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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을 읽었다. 노장사상과 공맹사상은 모두 중국 고대 사상이지만,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출발점이 상당히 다르다. 아주 거칠게 말하면 공맹은 "사회를 어떻게 잘 만들 것인가", 노장은 "사회가 인간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가깝다. 정치로 따지만 공맹은 진보당, 그리고 노장은 보수당의 정책과 비슷하다. 진보는 큰 정부를 보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 구분 | 노장사상 | 공맹사상 |
| 핵심 | 도(道), 자연(自然) | 인(仁), 의(義), 예(禮) |
| 인간관 | 본래의 자연스러움을 중시 | 인간의 도덕적 가능성을 중시 |
| 이상적 인간 | 무위자연을 실천하는 사람 | 군자(君子) |
| 사회관 | 인위적 제도와 간섭을 경계 | 예·도덕·교육을 통한 질서 추구 |
| 정치 | 무위(無爲) | 덕치·왕도정치 |
| 욕망 | 욕망을 줄이고 단순하게 | 욕망을 도덕적으로 절제·조절 |
| 교육 | 인위적 지식을 경계하는 경향 | 교육을 매우 중시 |
| 인간관계 | 집착과 분별에서 벗어남 | 가족·사회적 관계 속 의무 중시 |
| 이상 상태 |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 | 도덕적으로 조화로운 사회 |
1. 인간을 보는 시각; 공맹사상은 인간이 도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중요하게 본다.
공자는 인간관계 속에서 인(仁)을 실천하고, 예(禮)를 익히며 자신을 수양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맹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에게 본래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이라는 도덕적 마음의 싹이 있다고 보았다. 반면 노장사상은 인간이 사회적 규범과 욕망에 지나치게 얽히면서 본래의 자연스러움을 잃는다고 본다. 노자의 관점에서는 "좋은 사람이 되어라"라고 끊임없이 규범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오히려 인간을 부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다.
2. 사회를 보는 차이; 여기서 두 사상의 차이가 특히 선명하다.
공맹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이상적인 질서를 고민한다. 사람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므로 부모와 자식, 군주와 신하, 친구 등 각자의 관계에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다해야 한다. 그래서 인·의·예·효·충 등이 중요해진다.
반면 노자는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법과 규범, 제도, 지식이 늘어나고 오히려 인간의 욕망도 커질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더 하는 것"보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것"을 강조한다.
3. 정치철학의 차이
공맹의 정치철학은 덕치에 가깝다. 군주가 먼저 도덕적으로 모범을 보이고 백성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왕도정치를 주장하며, 백성의 생존과 생활을 보장하지 않는 정치는 정당성을 잃는다고 본다.
노자의 무위정치는 반대 방향에서 출발한다. 통치자가 백성의 삶을 지나치게 설계하고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통치를 잘한다는 것은 통치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도록 불필요한 간섭을 줄이는 것에 가깝다.
4. 그런데 둘은 완전히 반대인가? 그렇지는 않다.
둘 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과도한 욕망과 이기심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점을 어느 정도 공유한다. 차이는 해결 방법이다.
공맹; 욕망을 도덕적으로 다스리고 교육과 예를 통해 좋은 인간과 좋은 사회를 만든다.
노장; 욕망과 인위적인 규범 자체를 줄이고 자연스러운 삶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아주 압축하면, 공맹 = 인간을 수양하여 사회를 바로잡는다. 노장 = 사회의 인위성을 덜어 인간이 자연스럽게 살도록 한다. 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사회에서 이 둘을 함께 보면 상당히 현실적인 통찰이 나온다는 것이다. 공맹은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책임과 관계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노장은 "그 공동체가 개인의 삶을 지나치게 통제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셈이다. 치매와 현대사회의 인간 소외 문제와 연결해서 보면 이 비교가 특히 재미있다. 공맹적 관점에서는 노인을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끝까지 돌봐야 할 책임이 강조될 수 있고, 노장적 관점에서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는 사회적 기준을 만들어 거기에 맞지 않는 사람을 배제하는 것 자체를 의심할 수 있다.
두 사상이 형성된 지역·생업·정치적 환경의 차이를 배경으로 보면 사상의 차이가 상당히 선명해진다.
