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와 오다 (외 1편)
손유미 흐르는 물에 복숭아를 씻길 때 복숭아는 여름의 결실 분홍은 여름의 애교 이 모든 걸 담아낸 말랑이는 마음이 함께 흘러 손에 닿는다 그러면 나는 여름 소나기 안에 갇힌 사람 우리는 여러 여름의 비를 거쳐 온 끝에 여름의 열매처럼 살아 있음의 애교처럼 말랑이는 살로 도착한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 숨은 굵은 의도를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읽게 두는, 산뜻한 오해들 그리고 물이 그친다 물에 맞은 작은 멍을 도려내 먹기 좋게 썬다 멀리에서 기다리는 복숭아 일부를 안고 있는 멀리서부터 도착해온 복숭아 모두를 탕의 영혼들
목욕탕 목욕탕에 가고 싶은 마음과 목욕탕에 가야 하는 몸을 살뜰히 모은다 위기의 순간을 앞둔 주인공에게 친구들이 선한 기운을 모아주듯이 그리하여 악당이라는 세력을 물리치고 행복한 결말 모두 할짝 웃으며 달려나가는 그런 결말이 내게는 목욕탕 목욕탕에 있다 대욕탕과 쑥탕 게르마늄 온천과 쑥탕 온탕과 쑥탕 해수탕과 쑥탕 잠깐 열탕 잠깐 냉탕 쑥탕을 오가며 풀어놓은 나의 이완된 근육들 그리고 제 뼈에 그걸 붙이고 다시 일어나는 탕의 영혼들 나는 불은 때를 밀고 영혼들은 제 뼈에 내 근육을 다진다 나는 없애고 영혼들은 불린다 아 아 아 나의 근육과 영혼들은 비누를 묻힌 채 탕 사이를 오가고 서로가 마시는 음료를 나눈다 자기들끼리 자, 이제 탕을 나갈 시간이야 모두 모여 오늘은 누가 집엘 갈 거야? 허벅지가 닿을 정도로 모여앉아 의논을 하다가 먼저 나가버린 건 젖은 머리의 내가 아니고 나를 다진 큰 몸이 텀벙 텀벙 집으로 돌아간다 아 아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니? 나는 묻는데 아 아 아 모두들 어디론가 사라지고 목욕탕의 울림만 남아서 저렇게 돌아가면 집이 다 젖겠는데…… 나 혼자 걱정을 하고 —시집 『탕의 영혼들』 2023. 4 ---------------------- 손유미 / 1991년 인천 출생. 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4년 《창작과비평》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탕의 영혼들』. |