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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이 시집가는 날 푸른 꽃이여 푸른 꽃이여! | 노래부르지 마오! 꽃피우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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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곡 : Ging Heut´ Morgen übers Feld '아침에 들녘을 거닐면'
아침 들녘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밝고 경쾌한 노래인데, 끝은 쓸쓸한 자기 행복에의 회의로 끝난다. '교향곡 1번' 1악장과 공통 소재에 의한 것으로 유명하며 명확한 피리어드 구조를 가진 흐르는 듯한 아름다운 선율에 의한 3개의 스트로프(Stropp)와 코다로 되어 있다.
처음 2개의 스트로프는 거의 불변이나 제2의 스트로프 코다가 연장되어 긴 간주 안에서 나 장조로 조바꿈, 제3의 스트로프로 들어간다. 같은 소재를 개변하여 약간 길게 늘인 제3의 스트로프 다음의 코다에서도 동일한 주제가 나오는데, 이미 힘을 잃고 토막토막 조각이 되어 끝은 올림 바장조의 으뜸화음 위에서 쓸쓸하게 사라져 간다.
아침에 들녘을 거닐면
오늘 아침에 나는 들길을 걸었네 들에 핀 방울꽃 | 그러고는 햇빛 속에 햇빛 속에서! 내 행복 다시 꽃피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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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곡 : Ich hab´ ein glühend Messer '내 가슴엔 불같은 칼이 있고'
연인을 잊지 못하는 괴로움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듯한 곡. 목관에 의한 감7상행 패시지의 반복을 배경으로 하여 나타나는 주제 자체가 행방을 모르는 격정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나 악곡 전체도 그에 맞춰 거의 반복이 없는 동작 형식을 취하고 있다.
격정의 폭풍우는 중도에서 일단 약해지나 다시 고조, 최후에 내림 마 단조, 4·6화음 위의 내림 사 음에서 한 음씩 하강해 가는 선율을 타고 '차라리 나는 검은 관 속에 눕고 싶다'라고 노래되어 최약음으로 사라져 간다. 뒤에 남는 것은 첫머리의 감7상행 패시지만으로 그것이 토막토막 연주되고 끝난다. 이 부분을 아도르노는 말러 특유의 '도괴(倒壞) Einsturz)'라는 성격의 대표적인 예로서 들고 있으며, 또한 여기서 울리는 심벌즈를 말러에 자주 나오는 '죽음의 상징'으로 풀이하는 학자도 있다.
내 가슴엔 불같은 칼이 있고
내 가슴엔 붉게 타는 칼날을 갖네, 아, 얼마나 잔인한 객인가!
| 내가 하늘을 바라볼 때면 푸른 두 눈동자가 날 바라다보네. 아 괴로워! 아 괴로워! 노란 옥수수 밭을 지나갈 때면 바람에 나부끼는 그녀의 황금빛 머리 멀리서 보이네, 아 괴로워! 아 괴로워! 내가 꿈에서 깨어날 때면 그녀의 은빛 웃음소리가 들리네. 아 괴로워! 아 괴로워! 내가 검은 관 속에 누워 다시는 눈뜨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네! |
제4곡 : Die zwei blauen Augan von meinem Schatz '내 사랑의 푸른 두 눈은'
그녀의 파란 눈길이 내 마음을 산란케 하여 여행을 떠나게 했다는 이야기. 자필 원고에는 '장송 행진곡의 템포로'라는 지시가 있는 것으로도 알 수가 있듯이 말러가 '교향곡 5번'을 위시하여 자주 사용한 '무거운 장례식 같은' 발걸음 위에 으뜸 선율이 나타난다.
악곡의 첫머리에서 스트로프 구조를 취하는 것같이 생각되지만 제법 자유로운 처리를 한 다음, 바 장조로 조바꿈하고 후반은 아주 다른 맑고 밝은 기분이 되어 보리수 그늘에서 자는 한 토막이 그려진다.
이 부분은 '교향곡 1번' 3악장 중간부에서 거의 그대로 나오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해서 악곡은 꿈꾸는 기분으로 사라져 가려 하는데, 후주 부분에서는 다시 첫머리의 답답한 걸음걸이의 단편이 나타나 고뇌를 완전히는 씻지 못한 채 조용하게 전곡을 마무리한다.