1. 공맹사상 — 황허 중하류의 농경사회
공자(산동성에 있던 노나라출신)와 맹자(산동성에 있던 추나라출신)가 활동한 중심 무대는 대체로 황허 유역의 화북 농경사회였다. 이 지역은 황허의 범람을 관리하고 농사를 안정시키는 일이 중요했다. 농경사회에서는 계절에 맞춰 씨를 뿌리고 수확하며, 가족과 마을 단위로 협력해야 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질서 → 역할 → 협력 → 규범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공맹의 사상이 강조한 부모와 자식의 관계, 군신 관계, 공동체의 책임, 예(禮), 교육, 농민의 생업을 안정시키는 정치, 백성을 먹여 살리는 정치 등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맹자의 왕도정치는 농민이 농사철에 지나치게 동원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연결된다. 즉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자연의 질서에 맞춰 인간 사회의 질서를 조직해야 하는 조건으로 본 셈이다.
2. 노장사상 — 더 넓은 자연과 경계 지역의 경험
노장사상은 공맹처럼 하나의 좁은 지역에서만 설명하기 어렵다. 노자는 하남성 초나라출신이었고 장자는 하남성 송나라출신으로 지역적으로는 비슷했다. 그들이 중원 중심의 질서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난 지역적·문화적 경험도 고려할 수 있다. 여기서는 거대한 산과 강, 다양한 생태환경, 농경사회 밖의 생활방식 등 인간이 마음대로 통제하기 어려운 자연이라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장자의 세계에서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기준이 자연 전체의 기준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인간에게 쓸모없는 나무가 다른 존재에게는 의미가 있을 수 있고, 인간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과 작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노장은 자연을 인간이 질서화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인간이 그 안에서 자신을 낮추고 함께 흘러가야 할 거대한 질서로 본다.
3. 황허와 물에 대한 두 가지 태도; 여기에서 상당히 재미있는 대비가 가능하다. 북방 5464키로 황허와 남방 5800키로에 달하는 장강의 차이다. 척박함과 풍부함의 차이기도 하다.
황허는 중국 문명에서 농업을 가능하게 하는 생명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범람하면 재앙이 되는 위험한 강이었다. 공맹적 세계에서는 이런 자연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질서를 세우고, 역할을 정하고, 협력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사고가 자연스럽게 중요해진다.
반면 노자의 유명한 물의 비유에서는 오히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억지로 경쟁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상적인 것으로 제시된다. 즉 물을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관점과, 물의 흐름 자체에서 삶의 원리를 발견하는 관점이 대비된다. 물론 이것을 역사적 인과관계로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두 사상의 세계관 차이를 설명하는 매우 좋은 상징적 대비다.
4. 그래서 자연관도 달라진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공맹; 자연 속에서 인간이 함께 살아가려면 인간 사회에도 질서가 필요하다.
노장; 인간이 자연 속에서 살아가려면 인간이 만든 인위적 질서를 지나치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공맹에서는 예(禮)가 중요하고, 노장에서는 무위(無爲)가 중요해진다. 다만 아주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공맹도 자연을 무시한 사상이 아니고, 노장도 사회질서를 완전히 부정한 사상은 아니다. 둘 모두 인간이 자연과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했지만, 한쪽은 관계와 질서를 통한 조화, 다른 한쪽은 인위성을 덜어냄으로써 얻는 조화를 더 강조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리고 이 관점으로 보면 치매 문제도 상당히 흥미롭게 연결된다. 공맹적 관점은 "공동체가 약한 사람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를 묻게 하고, 노장적 관점은 "우리가 만든 정상·비정상의 기준 자체가 자연스러운 것인가?"를 묻게 한다. 29
한자의 국가적 자형 통일은 진(秦)나라 때인 기원전 3세기 말에 처음 크게 이루어졌고, 현대 중국의 간체자·상용자 체계는 1950~2010년대에 걸쳐 단계적으로 정비되었다.
1. 진나라 이전 — 여러 나라가 서로 다른 글자를 사용
춘추전국시대에는 같은 글자라도 지역에 따라 자형이 상당히 달랐다. 즉 제·초·연·한·조·위·진 등 여러 나라가 각각 독특한 문자 형태를 사용했다. 이것은 단순한 글씨체 차이가 아니라 실제 문자 체계의 지역적 차이였다.
