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천하 뒤흔드는 빅테크 누가 이기든 한국 반도체에 플러스 / 12/5(금) / 중앙일보 일본어판
구글이 올해 내놓은 7세대 TPU 아이언우드. 아마존웹서비스(AWS)가 발표한 최신 칩 트레이늄3는 자사 클라우드 내에서만 사용된다. 반면 구글은 TPU의 본격적인 외부 공급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구글]
엔비디아가 거의 독점하고 있던 인공지능(AI) 칩 시장의 판도가 움직이고 있다. 구글이 자체 설계한 AI 칩 TPU(Tensor Processing Unit)를 메타가 도입할 가능성이 제기된 데 이어 2일(현지 시간)에는 아마존웹서비스(AWS)도 신형 칩 트레이늄3를 공개했다. AWS가 엔비디아의 GPU(그래픽처리장치)보다 비용 효율이 높다고 강조하자 시장에서는 탈엔비디아 우려가 커졌다.
특히 국내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와 2위인 SK하이닉스는 그동안 엔비디아의 주요 협력사로 주목받아온 만큼 독주 체제에 균열이 생길 경우 주가에 미칠 영향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AI 버블론'으로 미국 하이테크주가 휘청이는 가운데 최고가 대비 7.31%, 16.09% 하락했다.
금융투자 전문가들은 TPU를 비롯한 특정 용도용 반도체(ASIC특정 기능을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설계된 전용 반도체)의 확산이 한국 반도체주의 주가 반등 재료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엔비디아 vs 반엔비디아' 구도가 아니라 여러 칩이 역할을 분담하는 '멀티칩 시대' 로의 전환 신호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칩 종류가 다양해질수록 AI 인프라 파이 전체가 커진다는 분석이다.
현재 AI 칩 시장은 엔비디아의 GPU가 전체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공급이 부족하고 가격이 높은 독점 구조다. 빅테크(대기업)는 GPU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각각 전용 칩을 개발해왔다. 구글의 TPU가 대표적인 예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구글의 TPU칩을 메타가 구매해 사용하게 되면 엔비디아 중심의 시장에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빅테크 간 AI 칩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강한 한국 기업은 유리하다. HBM은 GPU뿐 아니라 TPU·트레이늄 등 ASIC에도 핵심 부품이기 때문이다. 초기에 HBM 시장을 확보한 SK하이닉스는 안정적인 이익을, 후발주자인 삼성전자는 실적 개선 여지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양희찬 삼성액티브자산운용 펀드매니저는 "칩 경쟁의 핵심은 메모리 속도, 용량을 높이고 성능을 개선하는 것"이라며 고성능 메모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ASIC 시장 확대는 HBM4뿐 아니라 범용 D램 수요까지 확대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의 강력한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4일 현재 증권업계가 내놓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평균 목표주가는 각각 13만 6769원, 74만 6154원으로 현재 주가 대비 30.1%, 37.6% 높다.
특정 용도용 반도체 칩의 확산은 국내외 AI 인프라 공급망(밸류체인) 전반의 수요 확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칩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필요한 부품과 서비스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TSMC(대만파운드리) 브로드컴(미국ASIC설계) 루멘텀(미국광모듈) 셀레스티카(미국네트워크장비)와 국내 기업 이스페타시스(고다층PCB)를 유망주로 꼽았다.
ASIC가 단기간에 GPU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ASIC가 특정 연산에 최적화된 '전동 드라이버'라면 GPU는 거의 모든 작업을 소화하는 '만능 공구'에 가깝다. 결국 GPU가 뼈대를 맡고 ASIC가 특정 영역을 보완하는 '역할 분담'이 이뤄질 전망이다. 단지, ASIC의 부상은 엔비디아의 독점력에는 확실히 압력 요인이 된다고 보여진다.
양희찬 펀드매니저는 "TPU가 확대되더라도 시장은 GPU에서 TPU로 갈아타는 것이 아니라 두 축이 나란히 커지는 구조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CUDA(엔비디아의 컴퓨팅 플랫폼) 생태계가 구축해 놓은 진입장벽이 아직 높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로 ▼주요 빅테크의 'AI 서비스' 출시 계획 ▼AI 추론량 증가 ▼내년 1월 발표될 빅테크 설비투자(CAPEX) 전망치 ▼AI 서비스의 실제 수익화 전환 사례 등을 꼽았다. 박진호 NH아문디자산운용 주식운영부문장은 "1월에 나올 빅테크의 내년 설비투자 전망이 시장의 기대를 더 높이느냐 떨어뜨리느냐가 향후 주가를 결정하는 핵심"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