체험해보고 얻은 확신에 찬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 어떤 흔들림도 없습니다. 맹목적 믿음은 맹신에 빠져 사물을 바르게 보지 못하게 하므로 반드시 확신에 찬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믿음입니다.
둘째, 노력은 힘차고 강해야 하지만 적절해야 합니다. 노력이 지나치면 들뜨고 부족하면 나태해지므로 알맞게 해야 합니다. 앞에서 믿음이 이끌어야 노력을 할 수 있습니다. 노력은 수행을 진전시키는 에너지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노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이처럼 노력은 모든 것이 일어나도록 하고, 또 지속하도록 하는 연료입니다.
셋째, 알아차림은 정확하고 깊어야 합니다. 알아차림은 대상을 정확하게 겨냥하는 기능을 합니다. 알아차림은 깨어서 대상을 아는 각성이 된 상태라서 선한 행위입니다. 알아차림에는 순도가 있어 얼마나 높은 순도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수행의 결과가 다릅니다. 처음에 믿음이 있어야 노력을 하고 노력을 해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은 수행의 핵심요소로써 노력이 없으면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여 많을수록 좋습니다. 오근의 다른 기능은 모두 적절해야 하지만 오직 알아차림 하나만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합니다. 이 말은 알아차림이 이토록 필요하고, 또 어렵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이란 표를 잃어버리지 않고 항상 가지고 있으면 열반에 이르는 기차를 타고 마지막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뜻에서 팔만사천 법문을 하나로 줄이면 알아차림이라고 합니다.
넷째, 집중은 고요한 마음이 대상에 머무는 상태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노력해서 알아차림이 생기면 반드시 알아차림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알아차림이 대상을 겨냥하는 것이라면 집중은 알아차림을 대상에 머물게 하는 기능을 합니다. 알아차림이 지속되면 마음이 고요해져 대상에 오래 머물게 됩니다. 이것을 집중이라고 하며 삼매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집중이란 고요한 마음과 대상에 머물음이란 두 가지의 뜻이 하나로 결합된 상태입니다. 알아차림이 지속되어 집중이 될 때 비로소 다섯 가지 장애가 발목을 잡지 않아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집중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사마타 수행의 근접집중과 근본집중이 있고 위빠사나 수행의 찰나집중이 있습니다. 사마타 수행의 집중은 선정수행으로 고요함을 목표로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찰나집중은 통찰지혜 수행으로 무상, 고, 무아를 발견하여 깨달음을 얻습니다. 사마타 수행의 집중은 대상과 하나가 되어 알아차리고, 위빠사나 수행의 집중은 대상과 하나가 되지 않고 대상을 분리해서 알아차립니다. 사마타 수행은 윤회계에 머무는 수행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통찰지혜가 나면 열반에 이르러 윤회계를 벗어나는 해탈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모든 수행자는 반드시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 열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가장 강조되는 것이 알아차림과 집중, 두 가지입니다. 알아차림이 있어야 수행이 시작되므로 모든 수행은 반드시 알아차림이 기본요소입니다. 그리고 알아차림이 지속되어 고요한 마음이 될 때 집중이 됩니다. 수행을 할 때 반드시 집중이 되어야 지혜가 납니다. 이처럼 집중은 지혜가 나게 하는 직접 원인입니다. 그래서 수행에서 알아차림과 집중, 두 가지는 필수요소입니다. 만약 근접집중과 근본집중이 되지 않으면 색계, 무색계 선정수행의 단계에 이르지 못합니다. 또 위빠사나 수행에서도 찰나집중이 없으면 통찰지혜가 나지 않아 깨달음에 이르지 못합니다.
다섯째, 지혜는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집중이 되면 무상, 고, 무아의 지혜가 납니다. 어리석음은 모르는 마음으로 욕망을 가지고 대상을 움켜쥐고 집착합니다. 지혜는 아는 마음으로 욕망이 소멸하여 번뇌를 끊어버립니다. 번뇌를 움켜쥐거나 끊는 것이 어리석음과 지혜의 차이입니다. 지혜도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지혜에 안주하면 간교해지므로 지혜도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수행자들의 기본이 되는 삶이 팔정도입니다. 이 팔정도를 계정혜라고 하는데 이 세 가지가 하나로 모여서 깨달음이 완성됩니다. 계는 계율이지만 알아차림을 의미합니다. 정은 집중으로 사타마의 수행의 집중과 위빠사나 수행의 집중을 의미합니다. 혜는 지혜로써 연기와 무상, 고, 무아의 법을 보아 열반에 이르게 합니다.
지혜가 나면 이제 이 지혜가 앞에서 믿음과 함께 수행을 이끕니다. 이러한 상태를 법이 앞에서 이끈다고 합니다. 이러한 단계에 이르면 수행이 생활화되어서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아차리고 집중이 이루어 집니다.
믿음과 지혜가 함께 있을 때 서로 균형을 이루어 부족하거나 지나침이 없는 중도를 이룰 수 있습니다. 믿음이 많으면 맹신에 빠지므로 지혜가 균형을 이루게 합니다. 지혜가 많으면 간교해지므로 믿음이 균형을 이루게 합니다. 이렇듯 수행은 오근의 조화를 이룰 때 오력이 되어 도과를 성취하도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