2. 진시황의 통일 — 최초의 대규모 문자 통일
기원전 221년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상황이 크게 바뀐다. 진시황은 도량형·화폐 등과 함께 문자도 통일하려 했다. 진나라의 문자 체계를 기준으로 소전(小篆)을 표준화했고, 다른 지역의 여러 자형을 정리했다. 따라서 흔히 “진시황이 한자를 통일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 사건을 가리킨다. 다만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한자와 똑같은 형태로 통일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후에도 자형은 계속 변한다.
3. 한나라 — 소전에서 예서로
진나라의 소전은 획이 복잡하고 쓰기에 불편했다. 그래서 진·한 시기에 예서(隸書)가 크게 발전한다. 그리고 한나라 이후에는 점차 오늘날 한자의 직접적인 조상인 해서(楷書)로 발전했다. 대략적인 흐름은 갑골문 → 금문 → 전서 → 예서 → 해서 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자가 한 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2천 년 이상 자형이 계속 변했다는 것이다.
4. 위진남북조~당·송 — 해서가 표준적인 글자 형태로 자리잡음
위진남북조를 거쳐 당나라에 이르면 해서가 크게 정착한다. 특히 당나라의 서예가들은 우리가 오늘날 보는 정자체의 기본적인 형태를 확립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 이후에는 번체자(繁體字)의 기본 골격이라고 할 수 있는 형태가 장기간 유지된다. 즉 우리가 오늘날 대만·홍콩 등에서 사용하는 정체자도 기본적으로 이런 역사적 해서 계통에서 이어진 것이다.
5. 그런데 현대의 '상용한자' 문제는 20세기에 다시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중국에서는 문맹 문제가 심각했고, 서양과 일본의 영향을 받으면서 문자 개혁 논의가 활발해졌다. 한자를 아예 없애고 표음문자로 바꾸자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문자 개혁이 국가적 사업으로 본격화된다. ([The New Yorker][1])
# 1956년 — 간체자 공식화
1956년 국무원이 《한자간화방안(汉字简化方案)》을 공포했다. 첫 번째 표에는 230자의 간화자가 들어갔고, 이후 추가적인 간화 작업이 이어졌다. ([중국모바일통신부][2]) 예를 들면 번체 體가 간체 体로 표시되었다.
# 1964년 — 《간화자총표》
1956년의 방안을 정리하고 확대하여 1964년 《간화자총표(简化字总表)》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오늘날 중국 본토에서 사용하는 간체자의 핵심적인 기반이다.
# 1977년 — '2차 간화' 시도와 실패
중국은 1977년 다시 《제2차 한자간화방안(초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혼란이 많다는 문제가 발생했고 결국 1986년에 폐지된다. 그래서 오늘날 중국에서 사용하는 간체자는 기본적으로 1950~60년대의 1차 간화 체계를 기반으로 한다.
# 1986년 — 현재 간체자의 기본 틀이 확정
1986년 국무원이 《간화자총표》를 다시 공포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간체자의 공식 체계가 정리된다. 중국 교육부도 2013년 《통용규범한자표》가 1986년 재공포된 《간화자총표》를 계승했다고 설명한다. ([중국모바일통신부][3])
# 1988년 — '상용자'와 '통용자' 구분
1988년에는《현대 한어 상용자표》— 2,500자와 《현대 한어 통용자표》 — 7,000자가 제정되었다. 여기서 비로소 우리가 말하는 “상용한자”라는 현대적인 개념이 상당히 명확해진다.