내 사랑의 푸른 두 눈은
내 사랑의 푸른 두 눈동자 나를 방랑길로 내보냈네 이제 나는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차 있는데 나는 한밤중에 떠났네, | 길가엔 한 그루 보리수가 서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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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 : 1883~85년
초연 : 1896년 3월16일, 베를린에서 말러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짐
연주시간 : 약16분
편성 : 독창, 피아노 [관현악 반주판] 플루트3(제3플루트는 피콜로와 겸함), 오보에2(제2오보에는 잉글리시 호른과 겸함), 클라리넷3(제3클라리넷은 베이스 클라리넷과 겸함), 바순2, 호른4, 트럼펫2, 트롬본3, 팀파니, 큰북, 트라이앵글, 탐탐, 글로겐슈필, 하프, 현악5부 (우니베르잘 판에 의함)
교향곡과 리트라는 말러의 창작 활동을 꿰뚫는 두 기둥 중 전자의 원천이 '교향곡 1번'에서 얻어졌다고 한다면, 후자의 원천은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에서 얻어졌다고 하겠다. 실제로 그 이후의 말러의 창작 활동은 시종 이 2곡으로 제시된 두 개의 대조적인 음악 형식, 즉 절대음악의 대표격인 교향곡과 프로그램 음악의 대표격인 리트가 어떻게 융합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향하고 있었다고 할 수가 있다.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가 카셀 왕립가극장의 부지휘자이던 말러 자신의 가극장 소프라노 가수 요한나 리히터에 대한 실연의 체험을 반영한 것이라는 사실에 의해서 자주 '말러의 자서전적 작품'이라고 불러져 온 것은 말러의 창작 활동에 있어서 이 작품이 차지하는 위치를 뚜렷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는 결코 교향곡과 관계 없는 주관적 감정의 토로가 아니다. 그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말러의 리트 작품 중에서 교향곡과의 가장 직접적인 연결을 갖고 있는 곡이다. 즉 '교향곡 1번'의 1악장은 이 리트의 제2곡, 또 3악장의 중간부는 이 리트의 제4곡 후반과 같은 소재에 의하고 있다.
더욱이 그것은 단일 주제의 차용의 범위를 훨씬 초월하여 리트 전체가 그대로 쓰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게다가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가 '교향곡 1번'에 전용되었다고는 하는 것이 통례였으나 양자의 작곡 과정이 착종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이렇듯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와 '교향곡 1번'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흥미 깊은 문제를 제공하고 있다.
또 이 작품은 나중에 말러의 교향곡의 큰 특징을 만드는 발전적 조성(악곡이 시작조와 다른 조로 끝나는 것)이 일찍부터 보인다는 것, 제1곡의 가사가 '소년의 마술 뿔피리'의 것과 아주 유사하다는 점, 말러가 후일에 교향곡에서 많이 쓰는 장송 행진곡의 싹이 제4곡에 보인다는 점 등, 그 후의 말러의 창작 활동을 생각하는 점에서 중요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작곡의 경과에 관해서는 불분명한 것이 많다. 작곡 개시의 시기에 관해서 제1의 길잡이가 되는 것은 초판 피아노 스코어(1897년)에 인쇄되어 있는 1883년 12월이란 날짜이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는 분명치 않고 誤記라고 하는 학자도 있는데, 말러 자신의 편지에 의하면 이 리트 치클루스가 1885년 1월에 완성된 것이 생각할 수 있다(이 편지에서는 리트 치클루스가 6곡으로 된다고 쓰고 있으나 현존하는 형태의 4곡 이외의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정설이 없고 언제 그 곡이 삭제되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또 이 단계에서는 아직 피아노 스코어이며 오케스트레이션은 되어 있지 않았는데, 피아노 파트의 텍스처는 분명히 오케스트라적이고 오케스트레이션을 전제로 하고 있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오케스트레이션의 시기는 오늘날 남겨져 있는 자필의 풀 스코어에서는 1891~93년 사이로 추정되며 그 후에도 1896년경까지 개정이 계속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피아노 스코어의 완성과 오케스트레이션과의 사이에는 '교향곡 1번'의 작곡 과정이 그대로 들어있는 것이며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가 '교향곡 1번'에 앞서 구상된 것은 사실이라 해도 그 오케스트레이션과 세부의 퇴고는 분명히 '교향곡 1번'의 역영향을 받고 있다.
한편 '교향곡 1번'도 개정이 거듭되어 거의 현재의 형태로 된 것은 1896년경이며 양자의 생성 과정은 거의 병행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는 이러한 연관 속에서 끊임없이 개정 끝에 완성되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확인되어 있는 자필 원고는 그 중간 단계에 지나지 않고 초판보와의 상위가 심하다.
뿐만 아니라 초판 이래의 피아노 스코어의 출판보도 말러의 창작의 최종 단계가 아니라 상당한 부분에 걸쳐 중간 과정에 놓여야 할 단계를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말러가 오케스트레이션의 도중에서 행한 변경의 전부를 처음의 피아노 스코어로 다시 집어넣지 못한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어쨌든 이 작품의 작곡 과정 및 '교향곡 1번'과의 상호 연관의 전용은 현 단계로서는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초연은 1896년 3월16일, 베를린에서 안톤 지스터만의 독창, 말러 자신의 지휘로 베를린 필하모니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또 1886년에 프라하에서 몇 곡이 피아노 반주로 초연되었다고 하는 설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자필 피아노 스코어는 알프레트 로제(말러의 조카)의 개인 소장, 자필 풀 스코어는 암스테르담의 멩엘베르흐 재단 소장, 다만 어느 쪽도 최종적 형태의 것은 아니다. 악보는 1897년 12월, 바인베르거(라이프치히, 빈)에서 풀 스코어, 피아노 스코어가 따로따로 출판되었다. 또한 1982년에 바인베르거에서 풀 스코어, 피아노 스코어가 함께 조르단 로만의 교정에 의해 신전집판 악보가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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