# 2013년 — 현재의 《통용규범한자표》
그리고 현재 중국 본토에서 가장 중요한 표준은 2013년 《通用规范汉字表》다. 총 8,105자를 세 등급으로 나눈다. ([중국모바일통신부][4]) 이는 가장 기본적인 상용자 14ㅡ1급 3500자와 일반적인 사회생활에 널리 사용되는 2급 3000자, 그리고 3급 1605자로 인명·지명·전문분야 등에 필요한 글자로 구성된다. 특히 1급 3,500자가 현대 중국어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상용자 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모바일통신부][4])
# 한눈에 보면; 갑골문->금문->전국시대(지역마다 다른 글자)->★ 진나라 BC 221년 이후 소전 중심의 문자 통일->예서->해서->당·송 이후(정자체의 기본 형태 정착)->20세기 문자개혁/1956 간체자 공식화->1964 간화자총표->1977 2차 간화안 실패->1986 간화자총표 재공포 순
# 그런데 여기서 아주 재미있는 점
“간체자는 1956년에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중국 역사에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빨리 쓰기 위해 글자를 줄여 쓰는 속자·약자·초서체가 존재했다. 현대 간체자 중 일부도 이런 오래된 약자 형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한자의 역사를 크게 보면,
*진나라: 지역별 문자를 국가적으로 통일 *한·당 이후: 해서 중심의 정자체가 장기간 안정
*1950년대 이후: 현대 국가가 다시 글자의 획수와 사용 범위를 표준화 *2013년: 현대 중국어의 통용 한자 체계를 8,105자로 정리 라고 이해하면 가장 정확하다.
그리고 이걸 한국의 한자·일본의 신자체·대만의 정체자·중국 본토의 간체자와 나란히 놓으면 훨씬 재미있다. 같은 한자가 왜 體/体/體처럼 갈라졌는지도 역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1]: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22/01/17/how-the-chinese-language-got-modernized "How the Chinese Language Got Modernized"
[2]: https://www.moe.gov.cn/jyb_xwfb/xw_fbh/moe_2128/moe_2326/moe_1144/tnull_14350.html "国务院关于公布汉字简化方案的决议(1956年) - 中华人民共和国教育部政府门户网站"
[3]: https://www.moe.gov.cn/jyb_xwfb/xw_fbh/moe_2069/s7135/s7562/s7564/201308/t20130827_156334.html "散发材料一:国务院公布《通用规范汉字表》 - 中华人民共和国教育部政府门户网站"
[4]: https://www.moe.gov.cn/jyb_xwfb/xw_fbh/moe_2069/s7135/s7562/s7569/201308/t20130827_156353.html "《通用规范汉字表》的基本内容和特点(王立军) - 中华人民共和国教育部政府门户网站" 54
『장자(莊子)』 「응제왕(應帝王)」의 南海之帝為儵,北海之帝為忽,中央之帝為渾沌。남해의 임금은 숙(儵)이고, 북해의 임금은 홀(忽)이며, 중앙의 임금은 혼돈(渾沌)이다. ([Chinese Text Project][1])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 이름 자체가 상징이라는 점이다.
* 儵(숙) — 매우 빠름, 찰나 * 忽(홀) — 갑자기, 홀연히 * 渾沌(혼돈) — 아직 나뉘거나 구별되지 않은 온전한 상태
숙과 홀이 혼돈의 땅에서 만났고, 혼돈이 둘을 아주 잘 대접했다. 그래서 둘은 은혜를 갚겠다며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모두 일곱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혼돈에게는 그것이 없다. 우리가 구멍을 뚫어주자.”
그래서 하루에 하나씩 일곱 구멍을 뚫었고, 일곱째 날 혼돈은 죽는다. ([Chinese Text Project][1])
이 이야기가 굉장히 역설적이다. 숙과 홀은 ‘구별·변화·운동’이고, 혼돈은 ‘구별되기 이전의 하나 됨’이다. 숙과 홀이 혼돈에게 인간에게 필요한 ‘눈·귀·입·코’를 선물했지만, 바로 그 선의의 개입 때문에 혼돈은 죽어버린다. 장자의 주석에서도 이 이야기를 “무위(無爲)를 억지로 행하려 하면 일을 망친다”는 비유로 풀이한다. ([Chinese Text Project][2]) 그래서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아직 나뉘지 않은 것을, 선의로라도 억지로 나누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그것일 수 없다.” 그리고 ‘북해의 홀, 남해의 숙, 중앙의 혼돈’이라는 배치 자체가 상당히 아름답다. 남·북의 양극에서 ‘찰나와 돌연한 변화’가 중앙의 혼돈을 만나고, 그 혼돈을 자기들의 방식으로 ‘완성’하려다 오히려 죽여버리는 구조다.
[1]: https://ctext.org/text.pl?if=gb&node=2769&show=parallel&utm_source=chatgpt.com "莊子 : 內篇 : 應帝王 : 7 : 相似段落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2]: https://ctext.org/wiki.pl?chapter=26&if=en&utm_source=chatgpt.com "莊子集解 : 內篇 - Chinese Text Project" 178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은 불교에서 아미타불을 부르는 염불이다.
* 南無(나무): 산스크리트어 나마스(namas)에서 온 말로, 귀의하다·받들다·의지하다라는 뜻
* 阿彌陀佛(아미타불): 아미타불, 즉 ‘무량한 빛과 무량한 수명을 가진 부처’를 뜻한다.
따라서 직역하면: “아미타불께 귀의합니다.” 혹은 “아미타불께 의지합니다.” 조금 더 깊게 풀면, 단순히 부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과 집착을 내려놓고 아미타불의 자비와 서원에 귀의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나무아미타불”을 반복해서 외는 것을 염불(念佛)이라고 한다.
나마스떼(Namaste, नमस्ते)는 산스크리트어 계열의 인사말로,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또는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 / 평안하시길” 정도의 뜻이다. 어원을 보면 namas(나마스)가 핵심이다. 나마스 = 경배, 존경, 귀의, 공경이라는 뜻이다.
* 나마스테 → 나마스(namas) + 떼(te) → “당신에게 경의를”
* 나무아미타불 → 나무(namo/namas) + 아미타불 → “아미타불께 귀의합니다”
즉 ‘나무(南無)’와 ‘나마스(namas)’는 같은 어원을 공유한다. 🙏 나마스테→ “당신을 공경합니다.” 🙏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께 귀의합니다.” 둘 다 결국 ‘나마스(namas)’라는 ‘공경하고 귀의함’의 표현에서 나온 말이다. 199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에는 사람의 나이를 구분하여 부르는 아주 유명한 대목이 있다.
人生十年曰幼,學。二十曰弱,冠。三十曰壯,有室。四十曰強,而仕。五十曰艾,服官政。六十曰耆,指使。七十曰老,而傳。八十九十曰耄。七年曰悼。悼與耄,雖有罪,不加刑焉。百年曰期,頤。
| 나이 | 명칭 | 뜻 |
| 10세 | 幼(유) | 어림. 배우기 시작하는 시기 |
| 20세 | 弱(약), 冠(관) | 아직 젊으므로 ‘약’이라 하고, 관례(冠禮)를 올림 |
| 30세 | 壯(장), 有室(유실) | 장성하여 가정을 이룸 |
| 40세 | 強(강), 而仕(이사) | 몸과 뜻이 강건하여 벼슬에 나아감 |
| 50세 | 艾(애), 服官政(복관정) | 원숙해져 관직의 일을 맡음 |
| 60세 | 耆(기), 指使(지사) | 연륜이 쌓여 손가락으로 지시할 수 있음 |
| 70세 | 老(노), 而傳(이전) | 늙은 사람. 후대에 일을 전하고 물러남 |
| 80~90세 | 耄(모) | 매우 늙은 나이 |
| 100세 | 期(기), 頤(이) | 기이(期頤) — 봉양을 받으며 여생을 누리는 나이 |
# 특히 유명한 표현
20세 — 약관(弱冠)→ “약한 관”이라는 뜻이 아니라, 스무 살이 되어 관례를 올렸지만 아직 젊다는 의미.
30세 — 이립(而立)은 「곡례」의 이 문장 자체가 아니라 『논어』의 三十而立 에서 나온 표현. 그래서 30세를 이립이라고 부르는 것은 『논어』와 『예기』의 전통이 후대에 함께 사용된 결과다.
40세 — 불혹(不惑) 역시 『논어』의 四十而不惑 에서 나온 말.
50세 — 지천명(知天命), 60세 — 이순(耳順), 70세 — 종심(從心)도 모두 『논어』에서 나온 표현. 203
치인사천막약색(治人事天莫若嗇)은 『노자(老子)』 제59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글자 그대로 풀면
* 治人(치인) — 사람을 다스리고 * 事天(사천) — 하늘을 섬기되 * 莫若(막약) — ~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 嗇(색) — 아끼다, 절약하다, 함부로 소모하지 않다
따라서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에는 아끼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여기서 ‘색(嗇)’은 단순히 돈이나 물자를 아낀다는 뜻이 아니다. 노자의 문맥에서는 자신의 힘·욕망·기운을 함부로 소모하지 않고 절제하는 것을 뜻한다.
이어지는 구절이 이를 설명한다. 夫唯嗇,是謂早服;早服謂之重積德。오직 아끼는 것, 이것을 일찍부터 도에 따르는 것이라 하며, 일찍부터 도에 따르는 것을 덕을 거듭 쌓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克己復禮” 식의 유교적 절제와는 조금 다르게,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여 힘을 축적하고 생명을 보존하는 것으로 본다. 특히 재미있는 점은 “嗇”에서 “농부가 씨앗을 아껴두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씨앗을 전부 먹어버리지 않고 남겨두어 다음 생명을 준비하듯, 자신의 것을 함부로 소모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크게 이루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마디로 하면: “아끼는 것이 곧 크게 이루는 길이다.” 이 구절은 바로 뒤의 “重積德(덕을 거듭 쌓음) → 莫知其極(그 끝을 알 수 없음)”으로 이어진다.229
학자일익 위도자일손은 『노자』 제48장에 나온다. 爲學日益,爲道日損。損之又損,以至於無為。읽으면: 위학일익(爲學日益), 위도일손(爲道日損). 손지우손(損之又損), 이지어무위(以至於無爲).
* 爲學日益 — 학문을 닦는 것은 날마다 더하는 것이다. * 爲道日損 — 도(道)를 닦는 것은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다.
* 損之又損 —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 以至於無爲 — 마침내 무위(無爲)에 이른다.
즉, “배움은 날마다 지식을 더하고, 도를 닦음은 날마다 욕망과 집착을 덜어낸다.” 여기서 학(學)과 도(道)를 대비하는 것이 핵심이다.
*學 → 더함(益); 지식, 경험, 개념, 기술을 쌓아가는 것.
*道 → 덜어냄(損); 욕심, 분별, 인위적인 작위, 집착을 하나씩 내려놓는 것.
그리고 “損之又損”이 중요하다. 한 번 덜어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마저 덜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無爲, 즉 억지로 무엇을 만들거나 조작하지 않는 상태에 이른다. 앞서 언급된 “治人事天莫若嗇”과도 연결된다.
노자에게서 아낌(嗇)은 함부로 소모하지 않는 것이고, 위도일손(爲道日損)은 불필요한 것을 계속 덜어내는 것이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학문은 채우는 길이고, 도는 비우는 길이다. 231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는『논어』 「이인(里仁)」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 朝(조) — 아침에 * 聞(문) — 듣다, 깨닫다 * 道(도) — 도리, 올바른 길
* 夕(석) — 저녁에 * 死(사) — 죽다 * 可矣(가의) — 괜찮다, 족하다
직역하면: “아침에 도를 깨달았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여기서 聞道(문도)의 ‘문(聞)’은 단순히 귀로 듣는다는 뜻보다는 도를 듣고 깨닫는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공자는 참된 도리를 깨닫고 그것을 삶에서 체득하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인생에서 참된 길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 깨달음만으로도 삶은 이미 충분히 의미 있다.”라는 뜻이다. 學은 많이 배우고 쌓는 것이라면, 道는 결국 무엇이 진정 중요한지를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조문도 석사가의”는 지식을 많이 갖는 것보다 도(道)를 깨닫는 것을 궁극적인 가치로 보는 공자의 생각을 잘 보여주는 구절이다. 246
상사문도 근능행지(上士聞道 勤能行之)은 『노자』 제41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 上士(상사) — 높은 수준의 선비, 뛰어난 사람 * 聞道(문도) — 도를 듣고 깨닫고 * 勤(근) — 부지런히, 힘써 * 行之(행지) — 그것을 실천한다
따라서 “뛰어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힘써 그것을 실천한다.”
이어서 노자는 세 부류의 사람을 대비한다.
上士聞道,勤而行之。
中士聞道,若存若亡。 중간 정도의 사람은 도를 들으면 긴가민가하고,
下士聞道,大笑之。낮은 사람은 도를 들으면 크게 웃어버린다.
그리고 아주 유명한 말이 이어진다. 不笑不足以為道。“비웃음을 살 정도가 아니라면, 도라고 하기에 부족하다.”
앞서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와 연결하면 聞道(문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行道(행도), 즉 들은 도를 실제 삶에서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의 표현으로 압축하면: 聞道 → 行之 → 無爲 듣고 → 행하고 → 마침내 억지로 행하지 않게 된다.247
『노자』 제31장의 일부다. 君子居則貴左,用兵則貴右。군자거즉귀좌, 용병즉귀우
* 君子(군자) — 군자, 바람직한 통치자 * 居(거) — 평상시에 머무르다 * 則(즉) — ~하면 * 貴左(귀좌) — 왼쪽을 귀하게 여긴다
* 用兵(용병) — 군사를 사용하다, 전쟁을 하다 * 則貴右(즉귀우) — 그러할 때는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따라서 “군자는 평상시에는 왼쪽을 귀하게 여기지만, 군사를 사용할 때에는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여기에는 고대 중국의 좌·우에 대한 상징적 의미가 들어 있다. 평상시의 좌(左)는 길함과 예(禮)의 자리로 여겨졌지만, 전쟁에서는 우(右)가 상례적인 자리와 달리 흉례(凶禮)의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바로 뒤에 이렇게 나온다.
吉事尚左,凶事尚右。길한 일에는 왼쪽을 높이고, 흉한 일에는 오른쪽을 높인다.
즉 노자는 전쟁을 영광스러운 일로 보지 않는다. 이어지는 구절도 중요하다.
殺人之衆,以悲哀泣之;戰勝,以喪禮處之。“많은 사람을 죽였다면 슬퍼하며 애도하고,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상례로써 대한다.”
따라서 “군자거즉귀좌, 용병즉귀우”는 단순히 좌우의 서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로운 때에는 예와 질서를 중시하고, 전쟁을 하게 되면 그것을 경사로 여기지 않고 죽음을 애도해야 한다는 노자의 반전(反戰)적 태도를 보여주는 구절이다.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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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일러두기; 노자와 <노자>, 그리고 초간본 <노자>에 대하여
갑본(甲本)
초간본 <노자> 갑본 도판 제1장 지모를 끊고 괴변을 버리면
제2장 강과 바다가 수많은 골짜기의 왕이 되는 까닭은 제3장 죄는 욕심 부리는 것보다 더 무거운 것이 없다
제4장 도로써 군주를 보좌하는 사람은 제5장 먼 옛날 훌륭히 일을 잘 해내는 사람
제6장 일삼아 하려고 하면 실패하고 제7장 도는 항상 무위이다
제8장 함이 없음을 한다 제9장 천하 사람들이 모두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알고 있는데 〔그것은〕 추한 것이다
제10장 도는 언제나 이름이 없다 제11장 무언가가 있었는데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12장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 같은 것이 아닌가 제13장 텅 빔을 이루는 것이 지극하고
제14장 형세가 안정되었을 때는 유지하기 쉽고 제15장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제16장 정당함으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제17장 덕을 품음이 두터운 사람은
제18장 이름(명칭)과 몸(생명), 어느 것이 절실한가? 제19장 반대되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 제20장 지속해서 채우려는 것은
을본(乙本)
초간본 <노자> 을본 도판 제1장 백성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는 아낌만한 것이 없다
제2장 배우는 사람은 〔배울 것이〕 나날이 늘어나고 제3장 학문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제4장 사람들이 총애와 수모에 어지러워지는 것처럼 제5장 높은 경지의 사람은 도를 들으면
제6장 문을 닫고, 구멍을 막으면 제7장 크게 담은 것은 비운 것과 같다 제8장 잘 심은 것은 뽑히지 아니하고
병본(丙本)
초간본 <노자> 병본 도판 제1장 최선의 통치자는 아래에서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사실만을 알고
제2장 지대한 형상을 잡게 되면 제3장 군자는 평상시에는 왼쪽을 높이고
부 록 곽점초묘죽간본 <노자> 교정문(校定文); 찾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